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사람이 다른 한사람에게 미칠수있는 영향력의 최대치를 보여준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당사자들에게만큼은 운명이었고 그 무엇과도 바꾸고싶지않은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오노요코는 1933년 동경에서 매우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요코가 18살이 되었을 때 그녀의 가족은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녀는 레논과 만나기전 두번 결혼했다.
첫번째 결혼은 25살때였다. 그녀의 남편은 줄리어드 음대생인 토시이치나야기 였다. 그녀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이결혼은 2~3년밖에 지속되지 못했고 6년이 채 안되어 법률적인 이혼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다시 결혼한 상대는 행위 예술가이자 영화감독인 토니콕스였다. 키요코라는 딸을 낳고살던 그녀의 두번째 결혼은 존레논과 만나면서 깨지게된다.
그럼 이 두사람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매니저인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비틀즈의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멤버들은 방황하게 되었으며, 라이브 공연의 중단으로 음악적 갈등과 번민은 심각하였고, 사랑없이 맺어진 첫째부인 신시아와의 결혼생활은 이미 '진공상태'였다.
이때 미술에 관심이 많은 존레논은 요코오노의 아방가르드 작품전에 초대되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벽의 열려진 틈에있는 아주 작은 글씨를 돋보기로 보아야 하는 작품이 있었는데.. 그 작은 글씨는 다름아닌 yes였다. 무조건 사회에 반대하기만 하던 다른 아방가르드 작품과는 달리 매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요코의 사고방식에 존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관객이 직접 못을 박는 작품이 있었는데, 존이 요코에게 못을 박아보면 안되냐고 물었더니 요코는 그 행사는 내일부터라며 존의 요청을 거절했다. 지켜보던 다른 사람이 백만장자인 존에게 못을 박게 해주라고 귀뜸하자 요코는 존에게 "제가 가짜로 5실링을 드릴테니까 마음속으로 못을 박으세요""라 말했고 여기서 둘은 서로가 이른바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는 걸 직감하고 몇년간의 깊은 우정에서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요코는 진심으로 그녀와 존의 유명세를 동등하게 생각했고, 그녀의 아방가르드예술작품을 존(혹은 비틀즈)의 노래들 못지않게 훌륭하고 영향력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런 당당함에 매료된 존 역시 그녀의 작품을 찬미했고 그녀의 개성과 고집스런 기질을 존중하고 숭배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습게 비쳤을지몰라도 당사자들은 진심이었다.
교코와의 만남 이후로 레논이 더이상 비틀즈멤버들을 예전같이 사랑하지않게 되었다고 매카트니는 말했다.
비틀즈의 다른 세사람은 비틀즈의 멤버가 네사람인지 다섯사람인지 헷갈릴정도로 개입하고 간섭하는 요코의 존재가 거슬렸다.
왜냐하면 비틀즈는 마치 형제와도 같은 연대감을 가지고 있었기때문이다.
어느누구도 깨지못한 그 공고한 관계를 작고 묘한 동양여자가 와서 헤집어놓은것이었다.
비틀즈의 팬들 역시 요코를 레논을 홀린 마녀와 같은 이미지로 보았다.
1975년 10월8일 아들 션 오노 레논이 태어났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이 일어나자 요코와 레논은 천국을 얻은것같은 기분이었다.
레논은 션과 함께 있을시간을 갖기 위해 전업주부로 나섰고 요코는 사업가의 수완을 발휘하며 레논을 대신해 모든일을 대행하게 되었다.
이런 레논의 은둔생활은 션이 5살이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음악활동을 재개한지 얼마되지않은 1980년 12월8일 인터뷰등의 일정을 마치고 요코와 나란히 집으로 가던중에 레논은 광적인팬으로 알려진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에의해 저격당했고, 병원을가는중에 출혈과다로 숨졌다. 레논의 죽음은 오노의 반쪽이 죽음을 의미했다.
그녀를 살게했던것은 다름아닌 션 오노레논이었다.
레논의 분신이자 그들 사랑의 결정체인 션이 있었기에 그녀는 용감한 어머니로 살아갈수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세간의 사람들이 볼 때 지나치게 자의식과잉에다 이기적이고 특별하고 분별력 없는 짓들로 가득한것일지도 모른다.
요코나 레논은 정상적인 범주에서 이해할수있는 사고방식의 소유자가 아니었고 그것을 바라지도않았다.
운명이라고 밖에 말할수 없는 닮은 두사람의 러브스토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속하는것이 어떤것인지를 보여준다.
그것이 집착이든 질투이든 광적인 열정이든 그들자신은 Real Love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머물때 사랑인 것을 알고 놓치지않았던 것만으로도 대단하지않은가..
용기와 열정과 인내와 노력이 그 둘사이에 존재했다는것만은 틀림없지않은가..
당시.. 정신적으로 성숙해있었던 요코는 존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폴매카트니의 탈퇴로 비틀즈가 해체되고 솔로 활동을 시작한 존이 전위적이고 정치적인 색채가 강하며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담은 음악활동을 하게 된 것도 요코의 영향이 컸다.
존에게 요코가 없었더라면..imagine, woman, love, oh my love 와 같은 불후의 명곡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폴 또한 요코가 없었더라면 hey jude를 작곡하지 못했을것이다.
적어도 요코는 존의 부나 명성을 보고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존은 요코의 외모나 나이를 보고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그저 둘은 너무나 닮아서 상대방을 자기자신과도 같이 여기던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