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집 과부와 뒷집 홀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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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일이 없어서 개비아범은 빈둥빈둥 집에서 지냅니다. 그러나 마음은 일 할 때보다 더 바쁘고 가끔 안절부절 했어요. 오전 열시쯤에 복실엄마가 가게문을 열면 부채를 설렁설렁 부치면서 골목을 걸어 나오거든요. 손을 바삐 움직이는 복실엄마 곁을 지나며 어흠 헛기침을 합니다. 그리고 시장통 저 위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고, 아는 사람과 얼굴이 마주치면 길거리에 선 채 말을 붙이곤 했어요. 집에 쑥 들어갔다가 얼마 후에 다시 밖으로 나와서 어흠 하며 복실엄마 가게를 스쳐 건너편에 있는 두부가게로 갑니다. 길게 드리운 천막 아래에 긴 의자가 놓여 있는데, 거기 털썩 앉아서 얼굴을 들면 바로 복실엄마의 가게가 정면으로 보입니다. 괜히 두부가게 김씨에게 한참 말을 붙이다가 다시 시장통 위로 어슬렁거리며 걸어 올라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어슬렁어슬렁 걸어 내려오고, 복실엄마의 가게를 지나며 힐끗 복실엄마를 보고는 골목을 들어서서 집으로 갑니다. 또 얼마 후에 밖에 모습을 드러내는 개비아범이에요.
이런 개비아범의 행동을 날카롭게 간파한 사람이 바로 복실엄마였어요. 남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사실 개비아범과 복실엄마에게 어떤 변화가 닥치고 있었어요. 부스스했던 개비아범의 머리가 단정합니다. 꼬랑지처럼 뒤로 넘겼던 복실엄마의 머리가 구불구불 아래로 물결칩니다. 매일 면도를 해서 말끔한 개비아범이죠. 뽀얀 분을 토닥토닥 바른 복실엄마죠. 오늘 개비아범은 고운 모시한복을 걸치고 나왔습니다. 복실엄마는 알록달록한 반소매 티셔츠를 날렵하게 걸쳤어요. 서로 곁눈질 하느냐고 눈이 옆으로 째질 정도입니다.
“어머나, 복실엄마가 요즈음에 예뻐졌어. 좋은 일 있수?”
확 달라진 복실엄마의 화색을 보고 손님들이 한마디씩 던졌습니다.
사람은 내부가 충만하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집니다. 얼굴도 환해집니다. 시장통에 소문 날 까봐 원거리를 두고 개비아범과 벌이는 사랑의 시소게임이 복실엄마의 가슴을 충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삼일이 지난 저녁이었어요. 하루 종일 가게 앞을 오락가락하던 개비아범이 어둑어둑한 사방을 두리번두리번 훑어보더니 천천히 복실엄마에게 다가왔어요. 가게 앞에 서 있던 복실엄마의 가슴이 마구 콩닥거렸죠. 개비아범은 정면으로 복실엄마를 쳐다보지 못했어요. 복실엄마도 역시 마찬가지였죠. 개비아범이 쑥 내미는 손가락을 겨우 내려보는 복실엄마입니다.
“요 동태, 한 마리만 줘요.”
복실엄마는 동태를 집어다가 탁탁 지느러미 치고, 몇 토막을 내어 비닐봉지에 넣어 내밀었습니다. 내민 복실엄마의 손에 개비아범의 손이 다가와 비닐봉투를 받아드는 순간 서로의 손가락이 슬쩍 부딪치며 스쳤어요. 찌르르 몇 만 볼트의 전류가 흐릅니다. 개비아범의 시선은 45도 비스듬히 왼쪽으로, 복실엄마의 눈길은 45도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향했습니다. 봉투를 받아들고 돌아서려던 개비아범이 멈칫하더니 45도 왼쪽에다가 말을 던졌습니다.
“조금 있다가 가게문 닫으면 같이 노래방에라도 갈까요?”
복실엄마는 몸 전체가 흔들리는 느낌이었어요. 역시 45도 오른쪽에 시선을 던진 채 되물었습니다.
“노래방에 가고 싶으세요?”
또 45도 왼쪽으로 떨어지는 개비아범의 음성입니다.
“네, 그런데 남들 눈이 무서우니깐, 조금 있다가 제가 전에 갔던 노래방에 먼저 가 있을게요.”
역시 45도 오른쪽 멀리로 떨어지는 복실엄마의 음성입니다.
“알았어요. 가게문 닫고 바로 갈게요.”
꽃길입니다. 시장에서 약간 멀리 떨어진 노래방까지 꽃길이 활짝 뻗어있습니다. 개비아범은 발길이 둥둥 공중에 뜬 기분이었어요. 복실엄마를 꼭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지만 여자와 단 둘이 만난다는 자체가 엄청난 설렘이었어요. 사실 사랑이란 설렘이라는 꽃배를 타고 오는 손님이잖아요. 그렇듯 얄미웠던 과부가 꼭 처녀처럼 가슴을 두드리니 알 수 없는 일이었어요.
노래방의 저쪽 구석 홀에 자리 잡은 개비아범은 맥주를 시켜 한 모금 훅 들이켰습니다. 휴 하고 한숨도 내쉬었습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여자와 몰래 만나려니 주변에 신경도 많이 쓰였어요. 앞집 과부와 뒷집 홀아비가 붙었다는 소문이 나면 자기야 그래도 남자니깐 덜 하지만 복실엄마의 경우는 좀 난감할 것이에요. 이래저래 만만치 않은 동네입니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실 즈음에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빼꼼 문이 열렸습니다. 살짝 머리를 들이민 복실엄마가 배시시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어요. 복실엄마의 얼굴에 갔던 개비아범의 시선이 무거운 추를 단 것 모양 아래로 툭 떨어졌어요. 순간 마주친 서로의 시선에 당황한 복실엄마의 시선도 저쪽 벽으로 향했어요. 탁자를 가운데 놓고 서로 앉긴 앉았는데 그 다음으로의 진행이 제대로 안 됩니다.
“저...... 시원한 맥맥, 맥주를......”
더듬더듬 대는 개비아범입니다.
“네, 알았어요.”
약간 거친 숨결이 숨겨진 복실엄마의 대답입니다. 너무 착 가라앉은 분위기가 서먹서먹했는지 복실엄마는 앞에 놓인 노래책을 집어 들어 펼쳤어요. 겨우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전에 노래를 참 잘 하시던데요. 뭐를 한 곡 불러 보세요.”
개비아범도 쑥스러운 분위기에 당황하다가 얼른 대답했죠.
“아휴, 뭘요. 그냥 부른 건데.”
“아니에요. 정말 잘 하세요. 어떤 곡 부르시겠어요?”
검과 검이 부딪치듯 서로의 시선이 탁자위에서 슬쩍슬쩍 부딪쳐 가며 쨍쨍 소리를 내는 듯 합니다.
자~ 이제부터 노래의 선문답이 개비아범과 복실엄마 사이에 펼쳐졌어요.
첫 곡부터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됩니다. 개비아범이 찾아 누른 곡은 사랑의 내용이 아니라 인생의 내용이 담긴 노래였어요. 김현성의 “술한잔”이라는 노래였어요.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길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 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 번도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 우우......”
노래를 다 하자 복실엄마는 박수를 짝짝 쳤어요. 개비아범이 복실엄마에게 마이크를 건네자 복실엄마는 한 곡만 더 부르라고 뒤로 뺐어요. 개비아범은 눈썹을 찡긋했어요. 이제 슬슬 굳었던 마음이 풀려가기 시작합니다. 이번 곡은 분위기를 쫙 깔아 내립니다. 김신우의 ‘더맨’
“회색빛에 물든 세상 위에...... 기대선 고독한 사람아.......”
눈을 반쯤 내리뜨고 노래 부르는 개비아범의 표정 위로 노래가사 같은 외로움이 비쳤어요. 복실엄마의 번들거리는 눈빛 속으로 그 아픔이 몰려오는 듯 했습니다. 서먹서먹했던 분위기가 이제 녹녹해졌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내비치기 시작합니다.
마이크를 잡은 복실엄마가 또닥또닥 단추를 눌러 노래를 선곡했습니다. 캬~ 서가인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 개비아범은 앉지 않고 복실엄마 곁에 섰습니다.
“내 영혼이 떠나간 뒤에......” 목소리가 점점 축축해져 갑니다.
“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 가는...... 착한 당신 외로워도~~~”
살짝 내밀었던 서로의 마음이 성큼 밖으로 한 발자국 나와 모습을 드러냅니다. 울긋불긋한 조명등은 빙빙 돌아갑니다.
개비아범이 마이크를 넘겨받아 노래합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
“돌아서 눈감으면 강물이어라~ 한 줄기 바람 되어 거리에 서면, 그대는 가로등 되어 내 곁에 머무는......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곡조 좋고, 가사 좋고, 분위기 좋고, 어깨를 서로 마주 댄 개비아범과 복실엄마는 노래방기계 모니터를 바라보며 입을 모았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쭉 뽑아대는 가사에서 슬쩍 몸을 틀면서 개비아범이 복실엄마를 바라봤습니다. 그 시선을 의식한 듯 힐끗 눈길을 올려 마주본 복실엄마의 시선입니다. 불꽃놀이가 마주치는 시선에서 펑펑 터집니다. 그 다음에는 같이 부르는 합창입니다. 개비아범의 손길이 슬쩍 복실엄마의 어깨에 걸쳐졌습니다. 최성수의 ‘동행’
“아직도 내게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 있어요~”
서로 몸을 앞뒤로 실렁실렁 댑니다. 은근히 몸을 붙여오는 복실엄마입니다.
“누가 나와 같이 함께~ 울어 줄 사람 있나요~~~ 누가 나와 같이 함께~ 따듯한 동행이 될까..... 사랑하고 싶어요~ 빈 가슴 채울 때까지......”
아까는 서로 마주보고 앉았는데, 한참 노래를 부른 후에는 둘이서 나란히 앉았어요. 사실 마주 본다는 것은 경계심의 표현이거든요. 모든 동물이 서로 경계할 때는 마주 봅니다. 그러나 나란히 갈 때는 서로가 경계할 필요가 없는 안정감의 표출입니다. 바로 이런 심리가 둘 사이에 형성되었어요. 혹시 알아요? 안정감 정도가 아니라 아주 둘이서 붙지 못해 안달하는 심리의 표현인지......
하여튼 개비아범의 마음도 풀렸고 복실엄마도 자연스런 모습을 보였어요. 이제부터는 둘이서 노래를 하는 게 아니라 노닥거립니다. 특별히 할 이야기야 떠오르지 않았지만 뭔가 마구 서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말하다보니 과부 15년, 홀아비 15년입니다. 그 동안 혼자 사느냐고 얼마나 고생이 많았으며, 어쩌구저쩌구, 속닥속닥...... 밖에서 노래방 주인은 갸웃합니다. 노래는 안 부르고 뭐하나...... 혹시 저것들이 여기가 모텔인지 알고 붙어서 뭔 짓 하는 거 아닐까 해서 슬쩍 문을 지나치며 유리창 무늬사이로 들여다보니 개비아범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홀아비가 가장 힘든 일이 뭐냐고요?”
별안간 고개를 푹 떨군 개비아범이었어요.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지금 같은 경우가 힘들죠.”
복실엄마는 깜짝 놀랐어요.
“지금 같은 경우가 힘들다뇨? 무슨 말씀인지......”
개비아범은 머뭇머뭇 대더니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여자하고 자고 싶은 거요.”
복실엄마는 꼭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아찔했어요.
여자하고 자고 싶은 거......
당신과 함께 자고 싶다는 말도 아닙니다. 사랑해서 같이 자자는 말도 아닙니다. 복실엄마를 앞에 두고 허공에 던지듯 그냥 여자하고 자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복실엄마는 개비아범이 던진 그 말이 얼마나 깊은 고독의 여정에서 울려나온 것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챘어요.
사람의 살결이 그리운 밤을 수없이 지내본 사람만이 토할 수 있는 너무도 솔직한 말이었습니다. 복실엄마는 시선을 아래로 푹 떨어뜨린 채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어색한 분위기가 잠시 흐른 후에 개비아범이 슬며시 몸을 일으켰어요. 너무 갑갑했던 것이었죠. 복실엄마도 일어났어요. 개비아범의 옆 표정을 보니 너무 쓸쓸해 보였어요. 옥죄는 도가니에서 탈출하듯 둘이서 노래방을 나왔습니다. 둘 사이에 계속 침묵이 흘렀어요.
말없이 걷던 개비아범의 발길이 별안간 뚝 멈췄습니다. 고개를 들어 옆 건물의 꼭대기에 붙은 간판을 쳐다보는 개비아범이었어요.
뿅뿅모텔
복실엄마의 숨이 컥 막혔습니다. 개비아범의 눈빛이 활활 타오르며 복실엄마의 눈동자에 딱 꽂혔습니다. 이에 뒤지지 않고 오뚝하니 개비아범의 시선을 맞받아치는 복실엄마의 시선입니다. 마치 무지개를 그리며 서로 날아든 검이 상대방의 검과 쨍하고 마주치면서 허공에 딱 멈춰선 형상이었습니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