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일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랬다.
일본... 독도를 자기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남의 나라의 국모를 시해하고 40여년 동안 한 나라의 주권까지 빼앗은 파렴치한 나라.
그럼에도 아직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우리나라는 아직 세계의 무대에서 그들만한 힘이 없기에 아직도 기술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그들을 이겨야 하는 문제가 시급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번 일본에서의 홈스테이는 그런 나의 일본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에서 조금씩 그들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역사와 그들에서의 선진 문물과 그들의 정신을 볼 수 있었기에 정말 큰 의미로 다가왔다. 나의 일본에서의 생활은 4박 5일의 홈스테이 형식의 여행이었다. 너무 짧은 기간이라는 생각에 , 나는 무턱대고 첫 날부터 무리하면서까지 이 곳 저 곳을 구경하면서 보냈던 것 같다.
7월 26일 새벽, 일본 여행이라는 부푼 설레임으로 나는 아쉬운 청주를 떠나,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9시 15분의 비행기로 예약이 되어있어, 잠을 채 깨지 못한 채로 달려가 도쿄의 공항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나는 반쯤은 잠이 들어있었다.
비몽사몽으로 공항에 도착해보니, 왠지 모를 일본의 분위기에 잔뜩 겁이 나고 있었다.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문화도, 그리고 생활도 많이 다를텐데... 라는 생각으로 나는 공항에서부터 연거푸 한 숨을 내쉬었다.
처음 난관은 차를 탔을때부터 시작이었다. 오른쪽에 보조석을 두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본은 서양의 영화 속에서 보았던, 오른쪽에 운전석을 둔 차량을 이곳 저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특산물이란 말에, 후쿠시마지역에서만 맛볼수있다는 소바가루로 만든 아이스크림도 맛보고 , 만화속에서나 나오던 교복의 학생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일본의 낯선 모습에 당황한 모습도 잠시, 1시간 반 정도 걸려 나는 홈스테이 가족들이 있는 오타하라시에 도착을 했다.
홈스테이 가족들을 만나기 전, 홈스테이를 하면서 일본의 문화를 배우고 가겠다는 일념으로 제일 먼저 오타하라시의 시청에서 시장님을 맞이했다. 시장님은 특유의 반가운 인사와 후덕한 미소로 반갑게 환영을 해주셨고, 환영회와 질의응답시간을 갖고, 일본의 문화 뿐 아니라 오타하라시에 대한 나의 낯설음과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친절하게 해주셨다. 시청 앞에서 나는 4박 5일동안 함께 생활할 홈스테이 가족들을 맞이했다.
'오하이오 고자미마스...' 이렇게 비행기 속에서 열심히 연습해 두었던 인사말이 너무 긴장이되서 그런지 생각이 나지 않아 미소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친절하게 미소지으며, 먼저 인사해 주는 다정한 가족들의 모습에 다행이다 안심을 했다.
홈스테이 가족의 차를 타고, 그들의 집에 도착했다.
그들의 주거 형태는, 한국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처음 한국처럼 이리삐죽 저리 삐죽대는 건물들이 없다는 생각에 건물들이 아담하고 귀엽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의 내부는 실로 놀라웠다.
집은 2층 구조로 되어있었는데, 우리나라처럼 흰 대리석이나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건물들과는 달리, 자연주의적인 모습에 나무로 집을 짓고, 옛날 한옥에나 가면 볼 수 있는 온돌방처럼,' 다다미'라고 불리우는 방에 돗자리와 같은 망석을 깔아 앉는다.
화장실도 한국처럼 샤워와 용변을 함께 보는것이 아닌, 욕조와 양번기가 각 화장실에 구분이 되어 있어, 각각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이 되어있었다. 이렇게 집안의 구석구석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구경하는 동안 일본 교류단에서는 환영파티를 마련해주었다.
홈스테이 가족들과의 재미난 담소 이후에 나는 오타하라시 문화회관에 들러, 많은 일본인들과 함께 즐거운 저녁 만찬을 즐기며, 환영파티를 했다. 바로 옆집에서의 생활조차 까마득히 모르는, 외부와 단절 된 한국의 모습과는 달리, 일본의 모습은 이웃끼리 서로 나누고, 축하해주고, 즐거워 하고, 함께 만찬을 즐기는 너무도 행복한 모습이었다. 일본에 대한 적대감으로 둘러싸여있던, 일본에 대한 낯선 모습을 생각했던 나에게 일본에서의 첫 홈스테이는 조금씩 친숙함과 호기심, 그리고 일본 사람들에 대한 친절함과 정으로 웃음지으며 지나갔다.
다음 아침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났다. 원래는 아침잠이 많아 아침에는 부모님께서 나를 깨우시느라 고생하시는데, 역시 부지런한 나라 '일본'이라는 생각에 한국을 게으르지 않는 부지런한 나라라고 생각을 하길 바라며, 새벽 5시 정도인데도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아침식사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생선구이와 밥, 국 , 그리고 몇가지 반찬으로 이루어진 작지만 잘 갖추어진 그들의 식단은 한국에서의 간단한 식단과 비슷해서, 타 국에서의 음식의 맛과 양 등으로 고생할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무리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아침을 부랴부랴 먹고서는, 다시 나는 일본의 '닛코'라는 도시로 향했다. 2시간 후 도착한 '닛코'라는 도시에서는 도쇼쿠라는 신사를 내게 소개했다. 도쇼쿠라는 신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공의 영혼을 모시기 위해 건립된 신사라고 하는데, 일본에서의 가문들의 싸움에서 이기고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로 첫 천하통일을 거머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사라고 해서 그런지, 그 지역사람들의 자긍심과, 존경심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을 정도로 그들의 보존 모습과 금박장식들로 보여지고 있었다.
다음 나의 목적지는 '신큐사'라는 세마리 원숭이 전설이 있는 곳이었다. 청개구리 이야기처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어, 좀 더 친숙하게 이야기를 접하고 전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쇼쿠의 관람 이후에 나는 전병가게를 들렀다. 전병은 중국인들이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어, 매 설날이면 그들의 점괘를 보기 위해, 또는 그들의 행운을 빌기 위해, 또는 그들의 부를 상징하기 위해 먹고, 그리고 선물을 하곤 했다고 들었는데, 일본 또한 전병에 대한 사랑은 그들과 비슷했다.
일본의 전병은, 그 나라의 특성처럼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모습과, 여러가지 맛까지, 그곳에서의 여행의 묘미를 더해주는 듯 했다.
하루의 일정이 끝이 나 버리고, 저녁을 맞이했다.
'오사키'상께서는 참치회덮밥을 만들어주셨는데 그들의 음식은 우리나라에서의 그것과는 편이했다.
먹는 방식에서부터, 그들은 참치회를 간장에 찍어 밥과 함께 먹는 음식으로, 밥에 조미된 시큼한 향 때문에 먹는데에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이전에 알던 분께서 일본에서 라면을 시켰다가 그 맛 때문에 고생하셨다는 말이 그때서야 조금 이해 할 수 있었던 것같다.
'Welcome TO Tokyo City'
일본의 수도이자, 일명'동경'이라고 불리우는 도쿄에 대한 기대감은, 한국과 지난 일본에서의 2일의 일정에서 이미 극에 달해있었다.
도쿄에 온 걸 환영한다는 문구와 함께, 타 도시와는 다르게 바로 하늘에 닿을 듯 즐비해 있는 높이 솟아있는 빌딩들이 나를 처음 맞이했다.
대도시 대도시 하지만, 서울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그리고 발달이 된 도시라는 것이 몸소 느껴졌다.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나인만큼, 도쿄에 들러 맨 처음 이승엽 선수가 활약 중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 구장인 도쿄 돔을 둘러보았다. 기껏해야 부산의 '사직구장'같은 야구장을 생각했던 나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 주변의 크고 화려한 호텔들의 으리으리한 모습에 놀라 그들의 야구사랑을 짐작케 했다. 이리저리 창밖을 둘러보고 있던 찰나, 커다란 주황색의 철제 타워가 보였다.
우리나라 남산타워같이 사람들이 북적였지만, 333m나 되는 그 크기와 자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옆에있던분이 내게 넌지시 말씀해주시길, '이것이 도쿄다워다.'라고 하셨다.
도쿄타워. 1958년 12월에 개업해서 총 11개월동안 프랑스 파리의 320.5m의 에펠탑보다도 그 크기는 크면서, 공사기간은 7배나 빠르게 진행되어, 28억엔의 공사비로 일본의 기술, 국산의 재료를 사용했다는 점으로 세계 제일의 자립철탑이라는 명칭으로 전쟁 후에 급속한 경제 성장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명칭 또한 자국에서의 일반공모전을 통해서 명명명되었고, 개업이후, 지난 1998년 9월까지 1억 2천만명을 임박했을 정도로, 세계에서의 그에대한 관심을 실로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세계적으로도 유명하고, 의의가 있는 탑을 바로 내 눈 앞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일본의 기술과 그들의 노력이 일본의 성장을 돕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부러운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다음 목적지는 일본의 정치 1번가 '긴자'를 들렀다.
'긴자'는 정치 1번가라고 불리울 만큼, 그 곳에는 '국회의사당','의원회관','천황궁전'등 정치적으로 의의있는 건물들이 즐비해있었다.
그 곳에서도 사쿠라다몽을 지나 , 직선으로 쭉 뻗은 멋진 가로수길을 건너면, 정면에 보이는 치오다구, 나가타초의 언덕 위로 우뚝 솟은, 웅장한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이 또한 이름을 일반인들로 하여금 공모를 통해 명명했던 도쿄타워처럼, 1918년에 일반 국민들에게 디자인을 현상 소집하여 그 중에 당선작을 참고로 설계도었다고 하니, 국민들의 참여와 함께 하는 정치가 드르의 생활 곳곳 ,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곳에 숨어있는 듯 했다.
이를 건립하는데에는 243만명의 인력이 동원되었고, 그를 짓는데 사용되었던 재료 또한, 본 회의장의 스테인드 글라스와 국회의사당의 모든 열쇠를 제외한 모든곳이 일본 각지의 순수 자국 자재료로만 건설되었따고 해서, 그들의 자국 사랑을 일컫게 했다.
일정이 끝날무렵, 나는 마지막으로 일본의 후지 tv방송국을 방문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는 방송국의 방문이라 친숙하기도 했고, 그와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일본 과학 미래관의 방문은, 약 100만개의 LED를 부착시킨 세계 최초의 구형 디스플레이 장치인 심볼, 그리고 일본의 로봇 아시모를 통해 그들의 기술력이 어느정도에 달해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날의 나의 일본에서의 하루는, 홈스테이에서 많이 이야기 하지 못했지만, 처음 맞이하는 나에게 친절하고 정답게 대해주신 홈스테이 가족분들과 함께했다. 그들이 궁금해 하는 한국에서의 이야기, 너스레로 일본에서 유명해진 한국 드라마 이야기로 한층 그들과의 이갸기는 흥을 돋우어 갔다. 처음보는 나에게, 정말 가족처럼 편하게 대해주신 그 분들에게 너무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조금 짧을수도 있는 4박 5일의 일본여행은 다음 날, 일본 후쿠시마 공항에 도착한 후, 인천공항으로 향하면서 끝이 났다.
아쉬움과, 희망과, 그들에의 문화와 생활, 그리고 친절함까지 더불어 나의 4박 5일은 일본에서의 재미나던 일정들과 느낀점들을 생각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 곳에서 느낀 많은 이야기와, 생각들과, 모습들은 일일히 말로 설명할 수 없겠지만, 그들을 단지 적으로만 생각하는 일본 여행 전의 내 모습과 같은 분들보다, 이제는 그들과 달라진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를 바라보면서, 세계 무대에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로,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우고, 우리의 우수한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주어, 서로 협력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동얀인들의 횡보로 제 1의 모습으로 우뚝 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