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라는 시간으로 향하는 마음의 입구로 향하고 있을 때 입구에서 걸어나오는 한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입구에 뻗어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짙은 어둠과 대조적으로 밝게 빛나는 생명력 넘치는 소녀였다.
나는...
입구로 한 걸음을 옮기다가 이내 돌아서 그녀가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입구의 반대편으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내 옆을 지나칠 때 너무나 찰나라서 그녀의 얼굴은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난 그 궁금증에 입구에서 발을 떼고 돌아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한 걸음 걸을 때 두 걸음 걸으면서 그녀가 두 걸음 걸을 때 한 걸음 더 걸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나는 혼자라는 마음의 입구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한참을 그녀를 따라가다 결국 내가 그녀보다 앞서게 되었고 나는 그녀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앞으로 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분명 나를 저 먼 어두운 입구로부터 떨어지게 할 만큼 멋진 여자였다.
나를 보며 웃는다. 난 그만 좋아져버렸다.
그녀는 혼자라는 입구에서 몇 걸음 걷다가 이내 다시 뒤돌아 나온 것이라 말했다. 우리는 함께 걸으며 '함께'로 향하는 입구로 가게되었다. 우리는 꽃밭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고 산새가 지저귀는 울창한 숲도 지나 이제는 아주 넓고 밝으며 노란 꽃이 만발한 풍요로운 벌판에 도착하게 되었다. 난 그녀에게 그곳에서 핀 가장 예쁜 꽃을 꺾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 함께 한 것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러한 것은 고마운 것이 아니라 고개를 저었다. 난 정말 행복했다. 난 정말 행복했다. 정말.
그런데 한참을 걸어서 좁을 길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겨서 나에게서 조금 떨어져 걷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접근한 다른 남자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녀를 바라보는 나를 우습다는 듯이 비웃는 행동마저 그녀는 내게 보였다. 그리고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보다 이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더 '함께'라는 곳을 향하기 수월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함께해주지 못해서..."
난 순간 마음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속한 이 순간이 정말 나로서 이루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면이 점점 물컹해져 나를 삼키고 또 다른 나를 지면 위로 끌어올릴 것만 같은 환상을 경험했다. 이미 나는 바닥으로 녹아내려 지하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투명한 액체가 되어 지하수와 섞여 끝을 알 수 없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세계로 자신이 분해되어 뒤섞여 나란 존재가 사라지고 있었다.
난 발걸음을 멈추고 다른 이와 함께 걸으며 즐거워 하는 그녀를 마냥 바라보았다. 그녀는 나를 한번 돌아보지 않고 웃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자 그녀는 나에게서 제법 먼 곳까지 걸어갔고 나중에는 작은 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사라지기 직전에 작은 점의 상부가 약간 뒤틀린 것이 그녀가 돌아봤는 것으로 보이기는 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었다.
혼자라는 곳에서 너무 많이 이동했기에 이제는 뒤돌아가기가 무서워졌다. 차라리 함께 라는 곳으로 향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하지만 내 마음에 생긴 이 상처를 가지고 그 '함께'라는 공간에서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결국은 제자리에 멈춰서 사라지는 그녀를 바라보는 길 잃은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는 제자리에서 서서 미끌어지듯 다시 혼자라는 입구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지면의 움직임으로 느낄 수 있었고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찾고 강력한 힘으로 조종하고 있는 것 또한 내안의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내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약함과 두려움이라는 초콜릿 향기를 가진 무형의 생물체였다. 실존자인 나를 위협하는 형체 없는 진드기 같은 놈들이었다.
난 결국 함몰되어가는 지반 위에 서서 진드기들과 함께 섞여 혼자를 입구로 내동댕이 쳐지고 말았다. 친구가 말하길 그곳에서는 돼지들이 탄 열차를 두 명이서 손으로 밀어야 되며 철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자칫 옆으로 떨어지면 끝 없는 벼랑으로 떨어지는 지옥을 경험한다고 밤이면 온통 깜깜하고 미친 여자들이 돌아다니며 돈을 구걸하고 그짓거리를 하고 다닌다고 모두들 정신이 어떻게 되서 하나 같이 침을 흐리고 다닌다고 세상 천지가 울퉁불퉁하게 돌아가는 모가 난 돌처럼 불만 투성이라고...
'혼자'라는 곳에서 며칠을 보내고 있는데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또래의 여자라는 소문이었다. 난 이미 모든 것이 좌절된 상태로 누가 들어오든 전혀 상관 없다는 식이었다. 그것이 고양이든 호박꽃이든 다람쥐든 코끼리든 전혀 나랑은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컴컴한 입구에서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아주 울상을 짓고 있었다.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를 알아본 그녀는 달려와 내게 말했다.
"요전에는 정말 미안했어요... 난 당신보다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함께'라는 입구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나 혼자 길을 잃은 채 헤매다가 결국 이곳까지 오게 되었죠... 이런 나 용서할 수 있나요? 나 정말 나쁜 여자애요. 정말 미안해요..."
내 마음의 땅에서 그녀는 이미 뿌리가 뽑혀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완전히 황무지가 되어 버린 내 마음에 더이상 자라날 것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도 '실망'이 싫어졌다. 그녀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시시때때로 변해가는 그녀의 마음을 감안하면 이 순간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에 맺힌 감정 따위는 종이 부스러기보다도 그 가치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미 소용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대가 싫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 아직까지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 마음에서 사랑은 자라날 수가 없군요. 발생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기에 그대의 마음은 이곳에서 무용지물입니다. 죄송합니다. 정말...나로서는 다른 해결책..."
순간 그녀는 내게 다가와 나의 손을 잡고 울었다. 두 눈물이 나의 손등에 떨어져 내 마음을 울렸다. 그녀의 떨림과 그 흥분, 그 뜨거운 감정이 나의 손을 타고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나를 조금씩 따뜻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차가워진 내 손은 이미 그녀의 온정으로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딱딱한 마음의 황무지에도 촉촉한 비가 내린 듯 모성의 풍요로움이 전체로 퍼져갔다.
무언가가 나를 재구성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전환되어가며 나를 탈바꿈했다. 유채꽃이 만발한 다채로운 벌판이 나의 마음에 그려지며 그녀와 함께 뛰어노는 따뜻한 그곳으로 변화해갔다.
그곳에서 즐겁게 지내며 그녀는 내게 이 모든 것이 사랑의 힘이라고 말했다. 난 그녀의 손을 꼭 쥐며 그렇다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이따금 그녀에게서 초콜릿 향을 느낀다. 그리고 작은 진드기를 타고 내게 다가오는 검은 모자를 쓴 키 큰 신사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