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와 미국의 침술사의 자격을 상호인정하자는 미국의 제안에 대해 정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지금 한의학계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일부 매체에서는 의료라는 공공재적인 성격이 강한 서비스분야를 단순한 '시장'으로 간주해 "한의사의 독과점 체제가 붕괴한다"는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한의사개방 문제를 단순한 시장의 개방으로 치부하게끔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17개 분야의 개방과 한의사 면허의 개방으로 단순 비교해 17:1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폈습니다.
FTA 협상을 시작하기 전, 정부는 교육과 의료와 같은 공공재 분야에 있어서는 개방을 논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의료분야에 있어서의 개방을 이미 논하고 있습니다. FTA로 인해 국민 생활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리지 않은 채 40억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FTA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 조성에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이 FTA, 과연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인가요? 대다수 국민을 위한 길인가요, 일부 수출 많이 하는 재벌회사를 위한 길인가요?
1. 건강보험료의 인상, 그리고 혜택의 감소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들게 되어 있는 국민건강보험. 건강보험의 실시 이후 본인부담금이 줄어 많은 국민들이 쉽게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적자폭이 커져 건강보험료는 해마다 인상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적자의 폭은 더욱 커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약값 또한 건강보험에서 일정부분 지급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의료비부담이 크지 않습니다.
정부는 나날이 커지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현재 시행하고 있는 negative list system대신에 positive list system을 시행하겠다고 이미 발표를 했습니다. 현행의 negative list system은 보험적용원리와 맞지 않아 보험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의약품 이외에 대부분의 의약품을 보험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약을 처방받든지 보험적용원리와 다르지만 않다면 모두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에서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positive list system은 건강보험에 적용해야 할 의약품을 선별해 선별된 의약품들로 보험적용 의약품의 목록을 구성하여 관리하는 제도로, 선별목록에 포함이 되려면
1. 기존의 의약품과 비교했을 때 치료효과와 비용 모두가 기존의 의약품보다 우월해야 한다.
2. 기존 의약품에 비해 비용효과 측면에서 우월하다 할지라도, 해당 의약품의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이어야 한다.
의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합니다.
여기서 자세히 보아야 할 점은 2번에 대한 단서가 하나 더 있다는 것입니다.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인지의 여부는 공단과 제약회사 간의 협상을 통해 결정되며 가격 협상이 결렬되는 경우는 선별목록에 포함되지 않는다’
(자료출처: 국민건강보험공단 원주지사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wjnhic.cafe)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수가는 낮은 편입니다. 이러한 저수가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copy drug 였습니다. 외국의 유수 제약회사에서 신약을 개발해 특허를 내면 국내 제약회사에서는 그 특허가 끝난 후에 유효성분을 함유한 카피약을 생산합니다. 당연히 개발비가 들지 않기 때문에 약값은 저렴하고, 이것이 저수가인 건강보험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negative list system을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미국정부에서는 신약특허의 연장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특허를 50년으로 하되, 그 제형이 바뀌면 (알약을 가루약으로, 물약으로 등) 특허를 연장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신약의 특허는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고, 카피약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이런 이유로 저렴한 카피약이 생산되지 않으면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전처럼 negative list system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참 공교롭게도 copy drug가 더 이상 생겨날 수 없는 시기와 정부가 negative list system을 포기하겠다고 발표한 시기가 맞물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positive list에 포함되기 위한 위의 2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건강보험공단과 가격협상을 할만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있을까요? 세계적으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유수의 제약회사에서 보험적용이 되어 대중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가격을 쉽게 협상해주진 않을 것 같습니다. 협상을 하지 않아도 판매량은 높으니까요. 제 생각엔 그런 약들이 선별목록에 포함되기 보다는 보험공단에서 협상을 포기할 확률이 더 높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이제 나타날 변화는 뻔합니다. 국민들은 높은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지금처럼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높은 의약품의 가격 때문에 건강보험료는 더 오르게 될 것입니다.
2. 6년 혹은 8년의 양질의 교육을 받은 한의사와 4년의 알 수 없는 교육을 받은 침술사
우수한 인재들이 몰리는 국내의 한의대, 국내 실정에 맞게 잘 커리큘럼화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숙원인 한양방 협진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아주 깊지는 않지만 양방의 기초학 부분까지 모두 배웁니다. 병리학과 진단학까지 꼼꼼히 배웁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국가고시에 합격한 후에 한의사가 됩니다.
한의사는 의사와 거의 동등한 직능을 가집니다. 검시의 의무도 있고, 출생증명서를 발급할 수도 있습니다. (치과의사는 없습니다.) 현재는 의사와 다른 점이라면 종합병원의 원장이 될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국내법에서는 한의사를 한방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의 한 축으로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침술사는 다릅니다. 미국의 동양의학학원, 돈만 내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수료만 하면 침술사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의사 아래에 종속됩니다. 혼자서는 병원 차리지 못하고 혼자서는 진료 못합니다. 물리치료사보다 처우가 더 안 좋답니다. 미국의 동양의학학원생들 태반이 한국인입니다. 개방이 되면 당연히 우리나라로 들어오려 하겠죠. 만약 침술사가 차린 침술원에서 치료를 받고 부작용 나면 침술사만 욕 먹을까요? 아닙니다. 침술사와 한의사를 구별할 수 없는 그 시점에 한의학을 하는 한의사까지도 함께 욕을 먹을 겁니다. 침술사뿐만이 아니라 한의사까지도 돌팔이로 함께 매도당하는 그 순간이 올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3. 17:1의 논리가 안 먹히는 이유
미국은 연방공화국입니다. 각각의 주 정부에 따로 법이 존재합니다. 아무리 중앙정부에서 FTA를 한다고 해서 주정부에서 받아들일지 말지는 알아서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FTA를 추진하는 데 있어 부담이 적습니다. 우리 주에 불리한 것 같다, 그럼 우리 주는 인정 안하면 되니까. 그런데 우리나라는 다릅니다. 정부가 속된 말로 삽질을 하면, 우리 국민 모두가 피박을 쓰게 된다는 거죠.
개방을 추진하게 되면 다른 17개의 직업군에는 이익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만, 미국비자가 그렇게 받기 쉬운가요? 미국영주권, 시민권이 그렇게 받기 쉬운가요? 미국이 캐나다처럼 직업이민을 허용하는 나라도 아니고, 17개의 직업군이라고 해서 미국에 진출하기가 쉬워지느냐 하면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또 비자 등으로 인해 1차적으로 유입을 막아낼 수가 있지요. 반면 지금 상호인정의 대상으로 논하고 있는 미국내 침술사들, 대부분이 한국유학생이고, 그냥 귀국만 하면 됩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의료인도 아니면서 나날이 늘어가고 있는 침술사들을 처리할 수 있지만, 자기네는 밑지는 게 아닌 거래인 겁니다.
의료부분의 개방을 하면 대충 이 정도 변화가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정부는 FTA를 홍보한다는 40억의 예산으로 TV광고나 하는 삽질을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국민의 편에 서서 FTA로 인해 국민 생활에 어떠한 변화가 오게 될지에 대해서 알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알려주지 않고 오히려 쉬쉬하고 있는 행태를 보니 분통이 터질 지경입니다.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합니까? 수출로 외화를 벌어다주는 일부 대기업을 위해 존재합니까? 임기 막바지에 무엇인가 발자취를 남기고 싶은 대통령과 여당의 야욕을 위해 존재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