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한 남자의 성장 소설이자
가족과 부부관계의 해체가 담긴 프랑스판 American Beauty.
요 며칠 소설 두권을 동시에 읽었는데
두권 모두 너무 만족스러워 행복했다.
살짝 두툼한 볼륨의 '프랑스적인 삶'은 집에서
핸디북 수준으로 가벼운 '머큐리'는 외출할 때 들고 나가 틈틈이.
추억에서가 아니면 우리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 - 존 업다이크
p. 73
우리는 인생을 공들여 만들고, 초라한 월급으로 인생과 타협하면서 젊음을 보냈다. 하지만 실제로 결코 인생을 누리지는 못했다.
p. 183
나도 딸이 생겼다. 나는 자랑스러워 어쩔 줄 몰랐다. 딸. 남자가 인생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p. 190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면 아마 나는 부드러운 물 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으로 상상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자주 슬프고 때로 피곤에 지쳐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익사자와 닮아가는 그런 사람으로.
p. 195
아버지의 죽음이 어느 정도로 내 삶의 흐름을 바꾸어놓고 사물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켰는지 굳이 헤아려보고 싶지는 않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가 떠나면서, 나는 누구의 아들이기를 끝내고 이제는 신체적으로 오로지 나 혼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p. 210
"당신에게 중요한 게 딱 하나 있다면 어른이 되지 않고 아이로 남아서 애들처럼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거잖아. 나는 말이야, 매일매일 예순세 명을 먹여살리려고 온 힘을 쏙도 있어. 참, 당신을 잊었네, 예순네 명을 말이야."
p. 213
예의 바르고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역시 다정하고 재능있고 명민한 파트너와 수십 년 동안 짝이되어, 결코 일치하지 않는 생리적이고 사회적인 시계를 마련해놓고는 자신의 성생활을 망치려 애쓰는 것을 볼 때, 나는 자주 그 악착스러움에 충격을 받곤 했다. 끝내 일치할 수 없는 커플임에도 서로에게 집착한 나머지 실망의 진흙탕 속에서도 명백한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p. 225
첫 바람에 넘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낙관적인 나무들이 있었다. 척박한 땅에서 힘겹게 자라는 데 익숙한 근엄한 나무들도 있었다. 죽은 자의 왕국인 땅 속 깊이까지 뿌리를 내린 견고한 성처럼 흔들리지 않는 나무도 있었다. 기름진 땅의 산물인 풍성한 나무는 초록빛으로 넘쳐났고 그 풍요한 모피를 펼쳤다. 이 세상에서 아주 드물지만, 날씬한 몸매에 항상 꼭대기가 하늘을 향해 있는 몽상가 같은 나무도 있었다. 오래된 의혹으로 둥글게 감고 있는 옹이가 많은 나무, 뒤틀린 나무, 위태로운 나무가 있었다. 알파벳 소문자 i처럼 고도 조금은 건방지고 묘하게 거만한 귀족적인 나무도 있었다. 나뭇가지로 아낌없이 그늘을 만들어 주는 너그러운 나무도 있었다. 쉬지 않고 땅을 붙들어놓고 일하느라 바쁜, 줄지어선 옹색한 나무도 있었다.
p. 235
우리 모두는 모든 사랑 이야기게 유일하고 예외적이라고 믿는 허약함을 가졌다. 어떤 것도 가짜가 아니다. 우리의 가슴에서 느끼는 열정은 똑같고 다시 만들어낼 수 있으며 미리 알 수도 있는 것이다. 최초의 벼락이 지나고 나면 끝도 없는 권태의 복도에 나타나는 습관의 긴 나날들이 온다. 이 모든 것은 우리 가슴 한가운데에 차례로 자리잡는다. 그 주기의 리듬과 강도는 오로지 호르몬의 비율에 달려 있다. 우리 분자의 기질과 염색체 접합의 빠르기에 달려 있다.
우리의 엄격한 교육은 그 나머지를 담당한다. 말하자면 몽롱해진 정신, 팔딱거리는 심실, 꼿꼿한 꼬리가 우리 같은 유일한 존재에게 적합한, 알 수 없는 신이나 초자연적인 은총의 매우 행복한 표시이다. 사랑은 우리가 키워나가야 할 것으로 배운 이런 고도의 감정 중 하나이다. 죽음을 기다리면서 우리가 참도록 도와주는 아편과 같은 휴식에 속한다.
p. 293
로르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프랑수아로부터 전화를 받았따. 그런 상황에 처한 남자들이 치르게 되는 통과의례의 절차에 나를 참여케한 것이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내린 결정을 정당화시키고, 특히 자기가 찾은 새로운 행복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결혼 생활을 20년이나 했던 이 마흔다섯의 남자는 세 가지로 요약되는 행복을 나에게 털어놓았다. 이를테면 하루에 세 번 키스하는 것,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 애인과 함께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흔히 그렇듯이 프랑수아는 일 관계로 나디아를 만났다. 모든 일은 나디아를 처음 보는 순가에 결정되었다. 그는 무심한 아내,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는 아이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는 아주 빠르게 스물네 살짜리 처녀에게 함께 점심을 먹자고 제안했으며, 그녀가 믿기 어려울 만큼 성숙한 여인임을 발견했다. 나디아는 자기 또래의 남자들이 지나치게 경박해 불편하며, 자기는 노련한 남자들과 함께 있는게 더 좋다는 걸 털어놓았다.
p. 298
희망과 약속의 도취 속에서 시작해 확실한 위엄을 확보했던 미테랑 시대는 그의 부도덕한 일탈 행위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통지 말기의 특성인 기름찌꺼지 같은 오물이 공화국의 벽지들에 짙게 배어 있었다. 경제와 관련된 추문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여러 정치인들과 전직 관료들이 쇠고랑을 찼으며, 미테랑의 측근은 엘리제 궁에서 자살했다. 사람들은 부스케아 오염된 피 문제에 대해서 말했고, 대토령이 명령했다는 전화 도청과 비밀리에 슴겨놓은 딸과 병의 진전에 대해서 수군거렸다.
p. 309
"안나, 나는 책이나 일은 모두 상관없어.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여기, 당신 곁에, 이 집에 있으면서 너무나 외로워서 그(정신과 전문의)와 말상대를 하려고 돈을 지불하게 되었다는 거야. 그가 내 말을 들어주니까 마땅히 돈을 지불했다는 거지."
안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래도록 침묵이 계속되는 동안 온도를 높이려고 라디에이터가 덜켱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우리는 분명 빙산 속에 갇힌 빙하 시대의 미라와 비슷했다.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면서 어떻게 그런 정도로 서로에게 무심할 수 있었던가? 우리는 우리에게 할당된 집안일에서 벗어난 것에 즐거워하면서 더 이상 서로를 돕지 않았다. 사랑하지 않게 되면 어째서 서로 돕는다는 생각도 잃어버리는 것일까? 나는 정녕 시시한 잡담이나 하려고 보두앵라르티그의 진료실 문을 두르렸던 것일까? 왜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던가?
안나가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눈길을 먼 하늘에 주고 있는 그녀의 자태는 내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들이 내게 전화했어. 오늘 저녁은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고. 배고프면 당신이 뭔가를 준비해. 나는 너무나 지쳐서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
"생선 요리 해줄까?"
"아니, 나 자러 갈래."
"내가 만나던 정신과 의사가 오늘 아침 자살했어. 부인과 두 아이를 죽이고 난 뒤에 자기 머리에 총을 쐈어."
"미안해. 잘 자."
나는 부엌 식탁에 앉아 있었다. 집의 다른 편에서는 안나가 눈을 크게 뜬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우리가 함께 있건 따로 있건 행ㅂ고하지 않은지는 오래되었다. 같은 시간과 공간에 함께 있다는 사실도 우리를 가깝게 하지는 못했다.
p. 365
나의 어머니는 십오 분 가량 탔다. 사람들이 아직 따뜻한 재를 가져왔을 때, 나는 아주 깜짝 놀랐다. 그토록 깉은 삶이, 그토록 많은 지성이, 그토록 많은 친절이 이렇게 작은 항아리에 모두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클레르 블릭은 여름 날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