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한사람을 부르며 내게로 와 죽으라 명하신다."
의사의 아들로 유복한 가정에 태어났으나 신학의 길을 걷고 히틀러와 나치의 억압에 저항하다가 처형당한 신학자이자 교수, 그리고 목회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말이다.
나치당의 인종차별, 안락사, 대량학살 등의 강압적인 정책에 침묵하던 당시 그리스도인과 교회 현실 속에서 본회퍼는 히틀러 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독일 고백교회를 만들고, 억압받고 죽어가는 이들을 구조하고자 하는 한 행위로 나치의 국가 사회주의에 대한 저항과 혁명에 가담하였다. 그때 자신에게 던졌던 그리고 평생동안 그의 안에 살았던 한 가지 질문은,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였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헤아릴 수없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죽음"으로 인해 마련된 놀라운 은혜를 마치 시장에서 팔리는 값싼 물건처럼 팔아 가볍게 취급한다 지적하고, 그것의 반대되는 값비싼 은혜(costly grace)에 대하여 역설한다. 이 고귀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보이신 넓고 큰 은혜를 깊이 묵상함에서 시작되고, 그 은혜는 우리로 그리스도의 희생과 섬김, 사랑의 삶을 따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명령한다. 그의 명저 "제자의 길" (Nochfolge, 1937)에서 본회퍼는 타협과 타성에 젖어버린 거짓 교회와 거짓 그리스도인을 향해 부르짖는다. "하나님의 은혜와 제자의 직분(discipleship)은 분리될 수 없다!... 누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값싼 것으로 전락시키려고 하는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뒤를 따르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멍에와 짐이 그대에게 가벼운 것이 될 때까지, 그대를 위하여 치루어진 그분의 희생과 봉사의 생애를 명상하도록 하라."
간디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미친 운전사가 버스를 몰게 할 수는 없다"는 변화된 신념에 미국에서의 안정된 교수직을 버리고 조국으로 돌아가 히틀러를 암살하려하다가 실패, 체포되어 종전을 바로 앞둔 1945년, 결국 본회퍼는 39세의 젊은 나이로 옥고 끝에 교수형 당하고 만다.
하지만 오늘날 신학 교리와 교파를 초월하여 수많은 신학자들과 목회자에게 짧았던 본회퍼의 생과 신학이 기억되어 사랑받는 이유는, 어둠의 때, 그래서 모든 이들이 더 넓고 편한 길이 무엇인지를 아는 그 때에, 그는 좁은 길을 직시하였으며, 더 나아가 어떤 주저함도 없이 그 고통과 어려움이 준비된 좁디 좁은 그 길, 제자의 길을 올곧게 걸어 갔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제자됨은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시급한 부르심이며, 이 부름을 따라 죽음에까지 이르러 제자의 길을 완성한 본회퍼가 오늘을 사는 나약하고 불의한 신학자와 목회자, 그리고 완악한 나를 향한 외침이다.
DIETRICH BONHOEFFER (1906-1945)
"죽음은 내 일생 최대의 페스티벌이다."
오늘 옛 교회 친구가 문득 물었습니다. "전도사님으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라가는 그 길이 행복해?" "너의 제자를 만드는 일은 어때? 참 어려운 길인데... 그 길을 택하니 행복해?"
내 마음을 찌르는 질문이 오래고 남아 이전에 "공부"했던 본회퍼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내가 진정 제자의 길을 똑바로 갈 수 있을지" "또 그길을 후학들에게 바르게 가르치며, 공부가 아닌 전 생으로 보여줄 수 있을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도상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라 말할 수 있을런지..." 평생 짊어질 질문을 다시 만난 이 밤, 달려갈 길을 다가고 사형장에 서 평안히 레위기 26장 말씀을 읽었다던 본회퍼가 정말 많이 많이 부럽습니다...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울 때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의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너희의 원수들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레위기 26장 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