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면 한다! 베트남의 푸른 꿈을 먹고 사는 청년 이천규
편집자주 : 이번 호 하노이 인물 인터뷰에서는 매우 특별한 사람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식지에서 만나보았던 분들은 베트남의 오랜 경험과 그 안에서의 성공과 봉사의 아름다운 마음들을 실천하고 계신 우리들의 부모님이며 때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친구, 선배 같은 분들이었다면 지금 만나게 될 사람은 아직 철이 덜 들은 막내 동생, 또는 어디에서도 마주칠 것 같은 소박한 한국청년의 이야기 입니다. 아직 좌충우돌 20대를 겪고 있는 이천규씨의 짧은 인터뷰를 통해 성공 베트남 스토리를 꿈꾸고 있는 하노이 젊은이들과 그 윗 세대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젊은 개척자의 희망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002년 베트남과 만나다 - 베트남과의 인연은 어떻게?
해군 제대 후 2002년 7월 호주관광청과 SK텔레콤에서주최하는 호주 7박8일 문화체험에 당첨되어 첨으로 해외를 나가보고 ‘세상이 이렇게 넓은 곳이구나’ 를 처음 접하고 꼭 해외로 나가야겠다는 동기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 때 같이 동행했던 개그맨 전유성씨의 강연 또한 같은 내용이었구요. 그래서 돌아온 후에 마침 2001년부터 베트남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계신 삼촌을 따라 2002년 10월에 드디어 하노이 인근 지방에 자리한 봉제공장에서 저의 파란만장 베트남 생활이 시작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있던 삼촌이 일하는 공장은 빚더미의 부실기업이었고 1년 내내 임금을 체불하고 있는 데다가 저 또한 월급은커녕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는 곳임을 깨닫고 결국 스스로 공장문을 박차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노이행을 결심하고 도착했을 때 제 손에는 아버지가 보내주신 단돈 400불이 전부였습니다. 베트남으로 떠나기 몇시간 전 난 자신있다 난 꼭 해낼 것이다 난 할 수 있다 -그의 일기 中- - 하노이에서의 생활은? 무작정 상경한 하노이에서 우여곡절 끝에 여행 가이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 가이드라는 직업은 자기가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돈도 많이 벌고 새로운 체험을 많이 할 수 있는 멋진 직업이었습니다. 베트남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구요. 하지만 그 화려함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 인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를 알게 되었고 고졸의 설움과 대학공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 저는 베트남의 현지 대학진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전 끝에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결국 하노이 국립대에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큰 도전이자 작은 성공이었습니다. 현재 저는 하노이 국립외국어대 중국어 언문화과에 재학중입니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외국인 대학생이라는 신분은 쉽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똑 같은 권리를 누리기 위해 학교와 싸우고, 또한 같은 과의 베트남 학생들과 조화롭게 어울리고, 중국어와 베트남어 2가지 언어를 함께 독학을 해야하고 또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하는 현실은 많은 스트레스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지요. 정말 힘들었고 많은 밤을 고민과 눈물로 지샜던 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에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이천규’라는 사람은 사회에서는 하나의 가치있는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것이 학생일 때 갈고 닦아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학교측의 배려로 중국 광시성 난닝민족대학의 교환학생으로 1년간 중국으로 유학을 갈 수 있었던 좋은 기회도 잡았습니다. 그때의 경험과 기억도 제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눈물이 메말랐을거라 생각했지만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지난 4년간 나는 앞만 보며 달려왔다. 약해지지 않으려면 눈물을 없애야 한다. 천규야 힘내자 아자! 아자! -그의 일기 中-
2006년 베트남을 말하다
- 언어학도로서 베트남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삼촌이 있어서 오게 된 곳이었지만 처음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습니다. 베트남어는 고사하고 학창시절 내내 배웠던 영어도 잠깐 배웠던 독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속에서 부딪히면 배우는 언어는 앉아서 책으로 배우는 언어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먼미래를 생각하여 중요한 언어로 자리잡을 중국어를 대학의 전공으로 선택하면서 언어에 눈이 뜨이기 시작했습니다. 동방언어의 장점은 한자어가 70퍼센트 이상이기에 요령만 터득한다면 한국어안의 한자어 70퍼센트를 전제로 추리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광동어(중국남부방언)를 배우며 한국어와 베트남어가 중국남부방언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란걸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중국남부사람들이 제 한국어를 듣고 유추해서 뜻을 찾아내거든요.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언어의 비밀을 조금이나봐 풀어볼수 있다는 것은 마치 해적들이 숨겨놓은 보물섬을 발견한 탐험가의 기분이라 생각됩니다. 중국어,베트남어,광동어등 동방언어는 친척과 같은 존재입니다. 70퍼센트 한자어의 동일성을 찾아내는 요령을 알게되면 언어를 배우는 속도는 급속도로 빨라집니다. 어떤언어가 가장재밌는지.. 답변하기 어렵네요. 전공은 중국어고 사는건 베트남이니까요..^^ 스스로 전문가라 칭하는 사람들에게 감탄한다. 학습은 하면 할수록 그 양은 많아지지만 학습을 하면 할수록 그들에 대한 이해가 적어짐을 느낀다. 개인은 영원한 지식의 학생일 것이다. -그의 일기 中- - 베트남에서의 희로애락? 물론 처음에 도착했을 때 겪었던 일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임금체불, 의무계약 불이행 등 어린 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업주의 횡포에 상처를 입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그 일이 지금의 제가 있게 만들어 주었으니 감사하다고 해야할지 난감합니다. 또 한번은 2003년쯤 하롱베이 현지 가이드 일을 하다가 손님비행기표를 잃어버려 3000달러 빚을 진 적이 있습니다. 처음 져 보는 큰 빚에 너무 힘들었지만 이 것이 제 덜렁대는 성격을 고쳐주는 값진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후로 돈을 갚은 건 물론이거니와 대학입학전까지 4년학비를 모두 벌었습니다 재미있고 기뻤던 일이라면… 아셈회의 수행통역과 대통령 국빈방문 경호 수행 통역을 맡았던 일이었습니다. 중요한 외교행사이기 때문에 많이 긴장도 됐었지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제가 나라의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고, 양복을 빼입고 평소의 신분으로는 만날 수 없는 정치인, 경제인들과 자리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기회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한가지 더 의미있는 일을 덧붙이자면… 여기서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제 피앙새를 만났다는 것. 착하고 예쁜 여자친구와 아름다운 사랑 만들어 가겠습니다.
성공이란… 성공이란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의 성실한 마음가짐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성공은 모두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진정으로 마음을 쏟고 사람들의 지지와 존경을 얻는 바로 그때가 바로 성공이라 여겨진다. 아무튼 외톨이가 제일 불쌍한 존재인 것 같다… -그의 일기 中- 2006
그 이후를 꿈꾸다
-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Hanoi-Korean 으로서 한마디 이제 3학년이 되면 학업에 대한 부담이 조금 줄어듭니다. 그만큼 제가 도전해 볼 수 있는 영역과 시간이 많아지겠지요? 조그마한 아이디어로 시작하는 사업이든, 작은 규모의 무역이든 제가 벌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많은 시도를 해 볼 생각입니다. 기회는 올 때를 기다리고, 잡는 건 2006년 지금 이 시점에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나가야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기회는 스스로 찾고 만들어 가야겠죠. 궁극적으로는 제 전공인 동방언어를 살리고 개척적이고 진취적인 일을 하는 직장을 구하는 것입니다. 한국, 중국, 베트남이든 나라를 가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내 능력을 인정해 주고 펼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도전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관심밖의 블루오션에 눈여겨 본 다면 분명 한 층 더 쉽게 목표에 다다를꺼라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의 다음 목표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이고요. 하노이에서 저와 같이 꿈을 가진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한다면 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합시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To be Loved, love and be lovable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하고 사랑스러워져라’ 오늘도 이 문장을 몇변이고 되새긴다. -그의 일기 中-
2006년 9월호 한인잡지 내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