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서 안읽는분 계시겠지만(저또한 긴글 싫어하거든요)
꼭한번 읽어보세요^^;
가까운 학력사회, 멀리있는 실력사회
Cloud + Israel
2005/11/21 11:34
http://blog.naver.com/vertigo2000/120019913551
5월이 왔다. 한국은 계절상 봄이지만, 이스라엘은 우리 여름보다 더운 것 같았다. 보통 봄
과 가을은 결혼시즌인데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한국인
커플의 결혼식이 있었다. 신랑 분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시며 이곳
사람들에서 기술을 전수하는 중이었다. 신부는 예루살렘 히브리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공
부하시는 분이었다. 신부는 나와 개인적인 친분도 좀 있었고, 내가 이스라엘에 왔을 때 여
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분들 결혼식을 비디오로 촬영하
기로 했다.
나는 결혼식 촬영이 처음이라 어떻게 찍어야 될지 고민이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재미있게
만들자는 생각에서 당일 결혼식 장소인 한인 교회에 일찍 도착했다. 그리고 하객들 모습과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장면, 화장하는 모습, 사람들 축하 인터뷰를 실감나게 찍으려 했다.
그때 이곳을 지나가던 유대인이나 아랍인들은 신기한 눈초리로 신랑과 신부를 쳐다보았
다. 특히 아랍여학생들이 부러운 시선으로 한참 동안 신부를 쳐다봤다. 부부가 입은 색동한
복이 유난히 예뻤는지 오랫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랍여학생들의 얼굴을 보니 무언가
를 갈망하는 눈빛이었다. 여자들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남녀가 결합한다는 것
외에 무언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인 교회에는 다른 날보다 많은 분들이 오셨다. 즐거운 날이기도 하고 이국 땅에서 조촐한
결혼식이라는 느낌이 아니게 하려는 교민들의 배려 때문이기도 했다. 결혼식은 목사님 주
례로 기독교인 방식으로 치러졌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나는 찬송 부르고 바이블을 읽는 진
행이 좀 답답했다. 하지만 나도 신랑, 신부가 기쁘게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식은 끝나자 하객들은 점심을 먹고, 나도 허기진 배를 채웠다. 혼자서 식사
를 하는데 하객들이 하는 얘기가 내 귀에 들렸다.
"그거 참 신기해. 신랑이 고등학교 졸업해서 어떻게 대학 나오고 석사 과정 다니는 여자랑
결혼했을까. 신랑 재주 좋아."
"혹시 신부가 무슨 문제가 있는 거 아냐? 그 학벌에 왜 고졸 남자랑 결혼을 해?"
"지금은 둘이 저렇게 좋아해도 나중에는 문제가 많을 거야. 학력차이가 쉽게 좁혀지겠어?"
수군거리는 말들이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조차 그리고 일생에 가장
행복한 때라는 결혼식장에서조차 대한민국이 가진 학력 편견을 여기서도 실감할 줄이냐.
대한민국은 아직 멀었구나. 실력위주 사회가 되기에는 대한민국은 너무나 많은 장애물을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신랑과 신부는 열심히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웃
으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차라리 결혼식장에 오지 않았으면 이런
소리 안 듣고 나중에 기분 좋게 축하라도 해줬을 텐데...
정말, 대학이라는 것과 학력이라는 것이 대한민국에는 그렇게도 고귀하고 소중한 것일까.
나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교과서가 없어 혼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때 들었던 레파토리
는 "군인이 전쟁터에서 총이 없으면 어떻게 되냐" 라는 식이었다. 정말 대학가는 것이 우리
들에게는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전쟁상황이란 말인가. 나는 이런 일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
이 학창시절을 보냈다. 내가 이것을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유대인 사고방식과 사회 시스템
을 이해하고였다.
유대인은 우리처럼 교육열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탈무드라는 책이 유대인의
지혜를 높이는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 어머니를 주장하는 두 여자에게 명판결
을 내린 솔로몬왕의 지혜, 굴뚝청소를 한 두 사람 가운데 한명은 더럽고 다른 사람은 깨끗
할 때 누가 세수를 하냐는 얘기들로 채워진 책. 나도 어릴 적에 탈무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내 지혜가 좋아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런 말들, 전부 엉터리다. 내가 이스라엘
에서 관찰해 봤더니 전부 새빨간 거짓말이다.
탈무드? 유대인들이 말하는 탈무드는 우리가 이야기책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내용과 분량이 우리 사서삼경에 맞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약 60권 정도의 방대한 양). 그
리고 이것은 종교학교에서만 가르치지 보통 유대인들이 배우는 세속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만난 유대인 가운데 탈무드를 읽었던 사람은 극소수였다. 우리도 유교
문화권에 살지만 논어나 사서삼경을 이름만 알지 실제 읽은 사람이 적은 것처럼 말이다.
유대인의 교육열이 높다고? 웃기는 얘기다. 대한민국에 오면 명함도 못 꺼낼 수준이다. 내
가 처음에 유대인들을 접하면서 느낀 점은 예상보다 그다지 똑똑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물
론 특별한 기준이나 학력으로 판가름할 수는 없지는 대화를 하거나 일을 같이 해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머리로 느낄 수 있는 똑똑함을 발견하기 힘들었다. 오
히려 유대인은 가슴으로 체험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다.
인구수를 감안해도 오히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더 똑똑하다는 것을 많이 느낄 정도였다.
내가 유대인들이 똑똑하다는 큰 기대를 했거나 보이지 않는 편견 때문에 제대로 못보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내가 만난 한국인 여행자나 교포들도 거의 비슷하게 생각했다. 이러
자 나는 자연스레 의문을 갖게 되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유대인이 똑똑하다는 거야? 그
리고 어떻게 이런 나라 사람들이 자기보다 똑똑한 아랍사람들을 제압할 수 있지?
Sarid 키부츠에서 발런티어로 있을 때였다. 키부츠 식당은 유치원 바로 옆에 있었다. 식사
때마다 이곳을 거쳐 가는데 유치원 장난감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랍인들 유치원에 있는 장
남감들은 대부분 진짜 장난감들이다. 어린이를 위한 장난감들을 사서 구비한 경우가 많았
다. 그런데 유대인 유치원을 보면 장난감이 쓰다가 버린 물건들이 많았다. 타자기, 전화, 커
피포트, 텔레비전 처럼 대부분이 실생활에서 쓰던 것들이다. 우리 같으면 구차하다고 버렸
을 텐데 이것을 얘들 장난감으로 활용했다. 처음에는 구두쇠 같은 유대인들답다고 웃어 넘
겼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한 여자아이가 노는 것을 봤다. 커피포트에 물을 담그고 가스렌
지 위에 올려 불을 붙이는 시늉을 했다. 아이는 렌즈 손잡이를 이리저리 돌리며 눌러 보고
나중에는 조그만 플라스틱 컵에 따르더니 다른 아이들을 불러 대접했다. 이 장면은 내게 신
선한 충격이었다. '바로 이거구나!' 아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사용해야 할 일상
도구와 생활에 익숙해진다. 나중에 따로 교육시켜야 될 시간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
나 가장 큰 의미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상식과 소양을 아는 게 먼저라는 교육철학이다. 지식
습득은 그 다음이다.
고등교육에서도 이런 철학이 바탕에 깔려있고 실제 교육 현장에서도 적용된다. 이것만으
로 사회 생활하는데 별다른 불편이 없다. 대학은 전문지식을 배우고 싶거나 학구열이 있는
사람이 가면 된다. 공부하기 싫은 사람이나 소양이 없는 사람은 억지로 갈 필요가 없다. 남
눈치 안보고 자기에 맞는 일을 하면 되고 또 그렇게 되도록 사람들 인식과 사회 시스템이
형성되어 있다.
유대인 유치원에서 하는 발표회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실용적이었다. 우리처럼 피아노, 미
술, 춤, 노래 같은 억지 장기를 발표시키는 게 아니었다. 유대인들 명절(구약과 관련된)과
기념일(우리로 치면 단오, 추석, 식목일, 광복절, 3. 1절, 개천절) 같은 행사일에는 이와 관
련된 연극과 퍼포먼스를 한다. 한번은 유대인들 식목일인 '투비슈밧'(Tu Bishvat)에 참석했
는데 유치원 아이들이 직접 나무를 심고 저녁에는 어른들과 함께 이와 관련된 연극을 했다.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들 역사와 문화를 배운 것이다.
내가 본 유대인 학생들, 정말 공부 안했다. 물론 공부하는 얘들이야 집이나 도서관에 박혀
있을 테니 내 눈에 들어올 리 없었겠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공부와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유대인 부모들이 얘들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분위기도 느낄 수 없었다. 학교수업만 마치면
끝이다. 우리처럼 보습학원이나 피아노, 컴퓨터, 태권도 등의 과외하는 풍경이 이곳에서는
오히려 드문 일이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세계 최고 교육열을 자랑하고 어릴 때부터 과외, 보충수업을 끼고 사
는 대한민국이 왜 IMF로 비실 대고 유대인은 저리 놀면서도 잘사는 걸까? 유대인이 워낙
똑똑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실제 이스라엘에 와서 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높기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대한민국은 지식에 대한
탐구나 연구하려는 교육열이 높은 나라가 아니다. 대학에 가야 된다는 집단최면에 걸렸고
상위권 대학 졸업장에 목매 단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린 그걸 교육열이라고 말할 뿐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취임하면서 '마누라 빼고 다 바꿔라!' 라는 말을 해서 세간에 화제
가 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오직 일등만이 기억될 뿐이
다.'라는 공격적인 광고를 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후 스스로 판단하기에 광고내용이
너무 직선적이라 생각했는지 어느 사이인가 이런 식 광고가 사라졌다. 비록 광고 문구는 사
라졌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일등주의나 학력우선의 엘리트주의마저 없어진 것은 아니리
라.
학력위주 엘리트주의가 가진 문제는 학력 이외 재능에 대해서는 등한시하게 되는 점이다.
그리고 진정한 엘리트가 갖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 정신이 약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같은
학력위주 사회는 진정한 엘리트 의식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없는 사람들이 지도층을 구성
하게 된다. 반대로 실력은 있지만 학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서 일하
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을 가진 대한민국이 이스라엘처럼 공동체를 위하는 엘리트 의식이 강하고 유
기적으로 결속된 나라와 경쟁하면 이기기 힘들 것이다. 대한민국 엘리트가 이런 조직력을
상회할 기량이라도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책임소재 파악이 힘든 사회 구조에서는 이를 기
대하기 힘들다. 본래 진정한 엘리트는 자긍심이 강하고 책임을 회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대인 사고방식은 너무나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못해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유대
인들은 모든 사람이 똑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하는 것 같다. 개인이나 조직, 사회 지도층
이 똑똑하고 대우 받는 것도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고 의미가 있다. 이런 사실은 유대인들이
2000년 동안 방랑했던 뼈아픈 역사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자기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공동
체가 없으면 개인이나 엘리트 집단도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고 결국 불이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산의 역사가 생생히 입증해주고 있다.
한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무수히 많은 기능과 그 기능에 맞는 역할이 필요하다. 각각의 역할
에는 기본적인 상식과 소양만으로 가능한 것이 있고 전문적인 지식에 요구되기도 한다. 이
스라엘은 공동체에서 각자 역할에 맞는 곳에서 일하게끔 되어 있어 사회구조가 수평에 가
깝다. 그래서 대한민국처럼 직업이나 학력에 대한 편견이 심하지 않다. 즉, 학력이라는 잣
대가 사람을 판별하는 기준이 아니라 공동체에서의 역할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따라서 공
동체가 유기적인 결속을 하는데 장애물이 적다.
나는 내가 만난 유대인들 가운데 나보다 똑똑하다고 느낀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나하나 보
면 나보다 잘났다거나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 한마디로 별볼일 없
었다. 그런데 이들을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 한 구성원으로 보았을 때는 내
가 감히 비교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들 직업이 무엇이건 내가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 높이에
있는 독수리처럼 아득하게 높게만 느껴졌다. 내가 이스라엘과 유대인에게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조직의 힘이었다. '조직의 쓴맛을 보고 싶냐' 는 말처럼 나는 내 생전 조직이라는 말
이 그렇게 크게 느껴진 것은 유대인들을 통해서였다.
엘리트에 대한 유대인들의 개념을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학력은 사람마다 다르다. 세계에
서 20위권이라는 히브리대학을 나온 사람부터 무학력인 사람까지 다양하다. 학력, 즉 공부
에 대한 재능은 개인 자질에 좌우된다. 하지만 군대는 누구나 가야 된다. 특별한 재능이 있
어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대다수 사람이 간다. 똑똑하든 부자이든 누구나 공
평하게 맨 밑바닥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군대는 집단 플레이를 필요로 하는 조직사회이다.
나만 잘났다고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된다.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엘리트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개인 재능이 결합된 사람이다. 먼저
자기 공동체에 헌신을 하고 이 가운데 개인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엘리트가 되야 된다
는 게 유대인들 사고방식이다. 책상에만 앉아있던 사람은 개인적인 성공은 가능해도 전체
를 이끌어야 될 지도층이 되는 데는 자격미달이다. 이스라엘과 우리 상황이 다르기에 일률
적으로 견줄 것은 아니지만 한번 음미할만한 개념인 것 같다. 엘리트나 지도층이 되는 자격
을 개인차가 있는 학력에 먼저 두는 게 아니라 공동체에 헌신한 사람들에게 우선권을 부여
하는 사고방식은 배울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대한민국에서 2000년도 대입시험이 너무 쉽게 출제되어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난이도 조절을 못한 것은 우리 자신들이 아닌가 싶다. 나는 앞으로 대
입시험이 지금보다 더 쉬워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이 들으면 아이 망치는 소리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시험이 쉬워지면 아이들은 그만큼 공부를 안하고 다른 일을 할 시간이 많
아진다.
때로 아이들은 넘치는 시간을 주체 못해 탈선하거나 낭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인간 삶에서 공부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깨우칠
때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된다. 그 시간이 우리들에게 괴로울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서 한국사회에 씌어진 '학대 '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들은 학대 받고 스스로를 학대하며 살았다. 사람이 가진 무수히 많은 재능 가운데 공부
를 못한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질책과 때로는 매까지 맞으며 발버둥을 쳤던가. 정말 우리
가 향학열에 불타서 공부를 한 걸까. 공부 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게끔 가정과 학교와 사
회가 얼마나 배려를 했을까.
이게 학대이다! 채찍에 맞고 골방에 갇혀야만 학대가 아니다. 남들보다 잘해야 된다고 자신
에게 스스로 채찍질하고 학력이 최고라는 골방 안에 우리는 갇혀있던 것이다. 어차피 우리
는 이런 시절을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다. 이런 소모적인 과정은 우리로서 족하지 않을까?
우리 후손들에게도 이런 진저리 나는 과정을 겪게 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절대로 이런 악습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면 안된다.
우리는 기다려야 된다. 10대 후반 입시전쟁에서 탈락하더라도 그 사람들이 재기하고 다시
일어설 때까지. 학력 하나로 사람을 평가해서 스스로 안된다고 포기하지 않게끔 해야 한다.
결혼식 피로연은 어느덧 끝나고 신랑과 신부는 신혼여행지인 Eilat(이스라엘 남쪽에 있는
항구도시)으로 가려 한다. 이제 막 부부가 된 두 사람의 밝은 얼굴을 보며 여러 상념이 떠올
랐다. '사람들의 편견을 경멸하고 정말 행복하게 사셔야 됩니다'
[ 이스라엘에서 귀국한 후 두 부부가 E-mail을 보냈다. 내용은 지오라는 이름의 귀여운 남자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과 함께 앙증맞은 아이 사진이 덧붙여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꼭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지금 이쁜 아들 낳고 남 부럽지 않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
재미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Written by Clo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