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년한테 화초란... 어쩌면 꽃신 같은건지도 몰라.
아껴 두면 곱고 좋지만, 그럼 신이라고 할 수 없고
제 구실 시킬려고 발에 끼면,
그때부터 그저 구저분해지는 일만 남은 거이
꽃신 아니냐..
- 오죽하면 동기들 줄줄이 화초 올리는 전날,
교방이 운다고들 하냐
..기녀 팔자 애닯아 지붕도 울고, 문설주도 울고,
대들보도 울고, 기둥도 울고..뒤란 우물물도 운단다..
..오늘 부터 나는 뭇사내의 기집이다,
아무나 타고 넘어라..
이리 대놓고 떠드는 날 아니냐..
화초를 올리게 될 연희가 있는 전날 밤,
아직은 뭘 모르는 어린동기들의 나란히 놓인 머리통들 틈에서,
이미 해어화의 인생을 십여년은 넘게 살아 온 듯한 선배 기녀는
걱정인지 푸념인지 모를 탄식을 하고 있구려.
해어화란 그저..
바늘을 태산으로 부풀리고 바다를 국선생 한 잔으로 죽이면서
적당히 사내들의 마음을 맞춰 주면 그뿐,
또한 그 마음을 감춤에 있어서
하늘도 땅도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이 기녀라는
행수 백무가 하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 동기아이들이
깨달을 무렵에는..그 마음의 후벼진 상채기 위에
굳은 살이 덮히고 또 덮혀 있게 될 것이지요..
꽃같이 웃고 있으나, 진정한 계집이라 할 수 없고,
비단옷에 좋은 옷 입고 있어도.. 사람이라 할 수 없는 팔자가
바로 기녀의 명운이고 보면,
화초란 기녀에게 허락된 하룻밤의 결혼식이자 어쩌면..
'사람'으로서의 장례식 이라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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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의 상처가 될 - 부용의 댕기
매향 - 시궁창도 기고 진창도 굴러라..
그 속에서도 지 속을 드러내지 않고 꽃같이 웃을 수 있을때
그때야 말로 네 년을 진정한 기녀라 할 수 있느니라.
최고가 되고 싶었던 소녀,
재예도, 힘도, 권력도 그 모두를 갖고
최고의 기녀가 되고 싶었던 소녀,
- 부용이 화초를 올리는 밤...
곱게 단장하고 들어간 그녀의 눈 앞에는
수포교 아래 거렁뱅이 보다 못한 주정뱅이 늙은 사내가
침을 흘리고 눈을 희번덕 거리며 부용에게 달려 들려 하고 있소.
매향 -..잊지 마라, 네 기명은 부용(芙蓉)이다.
더럽고 냄새나는 진창에 뿌리를 두지만,
너무도 화려하고 탐스럽게 피어나는 바로 그..연꽃 말이지..
내가 무엇을 잘못 하였다는 것일까..
억장이 무너지고 억울함에 짓눌려
눈물이 흐르는 뺨 마저 아파오는 부용의 모습이오..
스승님의 가르침대로 힘을 갖고자 했고,
그래서 벽계수 대감에게 권력을 청탁한 것 뿐인데...
매향은 그런 그녀를,
스승의 등에 칼을 꽂으려 한 방자한 년이라 불렀소.
마음을 단속하지 못한 죄,
속내를 너무도 쉽게 드러낸 죄를 ..이렇게 받으라 하고 있구려.
처음으로 그 머리에서 풀어 건네줄 댕기를,
하여, 여인으로서 평생 잊지 못할 첫 밤을,
호감은 커녕 구역질이 날 것 만 같은 냄새
나는 사내에게 허락하면서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로 가슴을 온통 할퀴어 놓고
그 가슴에서 흐르는 핏물같은 눈물을 부용은 흘리고 있었소.
아무리 그것이 기녀의 명운이라 하나,
무엇을 위해 더러운 시궁창과 같은 연못 속에
제 삶의 뿌리를 두어야 하는 것이며,
무엇을 얻고자 그 시궁창 속에서도 꽃같이 웃어야만 하는 것인지..
참담한 마음을 안고 굴욕적인 밤을 보내는 부용이가 가졌을 의문을
이년도 함께 가져 보게 되는 구려..
# 섬섬의 마지막 댕기
- 너는 몰라도 나는 알어.
비단옷 벗고 걸레만도 못한 옷 입고,
들일 밭일에 낯색은 노파나 다름 없이 되구
..뿐이야? 거름 내려면 똥지게도 져야 돼. 그게 끝이야.
그게 니가 죽고 못사는 그 대단한 사랑의 끝이라구~!
섬섬이 뿐만이 아니라,
그런 이유로 그 아이들의 사랑을 가당치 않게 여겼던
백무도 아는 일이고
이 아이들의 사랑을 지켜 보고 있는 ..
그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얘기 이지요.
'가난이 문지방을 넘어 오면 사랑은 창문을 열고 달아 난다.'
- 오죽하면 이런 말이 만고의 진리로 떠도는 세상 아니오?
이년, 이 장면 전에 나왔던 섬섬이 어미의 언행을 보니
단편소설 '화수분'에 나왔던 큰 딸이 떠 오르더이다.
넌덜머리 나는 가난에 치이고 채이고 너무나 지쳐 버린 나머지
눈앞의 먹거리 앞에서 어미조차 모른척 하던 그 아이 말이오.
섬섬이의 어미는 마치 그 아이처럼..
제 자식을 온전하게 걱정할 줄도
사랑할 줄도 모르게 되어 버린..
그저 가난에 지쳐 나가 떨어진 야차 같기만 하더이다.
- 마음없이 껍질만으로 사는거..그게 더 딱한거 아니니?
..그저 지금 내가 가진 감정,
그 감정이 시키는 대로 솔직하고 당당하게 앞으로 갈거야.
그리고 진이의 이 반박이
울고 싶어도 우는 것 조차 허락이 되어 있지 않은 아이 섬섬이에게
얼마만큼의 상처와 자괴감으로 돌아 왔을지..알 것 같더이다.
- 처음으로 연희 나간다며? 그거 드리고 가..
전부터 니 댕기, 그 낡은 댕기가 마음에 걸렸다..
..뭐 이런 사내가 다 있을까...
그녀가 연희에 나가든 화초를 올리든,
엄한 놈 품에 몸을 던지든 간에
'그대가 곁이 있는것 만으로'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사내,
장이는..쥐꼬리만도 못한 세경을 힘겹게 모았을,
그래서 장만했을 붉은 비단 댕기를 섬섬에게 내 밀고 있소.
- 이거 하고 내가 어디 가는 건지 알기나 하니, 너?
딴 놈 품에 나 던지는 거야..그거 몰라?
- 알어..내가 할 수 있는게, 너한테 해 줄게 그것 밖에 없어.
그냥 그거라두 해 주구 싶어서..
..이것이 그의 사랑인게지요..
세상의 많고 많은 사랑의 모양과 껍질과 속내란 것은
이 세상에 발 디디고 사는 사람들의 머릿수 만큼이나
다르고 또 다르겠지만,
그녀의 기박한 팔자마저,
그래서 늘 아파서 비둥그러진 그녀의 성정마저,
죽어도 내 것이 될 수 없을 그녀의 내일과 그 명운마저
자신의 삶의 일부..
아니 전부로 싸 안고 가려는 장이의 저 장한 사랑,
그 사랑을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던
섬섬은 결국 모종의 결단을 하게 되는데..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마음으로 그토록 애를 써도
섬섬이는 끝내..그 마음의 뿌리까지
제가 필요한대로, 또 원하는 대로 변질 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사랑을 위해 앞날이 뻔히 보이는 삶의 고단함을
감당할 용기는 없고, 그렇다 해도..제 여리고 보드라운
속내에서 울고 있는 단 한사람을 향한 사랑의 의리 또한
떨쳐 버릴 수도 없었던 섬섬이는
결국..제 육신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숨막히는 갈등을 해결하기에 이르렸소.
수십년동안..
수많은 동기들의 서러운, 마지막 명줄이 매달리고 또 거두어 졌던,
수련방의 맨질맨질한 대들보에 목을 맨 채,
가엾은 이 아이..섬섬이는 스스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버린 것이오.
- 섬섬아..섬섬아..?
자니? 예서 이리 자면 못써..방에 가서 자야지..
그녀가 그 앞에서 비둥그러진 말투로
강한척,독한적, 잘난척을 하면 할 수록
그 뒤에서 홀로 울고 있는 상처 입은 어린 소녀의 얼굴을
더욱 아프게 볼 수 있었고
제가 더 아프게 느낄줄 알았던 유일한 사람,
- 장이는 지금..
자신의 하늘이, 그 우주가 한꺼번에 모든 빛을 잃어 버리고
영원히 그에게서 닫혀 버리고 마는 경험을 하고 있었소..
- 진아..너 그거 아니?
천치 바보 같은 니가..나는 세상에서 젤루다 부러웠다.
나도 너 처럼 그렇게 용기가 내 보고 싶었어.
그러나 난 자신이 없어..그러나 난 한번도 단 한번도
내 사랑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했어..
- 장아..장아..
내가 널 이리 곱게 불러본 적이 있었던가?
실은 나..맘 속으론 내가 가진 가장 고운 소리로 널 불렀는데
왜 한번도 소리내서 그리 부르지 못했던 걸까?
- 장아..나 말이야, 실은 이 댕기가 너무 맘에 들어.
이 댕기와 같이 갈 수 있어서..
이 댕기에 담긴 니 마음 안고 갈 수 있어서..너무 다행이야.
- 장아..다음 세상이 있으면 말이지..
너는 종놈으로 나지 말고,
나는 가난이 죽게 싫은 천한년으로 나지 않았으면 싶다.
그때 다시 만나 귀밑머리 풀고 가약맺어..
평생 나는 니 여자로,
너는 내 남자로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차갑게 식어 버린 그의 신부(新婦)..
그 숨이 거두어진 후에야 비로소
붉은 댕기 풀어 귀밑머리 쓸어 넘겨 아낙으로 맞이할 수 있었던
그녀 - 섬섬이를 품에 안고 긴 그림자를 늘이며 걸어 가는
장이의 쓸쓸한 발자욱 소리만이 터벅터벅.. 울리는 슬픈 밤 이구려..
얼마나 많은 남녀가,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신분' 과 '법도'와 '규범'에 억눌려
장하고 고운 사랑 하나 마음편히 맺지 못하고 ,
기도처럼 다음 생애를 기약해야 했을지..또 기약 하고 있을 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