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사토라레라는 영화를 봤다.
영화의 줄거리는 사토라레는 사람이 있다. 사토라레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이 남에게 들리는 사람이 사토라레라고 한다. 즉 마음속으로 자신이 하는 말이 남에게 들리는 것이다. 어찌보면 독심술의 반대이기도 하다. 영화는 어릴적 비행기 사고로 부모를 여읜 주인공이 구조될때 사토라레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시작된다.
사토라레는 보통 아이큐가 180이넘는 천재들로서 이들은 국가의 재산으로서 각 연구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인다. 일본에 단 7명 뿐인 이들 사토라레를 국가는 이들을 관리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이들을 보호한다. 케이스7이란 코드명을 부여받은 사람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영화의 주요 초반부 에피소드는 이 국가적 재목으로 쓰일 이 청년이 그들로서의 생각으론 그리 훌륭할게 못되는 외과의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심리학을 전공한 요원을 보내어 의사를 그만두게하고 신약연구원으로 보내게 하는 것에서 부터 출발한다.
영화의 초중반부는 이런 에피소드를 엮어 가며 코미디 처럼 엮어 가지만 후반에는 이런 사토라레의 고뇌와 휴머니즘,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등으로 영화를 마지막을 훌륭하게 장식한다.
사토라레를 보면 한마을 전체가 이 주인공을 속인다. 물론 선의의 거짓말이긴 하지만,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들킨 사람이 어떻게 살아 갈수 있겠는가? 그래서 국가는 이런 사실을 주인공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또 여기서 들어나는 하나의 갈등... ... 영화속에는 잠시 나타나지만, 자신의 생각이 아닌 타인의 생각으로 나의 상황이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그런것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자유롭게 지내지만 통제 당하는 것이다.
또 한명의 사토라레는 외롭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이 남에게 들키기 때문에 사람들과 같이 살수 없다고 말한다.
위의 두가지 문제... ... 바로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나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아닌것과, 내주위엔 친구 동료 가족이 있지만 정작 외로운 사람들... ...
수조속의 금붕어는 그 수조가 세상의 전부인것인지 알것이다. 그리고 그 수조안에서 자기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있고 내가 의지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하지만 진작 사실을 살펴보면 수조속의 물이나, 온도 먹이등은 모두 인간들이 통제하는 것이다. 인간이 게을러 지면 그 수조는 점점 이끼가 끼고 물이 부패하며 그속의 금붕어는 죽는 것이다.
우리들이 사는 현실세계는 철저하게 통제 되어 있다. 법으로 통제되어 있고 관습으로 통제되어 있고 규범과 규율로 통제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 통제되어있는 삶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협력해서 그 법과 규범과 규율을 만든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에는 지도층 즉 엘리트들이 있다. 사토라레로 치면 국가, 정부이다. 이들 엘리트가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 법과 규범과 규율로 우리를 통제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넘어 가는 수가 많다. 한달에 100만원 조금 넘게 버는 사람들과 수천만원씩 버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차이 이지만 그들 엘리트 문화를 하층민에게 강요한다.
이것이 무어냐 하면 그들이 쓰는 말과 행동양식을 일반화 하여 하층민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이른바 '럭셔리' 라는 말이 있다. 엘리트들은 이런 문화가 가능하겠지만 하층민은 이런 문화는 물론 생존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 또한 이를 따라가려다 무리한 지출을 한다. 또 각종 언론매체는 이런 것이 좋고 마치 이렇게라도 안하면 뛰덜어 지는것 같이 방송을 한다. 각 계층의 문화를 아비투스라하고 사회상층부의 문화를 헤게모니라 한다. 우리가 모른 사이에 엘리트들은 우리에게 그들의 헤게모니를 전파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를 전파하고 강압하는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것은 대중매체, 매스미디어등의 강력한 마취 작용이다. 소위 대중매체들은 이런것이 팔리기 때문에 그들의 헤게모니에 맞는 작품을 만들어 시중에 판매한다. 그러면 아무런 거부감이 없는 일반 시청자들은 그것을 쉽사리 받아들이고 그것이 올바른것인양 행동하고 사고한다. 그리고 그들도 엘리트와 같은 행동양식을 가지려고 한다.
이런 대중매체, 스포츠, 게임들은 하층민들의 비판 의식과 참여의식을 마취시켜 권력의 상층부 엘리트들에게 어떤 비판과 쓴소리를 하지 못하게 한다.
더욱이 위험한것은 이런 대중매체, 스포츠 ,게임을 이용하여 엘리트들은 하층민의 불만을 잠재우고 자신들의 지배를 용이하려 하게 한다. 이른바 3S 이다. screen, sex, sports.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은 이런 3S를 찾게되고 열광하게 되는 것일까?? 나는 그것을 현대인의 고독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고 어디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가족이 생기고 친구 동료가 생기면서 어느집단에 소속되기를 원한다. 현대인의 고독이라 하면 보통 사람들은 자기들은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는데 왜 고독하냐? 말도 안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시생각 해보자. 현대인들은 여러 동호회, 모임등을 가진다. 이것은 역으로 생각하면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는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그럼 왜 불안해지나? 현대사회는 분업의 사회이다. 자기가 맡은 일은 정해져있고 그일을 하는 사회이다. 이건 정보화가 되어갈수로 더 심해진다. 이런 분업은 생산성의 폭팔을 가져와 물질의 풍요를 가져다 주지만, 사람들은 그 물질의 풍요를 찾기 위해 노력을 한다. 잠도 안자고 먹을것도 안먹고 노력을 한다. 하지만 자기가 생각하는 물질의 풍요는 쉽사리 찾아오지도 않고 이루었다해도 자기의 욕심이 커버린 이후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전치가 되어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자기자신을 잃어버린다. 내가 왜 사는지, 내가왜 돈을 벌어야 되는지에 대해서... ...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찾으려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 내가 살아가는 것이 가치있다는것에 대하여서 말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사람들은 남과의 상호교감을 통해서 이를 충족시키는데 이런것이 인터넷 동호회나, 게임상의 길드 같은 것이다.
결국 인간은 나 자신을 찾기 위해 나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찾기 위해 살아가는게 아닌가 싶다. 영화에서도 보면 내가 하고싶은 일 나에게 주어진 일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것. 아마도 이것은 평생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