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함께 눈을 뜨고,
느긋한 주말 오후를 집에서 함께 즐긴다는 거,
그 따위 이유로는 결혼을 결심 할 수는 없어."
그에겐 한없이 미안했지만,
난 습관적으로 그렇게 말하곤 했다.
- 이십 칠년동안 홀로 퀸배드에서 숙면을 취해온 나이기에,
옆에 누가 누워있으면 잠도 제대로 오지 않을 뿐더러,
주말에 집안을 뒹굴다가 저녁을 맞이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혐오하는 행동이다 -
말로만 싫은 게 아니라,
난 결혼 "그 따위"를 위해
부모님과 끝없이, 정말 끝없이 투쟁해야했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질질짜기 일수였으며,
가장 아끼던 친구를 잃었고,
나의 당당한 머티리얼리즘에 정신적 압박을 받았으며,
일백프로 "타의에 의한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했다.
대체 왜 인간들은,
간격을 두고 "사랑"만 하며 살 수는 없는 걸까.
어째서 편리한 그 간격을 없애고,
"함께 미래를 바라보자"는 거짓부롱에 굴복하고 마는 것일까.
어쨌든 이렇게저렇게
- 많은 눈물과 악다구니와 혼돈과 짜증을 거치며 -
난 결혼을 선택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와 같은 아이러니에 빠진 혹자들이
"아니,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뀐 거야?"라고 물어올 때,
논리정연하고 속시원한 답을 해 줄 수 없었다.
"그냥, 사랑해서 그래.
그냥, 믿음직스러워서 그래."
그 정도 시원찮은 답이 전부.
"The F Word,"는 기자출신 저자 Kelly Bare가
약혼에서 결혼까지 - "I will," 에서 "I do,"까지 -
겪은 사소한 심경변화,
가족, 친구 그리고 "그"와의 마찰,
결혼에 대한 객관적인 신념과 주관적 감정 사이의 방황을
꽤나 설득력있게 적어내린 책이다.
내 성격 상,
- 귀는 얇으나, 결국엔 지 멋대로 결정을 내림 -
책 한 권에서 감화받아
잔존하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는 없겠지만,
나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동지가 있다는 데서
상당한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
이론적으로는,
- 왜 여자는 남자의 청혼을 기다리기만 해야하는가.
여자가 하면 어디덧나나 - 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면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남는 이벤트
- 그것이 레스토랑 하나를 통채로 빌려
피아노를 연주하고
아이스크림에 반지를 숨겨놓는 류의 것이든지,
아니면 아침에 함께 눈을 떴는 데,
부스스한 얼굴과 썩은 입냄새를 풍기며
앤티크한 반지를 꺼내 "우리 같이 살까"하는 류의 것이든지 간에 -
를 기대하기 마련이라는 진리.
그것에서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모순됨을 비관하거나,
자신의 변화를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저자 만세 
결혼은 파티가 아니다.
고단한 인생에 제대로 된 첫 걸음을 내딛는 절차일 뿐.
따라서 그 첫 걸음은,
당신에게 가장 편안한 것이어야하며,
그 과정을 타인에게 설명할 의무도,
자신을 끝없이 반추할 필요도 없다.
막연한 불안감은
오로지 "그"와 나눌 몫이며,
붙잡은 그 손을 놓지 않는 한,
이 세상에 "실패한 결혼"은 없다.
- 아아..얼마나 멋진가 
아무튼 결론은,
결혼을 앞둔 처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는 것.
The F Word, By Kelly Bare.
P.S.
나에 버금가는 결혼포비아에 시달렸던 저자는,
넷째 손가락이 아닌, 중지에 끼우는 약혼반지에서
작은 위안을 느낀다.
"남들과 다른 것이 불안하다면,
차라리 아예 다르기를 선택할 것.
하지만 모든 결혼의 귀결점은 같을 수 밖에 없으니,
달라야한다, 는 중압감을 느끼지도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