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운군이 결국 차디찬 영국 켄터베리의 공동묘지에 강제 매장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7년간 강제 매장의 위협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매번 뜻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이렇게 저렇게 막아 올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부족한 저는 말할 것도 없고, 오랫동안 이 일에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저의 친구이자 소말리아 동원호 사건의 주인공 김영미 PD, 심지어 막강한 인권변호사 임란 칸조차도 이번에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영국 측은 경운 아버님이 직접 장례를 치르겠다는 제안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변호사가 보증하고 현지 장의사가 나서는 가운데서도 유가족의 마지막 제안을 무시한 채 경운군은 마치 무연고 시신처럼 그렇게 묻혀 버렸습니다. 묻은 사람들이 이번에는 어떻게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경운군의 무덤에는 어딘가에서 보낸 화환도 있고 그렇다는군요. 대사관이 보냈는지 누가 보냈는지, 하지만 그런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죽은 사람도 산 가족도 원하지 않을 한 많은 땅에 그런 식으로 묻힌 다음에야 상석이 백 개고 향불이 천 개면 그게 무슨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들은 왜 이렇게 독하게 매장을 강행했을까요. 시신을 빨리 치워버려야 마음이 편한 뭔가가 있었던 걸까요? 어떻게든 빨리 상황을 종결하기 위한 물타기 전법일까요? 냉동시켜야 할 시신이 줄을 서 있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저 냉동고의 전기료가 아까웠던 걸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저는 아직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아는 것은, 처음부터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했고 그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건 직후 주영대사관이 조금만 성의 있게 움직여줬더라도 이 일은 진작 양당간에 판가름이 났을 일입니다. 영국 측의 미심쩍은 행태에 자기 자식을 걱정하듯 조금만 적극적으로 나서 줬어도, 그 의혹들이 실수였던 무능이었던 속임수였건 음모였던 밝혀져도 벌써 7년 전에 밝혀졌을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왔고 또 이렇게까지 되었습니다.
그럼 경운군 사건은 끝난 건가요.
물론 아닙니다.
지금 변호사와 영국 법의 부검의가 영국 측 1차 부검서와 우리나라 국과수의 2차 부검서 영역본을 면밀히 대조 검토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말씀 드린 대로 둘 사이에는 디테일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비전문가인 제가 함부로 말씀 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여하튼 바로 그 점이 지금 현재 검토 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인 규명회를 한번 더 여는 것, 그리하여 이것이던 저것이던 남은 의혹이 없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야 경운군 사건이 끝나는 것이죠.
...강제 매장의 전후에 경운군 아버님과 여러 번 메일을 나누고 통화를 했습니다. 좌절하거나 앞뒤 없는 분노에 빠져 있지 않으며 오히려 밝은 목소리를 제게 들려 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이 어떻겠습니까. 졸지에 횡사한 젊은 아들, 결론이야 어찌 되었건 사건이 종결되고 한 점 의혹도 없는 상태에서 '이 아버지가 너를 위해 이만큼 했노라' 하며 라스팔마스로 고이 운구하여 고향에서 장례를 치르기 위해 지금까지 모진 마음 먹고 버텨왔던 것 아닙니까.

고 이경운 군의 부친 이영호씨, 그의 진실을 향한 투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1년 전 영국을 떠나 귀국할 때도 경운이와 경운 아버님 때문에 사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더랬습니다. 지금 제가 거기 있었다면,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더라도 적어도 말벗이라도 해 드렸을 텐데요. 며칠에 한번씩 어려운 형편에 꼭 먹을 거라도 하나 사서 저를 보러 오시던 경운 아버님, 물론 지금도 좋은 분들이 주변에 계시지만, 저는 또 제 나름대로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의혹이 완전히 규명되기 전에는 차마 끝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일일 겁니다. 달리 특별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 그저 그것 때문입니다.
제가 외국에 살다보니 이런뉴스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네요.
정말안탓갑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