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흑룡강성 ,170여 년 동안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성은 발해문화의 꽃이었다 .그러나 상경성 터에 지난날의 영화는 자취가 없다 .1300 년이 지난 오늘 ,성터의 소중한 유적들은 훼손되고 방차된 상태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석등 .불교를 숭상한 발해는 상경성에 9 개의 절을 짓고 절 앞에 석등을 세웠다 .
상경성의 성벽은 안에 돌을 쌓고 겉에 흙을 바르는 형태로 축조되었다 .상경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해자(垓字)의 길이와 길고 반듯하게 둟린 도로들이다 .
성둘레는 총 16 km,조선시대 한성과 비슷한 크기다 .성 내부로 들어가면 잘 정돈된 도시계획을 엿볼 수 있다 .중앙으로 시원하게 뚫린 주작대로는 무려 폭이 110 m나 된다 .
상경성엔 모두 81개의 주거지가 있었다 .한 구역당 크기는 가로 500 m,세로 300 m.이 크기로 볼 때 당시 상경성 안에는 대략 20십만 인구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상경성 안에는 또 하나의 성이 있었는데 궁전과 관청이 있는 황성이다 .현재 남아 있는 주추돌의 크기만으로도 그 거대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이 황성에는 모두 5개의 궁전이 있었다 .1궁전 .2궁전은 왕이 국사를 보던 곳이고 4궁전에는 침전이 있었다 .그리고 궁전 동쪽 편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2개의 섬과 호수 .정자가 있는 인공정원은 신라의 안압지와 형태가 비슷하다 .수도 상경성은 내부의 화려한 건축 양식에서도 발해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
수도의 면모뿐 아니라 발해의 국력을 알 수 있는 또 한가지 기준이 있다 .
그것은 바로 영토다 .
발해는 우리 역사상 가장 방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였다 .
과연 발해의 영토는 어디까지일까 ?
발해 영토를 알 수 있는 단서는 유적들이다 .
연해주 옵지부리 지역의 발해 유적은 산 정상에 위치한 이름없는 성이다 .
정상에 다다르자 넓은 평지가 펼쳐진다 .한바탕 치열한 전투라도 치른 것처럼 성은 허물어 졌지만 그 규모나 지리적인 위치가 예사롭지 않다 .
현재 남아 있는 성벽 높이는 2m ,무너진 정도로 보아 원래 높이는 4m 정도 였을 것이다 .3면에는 높은 성벽을 쌓았고 성벽 한쪽 면은 강을 굽어 보고 있다 .까마득한 천연절벽이 그대로 성벽을 이룬 천혜의 요새다 .
이 무너진 성벽에는 비감어린 역사의 자취들이 즐비하다 .
성벽 한쪽에는 불탄 흔적이 보이고 뼛조각도 널려 있다 .
한바탕 전쟁이 휩쓸고 간 것인지 잔해도 거두지 못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이 산성을 끼고도는 라즈돌라야 강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수이푼 강이라 불렀다 .수이푼 ,그것은 발해의 한 도읍지인 '솔빈부' 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러니까 이 성은 연해주의 솔빈부를 지키는 발해의 전초기지였던 셈이다 .
이렇게 발해의 유적은 연해주 일대를 포함해 최북단으로는 러시아 하바로스크 지역까지 이른다
.발해 유적과 유물이 발견된 장소를 파악하고 외국 기록들을 꼼꼼히 분석.종합한 결과 발해의 영토는 요동에서 요하를 중심으로 하여 북쪽으로는 송화강 일대를 지나 흑룡강 즉 흑수지역에 이르며 ,흑수말갈과 연접해 있는 지금의 연해주 지역까지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
고조선에 이어 고구려가 터를 잡고 다시 이 드넓은 땅에 거대한 제국을 세운 왕조가 있었다 .
그 왕조를 마지막으로 우리 역사의 무대는 한반도로 축소된다. 우리 역사상 마지막으로 만주를 지배했고 가장 방대한 영토를 가졌던 그 왕조의 이름 . 발해 .
우리는 오랫동안 삼국시대 이후의 시기를 통일신라시대라 불렀다 .
그러나 그 시기, 통일신라의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다 .그래서 최근 이 시기를 ( 남북국 시대 )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발해 역사를 우리 역사로 인식하고 끌어안는 것을 의미한다 .
한반도 중심의 역사관에서 만주와 연해주로 역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1300 년 전의 발해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