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의 페트(The forbidden pet) -
이 름 배진국
제 목 금단의페트 - promise -
녀석과 한두 곡쯤 추었을까. 슬슬 몸도 마음도 춤춘다는 것
에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 갑작스레 어떤 두 사람이 그런 나와
시아 녀석에게 다가왔다.
"여어, 안녕하신가."
학생회장 코인, 그리고 그의 동생 엘리. 확실히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으니 남매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중요한 것
은 그런 사소한 생각이 아니라….
"용케도 찾으셨군요."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춤추고 있는데, 나와 시아 녀석을
알아보고 찾아왔다는 것은 적어도 보통의 눈썰미로는 불가능
한 일 같아서, 난 조금은 비아냥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코인이
란 녀석은 조금은 꼴 보기 싫은 느끼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천천히 내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시아 녀석의 앞으로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미천한 저를 위해, 한 곡 춤출 수 있는 영광을 주실 수는
없을까요, 레이디."
참으로 가식적이고 능글맞은 화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에, 시아 녀석은 '그래도 되요?'라고 묻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
라보았다.
"뭐, 마음대로."
잠시 후, 코인이란 녀석은 시아를 에스코트하며 다른 한쪽으
로 느긋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은 찜찜하기도 했지만 이런 사소한 일 가지고 신경 쓰
는 것도, 내 성격에 안 맞을 테니까. 조금은 차가운 벽에 기대
어서 무대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 …."
"… …."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다, 조금은 신경질적으
로 입을 열었다.
"저기, 뭐하시고 계시는지?"
"글쎄요. 왜 이러고 있는 걸까?"
엘리 녀석, 붉은색이 어울리는 드레스를 차려입고 멍하니 벽
에 기대어 서서 날 바라보는 그 단정한 얼굴.
허리까지 오는 긴 금발이 눈부신 조명과, 붉은색 드레스와
어울려져 묘하게 사람들의 시선을 끌리게 하는 것 같았다. 학
교에서도 종종 보았던 남학생들이 춤을 신청하기 위해 주위를
맴돌며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니.
"… …."
다시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가, 체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죠."
잡아먹을 듯이 날 바라보고 있는 남학생들의 얼굴들은, '네
녀석 덕분에 춤을 못 추잖아!'라고 나에게 외치는 것 같았기에
말이다. 엘리 녀석이 계속 내 옆에서만 이렇게 머물러 있었다
가는, 안 그래도 나쁜 이미지가 땅에 곤두박질할 정도로 낮아
질 테니.
'결국 이렇게 되는군.'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씁쓸한 기
분. 그래도 리체 녀석이랑 마주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
는 수밖에.
'어라, 왕자잖아?'
왕자는 어떤 여자와 무대의 정중앙에서 화려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파트너말고 다른 주의를 살펴볼 정도의 여유가 있으리
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나도 제법 눈썰미가 좋은 덕분인지
- 아니면 왕자가 너무 단정하게 생긴 탓인지 - 무대의 정중앙,
사람들의 동경하는 눈빛을 한껏 받고 있는 왕자의 춤추는 모
습이 보였던 것이다.
'파트너는 누구지?'
왕자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확실히 비교될 정도의 지위와, 외
모를 가지고 있었으니. - 검술에도 능하고, 겸손하기까지 한
여러모로 잘난 녀석이니까 말이다.
적어도 보통의 파트너는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에 눈을 가
늘게 뜨고 무대를 바라보는 것이다.
'아-.'
은발의 소녀, 멀리서 보느라 정확한 외모는 판별하기 힘들었
지만, 나도 모르게 감탄성을 지를 정도니. 주위의 다른 사람들
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품'이 느껴진다고 할까. 공기가
다르게 보인다고 할까.
'잘 어울리는군.'
말 그대로 그 외모만 해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만할 정도
다. 시원하고 경쾌한 동작으로 리드하며 움직이는 왕자와, 화
려하지만 경박하지 않고, 기품있게 보조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이 강당에서 비교할 대상을 찾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
그 자체였다.
"뭘 보고 있는 거죠?"
이크, 결국엔 엘리 녀석에게 들키고 말았다. 조금은 겸연쩍
은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자와, 그 파트너."
"아아."
웃는 얼굴로 살며시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이내 다시 입을
여는 엘리 녀석이었다.
"공주님과 왕자님. 정말 이번 축제에 제일 주목받는 커플이
죠."
윽, 저 소녀가 그럼 공주였던 말인가? 무엇인가 달라 보인다
고는 상상했었지만, 아니 적어도 유명한 귀족의 여식 정도라고
는 생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공주님이라고는 염두해 두지 못
했기에, 내 놀라움의 정도는 클 수밖에 없었다.
"휴-."
온몸이 땀에 범벅이 되어서 움직이는 것 마저 고통스러워질
때 드디어 모든 음악의 연주는 끝이 나며, 긴 축제의 밤의 종
말이 찾아온 것이다.
사이 좋게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는 어딘가를 향해서 걸어가
고 있었고,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부지런히 바닥을 쓸고
닦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시아 녀석도 굉장히 지친 표
정을 하고는 의자에 기대어서, 꾸벅꾸벅 잠에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며 다시 깨는 것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 나보다 더 지친 것은 시아 녀석이었다. 워낙 귀엽게 생
긴 탓에, 여러 남자들에게 춤을 신청받은 것이다. - 쉽게 거절
하지 못하는 녀석의 성격 덕분에, 쉬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계
속 춤을 추어야만 했던 것이다.
"흐음. 뭐, 어쩔 수 없지."
의자에 기대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시아 녀석을 등에 들쳐
업고는, 한 발자국씩 천천히 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곤
한 까닭에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워낙 녀석이 가벼운 탓에 그
렇게 신경 쓰이는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옷을 가볍게 입은 탓에 조금은 쌀쌀하기도 했지만, 이
렇게 무엇인가 등을 따뜻하게 덮여주니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
은 않았다. - 귓가에서 불어오는 녀석의 숨결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을 꺼림칙하게 만들었지만, 조금의 시간이 지
나자 그것마저 익숙해져 버렸다.
"에구에구."
조금은 한심스러운 비명과 함께, 발이 풀려와 바닥으로 곤두
박질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제어하고는 교문을 벗어나 식당으
로 천천히 걸음을 움직였다.
"… 그냥 걸어갈게."
언제 깨어난 것인지 녀석은 살짝 귀에 대고, 그렇게 속삭였
다.
"됐어, 그냥 잠이나 자. 난 괜찮으니까."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소리치고는, 부지런히 걸음을 움직였
다. - 사실 이런 녀석 하나 제대로 업고 가지 못하는 나 자신
이 조금은 한심하고 부끄러운 덕분에, 괜한 성질을 낸 것일지
도 모른다.
"… …."
어색한 침묵의 연속, 문득 등이 뜨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도 그렇고 녀석도 그렇고 조금은 부끄러워하고 있었기에, 그럴
지도 모른다. 갑자기 새삼스레 의식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쳇, 그냥 잘 것이지. 왜 깨어나서."
적어도 이렇게 궁시렁거리는 것은, 내 쓸모없는 하찮은 자존
심. 절대 녀석이 귀찮거나 거슬리거나 한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한 걸음씩 부지런히 움직여서, 어느덧 식당의 앞까지
도달했을 때에.
"…고마워."
이렇게 녀석이 속삭인 덕분에 한심스레 얼굴이 붉어진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사소한 일인 것이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