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우아한 세계(약간의 스포일러 포함^^;)

정경선 |2007.04.10 11:24
조회 41 |추천 0

금요일날 발표보고, 정말 많이 울었다.

(얼마전에 또 울일이 있었는데,

그때 물한모금 안마시고 울다가 탈수로 의식을 잃은 경험이 있어

이번엔 깡생수를 병나발로 마셔가며 울었다.)

덕분에 금욜 밤이 되었을땐,

나의 눈두덩이는 아주 멋진 명란젓이 되어 있었고,

그 와중에 쌍꺼풀은 양쪽다 한 다섯겹쯤?

완전 우스운 눈이 되어있었다.

너무 심하게 충혈되었길래, 토요일날 병원에 갔더니

실핏줄이 다 터졌다고 하더라.

당분간 울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뒤로 하고,

명란젓 눈두덩이와 함께 돌아왔다.

 

그리고 일요일,

우아한 세계를 봤다.

 

안울려고 했다.

앞이 보이는게 신기할정도로,

벌에 쏘인게 아닌가 싶을만큼

눈 상태가 안좋았거든.

 

하지만, 안울수가 없었다.

"안울수가 없었다"는 말로는 부족하지.

사실 거의 꺼이꺼이 통곡을 했으니까.

심지어 영화가 끝나고도 한 30분은 더 울었을거야.

 

제목과 송강호씨의 출연, 그리고 멋진 포스터.

이것때문에 이 영화가 끌렸다가,

시놉을 보고는 심드렁해졌었다.

난, 조폭을 적으로 하는 영화는 몰라도

(이것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만)

조폭이 주인공인 영화는 정말 별로거든.

(아무리 그럴싸하게 포장해도

결국은

남의 등쳐먹고 사는 인생,

정말 최악이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시간이 제일 잘 맞아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아찔해졌다.

안봤으면 어쩔뻔했어.

2007 최고의 한국영화로 기억될 영화를.

내 평생 가장 좋아하는 한국 영화 베스트5에 들 영화를.

 

조폭을 직업으로 한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배운게 그것뿐이라, 늦은 나이에 딱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가장의 비애를 "조폭"이라는 직업(조폭도 직업이라고 쳐 준다면 말이다)만큼 상징적으로 잘 표현할 수 없는 것도 없을 것 같아.

힘들고, 더럽고, 한심한 일들을

비루하고 비굴하게 몸까지 다쳐가면서

계속 할 수 밖에 없었던건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이 잘 나오고, 햇볕 잘 들고,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집에서

가족과 함께 그림같이 사는 꿈.

그렇게 거창하지도, 그렇게 과하지도 않은

소소하고 아름다운 꿈.

 

마누라가 웃어주고

딸이 웃어주고

아들이 웃어주며

아빠가 최고라고,

아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집에서 도란도란 사는 꿈.

 

자신까지 버리며

아름다운 집을 마련했지만,

자신이 꿈꿨던 그 우아한 세계에 한발짝도 들여놓지 못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아파서

펑펑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과 의사 샘의 말을 기억하며

누르고 눌렀지만,

마지막..

DHL직원이 왔을때,

불길하더라.

 

결국 봇물처럼 터진 눈물은,

영화가 끝나고도 진정이 안되서

한참을 서럽게 울어버렸다.

 

얼마나 많은 대한민국의 가장들이,

우아한 세계를 꿈꾸며

더럽고 치사하게 매일을 견뎌내고 있을까 생각하니

한없이 불쌍하고 딱해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 철이 좀 들었지만,

한때 사춘기랍시고 아빠에게 쌀쌀맞았던 내 모습,

하나하나 스쳐가며 더 마음이 아팠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족이,

그네들의 가장과 함께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처량하고 아름다운,

그들의 꿈을..

조금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나는 또 펑펑 울고,

덕분에

내 명란젓 눈두덩이는 가라앉을 기미가 안보인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