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끝났습니다만...
내일은 연휴로군요.
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핫핫핫핫....
========================= 그런 의미에서 22화는 빠른 시일 안에 =====================
토요일 오후 3시.
난 약속대로 그녀와 동대문 쇼핑에 나섰다.
민아 몰래 이런 만남을 가진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일단은 빨리 춤을 배워서 명예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
결국 모든 게 민아와 연극을 위한 것이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한나 - 음~ 어디부터 가볼까요~. 저기부터 가요.
기억 - 응.
동대문의 한 쇼핑센터 안.
슬슬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가게마다 여름 상품 전시가 한창이었다.
=사장이 미쳤어요! 신상품이 40% 세일!=
=여름오기 전에 다 팔고 죽으렵니다. 폭탄세일!=
등등의 광고로 사람들의 환심을 끌어 모으는 가게들.
그래봤자 받을 만큼은 다 받겠지만
세일이란 말에 혹한 건 한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나 - 아저씨, 이거 얼마예요?
아저씨
- 음.... 원래 4만 2천원인데,
30%세일해서 3만원만 주세요.
한나
- 3만원이요? 어머 싸다~.
오빠, 어때요? 어울릴 것 같아요?
근처 가게에서 조금 화려한 청미니스커트를 구경하며
눈을 반짝이는 그녀.
하지만 난 가게 입구에 붙어있는
=세일! 40%~= 라는 광고문이 영 마음에 걸렸다.
기억 - 저.... 여긴 40% 세일이라고 되어있습니다만.
아저씨 - 40%하는 것도 있고 30% 하는 것도 있고 그래요.
기억
- 40% 뒤에 물결표를 보면
=세일은 40%부터=라는 의미로 밖에 안 보이는데요.
아저씨 - 아유, 아저씨가 또 별걸 다 가지고 그러시네.
기억 - 그래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난 공학도적인 입장에서
수학적 표기의 착오를 없애고자 노력한 것이었지만
한나는 그런 내 모습이 답답했는지
오히려 가게 아저씨의 편을 들어주었다.
한나
- 어유, 오빠도 참... 40%건 30%건 이정도면 싼 거예요.
광고가 다 그렇게 하는 거죠 뭐.
기억 - 아니, 난 그저 표기상의 사회적 통일을 위해...
아저씨
- 어이구, 깝깝하신 양반이네.
제가 그럼 특별히 35% 해드릴게요. 그럼 됐죠?
한나 - 어머, 정말요? 그럼 얼마지? 2만...
기억 - 2만7천3백원. 백 단위 절삭해서 2만7천원에 주시죠.
아저씨
- 아유, 그래요. 아무튼 요즘은
아줌마보다 젊은 사람들이 더하다니까.
그렇게 본의 아니게 3천원을 더 깎아서 산 미니스커트.
처음엔 아저씨 편을 들었던 한나도
예상 밖의 소득에 싱글벙글이다.
한나 - 어머, 저것도 예쁘지 않아요?
기억 - ....스커트는 아까 샀잖아?
한나
- 어머나? 이런 건 다다익선이라고요.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옷을 골라 입는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데요.
이거랑 이거 중에 어느 게 더 예뻐요?
그녀는 또다른 매장의 진열대 앞에서
두 벌의 미니스커트를 들고 내게 물었다.
어느 게 더 예쁘고를 떠나 최소길이는 확보를 해야지,
아무리 경제가 어렵기로서니....
기억 - 너무 짧지 않아?
점원 - 어머 손님, 요즘 이 정도는 보통이예요~.
기억 - 보통이고 정규분포 20% 이내고 간에.... 너무 짧아 보여요.
한나
- 에이~ 괜찮아요. 속바지 입으니까.
어느 게 예뻐요? 이거? 아님 이거?
기억 - ....비슷비슷한 것 같은데.
한나 - 한 번 입어 볼까요? 어느 게 어울리나?
기억 - 뭐, 편할 대로.
스커트 두 벌을 들고 근처 탈의실로 들어간 그녀는
곧 그중 하나를 입고 밖으로 나와
모델처럼 한 바퀴 빙- 돌아 보였다.
역시나.... 원단을 너무 아낀 것 같다.
한나 - 어때요? 어울려요?
점원
- 어머나~ 손님 다리 너무 예쁘시다.
늘씬하신 게 슈퍼 모델 뺨치겠어요.
한나 - 그래요? 오빠가 보기엔 어때요?
기억
- 괜히 슈퍼 모델 뺨때리지 말고
조금 더 긴 걸 사는 게 어떨까?
그 길이면 계단은커녕 경사면 각도가 20도만 되도
내부 관찰이 가능할 것 같은데.....
한나
- 아유~ 길이타령 그만하고 어울리는 지나 봐줘요!
그리고, 속옷 보인다고 하면 될 걸 가지고
내부관찰이 뭐예요? 왠지 소름 돋잖아요.
속바지 입는다니까요?
기억
- 남자들 입장에서 볼 땐 속바지나 ....그쪽이나
일단 치마 속에 있다는 점에서 지위 상 동급이라고.
어느 정도 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나 - 아~ 뭐예요~. 변태 같아! 오타쿠!
기억
- 아니....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안 보일만한 옷을 입으면 아무 문제도...
그렇게 내가 미니스커트의 길이에 관해
한나와 치열한 설전을 펼치고 있는 사이
옆에서 지켜보던 점원이 한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점원 - 어떡해요~. 애인분이 야하게 입는 걸 싫어하시나 봐요~.
한나 - 네?
점원
- 남자들이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 입는 건 좋아하면서
자기 여자친구가 그렇게 입으면 싫어하고...
기억
- 저.... 뭔가 착오가 있으신 듯한데
일단 전 누구를 막론하고 저런 미니스커트는 반대인데다
우린 절대 그런 사이가....
아무래도 우리 사이를 오해한 듯한 점원에게
미니스커트에 대한 내 시각을 피력함과 동시에
나름의 해명을 하려는 찰나
한나가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내 말을 막았다.
한나
- 뭐야~오빠. 그런 거였어? 그런 거면 말을 하지~.
그래도 이건 살 거야.
대신 오빠가 보는 데서만 입을 게~.
기억 - 응?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고 묻기도 전에
계산을 하러 가게 안으로 사라져버리는 그녀.
한나가 계산을 마치고 나왔을 땐
이미 상황이 종료된 후였다.
한나 - 자, 그럼 이젠 티셔츠를 보러~ Let's go~.
기억 - 잠깐, 지금 점원이 엄청난 오해를...
한나
- 에이~ 오빠 저 언니한테 관심 있어요?
아니면 그런 오해 따위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다고요~.
기억 - 아니 그래도 분명히 할 건 분명히 해야....
한나 - 워~워. 그 시간만큼 오빠의 연습시간이 줄어든다고요~.
그녀의 협박 아닌 협박에
하릴없이 걸음을 재촉하게 된 나.
그 뒤로도 그녀의 쇼핑은 한참동안 계속되었다.
한나 - 이거랑 아까 밑에서 본 것 중에 어느 게 예뻐요?
기억 - 글쎄... 잘 기억이....
한나 - 그래요? 다시 가서 보고 올까요?
기억 - 뭐?
한나 - 음... 아무래도 아까 게 나은 것 같아. 빨리 가요.
기억 - 허허....
그리하여 다시 아래층.
한나 - 으음.... 아닌가? 위에서 본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기억 - ..... 이게 나은 것 같은데.
한나
- 오빠 지금 다시 올라가기 귀찮으니까
대충 대답하는 거죠?
기억 - 응? 아,아아,아아아냐.... 정말로... 이게 더....
한나
- 그렇게 더듬어선 설득력이 없어요~.
자자, 힘을 내자고요!
아무리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같은
문명의 이기가 잘 발달해있는 쇼핑몰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체력은 점점 고갈되어가기 마련.
슬슬 들고있는 짐조차 버거워지기 시작한 나였다.
기억 - 하....한나야, 너무 많이 사는 거 아냐?
한나
- 워낙 추운 데 살다 와서 여름옷이 없는 데 어떡해요?
매번 이렇게 나오기도 힘드니까 제대로 장만해야죠.
기억 - 저.... 댄스 연습도 하고 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한나
- 춤추는 데 필요한 체련을 키운다 생각해요.
그냥 운동 좀 한다 생각하면 되지 뭘 이정도로....
기억
-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쇼핑은 스포츠가 아니야.
한나
- 자자, 아직 경기 안 끝났어요.
블라우스랑 액세서리도 사야하거든요~.
기억 - 아니 그럴 거면.... 가벼운 것부터 쇼핑을 해야지...!!
한나 - 자꾸 그러면 연장전까지 할 거예요~.
결국 그녀가 쇼핑을 마쳤을 때
내 HP는 빨간색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가 사기진작용으로 사준
=화려한 프린팅 티셔츠= 아이템을 얻긴 했지만
늘 무채색의 무난한 차림만을 즐기는 내겐
레벨제한으로 장비 불가이면서
장비창만 잔뜩 차지하는 보호구만큼이나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큰 물건이었다.
저녁을 먹고 간신히 도착한 연극부 연습실.
시계는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나 - 자~ 그럼 오늘도 댄스의 매력에 푹~빠져 볼까요?
기억 - 다리 아프다....
한나
- 에휴~ 남자가 그 정도로 엄살 부리기에요?
자자, 빨리 일어나요~.
그래.... 아무리 HP고갈 직전인 상태라도
월요일까지 룸바를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하면....
기억 - 으이짜짜.... 그래, 한 번 놀아 보자!
한나
- 그래야죠~. 일단 한 번 연습해 보고
괜찮으면 음악에 맞춰서 해봐요.
자, 준비~. 투, 쓰리, 포~ 원!
다행이 어제의 감각이 혼자만의 착각은 아니었던 듯
난 엉키는 스텝 없이 그녀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아아, 이틀 만에 이정도면 장족의 발전이 아니겠는가?
한나 - 좀 더 화려하게~ 좀 더 그루브하게!
기억 - 오케이. 투, 쓰리, 포~
한나
- 그래요~ 잘하고 있어요.
이제 음악 틀어놓고 해도 되겠는데요?
한 시간 정도 기본 연습을 마친 뒤
난 실제 음악에 맞춰 춤을 춰보기로 했다.
지금까지 의존해오던 그녀의 박자 구호를 들을 수 없다는 건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었지만
언젠가는 넘어야 할 벽이다.
한나 - 자, 다음 소절에서 시작해요. 투, 쓰리, 포~Start!!
오른발 나가고, 왼발 나가고
오른발 나갔다가 들어오면서 체크!
돌려주고, 살짝 물러섰다가 다시 붙어서면서....!!
확실히 연습 때 보다 박자가 빠른 감은 있었지만
크게 헷갈리거나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 흥이 나는 것 같아 좋기도 하고...
확실히 마음이 편안했다.
예전엔 내 스텝을 밟기 급급해서
파트너가 어디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 못했지만
지금은 눈앞에서 긴 머리채를 찰랑이며
화려하게 춤추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였다.
멋지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을 만큼
완벽에 가까운 춤 실력을 보여주는 그녀.
내가 그녀의 파트너로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나 - 어머나? 음악 틀어 놓는 쪽이 훨씬 잘 추는 데요?
기억 - 그래? 괜찮은 편이야?
한나 - 네~ 아주 좋아요! Perfect!
그녀의 칭찬에 더욱 힘을 얻은 난
네 시간에 걸친 쇼핑의 후유증도 잊은 채
무아지경으로 스텝을 밟아댔다.
기억 - 사모님~ 가정을 버리시죠! 솨~!
그러기를 한 시간 반여....
한나 - 휴~ 힘들다. 잠깐 앉아서 쉬죠.
기억 - 하아...하아... 그럴까?
먼저 휴식을 제안한 건 그녀였지만
일단 자리에 앉으니
전신이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추~욱 늘어지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근성게이지도 바닥인가.....
아무래도 온몸이 쑤시는 게
내일은 침대에서 못 일어 날 것 같지만
이정도면 월요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나 - 힘들어요?
기억 - ....아.... 기진맥진이야.
한나 - 그래도.... 아까 산 것들 집까지 들어다 줘야 하는 거 알죠?
기억 - ........헉.
월요일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20분 후가 문제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