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아마 사랑을 끝내는 연인들은 모두 그런 말을 하지 않을까. 그렇게 믿었던 사랑이 이렇게 나를 저버릴 수 있냐고. 그토록 굳게 믿었던 사랑이 어쩌면 이리도 쉽게 변할 수 있냐고. 하지만 이는 연인들의 마음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쉽게 애정을 쏟기도 하지만, 그만큼 빨리 마음이 변하기도 한다. 아마 요즘 음악 활동을 하는 뮤지션들도 그런 마음 아닐까. 불과 5-6년전만 해도 한해에 한두장쯤은 밀리언셀러가 발표됐고, 꼭 스타를 출연시킨 뮤직비디오들을 만들지 않아도,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아도 음반판매와 공연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뮤지션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TV에 출연하지 않고는 음악 생활 자체를 하기 어렵다. 아무리 인기 있는 가수도 음반 판매량이 채 10만장을 넘기 어렵고, 이렇다할 수익을 내려면 해외로 진출하거나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음악으로 무언가를 하려는 생각을 버리는게 차라리 낫다. 대체 이 몇 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정말, 어떻게 (음악에 대한) 사랑이 그래요?
이승환이 CD로 내는 마지막 정규 앨범 ‘hwantastic9'은 그렇게 음악을 떠나간 대중들에게 한 뮤지션이 음악을 사랑하는 방법을 정리한 화려한 피날레처럼 보인다. 돈을 벌고자 했다면 굳이 수차례 그래미 상을 수상한 뮤지션 데이빗 캠벨을 기용해 ’그늘‘의 후반부에 서서히 밀려나오며 천천히 곡을 감싸는 화려한 오케스트라 편곡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환상적인 연주력은 물론 모든 사운드들이 놀라울 정도로 조화롭게 뒤섞이는 ’rewind'의 믹싱을 위해 U2의 녹음등을 담당한 엔지니어 저메인 클락을 기용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mp3에 작은 PC스피커로 음악을 듣는 것이 ‘표준’이 된 시대에 누가 이런 것들에 신경쓰겠는가. 물론, 꼭 CD로 이 음악을 듣지 않는다해도 ‘hwantastic9'은 지난 10여년동안 이승환이 발표한 어떤 앨범보다도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에서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후반부의 멜로디나 코러스라인으로 강조된 ‘울다’의 후렴구는 오디오에서 CD로 듣건, 블로그의 배경음악으로 듣건 듣는 사람의 귀를 때릴 것이다.
또한 ‘Human'부터 ’Egg'에 이르기까지 이승환의 곡들이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큰 스케일에 걸맞는 긴 러닝타임을 가지고, 보다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hwantastic9'의 곡들은 이승환의 스타일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곡의 전개를 훨씬 컴팩트하게 끌고 간다. 하드록과 가스펠적인 성격이 기묘하게 섞이면서 이승환이 그 예의 끝에서 끝을 오가는 보컬을 들려주는 ’Pray for me'도 러닝타임이 5분이 채 되지 않는다. 만약 이승환이 늘 ’천일동안‘ 같은 대곡만 한다거나, 혹은 어려운 대곡지향의 록음악을 한다는 편견만 없다면 ’hwantastic9'은 컴팩트한 대중적인 팝이면서도 이승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음악적 스타일을 함께 느끼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hwantastic9'은 한번쯤 고지식하게, CD를 플레이어에 넣고 집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좋은 헤드폰이나 스피커로 들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단지 발라드의 스타일안에 국악기인 가야금이 마치 기타처럼 자연스레 녹아든 ’남편‘같은 곡에서 가야금이 공간속에서 풍겨내는 은은한 느낌이나, ’No pain, No gain'에서 마치 소용돌이 치듯 점점 더 크게 곡을 지배하는 기타의 섬세한 파장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그런 사운드 하나하나가 모여 완성한, 이제는 ‘이승환류’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이승환의 독특한 음악적 정체성이다. ‘천일동안’이 담긴 앨범 ‘Human'이후 발라드로부터 프로그레시브 록, 일렉트로니카, 심지어는 록 오페라까지 시도하며 자신의 감수성과 장르의 융합을 시도해온 그는 이번 앨범을 통해 그것이 완성단계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사물놀이와 헤비메틀 기타가 너무나 태연하게 뒤섞이고, 타령조 멜로디가 갑자기 하드록으로 넘어가는 ’소통의 오류‘나 시부야케이의 리듬패턴에 랩과 하드록이 이승환의 장난끼 어린 멜로디라인과 완벽하게 뒤섞이는 ’건전화합가요‘는 ’hwantastic9'이 ‘환상적’이라는 뜻과 동시에 ‘이승환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확인시켜줄 것이다. 특히 뉴메틀 사운드에 심플한 멜로디를 얹어 팝과 뉴메틀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는 ‘No pain, No gain'은 올해 국내에 나온 록 싱글중 최고의 완성도와 최고의 대중성을 자랑한다. 이승환은 자신이 지난 10여년간 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하면서 대중과의 접점을 함께 찾았다. 어쩌면 ’hwantastic9'은 지금 한국에서 음악‘만’하는 사람들이 자기 세계를 지키는 선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담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승환이 무슨 음악을 하건 많은 사람들은 그리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블로그 BGM이나 드라마 삽입곡, 혹은 휴대폰 컬러링이 아니라 ‘음악’에 관심이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조금 귀찮더라도 제대로 이승환의 음악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CD를 한 번만 제대로 ‘감상’하려는 자세만 있으면 된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당신 중 누군가는 오랜만에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