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발 트랜스 지방 괴담
지난 연말, 뉴욕에 갔던 에디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뉴욕 사람들은 대부분이 88 사이즈는 족히 넘
어 보이는 비만이었던 것. 66 사이즈를 입는 에디터는 대한민국에선 보통 몸매였음에도 불구하고, 뉴
욕의 점원들로부터는 ‘슬림하다’는 황당한(!) 평가를 받으며 제일 작은 사이즈를 골라 입었던 것이다.
날씬한 사람들은 부자 동네에 산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늘씬한 뉴욕 여자들을 보리라 기대했던 에디터로선 대실망이었다. 불만을 토로했
더니 친구는 어퍼이스트나 어퍼웨스트, 소호 같은 부자 동네로 가보라고 했다. 다음날 찾아간 이른바
럭셔리 주거지. 찬바람이 쌩쌩 몰아치는데도 늘씬한 아가씨가 레깅스에 트레이닝 상의만 입고 열심히
조깅을 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유기농 식재료만 파는 홀푸드(Whole Food)에선 역시 빼빼 마른 노부
부가 예쁘게 포장된 샐러드를 고르고 있었다. 뉴욕의 빈익빈 부익부는 몸매에서 나타난다. 중산층 이하
가난한 사람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중에는 비만인 사람들이 유독 많다. 반대로 부유한 사람들은 대
체로 TV 속 뉴요커처럼 늘씬한 편이다. 부자들은 돈 내고 헬스클럽에 다니고 지방 흡입을 받을 수 있어
서?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더 심각한 데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 트랜스 지방
소득이 낮은 사람들은 적은 돈으로 한 끼 식사를 때울 수 있는 곳을 찾기 마련이다. 맥도널드, 파파이
스 같은 패스트푸드점이나 곳곳에 퍼져 있는 동네 햄버거, 핫도그 가게에선 2~5달러 정도면 햄버거에
감자칩을 곁들인 식사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값싼 레스토랑에선 단가를 낮추고 음식 맛을 좋게 하
기 위해 쇼트닝, 마가린 등의 트랜스 지방을 써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들 식당을 자주 이용하는 서
민층은 트랜스 지방과 비만의 위험에 동시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트랜스 지방이 화두로 떠오른 것
은 뉴욕시가 2007년부터 뉴욕의 모든 레스토랑에서 무조건 트랜스 지방을 쓸 수 없다고 규제했기 때
문. 저소득층의 비만으로 인한 질병을 막고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트랜스 지방을 제한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미 2006년부터 식품에 트랜스 지방 첨가 비율을 표시하도록 규정한 것에서 한 발짝, 아니
두세 발짝 더 나아간 조치다. 이 때문에 미국 패스트푸드 업계는 당장 새 메뉴를 개발하고 트랜스 지방
의 대체품을 찾겠다고 난리가 났다. 문제는 값싼 트랜스 지방을 쓰지 못하게 되면 그동안 서민들의 끼
니를 해결했던 저렴 버전 레스토랑의 메뉴 가격이 올라갈 것이란 예측. 뉴욕 시민들 사이에선 ‘던킨 도
넛이 곧 개당 10달러(약 1만원)가 된다’ 식의 다소 유머러스한 괴담도 나도는 중이다.
트랜스 지방만 막는다고 해결될까?
결국 값싸게 식사를 공급했던 레스토랑에선 원가 절감의 일등 공신인 트랜스 지방 대신 더 비싼 대체
지방을 사용해야 한다. 트라이베카의 최고급 레스토랑들은 “원래부터 우리는 트랜스 지방을 사용하지
않으니, 이 조치 때문에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태평한 표정이다. 반대로 일부 서민 레스토랑
은 가격을 올리느니 문을 닫겠다는 격렬한 반응도 보이고 있다. 가장 저렴한 햄버거&감자칩 메뉴의 가
격이 오르게 되면 결국 서민층이 저렴하게 끼니를 때우기 어렵게 된다는 역기능이 생긴다는 것이 이들
의 입장이다. 트랜스 지방은 지금 뉴욕 서민들에겐 선과 악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트랜스지방 전쟁 중!
우리나라에서도 올해 말부터 트랜스 지방 표시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덕분에 가공 식품에 들어 있는
트랜스 지방은 점점 감소하는 쪽으로 변화하는 중이니 과자를 달고 사는 아이들 때문에 걱정인 엄마들
에겐 반가울 따름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6년 148종의 과자와 패스트푸드
메뉴를 조사한 결과, 트랜스 지방이 평균 50% 이상 감소되었다고 한다.
설왕설래 1. 우리나라 식품들은 트랜스 지방 프리?
던킨 도넛, 롯데, 파리바게뜨는 트랜스 지방 저감화를 선언하며 언론에 보도자료까지 돌렸다. 맥도널
드, 크리스피 크림 등 기타 업체는 1~2월 중에 문제가 되는 기름을 안전한 것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한
다. 농심, 삼양 등 라면 업체는 라면에는 트랜스 지방이 거의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어쨌든 의심이 가
는 도넛, 과자, 빵, 패스트푸드 업체에 연락을 취해본 결과 대부분 트랜스 지방 표시가 의무화되더라도
전혀 꿀릴 것이 없다는 반응이라 한편으로는 반갑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그렇
다면 문제가 되는 트랜스 지방이 함유된 가공 식품은 우리나라에선 구경하기 어렵다는 얘기?
설왕설래 2. 쇼트닝, 마가린도 트랜스 지방이 아닐 수 있다?
이번 기획 때문에 과자 포장지를 꼼꼼하게 살피게 된 에디터는 궁금증이 생겼다. 새해 들어 ‘전 제품
트랜스 지방 제로’라고 신문 광고까지 했던 롯데제과의 인기 제품의 성분 표시에 여전히 ‘쇼트닝’이 써
있었던 것. 역시 같은 주장을 하는 또 다른 제과업체의 베스트셀러 제품에도 ‘마가린’이 선명하게 박혀
있다. 마가린, 쇼트닝, 경화유는 무조건 트랜스 지방으로 알고 있던 에디터에게 이건 황당한 일이었다.
삼양사에서는 튀김용 쇼트닝의 트랜스 지방을 0%에 가깝게 줄이는 데 성공해 올해부터 국내 도넛 회
사에 독점 공급하기로 했다고 한다. CJ에서도 효소 공법을 활용해 트랜스 지방 함량을 1% 수준으로 낮
춘 가공 기술로 경화유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트랜스 지방이 없는 쇼트닝, 경화유도 있다
는 얘기고, 이를 활용해 제품을 만들었다면 쇼트닝이나 마가린이 원료로 표시되어 있어도 트랜스 지방
은 함유돼 있지 않을 테니, 소비자는 어리둥절할 수밖에.
설왕설래 3. ‘트랜스 지방 프리’가 안전한 것은 절대 아니다
트랜스 지방이 없다고 주장하는 제품에도 소량의 트랜스 지방은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잠깐 잊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정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현재 트랜스 지방 프리라
고 주장하는 몇몇 업체들은 ‘미국 FDA 기준’에 맞추었다고 얘기한다. 문제는 미국에서는 트랜스 지방
이 0.5g 이하 들어 있으면 ‘Trans Fat Free(트랜스 지방이 없다)’라고 표시할 수 있다는 것. 역설적으
로 0.4g의 트랜스 지방이 들어 있어 ‘트랜스 팻 프리’ 판정을 받은 제품이라도 6개를 한꺼번에 먹는다
면 세계보건기구에서 인체에 해가 없는 양이라고 규정한 2.2g을 순식간에 뛰어넘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트랜스 지방을 쓰지 않기 위해 기름을 바꿀 경우, 오히려 소비자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 만약 업체에서 마가린이나 쇼트닝 대신 트랜스 지방은 적지만 포화
지방은 많은 기름을 사용한다면 트랜스 지방 문제는 해결하지만 비만이나 심장 질환의 문제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트랜스 지방 규제를 시작한 미국에서 트랜스 지방이 아닌 포화 지방을 규제해야 한
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