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글을 자주 쓰는 사람이 아니지만, 하루 동안에 두 개의 글을 남겨봅니다.
오늘 뉴스를 보던 중에 대전지검앞에서 분신을 시도한 한 노교수님의 보도를 접하였습니다.
더욱이 법대 교수라는 사실에 놀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대전에 있는 그 대학은 저 역시 잘 알고 있는 기독교 재단의 대학입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처음에는 의문 역시 들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교수가, 그것도 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법이 아닌 분신시도라는 극단의 선택밖에는 없었나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법을 전공한 분이기에 우리나라 법과 법관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기기 때문에 오히려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쯤 되면 한국의 법체계와 법관들의 의식 수준이 얼마나 낙후되어 있는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검찰과 법원을 감시할 수 있는 민간 모니터 기구의 창설에 관한 이야기와 배심원제도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오겠습니까...더욱이 재밌는 사실은 아직까지도 검찰과 법원의 비리를 감시할 수 있는 법안들은 몇 년 째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사학비리와 관련한 내용을 가지고 한국교회의 고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숨길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법을 피해갔다고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한국의 교회들이 저는 무섭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피한 것으로 끝났다고 때로는 비양심과 타협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와 복지관을 소유하고 있는 작지 않은 규모를 가진 교회의 지체 중 한명입니다. 그러하기에 교회내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때로는 이단과 사단의 미혹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사실은 이러한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 스스로가 너무 둔감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독교인이기에 보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기독교 인이기에 보다 높은 의식수준이 요구되고, 기독교 인이기에 보다 높은 사회적 기대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것은 굳이 누군가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의당 해야만 하고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오늘날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안에만 있다보면 밖을 보지 못합니다. 필자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사업체를 경영하거나 영리사업을 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보다 민감하게 반응을 하였습니다. 조금씩 돈을 모아서 보다 큰 예배당을 짓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감격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교회의 내분이 일어나고, 결국 많은 상처를 받았던 기억 역시 가지고 있씁니다. 예배당 건축을 위해서 모아 두었던 돈을 우리는 이웃을 위해서 모두 내어 놓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예배당 건축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에게 먼저 이 같은 질문을 던지시지는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교회의 의미를 예배당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교회의 진정한 의미는 상대적으로 퇴색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퇴색이라기 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멀어진다는 표현이 더욱 맞는 것 같군요.
어찌되었든 상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제가 무서운 것은 우리 스스로가 자기 합리화를 통해서 이런 일들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은 해야겠고, 이왕이면 내 돈 조금 들여서 더욱 멋진 예배당과 시설들이 채워지면 좋겠다라는 작은 욕심에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간에, 심지어는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에 대해서조차 귀를 닫고 우리들의 공간 안에서 우리들을 위한 일들을 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교회의 의미가 그런 것이라고 저는 배운 적이 없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나면 이번에는 많은 기독교인 분들께서 네가 뭘 아느냐며 누워서 침뱉기라고 이야기 하며, 비난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 많은 사람들의 비난보다, 하나님의 공의가 더욱 두려운 사람입니다.
전도를 위한 우리의 계획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배당이 크면, 조금 더 멋지고 예쁜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면 교회의 성도수가 늘겠지라고 암묵적으로 생각하는 것 역시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똑똑하고 멋진 사람들만을 위한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어리석고 약한 것들로 지혜있고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예배당의 크기를 자랑하지 말고, 목회자의 경력이나 이력을 자랑하지 말고, 찬양팀의 멋진연주를 자랑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성공한 자들의 이야기를 자랑하며 교회를 빛내려 하지도 말기 바랍니다. 그들이 겸손하게 사람들을 위해 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주는 진정한 축복임을 깨달아야 할 시점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세웠던 계획들 마저도 하나님을 위해서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울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좁은 길임을 알기에 묵묵히 가고 싶을 따름입니다. 무조건 조용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침묵으로 광야에 나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만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서 동일하게 반박하거나 흥분하지 말고, 필요한 것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그 작은 겸허한 행동 뒤에 한 생명의 구원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전도를 하고 사역을 하고 싶다면,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교회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물론 멋진 예배당은 건축할지 못할지도 모르고, 예배당을 중심으로 세워진 조직들은 무너질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배당에 대한 건축과 세상에서 교회의 가치를 드높이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여러가지 소문난 일들을 할 때, 그것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깨닫는 자세가 필요할 듯 합니다.
그럼 모든 분들이 행복을 위해 기도하기 보다 행복의 기회를 가진 것에 먼저 감사하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줄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