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녀를 만난 건 석달 전 버스안이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였다.
[어.... 지갑이 어디갔지?]
[아가씨 지갑 잊어버리셨나 보구만... 누가 훔쳐 간거 아니야?]
[어... 정말 가방이 왜 열려 있지? 아저씨 어째요?
큰일났네... 지금 가야 약속시간에 도착하는데..]
[그나저나 버스는 이미 탔으니 어쩌겠소. 그냥 받은셈 할테니 들어가 앉아요.]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저씨~~ 복 받으실 거에요.]
허둥지둥 가방을 추스르는 그녀를 보며 그 상황에서도 명랑할 수 있는 그녀를 난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쿵~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며 멈춰섰다.
[아니 이것봐요. 거기서 그렇게 그냥 깜박이도 안넣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요?]
버스 기사의 놀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승용차 아저씨는 고개를 내밀더니
[뭐야.. 당신 해보자는 거야? 당신이 갑자기 속도를 내서 그렇잖아. 난 깜박이 넣었다고...]
[아니... 이 사람이...]
[손님 여러분 죄송합니다. 10분만 기다리시면 뒷차가 올겁니다. 제가 연락을 취해 놓을테니
그 차로 좀 옮겨 타주세요. 사고처리가 좀 걸릴 듯 합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큰일났네... 이거 오늘 넘겨야 하는 자료인데...오늘 풀리는 일이 없네.
여보세요. 어 김기자 뭐하고 있어? 어쩌냐? 나 지금 도로윈데... 시간안에 못 갈것 같아.
지갑도 잊어버리고 버스는 사고나고... 뭐? 이거 아니면 펑크 난다고.... 큰일났네
일단 전화 끊어봐 방법을 찾아야지. 그래 금방 연락할께]
[제가 도와드려요?]
[네?]
[보아하니 지금 급하게 가셔야 하는것 같은데.... 제가 도와 드릴까요?]
[네.. 어떤 방법으로든 도와주세요.]
[이 서류만 보내면 되는 건가요?]
[네..]
[잠시만요.. 여보세요~ 114죠 양재동쪽 퀵 전화번호 하나 불러주세요. 네네... 고맙습니다.
네...퀵이죠? 여기 양재역인데요? 잠깐만요. 그거 어디로 가면 되죠? 종각까지요... 네
서류 봉투 하나에요. 지금 바로 와 주세요. 지금 양재역 사거리에요. ]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감사드려야 하죠.]
[뭘요. 그럼 제 명함 하나 드릴테니 나중에 퀵비나 갚아주세요. ^^]
[당연하죠. 제가 낼 은행문 열자마자 바로 보내드릴께요]
[제가 퀵 올때까지 기다려 드릴께요. 근처 퀵을 불렀으니 금방 올꺼에요.]
퀵은 정확히 오분후에 도착했다.
삼천원만 차비로 더 빌려 달라는 그녀는 낼 아침 이자까지 단단히 쳐서 갚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담날 난 전날 일을 잊고 있었고, 이른 아침 한통의 전화가 날 깨웠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아침일찍 죄송해요. 혹시 저 기억하시겠어요?]
[저 누구신지...]
[어젯밤에 퀵비에다 삼천원 꿔간 여자요... 버스사고 땜에..]
[아... 안녕하세요.]
[제가 너무 일찍 전화했죠?]
시계를 들여다 보았다. 시계는 이제 막 정각 여섯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아니에요. 마침 일어 나려던 참이었어요.]
[사실은 다른게 아니고, 제가 오늘 급하게 지방 출장이 잡혀서 지금 기차를 타고 이동중이거든요.
제가 지방에서 올라오는 대로 빌려간 돈 바로 갚아 드릴께요. 정말 죄송해요.]
[네... 괜찮아요. 그런거라면 나중에 전화 주셨어도 되는데...]
[제가 한말에 책임을 져야죠. 그나 저나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해요.
올라오는 대로 바로 연락드릴께요.]
[네... 괜찮습니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빌려간 돈 때문에 이렇게 이른 아침 전화를 하는 사람이라면
몇일 늦게 받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겠다 싶었다.
그렇게 여러날이 가고 업무를 마무리하던 오후
나른한 오후를 한통의 전화가 깨우고 있었다.
[네. 행정과의 서 인규입니다.]
[안녕하세요. YT잡지사의 이 수인이라고 합니다.]
[네? YT잡지사요?]
난 머리를 굴려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잡지사에 요즘 홍보를 부탁한 것도 없었다.
더구나 행정부서인 나에게 잡지사에서 전화 올 일이란 더더욱 없었다.
[어떻게 전화하셨나요?]
[계좌번호 좀 불러 주세요.]
[네?]
[송금하게 계좌번호 좀 불러 주세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다짜고짜 계좌번호를 불러 달라니...
난 청렴결백하게 산 사람인데...
혹시 이게 말로 만 듣던 뇌물...)
[죄송합니다. 전 그런 뇌물 받을 수 없습니다.
전 청렴 결백한 공무원이고, 공무원의 신의에 어긋나는 그런 행동은 할 수 없습니다.]
순간 부서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뇌물 전화인가봐?]
[그러게... 대단한데... 이런 대낮에 청사로 전화를 다하고 말이야. 그나저나 서계장이 더 대단한데..]
난 으쓱한 어깨를 치켜세우며...
[이런 전화 곤란합니다.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저...저기요. 사람말은 끝까지 들어봐야지요. 저 기억 안나세요.
며칠전 버스 안에서 사고나서 퀵비랑 차비 빌려간 여자요... ㅡㅡ;;
제가 제 이름은 안 알려 드렸죠? 죄송해요.
그나저나 오늘 빌려간 돈 갚을려다 이거 졸지에 비리에 연루된 사람이 된 기분인데요.]
[헉.... 죄...죄송해요. 그 분인줄 몰랐어요.]
[뵙고 직접 드릴께요. 늦었는데 차라도 대접해야지요.]
[안그러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오늘 마침 주변에 취재때문에 과천 갈일이 있어요. 네시반쯤 연락 드리겠습니다.]
[네.. 네...]
[이야... 서계장 대단한데...그런 불법 뇌물성 전화를 물리치고 말이야.
하긴 공무원이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기본이지..]
[저...그게 아니고...]
순간 이런 저런 변명거리도 생각해 내지 못하고, 그녀 덕분에 졸지에 청렴한 공무원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이름을 잊지 못하게 된 순간이었다.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관악산을 타고 내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이 수인입니다. 괜히 청사로 전화했다 오인 받을까봐 핸드폰으로 전화드렸어요.]
[아.... 네...]
[저 취재가 끝나면 여섯시쯤 될것 같은데요. 킴스백화점내 스타벅스 커피숍에서 기다릴께요.]
[네 그때 뵙겠습니다.]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 수인씨]
[네... 안녕하세요.]
[차 뭐하실래요? 오시면 시킬려고 저도 아직 안 시켰어요.]
[전 그냥 커피로 하죠]
[커피도 종류가 많은데.... 알았어요. 제가 맛있는 걸로 특제로 갖다 드리죠.]
총총걸음을 하며 그녀가 카운터로 다가간다.
[많이 늦었습니다. 지방에 내려갔다 취재가 길어지는 바람에...]
[아니에요. 그나저나 전 덕분에 오늘 난감했습니다.]
[네?]
[뇌물성 전화인줄 알고....]
[그런 전화가 자주 오나봐요?]
[아뇨... 오늘이 첨 입니다.]
[^^;;; 하하하]
[덕분에 오늘 완전히 청렴한 공무원 됐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그래서 좀 전에는 핸드폰으로 전화 드린 거였어요.
그런 줄 알았으면 청사들어가서 빌린 돈 봉투에 담아 드릴껄 그랬나?]
[ㅡㅡ;;; 헉.... 누구 목 달아나는 거 보고 싶어요? 다들 오해할꺼에요.]
[그죠? 그나 저나 빌린 돈 여기 있습니다.]
[네]
[정말 잘 썼습니다.]
[그나 저나 지갑은 찾으셨어요?]
[아니요.. 덕분에 카드 분실신고내고 민증도 분실신고 내고 한주가 분주했죠.]
[아니... 무슨 수수료가 이만원이나 붙습니까? 이렇게 많이는 못받습니다.
제가 빌려드린 돈만 받을께요.]
[아니요. 그냥 넣어 두세요. 그렇게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흔쾌히 빌려주기 싶지 않으셨을텐데,
정말 고마웠어요. 그리고 그건 수수료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연체료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무슨 고리대금 업자도 아니고...]
[그냥 넣어두세요.]
[제가 이 돈으로 저녁살께요.]
[네 좋죠. ^^ 덕분에 잘 먹을께요]
[뭐 드실래요?]
[이 근처에 순대국 잘하는 집 있어요. 거기 가시죠]
[이쪽 근처 잘 아시나봐요?]
[그럼요. 취재를 가끔 나오긴 하지만 밥집은 제가 잡고 있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처음부터 가식없이 편한 일상처럼 내게 다가온 그녀...
어느새 내 일상의 한 조각처럼 내 가슴속에 그녀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