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도 PBT를 본다.
ETS 홈페이지는 아주 야금야금 몰래몰래 슬쩍 접수창을 열고
한정된 사람에게 기회를 준다.
미리 날짜와 장소를 예고하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알음알음으로 그 날짜를 짐작하고
한 두달 전부터 접속을 시도하다가
창이 열리자마자 달려들어 접수를 시도한다.
시험장은 가끔씩 바뀌는데
주로는 LA, 샌디애고, 뉴욕, 보스톤 등
외국학생이 많은 대도시에서 열린다.
미국에서든 세계 어디에서든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니까
궁여지책으로 시행하고 있는 듯한데,
PBT를 보았다고 손해를 본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ETS에서 추친한 거니까 무엇이든
공정한 시험으로 인정해주니까.
(대학별 입시요강에는 여전히 PBT 점수 기준이 적혀 있고,
오히려 IBT기준을 아직까지 추가하지 않은 대학도 있다.^^ )
처음에 미국서도 PBT를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어렵게 CBT를 쳐서 유학 왔고,
박사 과정 진학한답시고 IBT를 다시 보았던 나는
공식 PBT가 미국에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상당한 수준의 배신감을 느꼈다.
물론 나는 박사 과정 입학을 준비해야 했고,
혹시라도 Teaching Assistantship 받으려면
PBT에 없는 말하기 시험을 다시 봐야 되는 번거로움이 있었으니
PBT가 별 의미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대학에 따라서는
외국인 TA를 위한 시험을 공짜로 다시 봐주기도 하니깐
PBT를 볼 수만 있다면
그것을 보는게 훨씬 유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똑같은 아시아인데
중국은 개발이 덜 되었다고 손쉬운 PBT 허용하고
정보화 수준이 빠른 죄로 일본이나 한국에는
CBT나 IBT를 강요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캐나다나 미국에서는 IBT 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더 유학생에게 적합한 시험일지도 모른다 등의
위로 아닌 위로,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속으로 하긴 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PBT를 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고
그에 따른 불이익은 전혀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정말 어이없게 만들었다.
만만한 한국과 일본만 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부터였고,
과연 유학생들에게 토플 시험을 강요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한 것도 그 때부터였다.
인도에서 태어난 내 친구는 원래 영어만 쓰는 원어민인데도
미국 건너올 때 토플을 봤고
(물론 얘들이야 아무 준비 없이 그냥~ 본다.
140불이면 그 친구들 한 달 월급인데,,, 정말 비싼 돈 낭비하는 거다.)
내 한국 후배는 미국서 초등학교부터 다녔는데도 토플을 봐야 한다.
토플은 외국인에게 따라 붙는 일종의 꼬리표인 셈이다.
박사 과정 준비하면서 알아보니
어떤 대학은 토플을 강요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버클리 대학원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미국서 칼리지 레벨 이상의 학교를 1년 이상 다녔고,
학점이 B이상이면 토플이 면제였다.
정상적으로 대학 한 일년 무사히 다녔으면 됐지
그깟 토플점수가 학업 능력과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관점에서 나온 정책일 것이었다.
그 학교 입시요강을 읽으면서
이런 대학이 많아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토플 점수의 대학별 기준은 학생들의 학업 능력에 대한 염려 차원에서가 아니라
대학의 돈벌이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학마다 ESOL 과정이 다 있고(붙여놓은 이름은 다 다르더라만..),
외국인 학생이 토플에서 일정 점수가 안 나오면
부분적으로 입학을 허가해서
그 과정을 이수하도록 하는데 그 비용이 그야말로 만만치 않다.
그야말로 대학은 가만 앉아서 돈을 버는 것이다.
토플 점수 안 좋으면 학업 능력도 떨어질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험 성적은 항상 절대적인 그 무엇은 아니다.
예를 들어 내 친구 배네는 브라질 아줌마인데
브라질에서 영어 선생을 오래 했고,
우리 대학에서 어학 연수도 2년간 했었다.
영어는 물론 능통하다.
수업시간에 토론도 잘 이끌고 글쓰기도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런데 토플 점수는 형편없었고,
다시 영어 보충 ESOL 과정을 다시 들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야말로 터무니 없었다.
여하튼 이제 한국서도 PBT를 본다고 한다.
토플 시험 제도의 맹점이다.
한국 학생들은 이제 둘다 준비하느라 죽어나게 생겼고
학원만 또 신나겠다.
PBT 준비시켜 점수 나오게 돕는 것은
IBT에 비하면 정말 일도 아닐 테니까
진짜 꿩 먹고 알먹고 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에서 토플 수요가 줄 것이라는 예측도 있지만
그것은 한참 더 지나봐야 알 듯 싶다.
대체할 시험이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고,
외고들이 어떤 결정을 할지 그래서 좀더 지켜봐야 한다.
한자 검정, 토플, 토익, 텝스...
점수로 명확하게 선 그어주는 시험들을
무~척 좋아하는 울나라 학부모님들 특성상
쉽게 토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녀의 외고입시나 대학 진학과 해외 유학을 "동시에" 고려하고 있는 부모님들이라면
더욱더 토플을 포기하기는 힘들겠지.
이래저래 요새는 딱하기 짝이 없는 한국이 되어 버렸고,
누가 뭐래도 ETS가 참 못~된 기관인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