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린마음 동호회의 회장을 맡은지도 벌써 4년이 되어간다. 회장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보다 더 여리고 상처를 잘 받으면 된다. 누군가 "덩치가 좋으시네요~"라고 이야기 한다면, 밤 새 뒤척이며 '내가 뚱뚱하다는 이야기 일까.' '결국은 혼자 변도 못보고, 호흡기 까지 차야한다는 걸까' 이런 생각으로 눈에서 땀을 흘리면 되는 것이다.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정모를 한 적이 있었다. 공지를 띄운지 일주일 째부터 발신자 없는 전화가 왔다. 물론, 우리 여린마음 동호회의 회원이었다. "여보세요?" "... 툭" 그만큼 우리 회원들은 여리다. 행여 남의 글에 리플을 달았다가, 그 리플이 글쓴이의 상처가 될까봐 차마 '등록'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정모 날이었다. 그나마 몇몇 활발하시다는 분들이 적극적으로 동호회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꼭 갈게요..." ".... 가도... 될까요..." 그들로서는 상당한 용기를 낸 것이다. 하지만, 당일 날. 나는 생전 처음 가보는 인사동에서 4시간을 추위에 떨어야 했다. 마스크를 쓰고 주위를 어슬렁 거리는 한 남자분이 있어서 나는 다가가 물어 보았다. "저 ... 혹시.. 여린마음??" "흑, 아.. 아니에요." 울며 뛰어가던 남자분, 그 남자분은 나중에 자신이 홈페이지의 '아기피부'님임을 메일로 보내왔다. 자, 이렇게 길게 '여린마음 동호회'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바로, 작년까지 부운영자로 활동하시던 '마데카솔'님의 화이트데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 것이다. '마데카솔'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동호회에서 유일하게 나 이외에 가출경험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데카솔'님의 가출경위는 이렇다. (8년 전) 친형 : "야, 넌 맨날 누구한테 그렇게 편지를 쓰냐." 마데카솔 : "이..있어.." 친형 : "누군데? 줘봐, 어디 봐봐" 마데카솔 : "안돼, 안돼 형.. 이러지마.." 하지만, 친형은 마데카솔님이 쓰고 있던 편지를 빼앗아 한 손 거리를 두어 밀어내며 읽기 시작한다. 친형 : "뭐야. 황신혜? 탈렌트 황신혜?" 마데카솔 : "그냥 펜레터야.." 친형 : "야, 황신혜씨 입장도 고려해줘야지. 니가 이러면 곤란해 지잖냐.." 마데카솔 : "......" 그랬다. 그 날, 마데카솔님은 전라북도 전주에서 무작정 상경한 것이다. 첫 가출. 그리고, 서울에 도착하자 막막해진 마데카솔님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서울역이야. 찾지마." 마데카솔님의 식구는 그 날 다 상경해서, 서울역 공중전화 밑에서 쪼그려 앉아있는 마데카솔님을 데려와야 했다. 이런 마데카솔 님에게도 사랑이 있었다. 황신혜 이후, 처음으로 마음속에 들어왔다는 회사 옆 우체국에서 근무하는 아가씨. 마데카솔 님의 말로는, 미스코리아 뺨 칠 정도로 예쁘다고 하는데, 그 여자분이 정말 미스코리아 뺨을 쳤는지는 확인 못했다. 아무튼, 그 여자분은 마데카솔 님의 마음을 완전히 가져가 버린 것이다. 그러던 중 화이트데이가 다가왔다. 마데카솔님은 그 여자분과 친해지기 위해서 우체국에 통장까지 만들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저금을 했다. 나 역시 우체국에서 저금도 할 수 있는지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드디어 화이트데이 당일, 우리는 전 날 정팅까지 해가며 마데카솔 님에게 조언을 했다. "..... 잘... 하세요.." 여린마음 이라서 이렇게밖에 조언을 할 수 없었다. 아무튼, 마데카솔님은 일주일간 집에서 만든 사탕 상자를 들고, 우체국으로 향했다. 그 여자분은 매일 저금하는 마데카솔님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 네.." 그리고, 마데카솔님은 사탕 상자를 내밀었다. 정말이지, 마데카솔 님으로서는 모든 용기를 다 내어 내민 상자였다. 그 여자분은 상자를 받으며 말했다, "저기 있는 종이로 겉에 포장해 주시겠어요?" "아.. 네." 마데카솔님은 자신이 포장도 하지 않고 그냥 상자를 가지고 온 것을 후회했다. '역시.. 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할거야..' 다시 정성스럽게 포장을 해 간 마데카솔님은 상자를 여자분에게 전달했다. 그 여자분은 상자를 받으며 다시 말했다. "여기 주소도 써 주세요." 이 대답을 들었을 때, 마데카솔님은 이 여자분이 나중에 편지라도 하나 써줄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집 주소를 정성 스럽게 썼다. 그리고 이름도 또박또박 적어 놓았다. 다시, 떨리는 마음으로 상자를 내밀었을 때 여자분이 말했다. "빠른 걸로 할까요?" "..네..??" "빠른 우편으로 하실거에요?" "아.. 아뇨.. 전 그게 아니라..." "네. 그럼 보통으로 해 드릴게요." 눈치 없는 그 여자분. 마데카솔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순간 얼버무려 버렸다. "저.. 그게.. 네.." 마데카솔님의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그렇게 급박하게 뛰는 박동을 뚫고 다시 그 여자분이 말을 걸었다. "이천 오백 사십원 입니다." "아.. 네.." 마데카솔님은 눈물을 닦으며 주머니를 뒤져 돈을 지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뒤, 마데카솔님은 집으로 배달된 소포를 부여잡고 밤 새 도록 울었다. 여기까지가 마데카솔 님의 이야기다. 그 후로는, 가깝던 회원분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미국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얼마 전, 서울역 공중전화 밑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올해는 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여린마음들이여, 이번엔 꼭! 용기를 내자.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은 그저 기록에 무임승차 하는 것 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