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한 음반이 뮤지션의 실험성,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로 점철된 작품이라 해도 청취자의 손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은 어쨌든 감상용 음악이 된다. 제아무리 힐링 뮤직(healing music)이라 한들 듣는 작업이 없으면 그 원대한 목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의 세 번째 앨범인 < 창작과 비트 Vol. 1 - Patterns For Words >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있어 그가 제시한 '감상용'이라는 당연한 목표보다는 그것과 함께 언급한 '실용성 확보'라는 의도에 비중이 더 실린다.
그 실용성은 MC들의 라임 연습과, 프리스타일, 슬래밍(slamming, 즉흥시를 읊는 것)과 디제이들의 믹싱이나 블렌딩(blending, 서로 다른 두 곡의 인스트루멘틀과 아카펠라를 혼합해 새로운 곡을 만드는 기법)에 적합한 비트들을 마련해놓았다는 사항에 초점을 둔다.
이러한 일련의 활용 방안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앨범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곡가, 프로듀서들이 사용하는 CD 형태의 샘플러가 그러하며 피플 크루(People Crew)의 < Hiphop Sprit Forever >(1999)나 DMC 1집의 절반을 차지한 댄스 비트는 댄서들에게 연습이나 퍼포먼스, 배틀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도록 만든 예다.
과거 디제이 김민상이 프로듀싱한 < Hiphop Nation >(2000)은 또 다른 창작자를 위한 음원 소스와 비트 샘플, 브레이크비트까지 두루 담아둔 앨범이었으며, 그 안에 수록된 인스트루멘틀을 반주 삼아 자작 랩을 녹음해서 응모한 이들 중 이후 음악 작업을 함께할 래퍼를 뽑는 행사까지 했으니 이번 소울스케이프가 기획한 < 창작과 비트 -랩 컴피티션 > 자체는 확대와 본격화를 제외한다면 새로울 건 없다. 다만, 그가 이제껏 발표한 작품들은 모두 대중을 흡족하게 할 이음매가 깔끔하고 세련된 '음원의 재창조'였기에 다시 한 번 괜한 생생함이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클릿을 사용 설명서라고 이름 지어 흔히 접하는 가전제품의 매뉴얼 책자처럼 영어, 일어, 불어까지 써가며 꾸민 것은 재치 있지만, 악기들을 한 데 모아 그러데이션(gradation) 효과를 준 재킷 디자인은 독일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말렌테(Malente)의 2005년 앨범 < Rip It Up >과 무척 유사하여 신선도가(혹은 음악에 대한 기대감까지) 반감된다.
대회의 개막을 알리는 듯 큰 징소리로 앨범의 스타트를 끊는 'It's a gong', 휴일의 한가로움이 짧은 재생시간에 묻어나는 'Day off' 등 정적인 느낌의 곡이 다수다. 영국 힙합의 큰 지분을 가진 거라지(garage) 계열의 사운드를 표방한 'Wildtypes'는 전자음의 리드로 멋을 냈으며 'Move over'는 연회 사회자의 코멘트로 현장감을 조성한 후 묵직한 드럼과 호루라기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미디엄 템포의 펑크(funk) 곡 'Bedtime story'는 정연한 그루브를 전달하는 한편 이따금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듣게 되는 종소리 프로그래밍이 두 남녀가 먼 거리에서 서로 달려와 만나는 장면을 그려놓는 것 같은 'He and she'는 앨범의 끝자락에서 이야기를 채워 넣는다.
소울스케이프가 제작한 비트는 강호에 암약하는 래퍼들이 살아있는 소리를 입히거나 아마추어 비트메이커 / 프로듀서들이 음원을 분할하여 자신의 음악을 조립하는 데에는 분명히 높은 활용도를 자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앨범의 전반을 차지하는 완만하고 느긋한 음악들은 이전에 그가 발표한 곡들에 비해 듣는 재미가 현저히 떨어져 '집중 감상용'말고 다른 일을 할 때에 '배경음악' 정도로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소기의 목적 중 아직은 절반만을 달성한, 과도하게 기대된 작품이다.
-수록곡-
1. It's a gong
2. Staying power
3. Last daybreak
4. Unpack your bags
5. Wildtypes
6. Undertones
7. Height 423
8. Point zero
9. Day off
10. Hot cargo
11. Move over
12. Master key
13. Weekend world
14. Perpetual motion
15. Vista
16. High frequency
17. Bedtime story
18. Velocity
19. Friendly face
20. He and she
2007/05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심플한 비트 속에 내제된 ‘감상용 음악’에 대한 사려깊은 고찰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소품 모음집 “창작과 비트”
DJ soulscape, 다양한 문화를 관통하는 프런티어
지난 2000년 한국 최초로 DJ의 오리지널 앨범을 발매하며 평단에 잔잔한 파문을 던졌던 DJ soulscape(디제이 소울스케이프)는 그 후 수년간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프리미엄급 디제이라는 찬사에 걸맞는 모습을 보여왔다.
2002년 espionne(에스삐오네)라는 이름으로 발매하였단 EP ‘어쩌면’을 통해 브라질리언, 라운지, 경음악으로서의 방향성을 제시하였고, 2003년에는 DJ soulscape의 명의로 돌아와 2집 ‘lovers’를 발매하여 힙합 인스트루멘탈과 뉴재즈에 다양한 하이브리드 음악들을 대입한 신개념의 사랑 음악들을 선보였다. 음반 뿐 아니라 2005년 개봉된 영화 ‘태풍태양’에 음악 감독으로 참여한 그는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만의 리듬과 스타일을 확대시켰고, 다수의 컴필레이션과 앨범들에 참여하면서 음악적 열정을 표출해왔다.
또한 각종 잡지들(GQ, 마리끌레르, 블링 외)에 컨트리뷰터로 과거의 새로운 음악들을 소개했으며, 라디오에서의 믹스 세션과 출연을 통해(KBS 2FM 유열의 음악앨범 외) 디제이로서의 소명 또한 다하고 있다.
한편, 무대에서는 지난 몇 년간 가장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문화 행사였던 resfest와 sonar sound festival에 초청되는 등 많은 문화 예술의 최첨단에서 실험을 진행중이고, 지난 2005년말부터는 서울의 동료 디제이들과 360 sounds라는 크루를 형성, 수시로 360 sounds party를 기획하며 로컬 스트리트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또한 지난 해 말 벌였던 the sound of seoul 퍼포먼스와 캠페인, 믹스씨디 등으로 옛 한국 음악안에 잠자고 있 던소울, 훵, 부갈루 등의 요소를 발굴해 내며 “발굴자“로서의 역할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다.
라이브러리 레코드란?
해외 음반 발매, 투어 등을 통해 월드 클라스 아티스트로까지 급성장하고 있는 DJ soulcape가 발표하는 새로운 작품은 엄청난 스케일이나 상업적인 타협을 담았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오히려 생소한 ‘라이브러리 음악’으로 작업되어 졌다.
과연 ‘라이브러리 음악’이란 무엇인가? 60,70년대 영상산업의 황금기에 주로 유럽에서 만들어진 ‘라이브러리 레코드’는 감상용 음반이 아니라 일정한 ‘활용 목적’을 가진 음반이었다. TV나 라디오, 영화, 광고 등에 삽입하기 좋은 음악들을 미리 제작해 놓은 형태로, 수록곡 중 마음에 드는 음악들의 판권을 구매하여 바로 프로덕션에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기성복’ 같은 음악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music de wolfe, chappelle, KPM 등 많은 레이블들이 이런 라이브러리 레코드를 만들어온 레이블이며, 이들이 제작해온 음반들은 ‘밤의 무드를 위한 음악들’, ‘모던 재즈 스타일의 액션을 위한 음악’ 등과 같이 구체화된 컨셉과 사용 목적에 걸맞은 스타일을 추구함과 동시에 활용되었다.
정작 동시대 음악 관계자들로부터 그 가치를 크게 인정 받지 못했던 라이브러리 레코드는 세월이 흘러 1980년대 이후 소위 ‘레어 그루브’(Rare Groove/익조틱하고 희귀한 음반들을 일컫는 말)가 새로운 붐을 이루면서 뒤늦게 재발견되기 시작했다. 디제이나 프로듀서들의 샘플링용 툴로 애용된 라이브러리 레코드의 대표 음반들은 점차 희귀성을 과시하게 되면서 최근 영국이나 일본에서는 이러한 음악들이 감상용 음반으로 재편집되어 릴리즈 되고 있을 뿐 아니라 몇몇 진귀한 음반들은 인터넷 경매를 통해 수백불을 호가하고 있다. 즉 감상용이 아닌 제작용 툴로서 시작된 음반들이 세월이 지나면 오히려 진귀한 감상용 음악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셈.
본 앨범의 활용 방안
본작의 제안과 탄생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 music de wolfe나 KPM 등의 라이브러리 레코드를 즐겨듣던 DJsoulscape은 당시 영상원의 독립영화를 위한 음악 작업들이나 엠씨들의 프리스타일을 위한 캔버스 같은 곡들을 작업하면서 라이브러리 레코드 형태의 음반들을 시리즈로 발매하는 것을 기획하게 되었다. 즉, ‘도구로서의 음악’, ‘장식과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공학적 구조물로서 기능을 소통한다’는 모토로(그가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이념에 경도되어있다는 것도 하나의 힌트) 새로운 형태와 이념을 가진 음반을 시리즈물로 발매할 계획을 수립하게 된 것. 따라서, 그는 본작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정규앨범/비정규앨범의 이분법에 근거한 비정규작품직으로 분류되기를 거부한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엠씨들의 프리스타일을 위한, 혹은 디제이들의 믹싱(mixing), 블렌딩(blending)을 위한 툴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하나하나가 잘 짜여진 구조물들인 동시에 20개의 단편 음악들로 채워진 감상용 디자인 작품으로 인식되기를 희망한다.
patterns for words
창작과 비트의 첫번째 시리즈인 본작의 부제는 ‘patterns for words’. 즉, 단어를 위한 리듬, 음악의 패턴들이다. 주로 MC들의 라임(rhyme) 연습과, 프리스타일, 그리고 슬래밍(slamming/즉흥 시를 읊는 행위)에 적합한 비트들로 채워졌기에 이러한 부제가 주어졌다. gong 소리로 문을 여는 첫 트랙 ‘It's a gong’은 음울한 분위기의 60년대 스파이 무비를 연상시키며 모던 소울 트랙인 ‘last daybreak’, ‘height 423’, ‘he and she’ 등은 lovers의 제작 과정에서 데모로 만들어 졌던 곡들의 완성본이라고 한다. iriver의 글로벌 홈페이지에 사용되었던 배경음악인 ‘unpack your bags’을 필두로 ‘point zero’, ‘day off’, friendly face’ 등은 영상 작업을 위한 음악들의 제작 과정에서 파생된 비트들이다. 이렇듯 본작은 최근 수년간 그가 펼쳐온 다양한 작업물에 담겨있던 리듬구조들이 새로이 파생되고 발전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렇기에 단어를 위해 음악의 패턴임과 동시에 soulscape이란 아티스트의 수년간을 정리한 소소한 모음집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성격은 자극과 화려한 측면보다는 심플하고 감성적인면, 즉 감상이란 부분에 적합하게 배열되어 있다.
So, what's next?
결국,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음반을 발매하고자 하는 것은 DJ이라는 아이덴티티의 발현임과 동시에 DJ가 사용하기 위한 여러가지 레코드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사진이 회화의 반복이나 예술이 아닌 하나의 기술로 탄생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독립된 예술 장르로 인정받는 것처럼, DJ와 DJ가 만들어내는 음악들 역시 일시적인 경향이나 트렌드에서 시작하였으나 근간에는 새로운 예술 분야의 시도로 발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 그 낯설지만 새로운 시도가 진행되고 있는 것 처럼.
좋다. 갑작스러운 DJ Soulscape의 새 앨범 발매소식에 월급타자마자 바로 주문했다. 라이브러리 레코드라는 감상의 목적인 앨범이 아니라 실용성의 목적을 가진 앨범이 되겠는데 그렇다고 음악자체나 앨범이 뭐 이해못할 아방가르드 영화처럼 생소한 건 아니다. 굳이 쉽게 이해하자면 듣기좋은 라운지 앨범쯤의 분위기다. (난 DJ Soulscape 을 생각할 때 마다 ATM에서 인터뷰때 유희열이 한국이 라운지킹이라고 소개한게 두고두고 생각난다. ㅋㅋ 정작 자신은 라운지에만 자기음악이 국한되는걸 그리 좋아하는거 같지는 않았던거 같다. 물론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유희열 조차도 그럴거다.)
그 실용성이라는건 어떤 음악의 음원이나 샘플링이 되거나 다른 DJ들의 믹싱, 블렌딩을 위한 재료 혹은 MC들의 랩연습을 위해 사용되는 실용성을 설명하는것 같은데 실제 음악제작에 관해서는 무지한지라 실제 뮤지션들에게는 이 실용성이 몇%까지 유효할지 전혀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감상자의 입장에서는 그 실용성보다는 듣기좋은 깔끔한 디자인의 소품 모음집 앨범 같은 느낌이 더 드는게 사실이다. 에스피오네 '어쩌면' 앨범, 2집 앨범의 6번트랙 Inevitable 의 연장선에 있는 음악들이 채워져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많지 않은 앨범중에 보여준 음악 색깔중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느낌들이 담겨져서 좋긴하다.
사실 DJ Soulscape는 프리미엄급 DJ, 유능한 프로듀서 및 여러 문화 행사를 진행하고 다양한 음악 실험을 하는 잘난 뮤지션로서의 끝없는 재능을 보여주지만, 여러 매체에 접할 수 있는 그의 글을 간혹 읽어볼 때면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원류는 옛 한국음악에 잠자고 있는 소울, 훵크, 부갈루등의 원초적인 흑인음악의 요소라는 걸 알 수 있다. 카투사 복무시절 미군부대 주변을 수없이 배회하며 LP판을 수집하고, 절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그 시절의 우리네 가요와 음악에 녹아있던 흑인음악을 발굴해내는 발굴자, 혹은 그 때 그 시절 음악에 엄청난 '빠돌이'라는 걸 그의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런 그의 또 다른 음악적 자아는 언제쯤 어떤 작업으로 나올지 매우 궁금하다. 흑인음악의 색깔이 흠씬 묻어나는 그 앨범을 나는 많이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