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다섯 살 난 어르신 한 분>

고영해 |2007.03.15 16:03
조회 378 |추천 3

내 베스트 프렌드 영건이의 글이다

글쓰는 실력도 있고 괜찮은 글도 많이 나온다 ^^

하지만 본인이 소심해서리 ㅋㅋ

내 친구 영건이의 글 몇개를 소개해 본다

아참 여기서 등장하는 컴퓨터 의사가 나다 ㅋㅋ

 

 

작년에 내가 재수하러 육지에 올라간 사이에 집에서는

자그마한 일이 생겼다.

5년동안 우리집에서 고생하셨던 컴퓨터'어르신'께서도

이제 슬슬 은퇴 준비를 하셔야 했던 것이다.

왕년에는 잘나갔다던 17인치 화면 얼굴도 요즘에는 잔주름이

많아지시고. (크기도 상당해서 슬림형이 판치는 요즘,

연예인 누구의 얼굴 만큼이나 부담스러우시다.)

관절염이 걸리셨는지 요즘은 인터넷 게임을 해도 다른 젊은

컴퓨터에 비해 힘겨워하시며, 단순한 다운로드에도 버벅거리시던 분이셨다. (게임이 조금 버벅거린다고 투정하면
"어허 거참 앞으로도 살날 많은 젊은 놈이 급하기도 하다!"라며
되려 화를 내던 양반이다.)

나도 곁에서 간호를 하며 은퇴시기를 늦추려고 갖은

애를 써 봤지만 이 양반이 이제는 저장된 내용도

기억을 못 하시는듯 해서 조바심만 커지고 있었다..

 

"어르신 요즘 힘드십니까? 슬슬 후생들에게 자리를 맡기심이
어떠하신지.."

 

요 전번에 서로 장기를 두면서 수를 주고받으며 이렇게

대화의 운을 띄웠는데 어르신께서 역정을 내시며 하는 말이,

 

"이놈아! 벌써 나를 내쫓을 궁리만 하느냐! 고얀 놈! 남들은

조금이라도 젊어지라고 이 부품, 저 부품을 새로 달기만을

기다리는데 네 녀석은 새로 달기는 커녕 새 기계를 들일 궁리만

하는구나!"

 

언제나 하는 소리지만 어르신께서 너무 오래되셔서 요즘에 나오는

부품들은 달아드릴 수 없다고 말씀드리니, 이번에는 일단 사오면

자기가 알아서 써보겠다고 역정이다.

일단 사오기만 하라는 투였다.

그동안 고생하시기도 하셨고 요즘에는 변변한 부품하나

달아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돈을 들여

새로운 CPU를들이기로 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뇌를 바꾸는 것과 같아서 이번에 부품이라도 바꾸게 되면 어르신과 세상 사이의

세대차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듯 싶었고 또한 그 동안의

미안함을 보답할 길이 생겼으니 마냥 즐거울 뿐이었다.

 

수술전에 어르신께 물었다.

"어르신 좋으십니까?"

 

어르신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허 젊어진다는 데 좋다 뿐이냐, 날아갈 듯 즐겁다."

 

"그래도 대 수술이라 조심조심 할테니 검은 옷 입은 사내놈이

나타나더라도 따라가지 마십시오."

 

이렇게 농을 붙였더니 예전에는 자그마한 농에도

역정을 내던 양반이

"어따 이놈아 걱정도 많다. 노자나 주어 돌려 보낼테니

걱정을 말어라."

 

피식 웃으며 농을 농으로 받아 넘기시는 것이었다.

일단 수술이 시작되고 자칭 컴퓨터 의사인 내 친구 녀석은 집도를

시작했다. 일단 전원부터 끄니 어르신이 마취라도 된듯 곱게

잠드시자 친구놈은 그렇게 어르신을 재워두고 열심히 손을 놀려

어르신의 배를 열었다.사람의 뱃속도 요란하다지만 어르신의

뱃속도 어지간히 요란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전선들이 이것저것 다 꼬여있고 판들도 들이대며 서 있는 통에

눈이 어지러워서 더는 보지도 못했고 이것 저것을 건드리면

어르신께서 몸 상하실까봐 손도 못대고 옆에서 어르신의 배 뚜껑만

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친구놈은 대수롭지 않은 것인냥 이 나사,

저 나사를 풀고 조이더니 무엇인가를 꺼냈고, 새 부품을 끼우고

다시이 나사, 저 나사를 풀고 조이더니 수술이 끝났다고

통보를 했다.

 

수술이 끝나고 봉합을 하고나서 겨우 한숨 돌리나 했는데

친구 녀석의 얼굴이 심상치가 않았다.

이유를 물으니, 그 동안 메인보드를 업그레이드 하지 않아

새 부품을 끼워도 작동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며, 설사 작동된다

하더라도 지금의 어르신께서 새 부품의 성능을 따라 올 수 있을지

자신도 확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어르신의 뜻이라

어쩔 수 없다는 듯 내가 대답하니, 친구 녀석은 안쓰러운 얼굴로

수술의 경과를 지켜보자는 말만 되풀이 한다. 마취된 어르신의

얼굴에 간간히 깜빡거리는 전구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답답하기만 했다.


어쨌든 수술을 끝내고 수고했다고 친구녀석에게 수술비 명목으로

이런 저런 것들은 챙겨다 주었다. 그리고 마취를 풀고나니

다행스럽게도 어르신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깨어난다. (이 노인네가 눈을 뜨는 동안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어르신 기분이 어떠십니까? 걸을만 하십니까?"

이렇게 운을 띄우며 물으니

 

"이놈아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언제 수술대에 누었냐는 듯 벌써부터 뛰어보겠다고 성화다.

어르신의 얼굴에 익숙한 윈도우가 떠오르자 그제서야 난 친구를

집 밖으로 배웅할 수 있었다.

 

"무리하지 않는것이 중요하네. 옆에서 조정하는 건 자네이니

조심하시게.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어르신은 어르신이니

옆에서 잘 돌봐드려야 하네."

 

친구녀석은 못내 걱정스러운지 돌아가면서도 나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자 어르신은 나와 장기부터 두잔다.

(평소에 이런 저런 게임을 못하는 어르신이지만

장기를 두면 나를 항상 이겼다.)

수술도 끝나고 즐거운 기분에 장기판을 켜는데

어르신이 성질을 낸다.

 

"이놈아! 언제까지 2D 장기판으로 놀테냐

3D 장기판은 평생 두고 썩힐 테냐?"

 

평소에 어르신이 3D 게임을 버거워하시고 예전에 장기말

옳기시는데 무거워 힘이 들어 보이는 듯 싶어 무거운 장기말보다야 가벼운 장기말로 해야 힘들지도 않고 재미있게 두지 않겠냐고

말하니, 잔 말 말고 새 장기판이나 꺼내란다.

수술이 방금 끝났지만 새로운 부품도 잘 돌아가는 마당에

무슨 일이 있으랴 싶어 새 장기판을 꺼냈다.

새 장기판은 평소 2D가 아니라 입체라서 모양새도 좋고 자료도

많이 들어가는 터라 화려했다. 켤 수 있겠냐고 물으니

 어르신 웃으시며 하시는 말

 

"어따 이놈아 부품을 갈아 준것만도 고마워죽겠는데

이 정도도 못하겠느냐?"

 

장기를 하다보니 예전 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시고 장기말을

옮기는 데에도 예전보다 생기가 있어서 그제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어르신 아예 이참에 새색시나 구하시지요? 힘이 넘치는 것이

요즘 젊은 놈들한테 질 것 같지가 않습니다."

하고 아부를 하니, 노친네는 누런 이를 들어내 보이며

그저 웃기만 한다.

 

그런데 일이 터진것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르신을 두고 잠깐 외출을 했던 사이에 어르신께서 쓰러지신

것이었다. 오랜 시간 밖에 나갔다 오며 이런 저런 일들을 어르신께

맡겼는데, 자신 있어하는 어른신께 무슨일이 있겠느냐 싶어

이것저것 많이 맞겨둔 것이 화근이었다.

 

"아무리 몸이 좋아졌더라도 예전부터 할 수 있던 정도가 습관이
되어 있었는데 한꺼번에 일을 많이 하신것이 화근이었네.
과부하로 돌아가셨으니 유감이네 "

친구놈이 안쓰러운 얼굴로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냈지만 어르신의

주검을 맞이하는 나로써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바로 어제 웃으며 주고받던 장기 판이 눈에 아른거리고 어르신과

함께 했던 과거가 스쳐지나갔다.

 

게임을 할 때 우리는 같이 울고 웃었고 작업을 할 때에는

서로 졸린 눈을 부벼가며 지난 5년을 지내왔던 사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노인네가 늙어가면서 그 양반은 스스로에게 조바심을 가졌던것 같다. 젊어졌다는 생각에 아마도 이 양반은

마지막 순간까지 여지껏 여분으로 남겨왔던 에너지를

모두 태워버렸을 것이다. 한 순간 젊음을 되찾은 동안의 어르신의 기억이 한 가닥의 위안이라면 위안이라 할 수 있었다..

 

어르신이 세상과 별세를 했고 정이 들었다 하더라도 자리는

비워둘 수가 없어서 지금엔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그 빈 자리를

매꾸고 있다. 이제는 새파랗게 젊은 녀석(지금 쓰는 컴퓨터)하고

장기를 하고 있지만 져주는 예의도 모르고 내가 생각할 틈도 없이

장기말을 옮겨대고, 노인과는 다르게 봐주지도 않는 이 녀석하고는

정이들지 않고있다. 성능은 좋지만 매정하다랄까?


가끔씩은, 버벅거리면서도 장기말을 옮기고 의뭉스럽게 시간을

벌어주는, 정겨운 소리지를 지르는 다섯살 해의 어르신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의 타계?가 1년이 넘어가는 오늘 날에 이 글을 남긴다.

 

 

 

글쓴이

이름 : 안영건

생년월일 : 1985.05.23

싸이월드 주소 : http://www.cyworld.com/acirema

핸드폰 번호 : 비밀

(여자분들은 개인적인 만남을 원할경우 저에게 연락주세요 ㅋㅋ

남자분들은...글쎄...ㅡ_ㅡ;;)

 

글쓴이 소개

글쓴이는 1985년 5월 23일 제주의 바람과 같이 태어난

제주도 토박이로 그의 글에는 언제나

제주의 구수한 정감이 베어 있다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고 강인해 보이지만

속은 누구보다도 여리고 섬세하다

그의 글은 재미있으면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가볍게 읽으며

인생의 무거움을 느끼게 한다

 

 

추천수3
반대수0

배꼽조심 유머베스트

  1. 오른쪽이 남편임댓글0
더보기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