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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Blu 2 Maggio

백지현 |2006.12.26 23:55
조회 62 |추천 0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멈출 것 같지는 않다.

이 비구름을 몰고 온 한랭전선의 끝은 도버해협을 넘어

영국까지 뻗어 있는 모양이다. 유럽 전역이 비구름에 싸여있다.

기후를 이야깃거리로 삼기 좋아하는 이 거리의 노인들에게

신은 좋은 화제를 제공해 준 것이다.

오늘은 길가 여기저기서 해가 저물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것이다.

 

침대에서 빠져 나와 창을 열자, 물이 불어난 아르노 강의

암록색 표면이 드러났다.

짙은 녹색으로 우아하게 흐르는 평소의 모습이 아니다.

빗방울이 떨어져 여기저기 둥근 무늬를 그려 내고 있다.

"또 비야?"

메미의 커다란 눈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와 나는 벌거숭이다.

어젯밤 한 몸이 되었다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아, 당분간 내릴 것 같애."

메미는 반쯤 몸을 일으키고, 싫어, 하고 속삭였다.

"이 거리에 비는 어울리지 않아. 밀라노 쪽에나 내리면 될 것을."

내 뒤쪽으로 다가와 껴안는다.

풍성한 가슴과 내 등 사이에 그녀의 딱딱한 머리카락을 느낀다.

그녀의 파도치는 흑발은 어머니의 유산일 것이다.

커다란 갈색 눈동자도, 우뚝 솟은 콧날도,

동양인 얼굴의 나와는 다르다.

누가 어떻게 보나 이탈리아 인의 얼굴이다.

"5월은 정말 싫어."

메미는 내 귓볼을 손가락으로 매만진다.

5월을 이탈리아어로 뭐라고 해, 귓볼에 입술을 갖다 대고 속삭였다.

"Maggio."

"맞아, 마기오였어."

메미는 이탈리아 인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이탈리아 말을

전혀 못한다. 어릴 적에 어머니와 이혼한 이탈리아 인 아버지가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아버지에 대해 물으면

갑자기 음울해지고 만다.

휴학계를 내고 이탈리아에 온 것도 졸업 후 취직해 버리면

반쪽 조국이나마 한번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 같아서, 라고 했지만,

사실은 아버지를 한번 보고 싶어 온 게 아닐까.

 "메미는 이탈리아 어가 그렇게도 어렵니.

  5월이란 말도 모른다니, 정말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거야?"

"그럴 수도 있잖아. 누구든 깜빡하는 것."

"글쎄, 학교에도 가지 않고,

  다른 일본인 관광객들처럼 쇼핑만 하잖니."

메미는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어 나를 꽉 죄었다.

간지러워 웃으면서 뒤를 돌아보자, 메미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내 팔에 기대어 온다.

"괜찮아, 말은 몰라도 상관없어. 이 나라를 본 것만으로 만족해."

메미는 애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머리카락에 가린 갈색 눈동자에 내 얼굴이 비치고 있다.

나는 그녀의 왼쪽 눈에 입을 맞췄다.

오른쪽 눈에만 쌍커풀이 졌다.

그녀가 싫어하는 왼쪽 눈을 나는 더 좋아한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으면 바로 밀라노로 가지 그랬어."

나는 슬쩍 메미의 마음을 떠 보았다.

메미의 볼이 더 부풀어 올랐다.

"날 버린 놈을 만나서 뭘해. 난 그냥 이탈리아란 나라를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야. 확인만 하면 그냥 일본으로 돌아갈거야."

"언제 확인되는데?"

"그거야 쥰세이에게 달렸지."

우리는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미소를 띠었다.

"내게 달렸다고?"

"응, 자기가 나를 필요로 하는 한 여기 있을래."

메미는 더이상 웃지 않았다.

"이까짓 나라, 아무렴 어때. 오는 그 날로 싫어졌어.

  폐쇄적이고 번잡하고, 내가 이탈리아 어를 못한다는 것을 알자

  대하는 태도가 너무 싸늘해. 젊은애들조차 외국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몰라. 동양인이라고 전부 똑같은 것 아니잖아.

  화나지 않아? 일본, 중국, 한국이 모두 같은 나라라 생각해.

  무지해도 분수가 있지."

내가 "글쎄" 하고 고개를 갸웃하자 메미는 "맞아!"하고 떼를 썼다.

조반나는 그렇지 않는데, 하고 일부러 골려 주려고 선생 이름을

입에 담아 보았다. 선생이 나의 나체를 그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여자 특유의 직감 때문일까,

메미는 본 적도 없는 선생을 경계하고 있다.

"인텔리인 척 하는 사람인 것 같아."

한마디도 지지 않으려 한다. 나는 메미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심장이 내 품속에서 맥박 치는 것이 느껴졌다.

제멋대로 흥분하고, 가볍게 이성을 잃어버리는 메미의 성격이

옛날의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빙긋 웃었다.

 

뉴욕에서 태어나 자란 나는 열여덟 살 때까지

일본을 거의 알지 못했다. 그 때까지는 할아버지

아가타 세이지를 통하여 정보를 얻는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뉴욕에서 자란 나를 걱정해 준 유일한 혈육이다.

아버지 기요마사는 일과 젊은 여자에 정신이 팔려,

어머니 없이 자라는 나를 늘 팽개쳐 두기만 했다.

도쿄의 할아버지는 자주 편지를 보냈고,

일본어만은 잊어선 안된다고 집요하게 충고했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을 보여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란 나는

그런 할아버지의 충고간 너무 기뻤다.

내가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한 것도

할아버지의 그런 충고와 관련이 깊다.

메미와 나는 대조적이었다.

일본에서 메미는 그 화사한 겉모습 때문에

외국인 취급을 받아야 했다. 이탈리아 어도 영어도 모른다는 걸

알고 친구들은 한결같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녀의 어학에 대한 알레르기는 거기서 시작된 것이다.

"오늘이 며칠이지?"

창문을 닫으면서 물었다. 메미는 내 등에 입을 맞춘 다음,

25일, 하고 말했다. 25일. 나는 도쿄의 5월을 떠올렸다.

나는 도쿄의 5월을 좋아한다. 매화와 벚꽃이 활짝 피는 3월이나

4월보다도 싱그런 새잎이 무성한 5월이 더 좋다.

어디를 보나 똑같은 무기물적인 거리에서 푸른 가로수의

싱그런 호흡은 도쿄에서 이방인 생활을 하는 나에게는

구원의 녹음이었다.

입학기의 혼란도 지나고, 생활에 안정을 찾으면서

도쿄를 차분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된 것도 5월의 일이다.

그렇게 낯설고 정들지 않던 도쿄의 5월은

특별한 시간으로 내 기억 속에 새겨져 있다.

 

내가 살던 낡은 집의 창을 열면

하네기 공원의 녹음이 한눈에 보인다.

그 곳은 예전에 할아버지가 쓰던 작업장인데,

낡았지만 천장도 높은 게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창고 같은 구석 방에는 할아버지의 작품이 오래된 것부터

새로운 것까지 가득 쌓여 있었다.

처음에 할아버지는 도쿄에 익숙지 못한 내가 걱정스러운지

미다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통학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속박받기 싫어서 나는 거절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작업실이 있으니

거기서 살라고 하면서 무작정 할아버지는 나를 우메가오카의

연립주택에 밀어넣었던 것이다.

이국 땅의 마천루 한가운데서 자란 내게,

그 오다큐 철로 연변의 한적한 주택지는 최초의 도쿄 체험이었다.

 

때로 할아버지 몰래 옛날 작품을 꺼내 보며

나름대로 비평도 하면서 놀기도 했다.

할아버지 작품 가운데서 중남미를 방랑하면서 그린 목판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60년대의 팝 아트 영향이 엿보이는 일련의 목판화들은

거리 전체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집이나 무너져 내린 벽,

또는 도로 표지 등을 공간에서 돌출시켜,

그것만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었다.

추상적인 세계에 치밀하게 묘사된 현실,

넘쳐나는 그 리얼리티를 통해 나는 여행의 매력과

상상력의 가능성을 배웠다.

할아버지는 예전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은 고대 마야문명에

자극받아, 그 땅을 방랑했다 하였다. 원시적인 힘에 자극받은

생명력 넘치는 작품을 접하면서 나는 우메가오카의 주택에서

내 자신의 미래를 그려 보았던 것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과거를

여행해 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된 것도 그 때였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다음, 메미는 아르노 강이 보이는 자신의

바응로 돌아가고, 나는 공방으로 향했다.

공방은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베키오 다리 곁에 위치해 있다.

커다란 석문 곁에 작업실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고,

거기를 지나면 열 평 정도의 좁은 안마당이 나온다.

사방이 석벽으로 둘러싸였고, 화분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는

그 공간은 아름답고 아담하다.

그 안마당 끝에 공방으로 통하는 현관이 있는데,

나는 오랜 역사를 느끼게 하는 짙은 체리색 나무문에

우산을 세워 두고 안으로 들어섰다.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여기저기 놓여 있는 중세의 조각과

유채화를 보고 놀랐다.

역사적인 작품이 마치 실패작처럼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느 연습용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모두 진짜였던 것이다.

이곳은 거리 그 자체가 중세라 그리 놀랄 일도 아니라고 선생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지었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몇개의 복원사 자격증을 땄다. 이 곳으로 운반되어 오는

오래된 유채화나 템페라 화 가운데서도 특히 어려운 것들이

내게 배당 되었다. 둘만 남았을 때, 조반나는 나를 신뢰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선생은 근처 복원 학교에서 온 수명의 젊은 학생들 앞에서

그림이 그려진 낡은 천이나 판자, 그리고 색이 바랜 부분,

떨어져 나간 부분 등을 어떻게 복원시켜야 할지 조목조목

상세히 지도하고 있었다.

엷은 살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 여인이다. 안경테에 걸린 

금 사슬이 셔츠 위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선생은 나를 힐끗 보고 미소를 보내고 금방 엄숙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나는 맨 안쪽 복원실로 들어섰다.

최근에 국비 유학생으로 복원을 배우러 온 일본인

다카나시 아키라가 세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카나시는 나보다 다섯살 위인 서른두 살.

도쿄 예술대학 대학원에서 복원사 양성 코스를 마친 후,

일본의 복원 연구소에 취직했는데,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시키려고 문화청에서 파견한 것이다.

 

"비가 내려."

다카나시는 작업하던 손길을 멈추고 말했다.

"습기는 그림에 좋지 않아."

그는 면봉을 세심하게 움직이며 세정 작업을 하고 있었다.

표정은 침착했지만,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재킷을 벗고 머리 위로 작업복을 뒤집어쓰고는

다카나시 곁에 앉았다.

"습기 많은 일본에선은 복원 작업이 무척 힘들어.

 기후가 건조한 이 곳처럼 아교에 식초 같은 걸 넣었다간

 금방 곰팡이가 슬고말지."

그는 혼자말처럼 그렇게 말하고 또 혼자 웃었다.

"근본적으로 일본과는 작업 방법이 달라."

"어떻게 다른데."

내가 묻자 다카나시는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하기를 기다렸다는 태도였다.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지만, 일본의 경우는 얼마나 오리지널에

 가깝게 복원하는가를 중요시해."

듣고보니 그렇다. 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멀리서 보아 위화감이 없도록 색칠을 하는 것은

일본과 같지만, 가까이에서 봤을 때 복원 작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으면 높을수록,

 어디가 복원되었는지, 누가 보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원칙이지."

다카나시는, 그렇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배경에 따라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그 말투가 나의 동의를 구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작업에 들어갔다. 다카나시처럼 대학원에서 전문지식을

배운 게 아니라, 현장에서 몸으로 때운 사람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내가 나이 많은 다카나시를 가르치는 입장이었다.

"자네 정말 대단해. 피렌체에서도 톱 클래스에 속하는 이 공방에

 국가의 지원도 받지 않고 들어오다니. 대학에서 특별히 복원을

 배운 것도 아닐 텐데 말이야."

나는, 응, 하고 건성으로 대답하고 작품을 들어올려

구석구석 점검해 보았다. 지금 나는 보티첼리의 초기 작품을

만지고 복원하고 있다. 개인 소장품이다.

그림의 가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다보면 너무 신중해져

작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난 늘, 이건 그냥 오래된 평범한

그림일 뿐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작업에 임한다.

"대학에서는 뭘 했니?"

"국문학."

"전공은?"

"산카슈(山家集, 12세기의 승려, 가인 사이교의 저술-옮긴이)

  같은유."

"'산카슈'라고?"

다카나시는 웃었다.

"지금까지 이 길만 걸어온 내가 독학생인 자네에게

 한 수 배워야 한다니, 정말 내 신세가 처량하군."

다카나시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나이도 어린 놈이 경어도 쓰지 않는다고, 나를 시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단 작업실을 떠나면 그는 말 한마디

붙여 오지 않는다. 좁은 동네이고보니, 알게 모르게 일본인끼리

교분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메미 이외의 일본인과는

의식적으로 관계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어떤 방법으로 여기 오게 되었는지 말해 봐."

"방법이라니?"

"여 선생과 잔다든지."

눈을 부릅뜨고 다카나시를 째려 보았다.

다카나시의 한쪽 볼에 비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그 때 안젤로가 다가와서 비가 거세졌다고 말했다.

천둥까지 치다니, 정말 희한한 일이라면서

젖은 옷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큰 키에 얼굴이 새하얀 청년이었다. 아직 앳돼 보이는 얼굴이다.

안젤로는 활짝 웃었다. 새하얀 면 셔츠가 빗물에 젖어 그의

가느다란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다카나시가 눈길을 돌리며

서툰 이탈리아 어로, 어서 옷을 갈아입는 게 좋겠다고,

감기 걸리겠다고 말했다. 안젤로는 마치 형의 지시에 따르는

동생처럼 얌전하게 옷을 벗었다.

 

작업이 끝난 후 선생의 부름을 받아 지붕 아래 다락방 아뜰리에로

갔다. 다카나시와 안젤로는 아직 남아서 작업을 하고 있다.

방을 나서면서 힐끗 뒤를 돌아보았지만 다카나시는 담담하게

자신이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뒤를 살피면서 좁은 계단을

올라간다. 계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그 끝에 선생 방이 있다. 선생의 그림 모델이 된 것은 1년 전쯤이다.

일이 끝난 후 선생의 부름을 받고 가 보니

모델이 되어 주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거침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로부터 다섯 장의 그림이 완성 되었다.

나는 선생 앞에서 옷을 벗는 데에 아무런 저항도 느끼지 않았다.

어머니 없이 자란 나이고 보니 알게 모르게 선생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는 지극히 냉정한 것이었다.

나는 선생을 신뢰하였고, 그 작품의 모델이 되는 것 자체에

기쁨을 느꼈다. 선생은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는 표정으로 담담하게

나의 나체를 그려 갔다. 나도 그 이상의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모델을 할 때면 나는 어머니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과연 어떤 사람일까.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쌍한 어머니.

나를 남겨두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무너진 그녀의 마음에 대해.

문득 조반나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렇게 추측하는 근거가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세이지 할아버지는 어머니가 그림쟁이였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물론 편지 속의 한두 행에 지나지 않는 글이었다.

그렇게 대단한 화가는 아니었지만, 특이한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 했다. 전체를 반듯하게 정돈하려 하지 않는

그런 스타일이 좋았다고 할아버지는 평했다.

"알처럼 둥글게."

선생이 새로운 주문을 던졌다. 나는 작은 사각형 천창으로 비쳐드는

비오는 날의 빛 속에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선생은 숨결이 들릴 전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나는 모델답게 벽이나 기둥을 바라보며 그림 그리는 선생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것은 냉정한 교착 상태와 같은 관계였다.

나는 거기에서 깊은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러면 돼요?"

책상 위에 올라가 손을 앞으로 모으고, 몸을 둥글게 말아,

머리를 무릎에 갖다 댄다.

엉덩이를 선생님 쪽으로 돌리고 있는 셈이다.

"좋아. 지금 세상에 태어나고 있다는 상상을 해 봐."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작은 소리로 웃었다.

얼굴을 그릴 때 외에는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조반나, 다들 선생님과 나 사이에 대해 말이 많은 것 같아요."

"나와 쥰세이 사이에 뭘?"

하고 낮은 목소리로 내 말을 성가시다는 듯이 뿌리쳐 버렸다.

우리 사이는 결백하다는 당연한 주장이었다.

나는 할말을 잃었다.

"내가 쥰세이의 몸을 그리는 게 도대체 무슨 소문거리가 돼?"

선생의 어투에는 나까지도 거부하는 듯한 묘한 뉘앙스가

배어 있었다. 나는 무릎에 머리를 박은 채 얼굴을 붉혔다.

내가 쓸데없는 말을 하는 바람에 선생과 나 사이에 엷은 막이

만들어진 것 같아서 후회스러웠다.

"별것 아니에요."

황망히 모든 것을 부정하고, 그런 소문 따위 아무렴 어때,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선생은 미소지으며, 쓸데없는 일에

집중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쥰세이는 다른 사람의 질투에 지지 말고

 훌륭한 복원사가 되어야지."

잠시 후 선생은 그렇게 말했다.

 

창문에 번갯불이 비쳤다.

멀리서 천둥이 울리고, 빗소리가 유리창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리듬에 귀를 기울이다 어느새 나는 잠들고 말았다.

의식이 멀어지더니, 깊이 잠겨 있던 기억이 위로 스며 올랐다.

학생 시절, 나는 아오이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었다.

일요일 오후나 수업을 빼먹은 평일 오후,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할아버지의 캔버스와 물감을 꺼내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 아오는 싫다고 했지만, 내가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중에는 제가 그림을 그려 달라고 오히려 투정을 부렸다.

메미와는 대조적인 아오이의 조각품 같은 무표정한 얼굴을

나는 좋아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우울한 눈길이 마음에 들었다. 문득 현실을 벗어나

그녀만이 아는 공간 속으로, 그 시선은 헤엄쳐 가고 있었다.

다소 염세적인,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그런 분위기를 풍겼다.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그런 눈동자였다.

나는 아오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늘 마음에 두면서 그림을그렸다.

그녀가 보려 하는 것을 같이 보고 싶은 바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에게 좀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물 같은 여자였다.

 

공방을 나서자 이미 비는 그쳐 있었다.

우산을 든 채 나는 혼자서 아르노 강변을 걸었다.

오렌지색 가로등이 내 주위를 발갛게 비추고 있었다.

때로 뒤에서 소형 자동차가 클랙슨을 울리며 지나쳐갔다.

"5월 25일."

나는 먼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아오이는 축복의 이 날을 누구와 같이 보내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을 어떤 사람과 함께.......

 

아오이의 스물두 살 생일, 그 날도 비가 내렸다.

우리는 70주년 기념강당 곁의 콘크리트 계단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그 곳은 우리가 즐겨 만나는 장소였다.

대학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학생들이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에 걸터앉아 첼로 연습을 하고 있다. 낮고 우아한 울림은

반 지하 콘크리트 벽에 부딪쳐 기분 좋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비를 피하면서, 하필이면 이렇게 좋은 생일 날 비가 오다니, 하고

말하자, 아오이는, 괜찮아, 하고 가냘프게 웃었다.

그 때 우리는 얼마나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오늘과 같은 이런 시간을 예감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인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로 갈까, 하고 묻자 아오이는,

억지로 어디 갈 필요는 없잖니, 하고 말했다.

우리는 비가 개기를 기다림 계단에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미래의 천재 첼리스트들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우리는 그 날 밤 시모기타자와의 유럽풍 레스토랑에서 아오이의

스물두 번째 생일을 축하했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에는

저 70주년 기념강당에서 들었던 첼로 소리가, 성가신 가게 분위기나

올리브 기름이 듬뿍 든 맛있는 음식보다 더 강하게 남아 있었다.

빗소리와 첼로 소리, 곁에는 아오이가 있고,

난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때 첼리스트 청년들이 연주하던 곡의 제목은 기억 나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 특히 오페라를 좋아하던 아오이는

그 곡명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모르는 곡이었다.

사람이란 살아온 날들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

아오이가 그 날 밤의 일을 완전히 잊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해도.

 

밤, 나는 메미의 방에서 그녀의 룸메이트인

한국인 인수를 소개 받았다.

성격이 밝은 인수는 메미와 랭귀지 스쿨 동기생이었지만,

이탈리아 어  실력은 메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인수와 이탈리아 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인수와 메미는 인수의 서툰 일본어와 메미의 서툰 영어로

겨우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다.

메미는 나와 인수가 이탈리아 어로 친숙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재미없었던 모양인지 도중에 텔레비전을 켜더니

어느새 잠들어 버렸다.

그 곳은 랭귀지 스쿨에서 소개한 학생 전문 아파트로,

방 세 개에 식당과 목욕탕은 공용이었다.

다른 방에는 일본인 남자가 살고 있었지만 얼굴을 본 적이 없다.

"정말 대단한 비였어."

인수가 창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벌써 개고 말았어, 하고 나는 말했다.

"메미, 이쪽으로 와. 같이 차나 마셔."

그렇게 말하자 메미는 그라치에(고마워),하고 중얼거렸을 뿐이다.

이탈리아 판 가요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단발의 록 싱어가 화면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일본의 포크 송과 비슷했다.

이탈리아 노래는 어딘가 일본의 선율과 닮았다고 일전에

메미가 말한 적이 있다.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오늘은 어떻게 보냈어?"

인수는 묻고 나는 미소지었다. 오늘을 돌이켜보려는 내 귀에

그리운 그 옛날의 첼로 선율이 은은히 들려왔다.

한순간 선명하게 들려오던 그 선율은

이탈리아 팝송 때문에 사라져 버렸다.

"Era una giornata come quella di ieri(어제와 똑같은 하루였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인수는 그 말을 입 속으로 우물거리며

따라한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였죠. 이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언제든 어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어제는 조금 전이지만

내일은 영원히 혼을 뻗칠 수 없는 저편에 있다.

"우리 파티나 할까."

내가 웃음 띤 얼굴로 인수와 메미를 향해 말했다.

세 사람은 처음으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재빨리 준비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건 무슨 파티?"

인수가 서툰 일본어로 메미와 나를 향해 물었다.

나는 냉장고를 뒤지면서, 오늘은 옛 애인의 생일이야, 하고

빠르게 이탈리아 어로 말했다. 메미는, 엣, 뭐라고? 하고

되물었지만, 인수는 씁쓸한 미소를 떠올렸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츠지 히토나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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