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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이야기★

임성연 |2007.07.02 17:51
조회 126 |추천 0


Elizabeth Bathry는 1560년 Trensyvania(현재 루마니아 서북부의

고원지방)에서 가장 유서 깊고 부유하며 영향력있는 집안의 딸로

태어났다.바토리家는 유럽제일의 함스부르크家와 비견될 정도의 명문가로 집안엔 군주나 추기경도 있었고,사촌은 헝가리 왕국의수상이었다.

가장 유명한 친척은 Istvan Bathoy(1533-1586),1575년부터86년까지 트란실 바니아의 군주 였으며 폴란드의 왕이었다.

Elizabeth Bathory는 4살이나 5살 때 경 극히 심한 발작을 일으켰

다고 한다. 일종의 간질발작이거나 기타 다른 신경계통질환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 되는데, 훗날 그녀가 저지른 끔찍한 범죄행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

바토리 가는 막대한 재산과 영지를 잃지않기 위해 근친 결혼을 많이 했는데 때문에 집안에 유명인을 배출한 만큼 미친 사람이나 정신이상자가 많았다.

어쩌면 이 여인도 운명의 진 불행한 피해자 일지도 모른다.

 

15살 때Bathory는 Feanc Nadasdy백작과 결혼을 하는데, 백작은

당시 26살 이었고,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부부는 Csejthe(체터)성을 살았으며, 백작이 워낙 전쟁을 좋아 했던 관계로 거의 떨어져 지냈다. 그랬기 때문인지 남편Feranc

백작은 헝가리의 검은 영웅(Black Hero Hungary)이란 별명을 얻었다. 어쨋거나, 남편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동안 바토리는 백모가

가르쳐준 채찍 다루는 기술을 연마하고 Thotko라는 하인이 바토리에게 신비주의, 악마배숭 등등의 것을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군의 아내로 엄격하게 처신하라는 시어머니의 강압과 압제로 감옥이나 다름 없는 규제 속에서 그녀는 점차 말이 없고, 냉담하고,음습한 여인으로 변모했다.여기에 더하여 "바토리는家의 유전병인

간질(로 추정되는 발작 증세)도 그녀를 정신적으로 돌아버리게

하는데 크게 일조하는데 바토리家는 근친상간에 의한 유전병으로 유명해 숙부는 간질로 죽었고,숙모는 황음에 빠져 남편 세명을 먼저 보낸 가문이었다고 한다.

 

Bathory는 언젠가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했자가 한참 후에나 성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남편인 백작은 금방 이를 용서했다고 한다. 거의 남편과 같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도 갖지 못했고, 결혼한 지 10년이 지난 1585년에 딸 Anna는 낳았고,

다음 9년 동안 엔 딸 Ursala와  Katherina를, 그리고 1598년에야

비로소 와아들 Paul을 낳았는데 바로 이 기나긴 기간동안 바토리는

유모인 llona Joo,집사 Janos Ujvary, 하인 Thorko,숲에 사는 마녀

Darvula와 또 다른 마녀 Dorottya Szentes 등과 함께 수시로 젊은

하녀들을 고문했던것으로 전해지는데 이것이 진짜 끔찍한 행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남편의 죽음이었던 것 같다. 

 

남편Fance 백작은 1604년 51세 나이로 전장에서 전사했고, 이것이

큰 충격이었던지 바토리는 끔찍한 괴물로 돌변해 버린다.

 

자기에게 너무나 강압적이었던 시어머리를 쫓아내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악마숭배에 빠져들어 처음엔 말이나 기타 동물들을

제물로 사용했지만, 나중엔 인간 제물을 바쳤다고 하는데,끔찍한

고문과 살인의 진정한 목적은 젋음을 되찾는 것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곱고 아름다운 얼굴과 피부가 삭아들어가고 있음을 개탄한

Bathory는 젊은 처녀의 피로 목욕을 하여 예전의 미모를 되찾으려 했다.

 

어느날 머리를 빚겨주던 하녀가 실수를 하여 머리가 심하게 당겨지자,Bathory는 하녀의 따귀를 때렸고, 좀 심하게 때렸는지 하녀의

뺨이 손톱에 긁혀서 피가 났다. 그런데 그 피가 Bathory의 손에 떨어졌고, Bathory는  순간적으로 손의 피부가 탱탱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젊은 처녀의 피가 젊음을 되찾을 수 있느"비밀"이라

생각한 그녀는 그 이후 수시로 처녀를 잡아다 죽여서

그 피로 목욕을 했다.

 

발목을 밧줄로 묶어서 거꾸로 매단 다음 목을 따서 그 피를 받아

목욕을 했으며, 가끔 진짜 예쁜 처녀 아이가 잡혀오면"특별메뉴"로

피를 마시기도 했는데 처음엔 잔에 받아마셨지만,마지막엔 직접

목을 물어뜯어 생피를 받아 마셨다고 전한다.

 

그녀의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것 중에 배나무 사건이었다.

그녀의 영지에 사는 농부의 딸 하나가 배가 고픈 나머지 배를 하나

훔쳐먹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토리에게 아첨을 하는 하인등리 이 소녀를 밀고 했다. 바토리는 소녀를 잡아다가 고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소녀는 고문을 하기도 전에 배를 따먹은 사실을

자백하고 말았다.

 

바토리는 소녀를 용서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많은 농부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면서 배나무에 하룻동안 묶어놓게 했다. 그 대신 그녀는 하녀에게 시켜 이 소녀의 전신에 꿀을 발라놓도록 했다.꿀냄새 맡은 벌들이 사방에 날라오기 시작했다.소녀는 비명을 질렀으나 소용이 없었다.

 

수천, 수만 마리의 발들에게 쏘인 소녀는 온몸이 퉁퉁부어서 죽었다. 그래도 벌들은 그치지 않고 날라와 그녀의 몸에 달라붙은 꿀을 먹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그녀가 죽자 이번에는 개미와 구더기가 달려들어 그녀의 시체를 파먹었다.농부들은 바토리의 잔인한 처서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나 그녀는 권력에 중심에 있기 때문에 농부들은 감히 불평을 말할 수도 없었다.

 

바토리가 즐겨 사용한 고문 도구는

 

철의 처녀 

 

독일의 유명한 기술자에게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으로 실제 사람처럼 아주 정교하게 만든 철제 인형.

 

등신대의 벌거벗은 인형으로 피부는 사람과 똑같은 색이고, 기계장치로 눈과 입도 열리고 머리카락도 있었다. 여자를 벌거벗겨 인형앞에 놓으면 톱니바퀴가 움직여 인형은 두팔을 올려 여자를 감싸 안는다. 다음에 인형의 가슴이 열리는데 그 안은 비어있다.

 

좌우로 펼쳐진 문에 다섯개의 칼날이 있다. 인형의 몸안에 갇힌 여자는 필사적이지만 칼로 전시을 찔려 뼈가 부러지고 처녀의 온몸을 사정없이 찌르면서 피를 뽑아낸다.

 

그 피는 인형안의 홈을 따라 바토리의 욕조로 쏟아지게 되어있다.

 

철의 새장

 

철장으로 만든 새장 같은 곳에 처녀를 가둬 놓고 도드래로 천정까지 들어 올린 뒤 버튼을 누르면 철장안에서 날이 선 칼날들이 튀어나와

처녀의 몸을 꽉 조이며 난자한다. 새장 아래에 있던 "바토리"는 그 피를 맞으며 샤워를 했다는 잔혹한 성품을 말해주는 예로는,

 

금화를 훔치다 들키면---불에 달군 금화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바토리"의 옷을 잘못 다리면---시뻘건 인두로 얼굴을 지져 놓는다.

어쩌다 수다라도 떨면---굵은 바늘로 입을 꿰매 버린다.

과일을 훔치다 들키면---온몸에 꿀 발라 불개미에게 뜯어 먹게 한다.(배나무 사건)

심심하면---처녀의 알몸을 꽁꽁 묶은 뒤 얼음위에 굴린다.

 

1600년 부터 1610년 까지 Bathory는 연속적으로 젊은 처녀를 살해하여 모종의 악마적 종교를 거친 후 그들의 피로 목욕을 했다고 하는데, 죽은 이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는지, 시체를 근처 교회로 보내 신부로 하여금 장례를 치르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원인모를 죽음"을 당한 처녀의 수가 너무나 많아지자 그 신부는 더 이상 장례를 치르지 않았고, 소문이 날까 두려운 나머지

Bathory는 신부를 불러다가 누구에게도 비밀을 발설하지 못 하도록 친히 협박을 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시간이 자나자,처녀의 피는 처음 만큼 효과가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이에 측근들은 천한 농촌 처녀가 아니라 귀족처녀의 피라야

더 효과가 있다고 부추기고 이에 바토리는 성내의 귀족적 소양을 가르치는 "귀족여학교"를 설립해 한번에 25명씩 헉생을 받았다.

물론 이들도 농촌 처녀들처럼 끔찍하게 살해 당하고 피를 빨렸는데

이때 쯤부터 바토리는 조심성을 잃어던 것 같다.

시체는 들판이나 헛간,성 바로 옆 창가, 근처 채소밭 등에 아무렇게나 묻고 시체 네 구를 성벽밑에 그냥 떨어뜨린 적도 있다하니

당연히 꼬리를 잡히기 시작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하고 그러다 희생자 하나가 극적으로 탈출해 정부 당국에 신고 했기 때문에, Matya

왕은 Bathory의 사촌이며 그 지방 영주인Gyorgy Thurzo백작에게 명하여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1610년 12월30일 성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간 조사팀은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온몸에 피가 모두 빠져 버린 젊은 여자 시체가

있었고,꼬챙이에 찔린 채 아직 살아 있는 여자도 몇 명 있었으며,

지하실에 내려가보니 온갖 종류의 고문으로 만신창이 된 젊은 처녀들이 수두룩했다. 곳곳에서 피가 말라붙은 칼, 송곳, 등의 고문 도구들이 발견되고 게다가 성주면을 파보니 시체가 50구나 나왔다.

 

재판은 1611년에 열렸지만, 정작 Bathory는 재판에 참석하지도 않았으며, 유무죄의 관해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잼\판에서 집사인Ujvary는 처녀37명을 살해 했으며,그 중 여석\ㅅ은 일자리를 찾아 성에 들어왔던 여자였다고 자뱃했는데, 대개는 몇주일 심지어는 몇 달 동안이나 고문을 당하다가 죽었다고 한다.

 

자배은 그러했지만,실은 총612명을 죽였다고 한다.Bthiry는 모든것을 일기에 써서 기록을 남겼고,숫자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허공에 매달아 놓은 철창에 처녀를 집어 넣고 쇠꼬챙이로 찔러 피를 흘리게 하면,Bathory가 그 찰창 밑에 서서 흐르는 피로"샤워"를 했다.고문은 대개 수하들이 담당했지만, 가끔은 백작부인이 집접 고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는데, 이 끔찍한 사건에 연루된 사람은

모두목이 잘린 후 화형을 당했고, 수뇌급 두명은 손가락이 잘린 후

산 채로 불에 타죽었지만,Bathory만은 오로지 귀족이라는 이유하나로 목숨은 건졌다.(법적으로 귀족은 처형할 수 없다고 한다.)

 

Bathory는 그 대신 높은 탑 꼭대기에 감금되었는데, 음식을 넣어주는 작은 구멍 이외에는 창문하나 없는어두운 방이었다고 한다.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로 연명하면서도 그녀는 참회의 말 한 마디

없었다.

감금 4년 만인 1614년 8월 말, 54세 나이로 Elizabeth Bathory는

어두운 감방에서 세상을 떠난다.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그녀의 시신은 그 곳에 묻힐 수 없게 되었고, 그녀가Ecsed혈통의 마지막인것을

감안하여 헝가리 동북부 지역의Ecsed에 묻혔다.

Bathory의 관한 이야기는 영화화 되기도 했는데,Peter Sasdy가

감독했고,소위 B급영화의 스타라고 정평을 받고 있는 Ingrid Pitt

이 주연했는데,제목은 Countess Dracula(드라큘라 백작부인)이며,

우리나라엔 소개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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