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마을 관광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귀하신 마님이 배가 고프셔서 밥을 드셔야겠단다.
근데 자기는 집에서 먹어야 소화가 잘 되겠다며 가자고 해서
갔다가 영주님한테 된통 혼이 났다. 맞을뻔 했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막되먹게 흘러가는 것인가.
아무것도 모르는 저 아가씨는 이토록 암울한 식탁에서
정말 해맑게 생글거리고 있다. ...한대 때려주고 싶기도 하다.
참 해맑기도 하지.
그래도 덕분에 성에서 점심도 대접받긴 했지만
욕을 하도 많이 먹어서 점심을 먹었는지 욕을 먹은건지
분간은 잘 가지않고 있다. 어쨌든 배는 부르다.
이제 12일밖에 안남았기 때문에 오늘부터는 꼭 해야한다.
유연성부터 좀 다듬어 놔야 배우기가 수월하겠지? 어디보자..
"공주님 유연성부터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보시죠."
일단 허리를 쭉 굽혀서 다리끝에 닿도록 하는 동작을 했다.
다프네도 한다..고는 하는데, 형태는 일단..아무튼 그래.
어떻게 이렇게 둔할수가 있는가! 이리 뻣뻣한 사람이 있을수가!
스트레스가 다시 쌓이기 시작한다. 미칠것만 같다.
시간은 나를 조여오는데 되는건 없고 사람은 재능도 없다.
그냥 이 도시를 빨리 벗어나 도망가는게 상책이 아닐까?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헤헷. 어쨌든 계속 해보죠?"
그래그래 자기가 저렇게 배우겠다는데 어떻게든 될꺼야..응?
돈다. 빙글빙글 돌고 있다. 한마리의 들짐승마냥 거칠게.
"공주님 아직 그걸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허리부터 하세요."
"그건 아프단 말이에요! 그거 안해도 도는건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몸이 유연해져야 부상도 없고 동작이 예쁘게 나옵니다."
"안해요 안해! 도는거 아니면 안할래요!"
아이 이런 아름다운 여자같으니라구. 예뻐서 죽을것만 같다.
"그럼 돌아보시죠. 오늘은 도는것만 할게요."
돌아라 돌아. 미친듯이 돌고 도는거다. 토할때까지 돌아라.
"근데 우리 내일도 놀러가는거죠?"
"오늘 다 봤지 않습니까. 어디를 더 가신다는거에요?"
"바다도 볼거고 사람들이랑 더 만나고 싶어요!"
"그럼 춤은 언제.."
"오늘도 했잖아요? 이렇게 하면 안되요?"
"마음대로 해라.."
"뭐라구요?"
"내일 뵙자구요. 어디서 만날까요? 제가 모시러 갈까요?"
비굴한 인생. 더러운 인생. 힘없는 시민이여 분개하라!
아무리 외쳐봐야 나는 고작 2주안에 몸치를
춤의 달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 약하기만 한 백성일뿐..
집으로 가는 길은 왜이리 멀기만 한건지.
석양도 오늘은 시꺼멓게 보이고 내 가슴도 시꺼멓고.
해가 지는걸 보니 내일도 오긴 오는가보다.
시간은 왜 가는거야. 가끔 멈추기도 해야 살맛이 나는거잖아!
세상은 내가 바라는대로 되는거 하나 없다.
내일도 해는 뜨고 다프네는 온다.
얼마만에 이른 아침에 눈을 떠보는지 모르겠다.
상쾌하긴 하군. 흠..건강에는 꽤 도움이 되긴 하겠어.
맨날 보는게 바다인데 굳이 바다를 구경가야 하는건가.
"어서 바다로 가죠!"
바다는 여전히 넓구나. 파도는 여전히 시원하게 흩날리는구나.
생각해보니 이 여자 선생을 맡은지 벌써 3일이나 지났군.
하지만 할줄 아는건 턴..그것도 제멋대로 턴.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다. 핫핫핫핫!
아무것도 위로가 되질 않는다. 잘도 논다 저 여자는.
"이리와서 모래좀 밟아봐요! 엄청 간질간질해요!"
"저는 맨날 보는 거라 괜찮습니다. 그냥 여기 앉아있을게요!"
대체 여기에 모래성은 왜 쌓고 있는건지.
"여기에 꽃을 둘러놓는거에요. 화단이 있는 성! 어때요?"
"나쁘진 않겠네요. 근데 꽃이 안보이는데요."
"음..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무너지지 않게 잘 감시하구요!"
저만치 뛰어간다.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정말 잘도 뛴다.
30분이 지났는데 오질 않는다. 오다가 화장실도 들르나.
한시간이 지났는데 안온다. 이 여자가 나를 까먹고 집에 갔나?
두시간이 지났다.
나는 모래성이고 뭐고 미친듯이 마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