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피로> 부슬비가 내린다. 아파트 복도 난간

정상화 |2007.03.21 14:42
조회 16 |추천 0

부슬비가 내린다.

아파트 복도 난간 위에 흐터진 담배재들이 묵직한 부슬비에

굳어 버렸다.

입 바람으로 후후 불어보아도 이제는 꿈쩍도 하지않는다.

봄이 왔지만

기후는 변하고, 눈 앞엔 비에 져저 느러진 기운없는 수채화뿐

입을 살짝 다물고 오물오물 거린다음

검지 손가락을 혓바닥위에 살짝 올렸다가

눈 앞의 수채화 한 가운데를 찔러 버린다.

아야~

눈 아프다.

괜히 손가락으로 눈 찔렀다.

하품때마다 줄줄 삐져나오던 눈물이 또 눈가에 잔뜩 고였다.

나뭇잎 색깔, 나무줄기색깔, 땅색깔, 하늘색깔이 서로서로

얼키구설켜 진흙덩이처럼 번져버린다...

그렇게 딱딱해 보이던 나무들도

그렇게 매말랐던 땅들이

그렇게 파랗던 하늘이

오늘따라 추우욱 느러진다.

내 어깨가 느러진것 처럼, 내 가슴이 파업하는 것 처럼...

지하철역에서 아파트정문까지 바른걸음으로 10분 걸리는 거리는

온통 아스팔트와 보도블럭으로 메워져있는데도

오늘은 진흙탕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눈가엔 김빠진 맥주로 그리는 배경이 스치는데...

얼빠진 내 두발은 신발에 흙 한점 뭍히지 않고 우포늪을 산책한다.

어깨는 책 한 권든 가방을 메고도 K2를 등정하고, 

가슴은 개마고원에서 축구를 한다.

두 손은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나는 기지개 펼 생각조차 못한다.

엘리베이터에선 아황산가스같은 개냄새가 코를 구타한다.

힘이들어 자리에 앉고 싶지만, 잠시 쉬고 싶지만...

하늘은 구름뒤로 해를 감추고 시계는 초침뒤로 여유를 감추었다.

봄이 왔다.

어느덧 아열대에 등극한 이땅에 여느때처럼 봄이 왔다.

하지만 오늘은 그 봄이 아닌가 보다.

오늘은 내게 봄이 아닌가 보다.

내 걸음은 아직 봄길의 문턱도 밟지 못했다.

내 어깨는 간밤의 선잠에 기지개도 피지 못했다.

내 가슴은 잠든 빗소리에 금붕어처럼 뻐금거릴 뿐이다.

내 눈가엔 여태 김빠진 맥주같은 눈물이 주춤거리고 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