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은 유난히 따뜻한 것 같습니다.
방학도 끝나가고 곧 개강인데 님들 계획하신대로 잘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고등학교 입시에서 떨어진 적 있습니다.
지방에 있는 작은 시의 신설된 인문계 고등학교였습니다.
100점을 만점으로 했을때, 40점 정도만 되어도 입학할 수 있는 학교였습니다.
다음 해에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였고,
제가 고3일때 친구들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제 사촌 1명은 ★★대학교, 또 한명은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그때 실습실에서 용접을 하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의 한 전문대학에 입학하여 영어를 공부하였고,
학교 수업을 병행하며 혼자 편입을 준비하였습니다.
나를 바로 세워 남도 바로 설 수 있도록 하고 싶었고,
힘을 기르고 얻어 그 힘을 정의롭고 올바르게 사용하고 싶었고,
돈도 많이 벌어 그 돈으로 기부도 많이하고 싶었습니다.
편입과 학과는 제게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일뿐, 목적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200x년도에 xx대학교 xx과로 편입하였고, 과 점퍼를 입으면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열등감 자괴감 무력함.
저하고도 그리고 여태까지 제가 알던 사람들 중 몇몇에게도 익숙한 단어입니다.
저는 공고에 재학중일때도, 전문대학에서 편입을 준비하던 때도,
우리학교 정도의 학생들은 열등감 혹은 자괴감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학교의 일부의 학우들이나마, 그런 혼란에 빠져 있다면 반성해야합니다.
우리보다 못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으며,
그들은 대학에 대학생에 ○○대에 ○○ ☆대에 황송할 정도록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사람의 문제점중 하나가, 특히 고학력자의 고질병中 하나는 줄세우기입니다.
환경과 사람에 따라서 위계가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지만,
그것이 상황을 호전시키고 다른 사람을 깨우쳐 주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일에 쓰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수구이며, 수구는 오만함 게으름 무력함일 뿐입니다.
잘 배우는 일은 권리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도 되는 사람들에겐 책무이기도 합니다.
잘못된 한계가 설정되었다면 마땅히 지워나가야 할 것이고,
그 누구도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는 일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학벌이 형식적인 의미에서의 스팩이라면, 학력은 실질적인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은 완결된 멜로디가 아니라 끊임없는 멜로디입니다.
이 선율에 제대로 몸을 맡기려면 학벌이 아니라 학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