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부전자전
얼굴선이 매끈한 세은(수울父)과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서 다소 얼빵하고
귀여운 표정의 이나(수울母)! 그들이 담긴 사진을 손에 쥐고서, 수울은 약
간 기가 차다는 웃음을 터트렸다.
“왜 이딴 사진은 찍었대?”
하지만 수울은 사진 속에 찍힌 발자국 자국을 손으로 털어 내고, 사진을
다시 지갑 속에 집어넣었다.
깎아놓은 듯한 턱 선에 미간을 타고 칼날같이 부드럽게 솟아오른 콧대,
티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맑은 피부가 절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
는 그… 유행에 어울리는 염색 머리와 조금 젖었지만 값비싼 옷차림의
그…
무의미하게 반쯤 감겨진 깊은 눈망울 사이로,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아
채지 못할 정도의 영악하고 총명한 기운이 서려있다.
하지만 수울은 날카로움을 안으로 깊숙이 감추고, 그저 가벼운 표정으로
의자 위에서 몸을 건들거릴 뿐이다. 시끌시끌한 파출소 안, 사무를 보는
더벅머리 경찰이 수울을 불러내고 있다.
“수울이, 너 이리 와!”
수울은 요란한 학생들 사이에서 몸을 일으켜, 더벅머리 아저씨 앞에 가
서 앉았다.
“아참, 아저씨! 몇 번을 말해야 돼요? 저 녀석들이 먼저 시비 걸었다 했
잖아요?”
더벅머리는 그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쳤다.
“야, 임마!! 여기가 무슨 니놈 단골가게라도 돼? 너 언제 왔어? 불과 며
칠 전에도 왔었잖아?”
갑자기 수울이 피식 웃음을 짓고 만다. 묘한 느낌을 주는 그 웃음이 무
척이나 매력적으로 와 닿는다.
“아저씬 나도 까먹은 일을 기억하고 계셔. 그러니까 며칠 전엔 내가 여
기 왜 왔더라?”
“이것아, 말 돌리지 말고! 아버지 빽으로 봐주는 것도 한두 번 이어야지.
오늘은 아버지한테 직통으로 연락할 줄 알아.”
“아참, 아저씨! 우리 파더 성질이 보통이 아니라서, 여기 파출소 물건 다
날아갈지도 몰라요. 우리 좋게, 좋게 해결하자고요.”
“그래. 그럼 니 말대로 좋게, 좋게 해결해보자꾸나. 저 녀석들 왜 때렸
어?”
수울은 의자에서 몸을 까딱 까딱거리며 성의 없이 대답했다.
“내 사진 밟았어요.”
하지만 더벅머리는 익숙하다는 듯이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다. 이유야
알 수 없지만 그는 수울에 대해 감정이 좋았다.
“무슨 사진?”
“내 여자친구요. 아저씨도 알면서?”
수울은 살짝 윙크를 했고 그 느낌은 같은 남자가 봐도 지독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더벅머리는 돌연 몸을 일으키더니, 장부를 들어 수울의
머리를 그대로 내리쳤다.
“이 자식이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언제까지 엄마가 니 친구
야?!!”
“아오, 아프잖아요?”
담배를 태우며, 더벅머리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래. 엄마 사진 밟았다고 저 모양 저 꼴로 만들었냐?”
“그게 아니~죠! 난 그냥 저 풀머리한테 발 좀 치워주는 게 어떠냐고 그
말밖에 안 했어요.”
“그런데?”
“내 말을 안 듣더라고요.”
“그래서?”
“눈을 뜨니까 아저씨 앞에 와있네요.”
더벅머리는 기가 차다는 듯 웃으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댔다.
“눈감고 싸웠냐?”
“아저씨, 내가 싸움 싫어하는 거 알잖아요? 이런 말하면 믿으실지 모르
겠지만, 이번은 진짜, 진짜 손도 까닥 안 했다고요.”
“그럼 저 녀석들은 왜 저 모양이냐? 지네들끼리 치고 박았대?”
“아~ 그렇구나. 그게 바로 정답이네!”
풀머리 -_-; 무리들은 그 말에 뭐라고 반항할 듯 잠시 웅성거리는 분위
기 더니, 곧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잠잠해지고 만다.
그리고 그때,
파출소의 문이 활짝 열리면서 미미하게 일그러지는 수울의 얼굴…
수울은 잠시 표정 관리를 한 뒤에, 급하게 파출소를 찾은 이나를 향해
슬쩍 손짓을 했다.
“여기!”
“이 좁은 파출소에서 내가 너같이 특이하게 생겨먹은 자식을 못 찾아낼
까 봐 손짓까지 해줘서 참으로 고맙구나.”
숨도 쉬지 않고 죽 말을 이어가는 이나를 향해, 수울은 그냥 가볍게 미
소 지었다.
“어라? 내가 안 묻는다고 이젠 변명도 안 하는구나?”
“아씨~ 서방님 너무 구박하지 마라.”
“근데 너 왜 멀쩡해?”
“그럼 내가 멀쩡하지. 여긴 병원이 아니잖아. -_-”
“이 자식이… 오늘은 무조건 니네 아빠한테 넘길 줄 알아!!”
“한 번만 봐 주라.”
“내가 이때까지 열 번 백 번은 봐줬어.”
“백 한번만 봐 주세요. -_-;”
이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웬 존칭이냐?”
“아버지한테 꼰지르지 말라고.”
“왜?”
수울은 귀엽게 미소 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맞기 싫으니까.”
“너 한두 번이어야 봐주던가 말든가, 나도 이제 더 이상은…”
하지만 수울은 이나의 말을 가볍게 끊어버렸다.
“내가 안아주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나의 몸을 덥석 끌어안는 수울이었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나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더벅머리 경찰
그리고 약간은 겁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풀머리 무
리! 천진스럽게 잘생긴 얼굴 그 내면에 차갑고 날카로운 빛을 감추고 있
는 수울! 그들이 2027년, 한 파출소 안에 묘한 풍경을 만들었다…
* 이어지는 이야기는, 환상(잘나가는 그놈들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주인공 최이나와 권세은의 셋째 아들 이야기입니다.
1st
살결에 선득한 느낌의 바람을 불어내는 2027년 9월의 어느 날...
부슬부슬 날리기 시작하는 비 때문인지, 이른 저녁부터 술판을 벌이고
있는 젊은 남녀와 학생들의 모습이 가득 눈을 메운다.
역사적 인물들이 벽을 가득 장식한 이 곳에서, 특히 십여 명의 학생들이
가득 둘러앉은 자리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곳은 평범한 학생이 아니라, 다름 아닌 에프알(fR)이 자리잡은 특별
한 술자리였기 때문이다.
에프알은 고등학교 내, 주먹 서열 1위를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단순히
주먹을 잘 쓴다고 해서 에프알이 되는 건 아니었다. 잘생긴 외모는 에프
알의 또 다른 필요조건이었다.
군대와 같은 계급 사회, 또는 학교에서의 교사와 제자 관계,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직이 바로 에프
모(fR을 둘러싼 권력의 무리)였고, 에프알은 소위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술자리를 타고 흥겨운 리듬의 음악이 흘러나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에프
모 중에 초록색 눈을 한 남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프리 스타일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취기 때문인지 발그레한 볼을 하고서, 스테이지에서 장난스럽게 몸을 놀
려댈 때마다 목걸이와 손목에 팔찌 등도 일제히 춤을 추었다. 그는 초록
색 눈과 함께, 머리끝에 푸른색 브리치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더 그 곳에 집중되었고.. 어두운
조명 불빛 아래, 에프알의 모습은 마치 그림자처럼 흐릿한 실루엣만 드러
내놓고 있었다... 깊숙이 뒤집어쓴 검은색 모자와, 복면과도 같이 그의 얼
굴을 반이나 가려버리는 같은 색깔의 마스크... 그 속에서,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에프알 옆에 자리잡은.........
..
..
..
같은 시간...
스테이지 근처 한 테이블에 머리를 푹 파묻고 있던 누군가가, 예고도 없
이 갑자기 얼굴을 들어올렸다.
그는 방금 잠에서 깨어난 듯 연시 눈가를 비벼대더니, 씨익 미소 지었
다.
“하나도 안 취했다!! 어떠냐?”
그가 눈가에서 손을 내려놓자, 그의 얼굴이 좀 더 자세히 보였다.
눈가를 비벼댄 탓인지 약간 붉게 변한 눈가와, 오렌지와 레몬이 반반 뒤
섞인 머리 색깔.. 한쪽 귀만 뚫고 지나간 두 개의 귀걸이.. 값비싸 보이는,
하지만 그의 몸에 딱 맞는 옷차림..
특별히 눈에 띌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척이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물론 짧은 머리가 부분 부분 액센트를 주어 예쁜 모양으로 잘 다듬어져
있었으나, 그 당시로는 무척이나 평범한 머리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눈에 튀는 건.. 아니, 일종의 모순처럼 요란한 머리색깔 속에서 너무 부드
러운 색깔이었기에 눈에 튀는 것인지도 몰랐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의 생김새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이상하
게, 그의 얼굴을 둘러싼 외양을 다 살펴본 후에야, 대략 3초의 시간이 지
난 후에야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곧 놀라게 된다. 처음부터 그의 얼굴
을 제대로 보지 못한데 대한 놀라움이다.
눈, 코, 입과 같은 이목구비를 봐도 그렇고 얼굴선을 봐도, 피부를 봐도,
그는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얼굴이었다.
입을 다물고 있을 때면 약간 차가운 느낌이 풍겼으나, 말을 할 때면 완
벽한 외모에 인간미가 더해져 귀여운 느낌마저 풍기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었던 탓에, 이마에 발갛게 번진 자국
마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웃음을 짓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뭐랬냐? 맥주는 박스 채 마셔도 안 취한다니까. -_-”
그러고 보니, 테이블 근처에 빈 병이 가득 짐을 이루고 있었다.
“최은린, 내 이름이 뭐냐?”
그는 마치 세뇌 교육이라도 시키듯이, 맞은편에 앉은 비슷한 또래의 여
자를 향해 물었다.
은린(최환유의 외동딸)은 그런 그를 향해, 우습다는 듯이 키득거렸다.
“술이잖아, 술!! 권....수...울...”
“어떠냐? 내 주량 제대로 봤지?”
“치.. 너 방금 술 먹고 뻗은 거 아니었어?”
“잠시 잤을 뿐이야, 에프알 꼬라지가 보기 싫어서..”
수울(권세은의 셋째 아들)이 씨익 미소지었다. 그들은 동갑내기 사촌이
었던 것이다.
수울에게 외사촌이 되는 은린은 낯빛이 하얗게 변해서는, 급히 에프알이
있는 곳과 수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미.. 미쳤어, 너!! 드, 듣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농담도 못 하냐? -_-;”
“우리학교 에프알(fR)이 전국에서 서열 2위야, 2위... 게다가 술이 너도
이제 우리학교 다닐 거잖아? 조심하란 말야..=_=”
갑자기 수울의 얼굴에 작은 그늘이 생겼다.
“아씨.. 왜 하필 이 학교냐? 나 칼빵 아저씨 보기 싫은데..”
칼빵 아저씨라 함은, 서정민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사범대를 졸업해... 지금은 은린의 학교이자, 앞으로 수울이 다니게 될 학
교, 신비고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_-;;;;;
“넌 이제 죽었다.. 그러게 왜 학교에서 쫓겨나고 그래?”
“그러게 말야..”
그렇게 말하며 수울은 가볍게 웃고 말았지만, 사실 상 그가 학교에서 쫓
겨난(?) 전말은 이러했다.
며칠 전!!!!
수울은 학교 화장실을 들어섬과 동시에 입안에 담배를 꽂았는데, 마침
볼일-_-;을 보고 있던 에프알(fR), 신현민의 모습이 보였다.
수울은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현민의 등짝을 한 대 때렸다.
“어이, 에프알!!”
현민은 수울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미간을 팍 찌푸렸다. 그리고 주위
에 깔린 에프모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수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라이터를 꺼내 탁하니 불을 붙이더니,
갑자기 그 불을 현민의 그 곳(남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 그곳=_=)에
다 갖다대는 게 아닌가??!!!!!!
볼일 중이던 현민은 어찌나 놀랐던지... 얼굴이 순식간에 백지 장이 되어
버렸다. (그 상황에 어떤 남잔들 안 놀라겠는가? 자손이 끊기게 될 비상
사태거늘...-_-)
“에프알!! 너무 놀라는 거 아냐? 장난 좀 친 거 같고....”
수울이란 놈은, 태연하게 그 불을 거둬들였다.
“이 자식이.... 너 땜에, 오줌이 짤렸잖아?”
“그러게, 멀 그리 놀라냐고? 내가 설마, 에프알을 남자 병신 만들까봐
그래?”
“..........”
“담배 주까?”
수울은 자신이 피고 있던 담배를, 에프알의 입가에 곱게 쑤셔 넣어주었
다. -_-;
에프알, 현민은 지퍼를 올리고서 수울을 한쪽으로 끌고 갔다.
“이거, 진짜..... 진짜 진지하게 물어보는 건데...”
“말해 봐!!”
“나도 자존심이란 게 있단 말야?!”
“그래서?”
“도~~저히 니 놈하고 같은 학교 못 다니겠단 말야.. 나 좀 봐 주라..”
“학교 때려 치울라고? -_-^”
“권수울!! 그냥 니가 에프알해라.. 너한테 그 자리 양보할게..”
“미쳤냐? 내가 그 따위 귀찮은 걸 왜 떠맡아? 선배가 계속 하라니깐!!
내가 방해 놓는 일도 없잖아?”
“제발 부탁 좀 하자... -_-; 니가 관둘래? 아님, 내가 관둘까?”
“에프알!! 학교 관두면 갈 데나 있냐?”
“없어... 니 놈하고 같은 학교를 다니느니, 차라리 내가 학교를 그만둔
다!!”
“내가 그렇게 싫어?”
“부탁이다.... =_=; 내 체면 좀 살려주라...”
“그럼 할 수 없지, 뭐.. 내가 학교 그만둘게. 그래도 난 딴 데 갈 데는
있으니까....요, 선배..”
정말 감격한 듯한 신현민,
“진심이냐?”
“대신에 아버지한테 죽도록 두드려 맞아야하니까, 에프알(fR)도 내 부탁
하나 좀 들어줘야겠어.”
“뭐냐?”
“내가 전학 가는 학교에다, 무조건 전갈 좀 넣어줘야겠어.”
“무슨 전갈?”
“그쪽 에프알한테, 무조건 나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무슨 일이 있어
도!!”
현민은 좀 망설이는 눈치다. -_-;
“니가 전학가는 학교가 어디냐? 나보다 상위 학교라면, 내가 그런 부탁
할 수 없단 거 잘 알잖냐?”
“내가 어디로 전학 갈지 내가 어떻게 알아? 아마 내 예상이 적중한다
면.. -_-a”
“..........”
“신비로 보내질 것 같아.. 거기에 내가 잘 아는.. 아니, 아버지가 잘 아는
칼빵 아저씨가 있거든..”
“신비고면..... 설취안?!!”
“설취안이 뭐냐? 그거 사람 이름이냐? -_-”
“씨... 신비고 에프알(fR)이잖아!!”
수울은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없이, 무성의하게 물었다.
“그래?”
“신비면, 상위 쎄컨드야!! 나 그런 부탁 못해. 차라리 같이 죽자!! =_=;;”
“씨바야~ 혼자 죽어!!! 그럼 나, 가지 말까?”
2nd
한참 동안의 침묵 끝에, 현민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좋아... 니 소문을 살짝 흘려줄 수 있어.. 하지만 설취안한테 절대 강요
는 못한다!! 그것만이라도 괜찮다면.....”
“씨폴.... 그럼, 호기심에 사람 더 들볶을 거 아냐?!!”
“더 이상은 나도 무리야.. 알아서 선택해..”
하지만 수울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영악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아냐, 좋아... 상위 쎄컨드라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겠군..”
“에프알은 거저 줘도 싫다며?”
“그런 기대가 아냐... 암튼 그런 게 있어....”
“그래.. 그래... 어찌됐든, 넌 정말 멋진 놈이야!! 최고의 후배라고!!”
그 말과 함께, 현민은 수울의 어깨를 토닥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
은린은 뭔가 생각에 빠진 듯한 수울의 얼굴 앞에다.. 손을 좌우로 휘휘
저어댔다. 수울의 눈빛이 현실로 돌아왔고, 그 순간 그는 누군가를 뚫어
져라 쳐다보더니, 곧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 녀석은 누구야? 어제 보니까, 우리 반 녀석 같던데... 씨폴 눈에 튀
더라고..”
“누구?”
그의 손끝이 닿은 곳은, 바로 에프알의 옆자리였다!!
은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그녀는 몹시도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제...유...단...”
“어려 보인다?”
“응.. 1학년인데, 쟤가 바로.. 알팅(R팅)이야..”
“오~~ 저 녀석이 알탕이라고?”
수울이 약간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알팅(R팅)은 에프모(f모)에서 주먹 서열 2위 정도에 해당되는 존재였다.
하지만 알팅의 특징은, 무엇보다 뛰어난 외모였다. 물론 주먹이 뒷받침되
는 건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만큼 외적 조건이 탁월해야만 가능한 자리였
다.
“저렇게 생겨먹어서 싸움이나 제대로 하냐?”
수울의 말에, 은린은 가볍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의 말에 부정하는
듯한 태도였으나, 역시 몹시도 조심스럽다.
.
.
수울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하얀 담배를 끼우며 말을 이었다.
“저 모자가 에프알이랬어?”
“응.. 설.. 취..안..!!....... 근데 너 취한 거 아니지?”
은린은 수울이 또다시 건방지게, 에프알을 향해 손가락을 찔러대지는 않
을까 약간 겁먹은 눈치다.
“얼굴이 안 보인다?”
“응.. 얼굴을 드러내놓고 다니질 않아서....”
“왜?”
“그건 나도 잘 모르는데,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기는 해..”
“..........”
“실은....”
은린이 무슨 얘길 꺼내려는 바로 그 순간, 사건은 터졌다!!
..
한참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던 초록 눈이, 몸을 빙글 돌아 수울의 테이블
에 손을 짚더니 맥주가 가득 담긴 컵을 테이블에 거꾸로 내리꽂고 말았
다.
타앙하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에 술이 한 가득 흘러 넘치는데.. 갑자
기 그 초록 눈이 은린의 얼굴을 손으로 끌어올려, 강제로 입을 맞추는 것
이 아닌가?!!!!!
은린이 몸을 바둥거리는 가운데, 수울이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테이블에 엎어진 유리컵을 초록색 눈의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집
어던졌다.
“악!!!!!!!!!”
유리에 찍힌 머리에서는 뜨끈뜨끈하고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엄청난 짓-_-;을 저지르고 난 후, 수울은 은린을 향해 대수롭지 않
게 물었다.
“니 남자친구냐?”
“아.. 아니...”
“그럼 니가 좋아하는 놈이냐?”
은린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럼 뭐야? 너 좋다고 따라다니는 놈이냐?”
“그것도 아닌데....=_=”
“방금 좋았냐? -_-”
“뭐가?”
은린은 굉장히 놀라고 또한 난감한 얼굴빛으로 초록 눈의 눈치를 살폈
다. 그때 수울이 크게 소리쳐댔다.
“뭐긴 뭐야?... 키스 말야, 키스!!!”
“크게 나쁘진 않았어.... 아니,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지 좋았던 것 같
아...=_=”
수울이 괜한 분쟁을 일으킬까 두려워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_-;;;;
“씨폴, 그럼 괜히 유리컵 집어던졌잖아!! 더 즐겨라....”
수울이 출구 쪽으로 몸을 돌리는 그때...
은린은 초록색 눈을 향해 쳐죽일-_- 듯한 눈빛을 보내며, 복화술로... 최
대한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작은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썅........... 밟아버릴라?”
역시 그녀는 환유의 자손으로 전혀 손색이 없었다. -_-;;
초록색 눈은 할 말을 잃은 듯, 잠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곧 수울
을 향해 소리 질렀다. (아마도 지금 상황으로는, 그에 대한 복수가 우선인
것 같았다....)
“야이, 자식아!! 너 안 멈춰?? 감히 최세현 대가리에서 피나게 해놓고 어
디 도망쳐??!!!”
수울은 귀걸이가 매달린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웃는 얼굴로 돌아봤
다.
“미안하게 됐다.. 난 내 친구가 싫어하는 줄 알고 그랬지.... 방해 안 할
테니깐, 계속하라고!!”
수울이 다시 앞으로 몸을 돌렸을 때, 그는 그만 누군가의 발길질에 무릎
을 얻어맞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에프모의 무리 중 하나였다!!
“그래, 그렇게 꿇어..... 알팅!! 이 녀석 어제 전학 온 그 놈 아냐?”
“잠깐......”
그때 저쪽 테이블 너머에서 누군가 몸을 일으켰고.. 그는 테이블과 테이
블을 구분해놓은 작은 난간에 두 팔을 기대더니.. 곧 고개를 갸우뚱했다.
양쪽 귀를 장식하고 있는 십여 개의 은색 귀걸이와, 거기에 걸맞게 화려
한 느낌과 세련된 느낌이 동시에 묻어나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은색 목
걸이... 은은한 레몬 빛깔에, 부드럽게 웨이브 진 머리... 앳된 외모 때문
인지, 전체적인 분위기가 상당히 부드러우면서 색다른 감흥이 있었다.
곧 그의 붉은 입술이 열렸다.
“권수울?... 세현이 형, 그냥 보내..”
힘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초록 눈 최세현은 어쩐지 움찔하
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수울을 공격했던 그 에프모도 곧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
다. 수울은 기술적으로 에프모의 무릎을 끌어당김과 동시에, 쓰러지는 그
의 얼굴에다가 주먹을 갖다댔다. 말 그대로, 수울은 주먹을 가만히 들고
있을 뿐이었고, 중심을 잃은 에프모는 그대로 수울의 주먹에 얼굴을, 하
필이면 눈두덩을 들이박은 꼴이었다. -_-;;
“나 혼자 무릎 꿇긴 좀 억울하잖아..”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 웃음은 수울의 것도, 구경꾼
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당연히 눈두덩을 얻어맞은 에프모나 최세현
의 것 일리도 없었다. -_-;; 그 웃음소리는 에프알이 자리잡은 그 곳에서
들려왔다.
수울이 2차 적으로.. 그 놈의 멱살을 움켜쥐고, 얼굴을 다시 공격하려는
찰나... 주먹을 쥐고서 잽싸게 날리려는 찰나... 어떤 물건이 날라 와, 수
울의 손목을 살짝 때리고 말았다. 그 물건이 바닥에 떨어질 때의 소음을
제외하고는 너무 조용한 그 공격은.. 수울의 손목을 때렸다기보다 오히려
손목을 살짝 건드렸다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울은 주먹을 뻗치려던 손에 힘이 풀린 듯,
얼얼한 느낌이 드는 손을 연신 흔들어댔다.
“아, 씨폴 아파...”
수울은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살폈다.
다름이 아니라, 안주를 집을 때 쓰는 포크였다!! 하지만 수울의 손목은
포크의 뾰족한 부분에 찍힌 게 아니라, 부드러운 손잡이 부분에 맞은 것
이었다.
그럼에도 순간 힘을 쓸 수 없었던 건.. 그 포크가 정확히 손목의 혈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저쪽 테이블 너머에서 설취안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곧 수울의 앞에 와서 섰다.
여전히 어둑한 조명.... 모자와 마스크 차림의 그......
유일하게 드러난 두 눈도 모자로 인한 그늘 때문에.. 뭐, 하나 뚜렷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없었다.
“그 주먹으로 쳤으면, 사람 죽였겠다?”
상당한 지배력이 느껴지는, 호기로운 목소리였다.
“니가 숱한 에프알을 물 먹인다는 그 전설의 술, 전설주냐? 아니지, 그
럼 물 먹이는 게 아니라 술 먹이는 건가? 풋...”
“포크 니가 던졌냐? -_-”
“유단이가 던졌다만, 그건 왜? 내가 던졌으면.. 그렇게는 안 봐주지...”
수울은 제유단을 흘낏 쳐다보았는데, 그는 자리에 앉아 있는 듯 그 모습
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가리 박아라...?!”
수울은 설취안의 목소리에, 잠시 흠칫했다.
3rd
수울이 곧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입술을 열려는 찰나... 은린이 재빨리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술아, 제발 이번 한번만 참자.... 응?... 아빠.. 아니, 엄마 생각을 좀 해
서......”
수울은 또다시 흠칫 놀라는 기색이더니, 잠시 후 그런 기색을 감추고 설
취안을 향해 도전적으로 말했다.
“어디다 박아줄까? 여기 이 차디차고 더러운 바닥에다 머리 박을까? 아
님, 아예 테이블에 올라가 머리 박아줄까?”
그때 설취안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널더러 머리 박으랬냐? 야, 최세현!! 너 빨랑 대가리 박아라... 셋
세기 전까지 박아라?!”
초록 눈, 세현은 깜짝 놀란 얼굴이었으나, 그렇다고 취안을 향해 군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서둘러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약간 화난 듯, 설취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최세현, 너 술 취했냐? 어디서 미친 짓거리야?!! 병신 같은 자식이... 유
단아!! 나 먼저 가니까, 니가 애들 정리해라... 세현이는 30분 동안 벌 세
우고.. 권수울 이 녀석은..... 일단은 손대지 마라...”
일단은.......? -_-; 설취안은 미묘한 그 말만 남긴 채, 몸을 돌려 술집을
떠났다.
수울은 미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더니, 곧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
만 그는 출입문을 한 치 정도 앞둔 상태에서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오히
려 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왔다.
그는 세현이 머리를 박은 곳까지 와서는, 돌연 그의 옆에 몸을 쭈그려
앉았다.
“이런... 바닥에 피 흐른다, 야!!”
“..........”
“에프알도 없는데, 그냥 앉아라... 아까는 미안하게 됐다. 그러게 왜 술
먹고 그런 미친 짓은 하고 그러냐?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이 바로 너 같
은 놈이잖냐? 술을 먹으면 곱게 쳐 먹어야지, 왜 죄 없는 여자는 괴롭히
고 그러냐?”
은린은 난감한 기색으로, 수울의 팔을 잡아끌었다.
“수울아!! 너 왜 그래? 빨랑 나가자!! 응?”
그런데 수울은 돌연 그녀를 향해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야!! 이 녀석, 최세현이라고 했나? 아까 보니까, 알팅이 형이라고 부르
는 것 같던데 몇 학년이냐?”
“2학년이야... 그건 왜?”
수울은 다시 세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 왜 이러고 있는 거냐? 기껏 나이 어린 알탕이 무서워서 그러냐? 아
님, 에프알이 다시 돌아올까 봐 그러냐?”
그때 갑자기 세현이 버럭 소리질렀다.
“새끼야!!!!!! 힘들어죽겠으니까, 말시키지마!!!!!”
“너 피난다......-_-... 그거나 좀 닦고 벌서던가 해라... 피가 말라붙어서,
머리통이 바닥에 달라붙겠다, 야!! 나중에 안 떨어지면 어떡하냐?”
“이 새... 끼가 진짜.......?!”
“최은린!! 물수건이나 화장지나 아무거나 좀 갖고 와봐라...”
은린은 그 기막힌-_- 상황을 지켜보며, 오만인상을 찌푸리다가 곧 포기
했다는 듯이... 모든 걸 초월한 듯한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리고 수울은 은린이 피를 닦을 무언가를 가지러 간 사이, 세현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일어나라....”
“아씨... 권수울!!! 건들지 마라?!”
“왜? -_-”
“힘들어죽겠으니까.... 건드리지 마... 이 새...끼야...”
세현은 수울이 붙잡은 자신의 한쪽 팔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 바람에 두
사람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 세현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쿵하고 쓰
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수울은 볼 수 있었다. 세현이 정말 깜짝 놀란 듯한 얼굴로 알팅
의 눈치를 살피더니, 후다닥 대가리 박기 자세를 다시 취하는 것을...!!
“너... 알팅이 무섭냐?”
“제발....... 꺼져줄래?”
“말 안 하면, 또 넘어뜨린다...? -_-”
“아씨, 이 자식이 진짜.....=_=... 알팅..... 알팅한테... 걸리면 죽어...”
수울은 세현이 세상을 포기한 듯 허탈한 어조로 중얼거리자, 잠시 멍해
졌다. 아무리 알팅이 에프모 서열 2위라 하더라도, 제유단은 나이 어린
후배가 아니던가..?!!
수울은 제유단이 있는 곳을 흘낏 쳐다보았다.
“야!!!!! 알탕아!!!!!!!!!!!”
수울의 커다란 외침에, 게다가 알탕=_=이란 기막힌 호칭에, 에프모 모두
가 눈을 커다랗게 떠대고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3분 지났다.... 최세현 그만 벌 세워라...”
제유단이 피식 웃으며, 아까처럼 난간에 두 팔을 기대며 물어왔다.
“30분이 아니라 3분?”
“그래... 3분.. 사람이 융통성이 있어야지.... 에프알이 30분 벌 세우란다
고 진짜 30분씩이나 사람 대가리를 바닥에 박아 놓을라고? 대가리는 엄
연히 사람 몸에서 제일 위에 붙어있는 것으로, 이렇게 밑에 쳐 박히게 되
면.....”
“..........”
“피 쏠려, 씨폴아.....”
드디어 알팅(R팅), 유단이 걸음을 옮겨 다가온다. 가까이서 그 녀석의
얼굴을 본 수울은 잠시 놀란 기색이다.
마치 아기들한테나 느낄 수 있는 달콤함 미소, 천진한 얼굴... 그리고 다
른 놈들이 했으면, 재수 없게 보였을 수많은 귀걸이와 반지, 팔찌 등은
그의 매력을 색다른 느낌으로 한층 업그레이드시켰다.
유단은 은린을 향해 가볍게 손을 뻗었고, 곧 그녀의 손에서 손수건을 건
네 받은 뒤, 세현의 등을 툭하고 건드렸다.
“세현이 형, 일어나...”
유단은 보기와는 달리, 세현의 몸을 가볍게 일으켜 세운 뒤, 손수건으로
머리에 묻은 핏자국을 훑었다. 그리고 손수건을 가볍게 찢어버리더니, 길
게 연결시켜 세현의 머리통을 한바퀴 둘러 매듭을 묶었다.
세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 찰나, 유단이 그의 어깨를 다시 툭하고 건드리
며 선수를 쳤다.
“미안한데, 다시 벌서라....”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울은 황당함으로 두 눈을 커다랗게 치켜
떴다.
“이야~~ 알팅!! 너 진짜 씨폴폴나게 성질 더러운 놈이구나?! 새꺄아..
니가 아무리 알팅이라지만, 너 그렇게 살면 안 돼... 얼굴은 아주 천사같
이 생겨먹어서, 하는 짓은 완전.....”
하지만 유단은 수울의 말은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렸
다. 여전히 천사 같은 미소를 머금은 채...
“저런..... 씨폴에 씨폴나게 빠져죽을 씨폴폴 같은 씨폴을 봤나...?!!”
수울은 모든 욕을 씨폴 하나로 통일해서 사용하곤 했다. -_-;;;
그 사이 세현은 다시 대가리를 박았고, 저쪽 너머에서 참다 못한 에프모
하나가 수울을 향해 소리질렀다.
“야!!!!! 너, 자꾸 알팅한데 까불어대면 확..... 그냥 그대로 밟아버리는 수
가 있어?!!”
유단은 그 말을 가볍게 제지한 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수울은... 한때는 적(?)이었던 세현의 바로 옆에 쭈그려 앉아 그
를 위로-_-하기 시작했다.
수울은 먼저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고는 은린을 올려다보
았다.
“최은린!! 너 그거 첫 키스도 아니잖냐? 너무 억울해 하지 마라...”
“.....=_=... 너 지금 누구 편이야?”
“쪽팔리게 애들도 아니고 무슨 편가르기냐? -_- 이 놈이 워낙에 불쌍해
서, 내가 이 자리를 뜰 수가 없잖냐? 에프모가 되가지고, 사람들 많은데
서 대가리나 쳐박고 있으니, 얼마나 쪽팔리겠냐? 내가 같이 대화라도 나
눠줘야지...”
수울은 세현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 연기를 풀풀 피워댔고... 희한
한 그 광경에 구경꾼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게다가 수울의 잘생긴 얼굴은 구경꾼들의 시선 집중에 공조하고 있었다.
술집 안에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흘낏거리며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그
시선은 양쪽으로 분산되어, 알팅과 수울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쟤가 바로 그 전설주래...”
“야, 나 짐 심장이 두근거려죽겠어... 그 소문으로만 듣던 전설주가 우리
학교로 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어?”
“그러게 말야....”
“참... 근데 왜 권수울을 전설주라고 불러?”
“풋.. 쟤 이름이 권수울인데, 보통 술이로 통하나봐... 바로 전설의 술이
란 뜻이지.... 죤니 멋져.. 주먹질로 아무도 이겨내는 사람이 없나봐.. 에프
알들도 완전 속수무책이래....”
“그래?”
“그리고 전설주로 불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또 다른 이유?”
“그래... 바로 저 얼굴이야, 얼굴..”
“얼굴이 왜?”
“니 얼굴엔 저게 인간의 얼굴로 보이냐? 죤니 잘 빚어졌잖아... 얼굴이
그만큼 잘 빚어졌다고.. 우리가 보통 술을 빚는다고 그러잖아? 암튼 그만
큼 잘 빚어졌다고, 그만큼 잘생겼다고.. 그래서... 전설의 술이라고 불리는
거야...”
“그렇구나..... 근데 왜 에프알하고 알팅은 왜 가만히 보고만 있지?”
“뭐, 솔직히 겁도 나겠지.. -_- 워낙에 유명한 애니까..”
“겁이라고? 설마하니 설취안이?”
“하긴 그건 좀 아니다.. 그치? =_=”
..
은린은 불안한 듯... 아니, 지친 듯.. 계속해서 수울을 재촉했다.
“술아!! 너 안 갈 거야? 너 땜에 내가 정말 미쳐.. 너 술 취했어? 아니
지... =_= 충분히 정상이란 거 내가 더 잘 알고 말고...”
은린은 가까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수울은 세현을 향해 말했다.
“기분도 씨폴같은 데, 담배나 필래?”
은린이 끼어 들었다.
“야, 권수울!!! 너 같으면 대가리 박고 담배나 펴져?!!”
수울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야, 최세현!!! 너 대가리 박고 담배 피는 비법도 못 배웠냐?”
분명히 말하지만, 최세현은 2학년.. 권수울은 1학년이 틀림없다. -_-;;
4th
세현은 힘들게 대꾸했다.
“새끼가..... 그게 무슨 비법이라고...”
“에프알이 30분 동안 벌서랬지, 담배 피지 말라고는 안 했으니까...”
수울은 담배 하나를 새로 끄집어내더니, 순간 은린의 입안에 꽂아 넣고
불을 붙였다.
“쭉 빨아라....?!”
은린이 얼떨결에 쭉 빨아들이자, 수울은 그 담배를 다시 세현의 입안에
쑤셔 넣었다.
“아쉽지만.. 이번엔 간접 키스다.... -_-”
순간 은린은 혈압이 오르는 걸 느끼고, =_=; 곧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야!!! 권수울!!!!!!! 너 진짜.... 아씨.. 너 진짜.. 니가 불붙여주면 되잖
아?!! 너 진짜 죽을래?!!”
“그럼 날더러 저 자식이랑 간접 키스를 하라고? -_- 내 입술.. 남자한테
빌려줄 만큼 그리 심심한 물건이 아니걸랑.. 그냥 니가 희생해라..”
세현은 어이가 없는지, 피난 대가리를 바닥에 박고 있는 그 상황에서도
픽 웃고 말았다.
“이 새끼가 진짜 웃기네..... 너... 에프알이 일단은..!! 이라고 했다? 언제
까지 가만 둘 거라 생각하냐?”
“새끼가.. 너야말로 진짜 웃기네... 어떻게 입에다 담배를 물어주니까, 말
을 술술 더 잘 하냐?”
세현은 어느새.. 적군-_- 수울에게 미묘한 정을 느끼고 있었다.
“전설주!! 나한텐 괜찮은데.. 웬만하면 우리 에프알한텐 까불지 마라....
안 그럼... 전설주란 유명한 이름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거니까...”
“충고는 고마운데.. 난 좀 더 까불어야 되겠어..”
“이 자식이 미쳤나, 진짜?”
“아직 미치진 않았고.. -_- 찾을 놈이 하나 있다..”
“찾을 놈이라니?”
“나의 씨폴맞은 수호천사랄까?”
“수호천사?”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이유라고 치지.... 최세현!! 아니, 선배 되시나?
선배님아, 난 이만 가볼 테니까... 그나저나 알팅 저거, 생각하면 생각할수
록 괘씸하네?”
“알팅, 욕하지마!!!”
“왜?”
“니가 그렇게 무시할 만큼, 만만한 상대 아냐... 다쳐..”
“씨폴.... 대가리 쳐 박은 주제에 말은 잘도 나온다!! 너희 에프알은 왜
그 모양이냐?”
“그 모양이라니?”
“왜 도둑놈 새끼 마냥, 얼굴을 가리고 다니냐고?”
그 순간, 세현은 입가에 꽂힌 담배를 바닥에 퉤 하고 뱉어냈다.
“그것도 알려고 하지 마라... 다친다..”
“다친다고?”
하지만 수울은 그 충고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가자, 은린아!!”
은린은 지친 표정으로, 수울의 뒤를 따랐다.
“최은린!! 아까 하려던 말 계속 해봐라..”
“무슨 말? 나 계속 입다물고 있었는데.. =_=”
수울은 매력적으로 픽 웃으며, 은린의 기나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아야!!! 새끼야, 장난치지마!!”
“너 벌써 치매끼 있냐? 아~~~ 최세현인가 뭔가 하는 놈 키스에 완전히
정신이 나갔구나?”
“이게 진짜...”
수울은 은린이 날리는 발길질을 그냥 그대로 맞아주었다.
“아씨.. 너 진짜, 폭력 쓰는 건 외삼촌(은린의 아비 되시는 최환유;;) 닮
지 마라.. -_- 가끔은 무섭다, 정말..”
“..........”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은린은 그 말에, 아주 조심스럽고도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남자들이 보기에... 내가 그렇게 무식해 보여? 그래?”
수울은 터지려는 웃음을 가까스로 참으려다가.. 결국은 풋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의 뜻은.. 꼭 외삼촌이 무식하단 뜻 같다?”
“권수울!!!!!”
“아, 왜?”
“입만 살아서는.. 이 나부랭이야!!!”
“세상을 사는 재미는 딱!! 두 가지야... 니 말대로 나불나불.. 하나는 요
입을 나불대는 거고, 하나는 주먹을 나불대는 거란 말야.. 참.. 하나 더 있
긴 하다.. 기다리는 맛...”
“기다리는 맛?”
수울은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로서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너 진짜 치매끼 있구나.. 아까 내가 물은 거, 언제 답해 줄 건데? 그거
내가 죽기 전에는 들을 수 있는 거냐? -_-”
“아, 참!! 근데 내가 무슨 말했는데? 나 진짜 기억 안 나는데.. =_=”
“설취안... 우리의 위대하신 에프알 말야!! 왜 얼굴을 가리고 다니냐고?”
“아~~ =_= 나도 잘 몰라..”
“너 혹시... 전설주란 별칭을 가진 인간한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얻
어 맞아본 적 있냐? -_-”
수울은 쉽게 말해 ‘죽을래?’ 이 말을.. 아주 길게 늘어놓고 있었다.
“아씨...=_= 나도 진짜 잘 몰라.. 이상한 소문이 있긴 한데, 워낙 믿어지
지 않는 내용이라.. 잘못 얘기했다간, 그 날로 개죽음이란 말야!!”
“그래.. 그래.. 남이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다니던, 복면을 쓰고 다니던
무슨 상관이냐?”
곧 두 사람은 큰길가에서 택시를 잡아탔다.
“아저씨!! 혹시 우리 둘한테서 술 냄새나요?”
수울이 택시 안 기사 아저씨한테 던진 질문이었다.
“글쎄......-_-”
“에이, 아저씨!! 후각을 잘 좀 발달시켜보세요.. 뭐.. 후각이 뛰어나면 저
능 동물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_-; 그래도.... 저는 괜찮은데, 특히 이
여자애!! 이 녀석한테서 술 냄새나는지 잘 좀 맡아봐요..”
“....=_=.....”
“사람 목숨이 달려있는 중대사안인지라...”
결국 택시 기사 아저씨는 수울의 말이 상당히 버릇없음에도 불구하고 어
이없는 웃음을 보였다. 이것이 또.. 수울의 매력이기도 했다.
분명히 상대에게 버릇없이 다가가는 듯 하면서도, 상대방을 자신의 편으
로 끌어들이는 것... 그런 희한한-_- 능력이 수울에겐 있었다.
“술 냄새는 잘 모르겠고... 담배 냄새는 좀 나는구나..”
“하.. 괜찮아요, 아저씨!! 담배는 제가 핀 거라서... -_-”
“고등학생이냐?”
“네.. 그 나이 되면 참 먹고살기 힘들죠?”
“이런 황당무계한 놈을 봤나? 왜, 니가 이 어른 먹여 살려주기라도 할
생각이냐?”
“아저씨도 참... 제 앞가림도 못하는 놈한테 무슨.. 아저씨!! 여기 세워주
세요!!”
수울은 은린을 먼저 보냈다.
“가라, 최은린!! 외삼촌한테 씨폴나게 얻어터지지 말고..”
은린은 긴 머리를 한번 쓸어 넘기며 가볍게 웃었다.
“권수울, 니 걱정이나 해라.. 언제 우리 아빠가 나 때리는 거 봤냐?”
“참 부럽구나... 우리 파더는 왜 심심하면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그래. 가라.. 학교에서 보자..”
“참!! 술아!!!!”
은린은 이미 출발한 택시를 급하게 잡아 세웠다.
영문을 알리 없는 수울이 차 유리를 내렸다.
“왜? 우리 집에 따라가서, 내가 얻어터지는 거 구제해줄라고?”
“농담하지 말고.. 고모부가 왜 널 때려?”
“그럼 왜?”
“부탁인데... 유단이 말야.. 같은 반인데.. 괜히 시비 붙지 말라고.. 그리
고 설취안 선배한테도 조심하고... 진짜 부탁이다.. 응?”
“이미 엎질러진 물... 아저씨, 출발하세요!!”
수울은 차 유리를 올리며, 기사 아저씨를 향해 말했다. 마지막에.. 약간
걱정스런 안색으로 서있는 은린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드는 것도 잊지 않
았다.
..
..
..
수울은 초인종을 누르고 당차게 소리쳤다.
“아줌마!! 술이 왔습니다요!!!”
곧이어 문이 열렸고... 수울은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푹 꽂아 넣은 채..
건들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집은 조용하다..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늦게 귀가(?)하면 부모님
이 나와보는게 정상이건만.. 이 집은 조용하기만 하다. -_-;
하지만 수울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방문이 굳게 닫혀있는 안
방 앞에서 조심스럽게 소리쳤다.
“아버지!! 엄마!! 술이 들어왔습니다요.. 하던 일.. 계속 하세요...... 이왕
이면, 동생 하나 만들어주시는 것도 고맙구요..”
그렇게 수울은 이상한 -_-; 소리를 지껄인 후에,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수울은.. 자신의 방이 아니라 누나 권다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권죽음!! 나 왔다...”
수울은 다이란 이쁜 이름을, die에서 변형시켜 죽음이란 이상한 이름으
로 만들어 불렀다. -_-;
5th
그 순간 베개가 무진장 빠른 속도로 날라 와.. 수울의 머리를 그대로 강
타했다. 물론 푹신한 베개가 아플 리야 없지만.. -_-; 상당히 기분 나쁜
공격임에는 틀림없다.
“죽음이라 부르지 말랬지? 특히 아빠 앞에서 그 이름 부르면 너야말로
초전박살 개죽음인 거 알지?”
수울은 어느새.. 자신을 공격했던 베개를 품안에 꼭 끌어안고는 뻔뻔스
럽게 대답했다.
“괜찮아.. 원래 죽어라죽어라 하는 사람이 더 오래 사는 법이야.. -_-”
“..........”
“권죽음이 기분 나쁘다면.. 권다이..아몬드는 어때? -_-”
“나가!!!!!!!!!!!”
수울은 베개를 푹 던지고서.. 갸우뚱한 얼굴로 귓가를 만지작거리더니
그대로 몸을 돌렸다.
“나 잡지 마라..?!”
하지만 수울이 방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나.. 여지없이 다이의 간곡한 목
소리가 들려왔다.
“수울아!!!!!! =_= 잠깐만 들어와 봐... 응?”
수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하지만 다소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섰는
데.. 다이는 침대 위에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뭔가 짜증스럽다는 표정
을 짓고 있었다.
권다이...... !!
커다란 눈과 갸름한 턱선과 맑은 피부는 분명 눈부시게 예쁜 얼굴이었으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훨씬 더 강했다. 너무 귀여워서
얼굴을 꼬집어주고 괴롭혀주고 싶다고나 할까? -_-; 19살로 몇 달 후면
대학을 들어갈 나이지만.. 그다지 크지 않은 키와 귀여운 얼굴 생김새 때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