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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구의1인자 최규하 전대통령

박성규 |2006.10.22 17:57
조회 228 |추천 11

오늘 오전 현존 전직 대통령중 가장 최고령인 최규하 전 대통령께서 오전 88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대한민국 격동 역사의 어두움을 뒤로 간직하고 저세상으로 가셨다.

 

대략 그에대해 이력서를 쓰자면 이렇타.

 

1919년 강원도 원주에서

1941년 일본 도쿄 고등사범학교 영문학과를 졸업

1943년 만주 국립대동학원을 졸업

1945년 일제해방년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수에 취임

1946년 중앙식량행정처 기획과장으로 공직에 입문.

1951년 농림부 농지관리국장 서리를 거쳐 외무부 통상국장이 됨

1952년 주일대표부 총영사,

1959년 주일대표부 공사로 승진해 그해 외무부 차관

1963년 국가재건 최고회의 의장 외교담당 고문

1964년 말레이시아 대사

1967년 외무부 장관에

1971년 대통령 외교담당 특별보좌관에 취임

1972년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이 되어 평양에 다녀옴

1975년 국무총리 서리.

1976년부터 4년동안 국무총리를 역임

1979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뒤 그해 장충체육관에서 통일주체 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해 제10대  대통령에 취임. (10.26 박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살해)

19880년 5.17 비상계엄 확대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에게 밀려 1년도 안돼

          대통령   직을 사임

 

이후 국정자문회의 의장과 민족사 바로잡기국민회의 의장을 맡았지만 1993년 이후 병마로 외부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이후 일제모든 정치관련 활동을 중단!!

2년 전 부인 홍기 여사가 별세한 뒤 건강이 더욱 악화!!

 

 

위 내용만 봐도 정치인생은 인생인데..참 많은 일들을 겪을시기에 그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었네요..

항상 나오는 말이지만 최전대통령은 함구의 1인지압니다.

 

대통령 당시에도 전두환 장군에 밀려 아무런 권한도 행사하지 못했던 비운의 대통령..허수아비..

심지어는  당시 10.26 사태 합동수사본부장이었던 전두환 장군이 이끈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 세력은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도 받지 않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합니다.

 

이윽고 12·12 사태를 계기로 군 내부 주도권을 장악한 신군부 세력이 이듬해 비상계엄령을 전국에 확대했고, 결국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벌어졌지만 피흘리는 민심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대통령이었습니다.

군부에 눌려 허울 뿐인 자리에 앉아 있던 최 전 대통령은 결국 1980년 8월, 스스로 대통령직을 내놓기에 이릅니다.

 

 

실로 8달만에 일어난일입니다.

 

격동의 시기에 군부의 힘에 휘둘렸던 역사상 가장 짧은 '불운의 대통령'으로 기록됐습니다.

 

사실상..최규하 대통령 하면 우리 국민속에..떠오르는건..아무힘도 없는 대통령,무언가 알고 있지만 끝까지..입을 열지 못한 대통령..이러한 이미지가 대부분이다.

 

이제 그때당시 역사를 서술할 장본인은 없다.

 

이렇케 역사는 뭍히는건가??  최규하가 어떤사람인지 더이상은 알수가 없다..

 

역사의,재조명과 고증을 통해..지금당장은 아니더라도 훗날 역사스페셜 같은 코너에서 한번 면밀히 주변인과 함께..역사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생겼으면 하는 안타까운 맘이다.
 

추천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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