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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해공원"은 "살해공원"이다.

김두관 |2007.02.02 21:47
조회 96 |추천 1

1.
2007년 1월의 마지막 나흘은 서울에서 머물렀습니다. 우리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격변의 시간을 보냈기에 굳이 뭘 했는지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나 여러분들이나 모두들 무거운 돌멩이 하나를 집어삼킨 듯한 기분이리라 생각합니다.

아픕니다. 가슴에 남은 생채기에 아프고 우리의 진심을 알아주지 못하는 여의도의 차가움이 너무 시리고 아픕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많은 동지들에게 재갈을 물린 듯한 죄책감에 화마저도 납니다.

결과를 존중하고 소신은 변함없이 간직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평가 받을 것이고 그에 답하겠습니다. 다시 그 길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2.
2월의 첫날, 강원도로 ‘희망대장정’을 떠나기에 앞서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는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님의 유적지부터 찾았습니다. 다산유적지 탐방에는 ‘다산사랑모임’ 대표이신 김남기 선생님과 ‘생명살림문화원’ 양홍관 이사장님 등이 함께 해 주셨습니다. 두 분 다 남양주시에 사시면서, 다산의 철학과 가르침을 실천하고 보급하시는 분들입니다. 오랜만에 다산에 대한 좋은 강의를 들었습니다.

저는 백범 김구 선생님과 함께 다산 정약용과 호치민을 존경합니다. 굳이 두 사람을 꼽는 이유는, 다산과 호치민은 공통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1987년 서울민족통일민중운동연합(약칭 서울민통련) 사회부장으로 일할 때, 직선제 개헌운동을 벌이다 3개월간 옥살이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 고향인 남해로 낙향해서 남해농민회 활동을 할 때나 남해군수로 재직할 때 늘 곁에 두고 읽었던 책이 바로 와 였습니다.

다산과 호치민은 ‘백성’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처지와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무한한 책임감을 실천한 분들입니다. 다산의 는 ‘백성을 보살펴 주고 보호해 주며 편안하게 돌봐준다’는 뜻의 ‘목민(牧民)’과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에 마음만 있는 책’이라는 ‘심서(心書)’를 합쳐 만든 이름입니다. 아시다시피, 호치민(胡志明)이란 이름은 ‘깨우치는 자’란 뜻입니다. 호치민은 평소 를 정독했고, 그에 감명을 받아 이름까지 바꾸었다고 합니다. 현재 그의 무덤에도 가 놓여 있다고 합니다.

유배생활 속에서도 백성에 대한 책임감과 아픔을 드러내며 를 지은 다산과 중국 국민당에 체포되어 투옥당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깨우치는 자’로 규정하고 이름을 바꾼 호치민. 두 사람의 삶은 권력만을 추구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우리 정치풍토에서 추구해야 할 모범일 것입니다.

3.
다산묘소를 참배하고 일행들과 차를 마시면서 짤막한 뉴스 하나를 들었습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일해공원이 뭔지 몰라 답할 수 없다”고 발언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권주자가 요즘 한창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일해공원’이 뭔지 모른다고 한다면 답은 둘 중 하나입니다. 거짓말을 하든가, 아니면 바보입니다. 만에 하나 그런 분이 대통령이 된다면 결국 ‘바보 대통령’ 아니면 ‘표리부동한 대통령’ 둘 중의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말년에 머물렀던 사랑채의 당호인 ‘여유당(與猶堂)’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이는 에 나오는 말로, ‘사방을 두려워하며, 조심스럽게 살아가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면, 권력만을 추구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 ‘사려 깊음’과 ‘생각 없음’은 다를 것입니다. 다릅니다.

우리에게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 전두환의 12.12 군사반란과 광주민중학살은 아물지 않은 아픈 역사입니다. 국민화합 차원에서 일부 관용을 베풀었다고 해서 그 모두를 용서한 것은 아닙니다. '일해공원'의 추진은 아물어 가는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이며 국민을 살해한 자를 위한 ‘살해공원’을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땅히 중단되어야 합니다.

4.
태백으로 가는 길에 먼저 영월군을 찾았습니다. 영월군의회 승춘배 의원님을 비롯한 지역의 환경운동연합, 장애인단체, 쌍용양회 노조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역시나 가장 큰 관심사항은 인구 공동화에 따른 지역발전계획 수립이었습니다. 지역의 현실에 맞는 사회복지정책 시행의 필요성 또한 시급했습니다.

영월군의 경우 최고 13만 명이던 인구가 지금은 4만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상동읍의 경우엔 3만 인구에서 겨우 1,600명으로 줄어들었다 합니다. 게다가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전체의 95%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65세 이하는 100명도 채 안된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상가에는 하루 종일 앉아있어도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조차 없다는 겁니다.

강원도 탄광지역의 경우 석탑산업합리화 조치 이후 급격히 인구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폐광지역발전특별법이 제정되긴 했습니다만 지역특화발전으론 연결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 예를 든 상동읍의 경우 도로확장 등 도시미관사업에만 연 50억 원 가량이 집행된다는데, 좀더 합리적인 예산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숯 공장이나 목공예 장려 등의 노인들의 일자리 창출 방안을 강구하는 게 시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드웨어적인 복지관을 짓는데 많은 예산을 투입하기보다는 이동진료소, 이동목욕탕, 이동빨래차 등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복지모델을 시행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아예 도시이전 작업을 벌이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말씀도 귀담아 들었습니다.

5.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태백의 날씨는 귓불을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40여 분이나 늦게 도착한 결례를 저지른 입장에서 칼바람에 몸을 떨었을 분들 앞에서 감히 그런 표현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종종걸음을 치다가 환하게 맞아주는 그 분들의 발그레한 얼굴을 보면서 하마터면 눈물을 쏟아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감동은 그뿐만이 아니었기에 끝내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해발 800미터 고지에 있는 ‘산업전사위령탑’ 앞. 간단한 묵념과 헌화 후에 태백예총 방호석 회장님께서 ‘진혼(鎭魂)을 위한 마임’ 퍼포먼스를 펼치셨습니다. 광부차림으로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나타나 ‘허허허허허허……’ 한참 웃다 사라질 때만 해도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가시덤불과 연탄재를 든 채 나타나서는 그저, 그저 말없이 서 있기만 했습니다.

은은히 울려 퍼지는 진혼곡이 아니어도, 애달픈 추모사를 듣지 않아도 그분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5분도 채 안되는 공연이었지만 제게는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짓눌러온 무게감처럼 느껴졌습니다.

-

이 시대의 가난과 질곡을
온몸으로 짊어지시고 산화하신
산업전사 영령들이시여!

님들이 흘린
그 고귀한 피와 땀이 있었기에
이 땅, 이 산하에
우리가 있나이다.

그러나, 우리는
님들의 땀을 헛되이 하지 않았는지,
님들의 피를 더럽히지는 않았는지,
님들의 뜻을 저버리지는 않았는지
심히 떨리고 두렵나이다.

이 땅에
불의가 정의를 대신하고,
탐욕이 화합을 짓누르고,
물신과 배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나누고,
공평과 무사가 자리할 곳에
부정과 비리가 자리하고,
현재의 가치가
과거의 삶과 역사를 대신하였다면
그리하여 우리가
이 모든 것에 눈감고 귀 막았다면
이러한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시고
오늘 이 자리가
나와 네가 바로 서고
우리가 바로 섬으로써
태백이 바로 서고
이 나라가 바로 서는
참회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이들의 가슴 속 품은 뜻을
님들은 알고 있나이다.
그 뜻이 한데 모여
바르게 쓰이게 하옵시고
껍데기와 알맹이는 분별케 하시되
관용으로 한마음되어
님들이 물려준 이 땅 위에
화합과 평화가
길이길이…… 창생하게 하옵소서,
산업전사 영령들이시여!

-

‘광부(鑛夫)’에서 ‘광산근로자’로 달리 불러준다고 해서 그 분들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다한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차라리 그냥 ‘광부’로 부르는 대신에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준 노고를 기억해 주길 바랐습니다.

광산에서 일하다 순직하신 분들만 10,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입니다. 진폐증으로 사망하거나 고생하시는 분들 또한 수만 명에 달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도시, 태백의 산업전사위령탑은 춥고 싸늘했습니다. 당장은 성역화 사업을 추진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유력한 어느 정치인 누구 하나 위령탑을 찾아 그 분들의 영혼을 추모한 적조차 없다는 말씀을 들었을 땐 부끄러움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님의 시(詩)처럼 누군가를 위해 뜨겁게 타올라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2월의 첫날밤 태백에서 입갱(入坑)을 기다립니다.


2007년 2월 1일

희망대장정 18일째 되는 날 태백에서 김 두 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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