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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석가의 제자였다는 설에 대해

김현수 |2007.08.09 14:51
조회 271 |추천 1

Question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성경의 연대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예수님이 중간에 일하시지 않는동안 석가모니

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이 말을 절에서

 불교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Answer

1. 예수께서 석가의 제자였다는 주장에 제기된 배경


  복음서는 13세29세까지의 행적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복음서에서 침묵하고 있는

 <예수의 생애>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생략된 <예수

의 17년>을 찾아내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러시아의 저술가 니콜라스 노토비치는 1887년 인도와

티벳 지방을 여행하다가 라닥지방의 수도인 레(Leh)근

처의 하이미츠(Himis) 사원에서 티벳어로 기록된 예수

에 관한 기록을 발견했으며, 이를 근거로 해서 1894년

에 불어판으로 <알려지지 않은 예수의 생애 - 성 이사

(Issa)의 일대기>를 출판함으로써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일이 있습니다. 또한 한양대 불문학 교수 민

희식 박사는 <법화경과 신약성서>라는 책에서 신약성

서의 내용 중에 많은 내용이 불교의 <법화경>의 영향

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고, 또 1980년대에 프랑스

 학자 필립 드 슈아레는 <도마에 의한 복음서>를 써서

유럽 종교계에 큰 파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슈아레

는 예수께서 불교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상이 유태교의 메

시아 사상과, 초대 교회 당시 영향력을 가진 헬라철학

에 맞추는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변화가 생겼다고 주

장합니다.




2. "이사(Issa)전"의 내용 요약


  질문하신 내용은 니콜라스 노토비치가 티벳사원에서

 발견했다는 <이사(Issa)전>을 근거로 한 쓴 것입니

다. 그는 이사전에 언급된 "이사(Issa)"가 "예수"와

동일인물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사(Issa)전>

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

다.

 1) 이사의 출생 및 어린 시절 이야기(1장-4장 중간) 



 2) 이사의 13-29세까지의 이야기(4장 끝-8장)



 3) 이사의 팔레스타인 전도 활동 중에 일어난 이야기

(9장-14장)



  이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복음서에서 침

묵하고 있는 13-29세(4장 끝-8장)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도 오릿사주의 왕족인 라반나는 이스라엘의 제례

에 참석하러 왔다가 이사의 총명함을 보고 예수에게

인도의 수학을 주선해 준다. 그리고 라반나의 권유로

이사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인도 쟈간나스의 한 절에

들어가 4년간 수행을 하며, 베다 경전과 마니 법전을

공부한다.



* 수행을 마친 후 이사는 의술을 배우기 위해 당시 인

도에서 명성이 가장 높은 '우도카라'라는 의사의 제자

로 입문한다. 이사는 의술을 배우면서 유대의 [시편]

과 [아베스타]경전을 읽고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익히

게 된다.



* 당시 이사는 평등사상에 심취했는데, 인도에서는 이

러한 이사의 사상이 그들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에 위

협을 준다고 해서 이사를 정죄하게 된다. 생명의 위협

을 느낀 이사는 '라마나스'의 도움으로 인도에서 네팔

로 피신하게 되고, 그곳에서 '비자빠찌'라는 성자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 네팔을 떠난 이사는 티벳으로 가서, 당시 요동 최고

의 성자인 '멘구스테'를 만나 티벳에 비장되어 있는

 수많은 경전을 섭렵한다. 24세에 수학을 마치고 고향

으로 돌아오던 이사는 페르시아에 들려서 자신이 태어

날 때 찾아온 마기교 승려 '홀', '룬', '메루'라는 3

인의 동방박사와 재회한다.



* 집에 돌아온 이사는 다시 아테네로 건너가서 [아포

로]라고 하는 성자와 대화를 나누며, 헬라의 정신세계

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 25세가 된 이사는 이집트로 건너가서 형제단이라는

성자들의 모임에 입회하여 활동하였고, 이 곳에서 최

고의 칭호인 그리스도라는 법명을 받게된다. 30세가

된 예수는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다.


3. 이사(Issa)전에 대한 논란


  노토비치는 이 이야기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된

지 3-4년 후에, 그 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상인들이 인

도에 전한 목격담을 기초로 해서 쓰여졌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신약 성서에 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출판되자마자 미국, 영국, 독일, 스페

인, 스웨덴, 이탈리아 등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

습니다. 이로 인해 역사가들이나 신학자들 간에 노토

비치가 목격했다고 말하는 <이사전>이 실제로 존재하

는 것이며, 또한 존재한다고 하면 그 책에 나오는 이

사가 과연 예수인지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일어났습니

다. 많은 사람들은 <이사전>이 조작되었다고 말하기도

하고,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을만한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자료라고 말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네루가 쓴

"세계사편력"을 보면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해 연구한 권위있는 학

자에 따르면, 그리스도가 중앙아시아나 인디아의 영향

을 받았다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그러나 그를 지

지하는 일부 사람들에 의해서 이 이야기는 계속해서

전달되어 왔습니다.




4. 운영자의 입장


  저 역시 이사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다

음과 같습니다.



 1) 신약 성경에 인도에서 수행한 일이나 석가로부터

배운 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음.


  내가 만일 이사였다면, 내가 젊은 때에 그토록 큰

영향을 받았던 힌두교나 불교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

나, 제자들에게 자주 언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이러한 언급을 한 것을 발

견할 수 없으며, 그의 제자들 역시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2)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이 힌두교나 불교와 너무 다

름.


  만일 예수께서 힌두교나 불교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최소한 유대교와 인도 종교를 모두 수용하는 다원주의

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의 가르침은 일체 다른 종교를 배제하고 있습니다. 예

수님은 불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유일신 사상을 주장하

고 있으며, 여호와와 자신을 믿는 일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르

침은 예수께서 석가의 제자였다는 주장과는 전혀 어울

리지 않습니다.



 3) 자료 자체에 믿기 어려운 내용이 많음.


  이사전의 마지막 부분인 9장에서 14장까지의 내용에

는 신약 성경이 묘사하고 있는 내용과 다른 부분이 많

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구약성경에서 메시아

전령으로 예언된 세례 요한에 대한 내용이 저녀 나오

지 않고 있으며, 기독교의 가장 큰 특징인 부활에 대

한 언급도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러하 내용은 기독교

를 다른 종교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내용을 조작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부활

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짓는 가장 큰 주제입니

다. 그러므로 부활이야기를 언급하면서 예수를 석가의

제자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사전

에서 부활 이야기를 생략한 부분은 아무래도 자연스러

워 보이지가 않습니다.



  또한 이사전은 예수를 속죄양으로 몰아 처형하게 만

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아무 죄가 없으며, 모든 일

은 빌라도가 이사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꾸민 음모

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앞뒤

가 맞지 않습니다. 만일 이사전의 내용대로 예수께서

부처의 가르침을 받았다면, 유일신을 부정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예수는 마땅히 신성모독죄로 간주되

어 처형당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종교 지도자

들이 예수의 처형에 아무런 죄가없었다는 언급은 전혀

 앞뒤가 맞질 않습니다.



  노토비치는 기독교인들이 로마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서 빌라도에게 변죄부를 주고, 유대인에게 예수의 죽

음에 대한 책임을 모두 전가시켰다고 주장하고 있습니

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당시의 역사 기록과 큰 차

이가 있습니다. 빌라도가 로마 총독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빌라도의 보고서"에는 예수께서 죄가 없음을

알고 그를 사면하려 했지만, 유대인의 선동으로 할 수

없이 예수에게 십자가 형을 내린 과정이 생생하게 기

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4복음서에 기록된 내

용이 정확하며, 이사전의 주장이 그릇되다는 것을 말

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사전은 빌라도가 이사가 부활할 것을 두려워

하여 이사의 시신을 다른 곳에 옮겨 묻으라고 명령했

으며, 사람들이 무덤이 열린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천

사들을 보내 성자의 시신을 가져갔다고 말했다고 기록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 역시 믿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교도인 빌라도가 예수의 부활을 믿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한 번 매장된 시체를 다시 꺼내서 다

른 곳에 옮겼다는 것도 믿기가 어렵습니다. 4복음서를

 보면 무덤을 지킨 사람들은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

다. 그들은 제자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간 후에, 예

수께서 부활했다고 주장할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군인들을 빌려서 그 무덤을 지키게 했습

니다. 이러한 기록은 빌라도가 예수의 부활을 염려해

서 그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주장보다 훨씬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또한 만일 정말로 빌라도가 예수

의 시체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면, 예수의 제자들이 예

수께서 부활했다고 주장할 때에 이를 반박하기 위해서

그 시체를 공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일

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이사전에 기록된 내용들은 복음서의 내용

과 비슷하게 일치하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다릅니

다. 이사전에는 기독교를 다른종교와 구별짓게 하는

내용들, 즉 부활이나, 승천, 재림 등과 같은 내용들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내용이 없다면 기독

교는 처음부터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 생각에는 이사전의 내용이 복음서의 내용과 일치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4) 이사라는 사람이 예수라는 사실도 확인할 길이 없

습니다.


  노토비치는 예수의 불교식 이름이이사라고 주장하면

서, 이사전에 언급된 이사가 예수라고 주장합니다. 그

러나 이사가 정말로 예수인지, 아니면 동시대에 살았던 다른 사람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사람인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기"라는 사람을 "석

가"라고 하는 것과 같고, "차사"라는 이름을 "철수"라

고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에 대해 연구한 권위있는 학자들에 따르

면, 그리스도가 중앙아시아나 인디아의 영향을 받았다

는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입장입니

다.



 5) 이사전을 전체 성경보다 더 권위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사전은 전체 성경의 내용과

매우 다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전체 성경을 부인해야만 합

니다. 만일 어느 날 한 사람이 알려지지 않은 문서를

하나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믿고 그 동안 불

교에서 믿어온 모든 불경을 버리라고 하면 불교의 승

려들은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예수의 생애에 대한

 기록의 객관적인 권위나 사실성은 예수를 따라다니면

서 그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에게 있는 것은 분명합니

다. 그렇다면 어느 날 한 사람이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이름모를 문서 때문에, 예수의 제자들이 증거하는 모

든 증언을 부정하고 버린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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