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속엔 삶이 있고 고통이 있고 좌절이 있다. 48장의 그림조각이 만들어 내는 극한의 희노애락.
추석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즐길거리가 뭐가 있을까? 윳놀이? 널뛰기? 제기차기? 이것들은 설날용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추석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스톱을 떠올릴것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빙 둘러 앉아 서로를 향해 죽네, 사네. 똥을 먹어라 피를 먹어라 거친 말을 오고가게 만드는 놀이 고스톱. 우리는 화투로 하는 도박에 어려서 부터 노출되어 왔고 그 매력을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 는 이 화투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대에서 부터 시작한다.
서두와 달리 영화 는 사실 고스톱을 소재로 삼지는 않는다. (원작 만화 "타짜" 에서는 2부에 고스톱을 다루고 있기는 하다.) 영화 에서는 화투게임중 가장 배팅이 과격하고, 짧은 시간에 판이 끝난다는 '섯다'를 그려내고 있다. 48장의 화투패중 20장을 가지고, 그 중에서도 단 두장만을 받아서 승부를 겨루는 '섯다'는 사실 실력보다도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내 마음을 감추는, 심리전을 이용하는 게임이다. 끗발이 안좋고 자금이 모자라도 배팅기술과 심리전을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다는게 '섯다'의 묘미. 영화 는 이런 '섯다'를 많이 닮아 있었다.
영화는 최동훈표 웰메이드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 하다. 감각적인 색감과 촬영은 여전할 뿐더러 숨가쁘게 넘어가는 편집의 힘도 아직 건재하다. 전작 에 비해 빠지지 않는 생생하고 맛깔나는 대사도 영화의 질을 높여주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타짜의 화면은 화려하지만 절제되어 있고, 감각적이지만 상투적이지 않다. 휘몰아 치다가도 쉬어가게 해 주고있으며 느슨한 가운데서도 호흡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의 승부수는, 전작 과 마찬가지로 캐릭터에 있다.
영화는 캐릭터들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다소 내러티브의 흐름에 방해가 될 지라도 캐릭터들은 스크린 위에서 자신의 매력을 300% 발산해 내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 1장 "낯선 자를 조심해라" 를 시작으로 영화 초반에 중요 캐릭터가 다 등장해 자신의 색깔을 걸쭉하게 풀어놓기 시작한다. 누가봐도, 언제봐도, 캐릭터의 성격이 확실히 드러나는 개방적인 캐릭터. 전작 에서는 이리저리 꼬여있는 플롯을 빠른편집으로 풀어가면서 캐릭터들을 서서히 드러내며 집중도를 높였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작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든다.) 완벽에 가까운 캐스팅도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조승우, 유해진, 김혜수, 백윤식 등 내놓으라 하는 스타들이 자신의 끼를 캐릭터에 녹여내고 있다. 특히나 평경장 역의 백윤식과 정마담역의 김혜수는 만화책의 캐릭터가 그대로 살아 나온듯 생생하고 완벽하다. 조승우는 캐릭터의 변화가 느껴지는, 깊이 있는 연기로 고니를 완벽히 재현 해 내었으며 고광렬역의 유해진도 특유의 압담과 애드립으로 자칫 무겁게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풀어주고 있다. 그 외에 곽철용역의 김응수, 아귀역의 김윤석 의 연기도 일품!! 특히나 아귀는 걸죽한 사투리와 함께 인간성이 말라붙은 절대악의 이미지를 너무나 훌륭히 표현 해 주고 있었다. 최고의 배우들이 최고의 연기를 펼쳐주고 있는데, 어찌 영화가 엉성할 수 있겠는가? 타짜는 연기란 어떤 것이다를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는 영화였다.
영화는 홍콩에서 제작되어 진 일련의 도박영화와는 그 성질이 다르다. 스승의 복수를 위해 절대고수와 붙어 혈전을 벌인다는 식의 영화를 예상했다면 분명 맥이 빠질 것이다. 왜냐면, 영화 가 시종일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누가 판돈을 따가느냐 가 아닌, 그들이 왜 화투를 손에서 버리지 못하는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화투판은 화려하지도, 복잡하지도 않다. 담백하고 냉정하다. 원작에서 보여주던 수많은 사기기술중 등장하는건 오로지 밑장빼기와 하나마나기리 뿐이다. 화투라는 게임 그 자체보다는 캐릭터'들'에 집중 하고 있는 이 영화, 그러기에 영화는 상황을 구구절절히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어찌보면 굉장히 불친절 해 보일 수 도 있는 이 영화. 전작 이 짜 맞춰야 하는 영화라면, 는 상상하고 채워 넣어야 하는 영화인 것이다.
"사나이가 한번 태어 났으면 악셀한번 밟아 봐야 하는것 아닙니까." 이 대사 하나로 영화의 모든게 설명될 수 있겠다. 브레이크란걸 모르는 사람들. 오로지 앞을 향해 무섭게 내달리는 캐릭터 들은 영화속에선 도박을 하고 있지만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그 욕망의 촛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건, 사람은 일생을 욕망속에 허덕이며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속의 그들처럼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본, 재미있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