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오늘날 커피는 주로 자바, 콜롬비아, 킬리만자로, 산토스 등 아라비아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다. 이는 이슬람 교권의 중앙아시아가 아닌 지역으로 이식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럼 언제부터 커피나무가 세계 각지로 펴져 나갔을까? 이는 17세기를 전후한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 각국이 새로운 항로를 발견하고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커피나무를 심기에 적합한 지역들을 발견한 때부터이다. 1670년경 루이 14세는 커피를 아주 좋아해 해마다 네덜란드에서 왕실 전용 커피를 수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713년 유트레히트 조약이 체결된 기념으로 암스테르담 시장은 루이 14에게 커피 묘목을 바치기도 하였다. 이 묘목은 네덜란드 식물원에서 재배한 것이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커피나무는 아라비아 지역에서만 재배되고 생산되었는데, 어떻게 네덜란드는 커피를 수출하고, 또 자국 식물원에서 재배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커피씨를 몰래 숨겨 들여와 재배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바로 인도의 바바 부단 (Baba Budan) 이란 사람이다. 바바 부단은 이슬람교 회교 승으로서 성지 순례차 인도에서 아라비아로 건너왔다. 그리고 돌아갈 때 커피 종자 일곱 알을 몰래 배에 묶어 숨겨 나와서는 자기 집 근처의 땅에 심었다. 그곳은 인도 남부의 치카말라구르 (Chikamalagur) 라는 지역인데, 여기서 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 빨간 열매가 맺혔고, 곧 이어 인도 전체로 퍼져 나갔다. 17세기 초였던 당시는 영국에 이어 네덜란드가 인도에 진출해 동인도 회사 (The Netherlands East India Company) 를 설립할 즈음이다. 그 뒤 네덜란드인은 인도의 말라바르와 실론섬 (Ceylon Island) 에서 소규모의 커피농장을 경영하였다. 그리고 1700년경이 되자 네덜란드는 인도에 만족하지 않고 인도산 커피 묘목을 역시 그들의 식민지인 자바 (Java), 인도네시아 스마트라 (Sumatra), 세레베스 (Celebes), 티모르 (Timor), 발리 (Bali)에 옮겨 심어 재배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 뒤 1706년에 자바의 묘목을 본국의 암스테르담 식물원에 보냈고, 여기서 재배한 나무에서 보다 우수한 종자가 열리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암스테르담 식물원은 본격적으로 커피나무를 연구하기 시작, 훗날 커피나무의 세계 종묘원의 원조격이 되었다.
1714년 네덜란드에서 커피 묘목을 받은 프랑스 루이 14세 (Louis XIV) 는 묘목을 왕실 식물원에 심게 하고, 관리자로 왕궁의 식물학자를 두었다. 그리고 프랑스령 식민지에 옮겨 심으라는 명령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그 첫 상륙지는 아프리카의 부르봉 섬 (Bourbon Island :지금의 레위니옹 섬 Reunion Island) 이다. 이곳에서 자란 나무가 훗날 브라질 땅에 옮겨져 '부르봉 산토스'라는 고급 커피가 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 뒤 서인도 제도의 마르티니크 섬 (Martinique Island) 에도 "마츄드 클리외"라는 사람에 의해 커피나무가 심어졌다. 그는 콜럼버스가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만큼 커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꼽히는 사람이다. 그는 마르티니크 섬에 커피나무를 심기까지 세 차례에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배를 타고 오랫동안 항해하다 보니 때 아닌 비바람이 불고 폭풍이 치는가 하면 해적이 나타나 금품을 약탈하고 목숨을 위협하는 어려움을 맞이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두 번씩이나 실패를 거듭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 이번에는 사람이 마실 물도 다 떨어져 갈 무렵, 묘목에 줄 물이 없었다. 마츄 드 클리외는 신세계에 커피의 꽃을 피우자는 일념으로 자신이 먹을 물을 뿌려 세 그루의 묘목을 보존, 드디어 1720년 마르티니크 섬에 뿌리를 묻을 수 있었다. 그 뒤 이 섬의 묘목은 아이티, 멕시코로 번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