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 땅에서 태어난 두 청년 최대치(최재성)와 장하림(박상원)은 일제 강압기와 해방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며 상반된 이데올로기와 엇갈린 운명으로 평행선을 그은 인물들이다. 식민 시대 소련과 함께 사회주의를 수용한 독립운동 전선에 뛰어든 최대치와 미군정보부와 함께 독립운동에 뛰어든 장하림의 평행선은 해방 공간에서 벌어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단적인 대립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동아시아 지역에서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과 소련의 헤게모니 싸움이었던 한국전쟁으로 연결된다. 최대치와 장하림은 종전 후에도 빨치산과 토벌대의 입장으로 지리산에서 조우하고 최대치는 장하림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이들은 20세기 초의 불안한 세계정세와 한반도의 상황이 개인에게 투영된 인물들이다. 최대치와 장하림은 라는 작품으로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른 최초의 인물들이었다.
죽마고우였던 박태수(최민수)와 강우석(박상원)은 고등학교 이후 엇갈린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 장교가 되고 싶었으나 아버지의 빨치산 이력으로 모든 진로가 좌절된 태수와, 독재정권의 개발주의 정책에 의해 고향에서 쫓겨나 명문대에 힘들게 입학한 우석은 이후 80년 5월 광주와 쿠데타를 겪으며 대립하게 된다. TV드라마 사상 초유의 인기를 얻은 는 한편으로는 김영삼 문민정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군사정권과의 단절을 주장했던 이 작품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집권기였던 70년대 말과 80년대가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이야말로 가 누린 인기의 이유였다. 그 안에서 태수와 우석의 안타까운 악연은 최대치와 장하림 이후 시대의 비극에 휘말린 남자들의 표상이 되었다.
독일의 통일과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문을 연 90년대는 오랜 냉전이 종식된 시대였지만, 동시에 같은 이유로 한반도 위기설이 제기되던 시기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94년 등장한 북핵 위기는 한반도를 세계정세의 화제로 올려놨다. 이런 정세 속에 북한 인민군의 특수부대원 권택형(최민수)과 남한 공군 장교 출신 안기부 요원 민경빈(이병헌)의 대립은 시사적이면서도 스펙터클했다. 이데올로기에 의해 남과 북으로 갈린 조국을 위해 각자의 신념을 지키던 이들의 대립은 그 자체로 냉전시대의 유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80년대에 대한 향수와 할리우드 스파이 영화에 대한 동경이 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에서 권택형과 민경빈이라는 인물의 대립은 “네가 말하는 조국은 누구의 조국인가”라거나 “나도 너처럼 목숨을 걸고 지키고 싶은 믿음이 있다”는 대사로 압축된다. 그런데 이 질문은 과연 지금도 유효할까?
가난한 천재와 부유한 수재. 가난해서 감옥에서 청춘을 보낸 남자와 아버지가 쓴 돈의 힘으로 교도소에 가지 않은 그의 친구. 의 인하(이병헌)와 정원(지성)을 우정과 대립으로 이끄는 힘은 전혀 상반된 그들의 환경이 갈라놓은 세월의 힘에서 나온다. 전혀 다른 환경은 그들에게 서로 끌리는 이유가 되고, 그들이 함께 모여 저지른 소년 시절의 죄는 그들의 운명을 갈라놓는다. 비록 액션부터 멜로까지 모든 연기에서 화제를 모았던 이병헌에게 무게 중심이 쏠렸지만, 정원이 그저 인하의 친구나 라이벌이 아니라 우정과 대립, 화해를 끈끈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확연히 나뉜 그들의 환경으로부터 시작된 그들의 다른 운명이 두 사람에게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짐을 얹어놓았기 때문이다. 인하에게 마음의 짐을 진 정원이 청년이 된 정원을 만나는 순간, 그 울컥하는 감정의 울림은 을 덩치만 큰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감칠맛 나는 남자들의 정서가 살아있는 작품으로 남게 만들었다.
의 정호(김상경)와 석기(김성수)에겐 서로 친해질 어떤 이유도 없다. 석기가 주희(정해영)의 과거의 남자면 아직 이혼하지 않은 정호는 주희에게 언젠가 마음을 고백할 남자고, 석기가 악의 세력을 변호한다면 정호는 마치 검사처럼 그들을 교도소에 넣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의 고통을 공감하며, 주희를 위해 힘을 합친다. 그건 단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감정 때문만이 아니라, 정호와 석기 사이에 흐르는 어떤 윤리적 유대감 때문이다. “인간은 끝까지 악할 수 없다”고 외치는 정호와 “인간은 끝까지 선할 수 없다”고 맞받아치는 석기의 대립은 부득이하게 어둠의 세계에 빠지며 주희에게 다가설 수 없는 석기와 양심 때문에라도 주희에게 더 다가설 수 없는 정호의 아픈 곳을 찌르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에 이른다. 그들은 진정 적이면서도 인정할 수 있는 라이벌이고, 증오하면서도 애정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짝패들.
준혁(김명민)과 도영(이선균)은 무슨 관계였을까. 그들은 친구이면서도 끝없이 대립했고, 끝없이 대립하면서도 힘들때마다 서로를 찾아갔다. 서로의 확고한 가치관 때문에 끊임없이 충돌하면서도 그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에 오히려 매력을 느끼며 서로에게 ‘존재만으로도 충분한’ 친구가 됐던 두 사람의 관계는 오직 서로에 대한 신뢰와 가치관에 대한 인정만으로도 남녀의 애증을 넘어서는 무엇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복잡한 애증을 바탕에 둔 이들의 대립과 화해의 반복은 의 일부 팬들이 그들을 ‘커플’로 엮은 뮤직비디오를 만들게 했을 정도. 준혁은 성공을 통해 도영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 했고, 도영은 준혁이 뛰어난 실력으로 오직 정의로운 의술에만 힘쓰기를 바랬다. 그들 중 옳은 것은 누구였을까.
강오수(엄태웅)와 오승하(주지훈)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캐릭터들이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역설과 그 역설적 상황에서 내적 갈등을 통한 캐릭터들의 정체성 찾기의 고단함이 바로 을 어려운 작품으로 만든 요인이었지만,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이야말로 인간의 양면성과 이중성, 그 어떤 ‘인간적인 속성’을 극단적으로 묘사한 인물들이었다. 이들은 이데올로기로 대립하거나 시대에 휘둘린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열망과 본성에 휩쓸린 인물들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그 두 사람이 나란히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는 장면은 그 둘을 오래전 헤어진 형제처럼 보이게 한다. 너는 내가 아닌가. 혹은 나는 너인가. 누가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연쇄살인과 학교폭력, 집단주의와 개인주의, 사회정의와 복수의 양상으로 대립했다.
이수현(이준기)과 강민기(정경호)의 대립은 흥미로운 관계다. 그들의 대립이 개인적이고 어쩔 수 없는 숙명같은 것이긴 하지만, 그 근원은 뒤바뀐 세계 정세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군사정권이 해체되고 북한과의 민간 교류가 확대되는 이때 안기부, 혹은 국가정보원은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냉전이 끝난 뒤 미국과 할리우드의 고민과도 맞물린다. 그래서 이 동남아시아의 마약 커넥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수극이자 한 여자를 가운데 두고 두 청년이 대립하는 멜로드라마라는 점은 매혹적이다. 특히 친형제처럼 자라온 두 남자 수현과 민기의 극단적 대립은 그들의 개인사와 어울려 지독한 비극을 빚어낸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과연 그들은 꼬인 운명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지독한 짐승의 시간으로 내몰았는가. 그것이 서로를 보는 그들의 눈빛이 애절한 이유다.
(글) 차우진 lazicat@t-fac.com
(글) 강명석 ( 기획위원)
(매거진t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