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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

송인식 |2006.12.27 20:54
조회 20 |추천 0


한강에 괴물이 나타났다.

괴물은 언제나 우리곁에 있다.

 

천만인이 넘게 본 괴물, 상업영화의 전형인가

 

왕의 남자의 아성이 일년도 가기전에 깨졌다. 숱한 언론에서는 스크린 독점으로 작은 영화들이 죽어가고, 그 여파로 김기덕 감독의 희안한 커밍아웃까지 대두되었다. [괴물]의 힘은 과연 스크린 덕인가, 봉감독은 상업영화를 만드는 천재인가. 혹은, 영화가 정말로 재미있어서, 입소문이 퍼져 천만인이 넘게 보았던 것인가. 나는 오히려 [괴물]이란 영화는 그리 상업적이지도, 그리고 그다지 상업을 목적으로 기획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철저하게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고수하고 있으며, 현 한국사회를 적나라하게 비꼬고 있다. 나는 그 "비꼼"에서 기존의 영화들에서 느끼지 못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괴물과 당당히 맞선 두 남자

 

괴수가 나오는 장르영화의 공식을 깨고 영화는 "괴물"을 영화 초반에 완전히 공개한다. 한가로운 한강, 나타나서 무참하게 사람들을 머리로 박고 다니는 괴물, 모두다 도망가지만 두 남자가 그 "괴물"과 맞선다. 박강두와 도널드 하사. 영화는 철저하게 소시민적이고 매사에 이욕이 없는 박강두를 "타인의 요구"에 의해 괴물과 맞서게 한다. 도널드 하사는 "군인"이기 때문에, 게다가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기 때문에 용감하게 맞선다. 하지만 오히려 박강두는 도널드 하사가 괴물에게 밟혔을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괴물의 꼬리를 자른다. 누가 더 용감하게 맞섰냐의 문제를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도널드 하사는 영웅이 되었고, 박강두는 딸을 잃었다. 하지만 언론으로 표현되는 한국 사회는 딸을 잃은 박강두를 주목하지 않는다. 여기서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를 설정하는 "비꼼"이 등장한다. 딸이 살아있음이 확실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지명수배자로 만든다. 도널드는 팔을 잃고 수술중에 쇼크로 죽이만, 미국은 바이러스의 존재가 확실하다며, 한강을 봉쇄한다. 현서는 괴물에게 잡혀 미국에게 고립된다. 현서를 구하기 위한 가족은 범법자가 된다. 여기에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바이러스가 없다?? 근데 있다고 주장하는 미국??

 

영화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소문을 퍼뜨려 이라크를 공격하고 점령한다. 매일 같이 조사단이 이라크 구석구석을 뒤지지만, 결국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있다 확신했던 것은 미국이다. 그로서 한강의 괴물을 죽이지 못한다. 한강은 철저히 봉쇄되고, 그 안에 고립된 현서와 홈리스 남자아이 두명은 목숨이 위태롭게 된다. 미국은 여기서도 이익을 추구한다. "에이젼트 예로우"라는 세균무기를 한국에 팔아먹는다. 안정성도 보장되지 않은, 반경 수천킬로까지 세균학적 위험요소가 사라진다는 이 무기는, 영화 초반 괴물이 다리에 메달려 있는 모습과 똑같이 생겼다. 과연 무엇이 괴물인가. 살기위한 본능으로 먹이를 찾는 "괴물"인가, 아니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어 팔아먹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에이젼트 옐로우" 인가. 영화 [괴물]은 영화 여기저기에 심어놓은 "메타포"를 통해 진정한 괴물이 누구인가 우리에게 질문하고 있다.

 

왜 하필 화염병이고, 양궁인가

 

영화에서 괴물을 죽이는 무기는 화염병과 양궁, 그리고 쇠파이프이다. 총도 있고, 칼도 있을 터인데 왜 하필 화염병과 양궁인가. 박해일이 연기한 박남일의 캐릭터는 대학시절 "민주화를 위해 데모질"만 하던 대졸실업자다. 그는 "도발이"의 천재이며, 화염병 "제조"의 달인이다. 영화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은 항상 투덜거리며, 다혈질이고, 반사회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권력자나 기득권자가 아니라, 행동하는 학생들로 촉발된 불꽃이 민중으로 번지면서 생겨나는 것이다. 박남일은 이렇듯, 한국사회의 변화를 추동했던 민중을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박남주는 양궁선수로, 양궁은 올림픽 효자종목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전혀 인기가 없다. 한국을 대표하지만 한국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양궁, 영화는 양궁선수인 박남주를 통해 박남일과 같은 맥락의 또다른 인물을 만들어 낸다. 결국 이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괴물을 죽인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현서의 죽음. 그리고 세주의 탄생

 

현서는 결국 죽는다. 여담이지만 괴수영화에 나오는 괴물들은 대다수가 그 입의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닮아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괴물]역시 그러한 부분은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서가 세주를 끌어안고 괴물에게 먹힌다. 체 다 삼키기 전에 "에이젼트 옐로우"를 뒤집여 쓴 괴물이 잠시 기진맥진한 사이 박강두는 괴물의 입을 벌리고 현서를 끄집어 낸다. 하지만 현서는 죽어 있다. 그 품안에 있던 세주는 살아난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다. 현서는 엄마가 없다. 영화는 현서와 세주를 만나기 전까지 철저하게 모성애를 배제한다. 하지만 그 배제되었던 모성애는 현서를 통해 폭발적으로 표출된다. 결국 현서의 모성애는 세주를 감싸안고, 박강두의 부성애는 그들을 괴물의 입에서 끄집어 내면서 세주라는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 결핍되었던 영화의 흐름이 하나로 합쳐지는 부분이다.

 

괴물을 왜 죽이는가

 

괴수영화를 많이 본 사람을 안다. 영화에서 왜 괴물을 죽이는지. 주인공들은 대부분, 도시를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크게는 세계평화를 위해 괴물을 죽이고, 밝게 웃으면서 영화는 끝이난다. 하지만 "현서"를 구하기 위한 가족은 괴물을 "죽이는"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괴물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다닌다. 죽이는 목적이 아니라 찾는 것에 목적이 있다. 현서가 죽은 뒤 가족과 괴물의 싸움은 일종의 "한풀이"를 보는 듯 하다. 처절하게 싸우고, 결국 괴물을 죽이지만, 그 누구도 웃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비장해진다. 괴물을 죽임으로서 현서에 대한 복수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도 유쾌하지 않다.

 

한국사회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미국 까대기

 

영화는 전체적으로 "빅브라더"의 개념이 등장한다. 항상 어디선가 바라보는 사람들. 그것은 미국이며, 결국 문제를 만든 원인도 미국, 진행하는 것도 미국, 현서의 죽음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만든것도 미국이다. 반면에 괴물을 없애는 것은 우리들의 소시민들이다. 실업자, 만년 2위 양궁선수, 매점주인, 노숙자. 주변의 도움은 일체 없다. 오히려 박남일을 밀고하는 "뚱게바라"를 통해 한때 동지였던 사람 조차 사회에서는 "적"이 된다는 시니컬한 시선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한국정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영화적 생략이 아니라 의도된 장치이다. 미국과 민중들 사이에는 껍데기뿐인 한국정부가 있다는 것을 생략을 통해 부각하고 있다. 영화에서 괴물은 한강을 헤엄쳐다니는 "괴물"이 아니라, 가족들이 직접적으로 저항하고 대면하는 "미국과 껍데기 한국정부"이다.

 

칸에서 기립박수 받을 만 했다.

 

한국영화의 발전은 "쉬리"이후 꽤 짧은 시간동안 엄청나게 이루어져 왔다. 지금까지 양적인 발전, 기술의 발전을 이루었다면, [괴물]을 기점으로 이제 "질"적인 발전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헐리웃 블럭버스터 흉내내기가 아니라, 한국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찾아야 한다. 앞으로 [괴물]을 뛰어넘을 영화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 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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