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올해 나이 열아홉인 외국유학생 입니다.
지금은 현재 한국인이 적은 중국의 한 도시에서 약4개월정도 생활한 초보 유학생이구요. 작년 가을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고 아쉬움을 뒤로 한채 자퇴후 이곳으로 건너왔습니다.
사업을 이전하시는 부모님 때문도 있었고 진로상 외국어 한두개
쯤은 해야한다는 생각에 특별히 배운것도 없이 무작정 이곳으로
오게되었습니다.
저는 비가 주룩주룩 오는날 아쉬움반 설렘반으로 추운 겨울날 중국공항에 도착해 앞으로 살게될 집을 찾아갔던 유학 첫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 유학생활의 시작은 순탄하지 못했습니다. 하필이면 가장 추운 1월에 들어와 난방도 안되는 집에서 온몸을
오그린채 내 입김을 보며 잠들고 일어나기를 반복,
이제는 추운겨울날 한국에 있던 집에서 반팔입고 돌아다녔던 것을
어젯밤의 달콤한 꿈을 회상하듯 그리곤 합니다.
유학 셋째날, 나름대로 한자 만큼은 자신이 있는 저라 중국어도
못하면서 누나와 함께 근처 식당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게 왠걸,
저는 그 자리에서 도저히 읽을수도 해석할수도 없었습니다. 간자체로 표기된 메뉴판은 한자에 관한 제 자신감을 꺾어놓아 버립니다. 있을꺼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음식사진 조차 보이지 않아 안타까움을 뒤로한채 KFC를 찾았지만, 중국치킨에서 나는 특이한 향신료 냄새는 입맛을 더 떨어지게 할뿐입니다.
`적응하면 괜찮아 지겠지` 하며 지낸지 열흘째 되는날 새벽,
갑자기 배가 미친듯이 아파옵니다. 아뿔싸, 어제 먹은 정체불명의
꼬치구이가 상해서 복통을 가져오는가 봅니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는 조선족누나와 함께 병원을 찾았는데
때가 시커멓게 묻은 가운을 입고다니는 의사가 나타나 묻지도 않고
피부터 뽑더니 맹장염같은데 수술하겠느냐고 합니다.
맹장염`이다`도 아니고 `인것 같다`니,
이들에게 내몸을 맡길수 없다생각하고 약이나 처방해 달랬더니,
약대신 링겔을 맞으랍니다. 추운겨울날 병원복도에서 등받이 없는 맥도날드식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링겔4통을 맞으랍니다.
그 와중에도 배가아파 땀으로 온몸이 젖었지만 저 군말하나 없이
6시간동안 플라스틱 의자에 쭈그려 앉아 링겔을 맞았습니다.
피를뽑고 링겔을 꽂는 순간까지 저는 팔에서 눈을 떼지않았습니다.
조선족 누나가 아프지 않느냐고, 대견하다며 말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아픕니다.
아픈데, 중국인 간호사가 고개를 돌리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행여 문제생길까
뚫어지게 보는것입니다. 한국에 있을적 헌혈 한번하고 폐암말기환자 흉내를 내던 저였는데,
누굴 탓하겠습니까. 저는 외지인 입니다. 좀더 강해져야 합니다.
작은 소동이 있은 그 다음주, 하도 한국인이 그리워 부모님과 함께
한인 교회를 찾았습니다. 백여명의 한국인 형누나, 그리고 목사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며 따뜻한 한국식밥을 지어주십니다.
김치찌개가 이렇게 맛있는 줄은 이날 처음알았네요.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달째 되는날, 목사님이 아버지께 헌금을
요구하십니다. 성전을 새로 지으신다구요, 참으로 좋은 일이지요.
그런데 액수가 문제입니다. 사업이라지만 온지 얼마안되 이곳
상황도 잘 모르고 이제 시작하는 저희 아버지가 지금 당장 어디서
돈이 난다고 매주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헌금하신답니까.
더군다나 앞으로 6개월 이상 한푼도 못벌고 쓰기만 해야한다는데요
결국, 주일 예배와 매일있는 새벽기도 때마다 설교에 헌금을 운운하시는 목사님의 등쌀에 이세상 누구보다 독실한 저희 부모님은
처음으로 주일을 어겼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담배한갑 못사는 열아홉 청소년 입니다.
아직 학교가 그립고 친구가 그립습니다.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
저는 여기서 반드시 외국어를 마스터 하겠단 첫번째 목표를
세웠으니까요. 그전엔 한국에 들어가지 않겠다 약속했습니다.
사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지만요.
이 밖에도 열쇠를 두고나와 친구하나 없이 집앞에서 꼬박하루를 기다리는등 첫 3개월동안 겪었던 서럽고 힘들었던 에피소드가
지난 고교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보다 훨씬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제 넉달, 아직 시작일 뿐입니다. 외국어를 못해 겪는
서러움은 앞으로 점점 줄어들겠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겠지요.
또한 이번 설은 한인교회에서 서로를 격려하며 보냈지만,
다가오는 올 추석엔 그렇게도 못하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저는지금 가족과 함께 합니다.
혼자가 아니기에 그만큼 고통도 덜하고 매일 서로를 마주하며 격려해줄 수 있기에
이것으로 만족하고 이것으로 감사합니다. 홀로 외롭게 공부하시는 분들이 고생하는것을
제 부족한 아량으론 차마 다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전 앞으로 어떠한 시련이 닥치더라도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지금까지 짧다면 짧은 유학생활이 저를 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었으니까요, 또한 제겐 적지않은 연세에 저를 위해
이곳까지 함께한 부모님도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세계곳곳에 계신 한국의 유학생분들이나
유학을 생각중이신 예비 유학생여러분!
처음 타지에서 겪는 고통이 버거울 지라도, 그만큼 열심히
공부하면 후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성과가 크나큰 기쁨을
안겨주지 않을까요?
이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의 모든 유학생여러분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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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의 관심과 격려 정말 감사합니다. 유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중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배울것이 많고 좋은점이 많은지 알기에,
또한 진로상 국제경영학을 지원하는 제가, 중국어와 영어쯤은 배워야 겠단 생각에 부모님의 권유에 불만없이 이곳으로 유학을 온것입니다. 13억 인구에 갑부가 우리나라 인구만큼 있다는걸 어찌 모르겠습니까.다만 심한 빈부격차로 인해 의료시설 까지도 진료비에 의해 베테랑 의사와 상담하느냐, 때묻은 가운을 입은 인턴과 상담하느냐를 보이는 단적인 예일뿐입니다. 전 vip대접을 받으며 영어를 할줄아는 의사와 상담할 만큼 부유한집 자식은 아니거든요, 또한 KFC치킨의 향신료는 단지 문화의 차이로 인해 제가 먹지못할뿐 식생활 수준을 폄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문화의 차이로 중국인들 맛나게 먹는거 먹지 못하는 초보유학생의 고생아닌 고생을
다른 유학생분들과 서로 교감과 격려를 하고 싶었던 것이구요, 관심 가져주신 분들의 충고와 조언 정말 감사히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