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일이었다.
정처없이 길을 걷던 중, 아마도 나는 시위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지 않았던 것 같다. 먼저 들어가서 기다리는 것은 왠지 싫어,라는 마음으로 나는 무작정-걷다보니 거의 한시간여를 걸었던 것이다.
가끔씩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걷다보면 온갖 기억들이 마구 뒤엉켜서 떠오르기 시작한다. 사람이 이러다가 미쳐버리는 것이 아닐까, 마치 멀티비전 32분할에 각각의 영상을 시끄럽게 틀어놓는 형국이랄까. 그렇게 나는 내 귀가 시끄러운 채로 길을 걷는다. 오래된 집, 그래 저런 2층집 계단으로 준일이 자취방이 있었지,엠피쓰리 플레이어에서 나오는 타임이즈 러닝아웃은 멜번에서 질리도록 들은 노래, 여지없이 씩씩하게 나는 걷게 되는 거야-플린더즈 역 앞에서부터 스테이트 라이브러리까지 스완스톤 스트릿, 코너를 돌때 쯤엔 서브웨이에서 모닝메뉴로 파는 큼직한 쿠키와 카푸치노, 종종 나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지-그치만 나는 서브웨이 샌드위치는 좀처럼 먹지 않았었던 것 같다. 주문이 어렵다는 그 이유로. 가끔은 1.5불짜리 스시를 입에 물고 삐딱한 눈빛으로 걸었지. 그래 노래 한곡에도 이렇게나 많은 스토리가 들어있는걸. 찬바람 냄새를 맡으면 지금은 거의 없어진 공대운동장 한켠에서의 데이트가 생각나. 추웠지만 들어갈 수 없던 그 시간, 처음의 그 떨림들은 유통기한이 너무 짧았지. 사랑의 스킬이 전혀 없던 나. 백록관 위 노천 밴치에서 나눴던 그 많은 이야기들, 그 사람들. 다들 어디서 무얼 할까. 다시 뮤즈, 아무래도 뮤즈를 처음 알게된 2000년 겨울- 마이너가아닌 메이저 코드로도 이렇게 슬픈 음을 만드는게 참 신기하지 않니,라고 물으며 이 음악을 들려주던 너, 잘은 모르지만 그래 그런 것 같아,라고 하던 나. 그때는 뮤즈의 매력을 잘 알지 못했는데 몇년전까지 뮤즈엔 네가 오버랩되서 들렸단다. 2000년 겨울은 나를 성장시켰어, 여러가지로. 나의 약함에 서글픈 적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건 내가 순수하다는 증거라고 믿으며 위로해. 두려움이 없었다면 너에게 사랑한다고 그때 말하지 않았을까, 무모하다고 느껴져도 말이야. 그런 망설임같은건 사람의 습성인지 지금도 나를 머뭇거리게 하지만. 이글에 그나저나 등장하는 2인칭은 도대체 몇명을 두고 하는 말인건지, 몇명의 '너'들. 지금은 다수가 '그 사람'
이건 또 다른 날의 이야기.
무심코 걷던 중이었다. 백지장같이 새하얗게 브레인을 만들고 상큼하게 한발한발 내밀던 대 머릿속으로 팅팅팅 들어온 기억.
그다지 추억이랄 것도 없는 거였는데 하필 왜 너와 함께 걷던 길인 걸까. 무의식은 무섭다. 같은 루트로 나의 기억력을 테스트라도 하듯 나는 그날의 그 길을 훑듯이 걷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과 시린 손, 계절의 변화만큼 스산해진 내 심장도 처절하게 느끼면서, 다른 길은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걸을 수 밖에- 나는 그렇게 멍청한건지 우직한건지 한길에 들어서면 유턴을 못하는 성품. 그저 정면 돌파인 게다.
아프고 외롭고 그러면서도 소심하게 연락하지 못하는 나, 핸드폰에 입력된 50개의 번호 중에 카드사,학교선생님,상점 번호와 군대간 남동생번호까지 제외하고 나면 거기에 학생들 번호까지 제외하고 나면, 내가 그냥 걸 수 있는 번호는 몇개나 될까. 응, 나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불순한 의도로 너에게 걸었던 그 통화가 갑자기 기억나, 풋. 내가 왜 전화를 했는지 머리속이 하얘져서 횡설수설 했던 나였지. 아직도 나는 서투르구나. 다정한 전화들의 기억이 희미해졌어. 아무 용건 없이, 그냥~ 너 뭐해?, 이런 통화는 희미해졌어. 모든 소통의 창구를 열어놓고 나는 말하지 않으면서 외롭다는 비명을 질러댄다. 투입이 없는 산출을 기대하는 나는 게으름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