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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독종의 등장

이진우 |2007.11.08 14:17
조회 755 |추천 0

[독종의 등장]


- 홍채와 혈관 스캔 결과, 등록되지 않은 사용자입니다. 신규 계정을 생성하시겠습니까?

접속하고 맨 처음 들은 것은 누군가가 건넨 말이었다.
이현은 주위에 누가 말을 걸었는지 찾아보려고 했지만 아
무도 없었다. 우주의 한 공간. 그때야 캐릭터를 생성하는 과정이란 것을 깨달았다.
"예!"

- 캐릭터의 이름을 정해 주…….

"위드."
잡초라는 뜻이었다.
이현에게는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 캐릭터의 성별로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중성 인간이…….

"남자!"

- 로열 가드의 종족 구성은 총 49가지가 있습니다. 사용자 분은 초
기 29가지 중의…….

"인간!"

- 외모의 변환은…….

"지금 이대로."

- 계정이 생성되었습니다. 능력치의 성장과 직업은 직접 플레이를
하시면서 정하시는 것으로…….

"통과!"

-시작하실 왕국과 도시를 정할 수 있습니다.

"로자임 왕국. 세라보그 성!"

- 즐거운 로열 로드를…….

"통과!"
이현은 1초도 아까워서, 설명을 듣지도 않고 미리 준비했
던 계획대로 확정을 지었다. 1달 이용료만 무려 30만 원이
넘는 고액의 게임이다.

로열 로드에는 100여 개의 대형 성과 수천 개가 넘는 마을
들이 있었다. 막 게임을 시작한 사람은 수도나, 그에 버금가는 큰 성에서 시작을 하게 된다.
위드도 마찬가지였다.
파아앗.
빛과 함께 그가 나타난 곳은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이었다.
"여긴……."
서울 도심의 한복판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
이 보였다.
"여기가 어디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위드가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믿기지가 않았다.
사람들이 흥정을 하고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그대로 들린
다. 보이는 풍경은 실제와 똑같았고, 사람들 역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땅을 밟고 있는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조금도 현실과 다를바가 없었다.
멍하니 서 있는 그를 스치고 가는 사람들.
"저것 봐. 초보인가 봐."
"가상현실을 처음 해 본 사람인가 본데?"주위의 유저들은 지나가면서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제야 위드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 여기는 로열 로드. 가상현실의 세상. 그리고 내 직
장이다.'
아무리 가상현실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고, 게임 시스템을연구했어도 처음은 처음인 것이다.
일시적으로 혼란기가 찾아왔지만 금방 진정이 되었다. 차
이점도 눈에 띄었다.
감각 등은 현실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주변의 인간들은
정장이 아닌 갑옷과 레더 아머를 입고 있었다.
위드가 시작한 곳 주변에는 지리와 로자임 왕국에 대한 설명이 새겨진 글귀들 그리고 기본적인 인터페이스 등의 안내판들이 보였다.
위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위드는 체조를 시작했다. 앉았다 일어서기부터 제
자리 뛰기, 앞구르기, 발차기와 정권 찌르기 등을 연습했다.
허리도 돌려 보고, 관절과 관절 등도 꼼꼼히 체크했다. 손
가락과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목도 이리저리 꺾어 보았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으니 창피함이 밀려왔지만
위드는 꿋꿋하게 이겨 냈다.
"근데 저 사람 뭐하는 거지?"
"가상현실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이라서 몸을 움직여 보
나 봐."
"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하는 거야."
그때 위드는 참아 왔던 수치심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왔다.
사람들 앞에서 무슨 생난리를 쳤단 말인가.
'젠장!'
위드는 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로열 로드에서는 막 시작한 유저들은 도시를 현실 시간으
로 일주일간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과의 시차 때문에 게임 시간으로는 4주!
유저들은 기초적인 퀘스트를 하거나, 쉽게 익힐 수 있는
봉제나 대장 기술, 요리 등의 생산 기술을 익히는 사람들이 대체로 많은 편이었다.

자유도가 지나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높은 게임이고, 아직까지 고위급 인사들은 전부 유저가 아닌 NPC들이 차지하고 있었으니 인맥 설정은 중요하다.
도서관이나 상점 등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도 많았다.
광장의 주변에는 거래를 하기 위해 좌판을 벌인 이들로 가득했고, 모험을 원하는 파티들이 결성되기도 한다.
무심히 그들을 지켜본 위드는 주저하지 않고 수련관으로
향했다.
수련장은 누구나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대다수는 새로운 스킬을 익혔을 때 몸에 익게 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장소였다.
위드처럼 캐릭터를 생성하자마자 수련장에 찾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업었다.
당장 자신이 속한 왕국과 도시가 어디인지 관심이 가기도
하고, 수련장에서 하는 수련이라는 게 사실 딱히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교관은 막 문을 넘어서 들어오는 위드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막 베르사 대륙에 들어온 초보로 보이는군."
"예."
위드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첫날부터 사람들 앞에서 창피
한 일을 했기에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후후. 몬스터들을 잡기 위해서는 검술 훈련이 필수적이
지. 안내가 필요한가? 아무거나 비어 있는 곳에 가서 허수아비를 치면 되네. 목검은 허수아비의 앞에 놓여 있고, 무료로 제공되는 것이야."
"그걸로 충분합니다. 안내는 필요 없습니다."
"열심히 해 보게."
위드는 목검을 잡고 가장 구석에 비어 있는 허수아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허수아비를 후려치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목검이 주는 무게감과, 미묘한 타격감이 점차로 손에 익기 시작햇다.
로열 로드에서는 막 게임을 시작한 4주 동안은 레벨이 오
르지 않는다. 성문을 나가서 사냥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주로 퀘스트를 하면서 공적치를 쌓거나 돈을 벌고, 인맥을 형성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위드는 묵묵히 목검으로 허수아비만을 때렸다.

세라보그 성에는 약 1천 개의 허수아비가 있었고, 벽에는
마음껏 꺼내 쓸 수 있는 목검들이 마련되어 있다.
평상시에도 기술을 시험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락
날락거렸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다들 한곳을 보고 있었다.
'독종이다.'
'지독해.'
'인간이 어쩌면 저럴 수가 있을까.'
위드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흰 셔츠와 바지가 땀에 절어서 몸에
달라붙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목검으로 허수아비를 두들긴다.

- 힘 1이 상승하셨습니다.

허수아비를 6시간째 두들겼을 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위드는 목검을 쥔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스탯 창."
위드가 허수아비를 가격하며 중얼거렸다.

캐릭터 이름 : 위드                            성향 : 무
레벨 : 1                 직업 : 무직
칭호 : 없음             명성 : 0
생명력 : 100           마나 : 100
힘 : 11                   민첩 : 10              체력 : 10     지혜 : 10     지력 : 10
통솔력 : 5              행운 : 5
공격력 : 3              방어력 : 0
마법 저항 : 무

캐릭터 자체가 빈약해서 별로 볼 것도 없는 상태였다.
그로부터 5시간이 지났다.

- 체력 1이 상승하셨습니다.

- 민첩 1이 상승하셨습니다.

거의 동시에 2개의 능력치가 올랐다.
"휴우."
위드는 거제야 목검을 내려 두고 잠시 쉬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거의 8시간 동안 허수아비를 때렸다.
육체적인 피로도도 극심한 상태였지만, 목은 갈증으로 타
들어 가는 것만 같았고, 배가 등에 붙을 정도의 허기가 졌다.
"인벤토리."
정해진 명령어에 따라 위드의 눈앞에 소유하고 있는 물품
들이 나타났다.
수통 1개와 빵 10개.
이게 전부다.
로열 로드에서는 나머지 필요한 게 있다면 전부 알아서 구해야 한다.

남들은 4주의 기간이 있으니 여유롭게 간단한 퀘스트를 하면서 돈을 벌겠지만 위드에게는 그 시간마저 아까 웠다.
위드는 빵과 물을 꺼내서 조금씩 뜯어 먹었다. 음식을 먹
을 때마다 허기가 사라지고 포만감 수치가 올라갔다.
'대충 5시간에 한 번은 식사를 해야 하는군. 격렬하게 움
직이면 더더욱 빨리 식사를 해 주는게 좋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훈련을 하는 도중이니까 구태여 포만감을 최고 수치로 올릴 필요는 없어. 그저 죽지 않을 정도면 된다.'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위드는 다시 목검을 쥐고 허수아비
의 앞에 섰다.
주변에 몰려 있던 관중들은 신기하다는 듯이 한마디를 했다.
"또 하려나 봐."
"미쳤어."
"무슨 증오심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아."
"저 허수아비가 산산조각 날 때까지 하려는 건 아닐까?"이 순간 허수아비의 몸이 파르르 떨린 것은 다만 관중들만의 착각일까?
위드의 목검은 쉬지 않고 허수아비의 구석구석을 가격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들 위드의 행동에 의문을 가졌다.
"대체 왜 저렇게 허수아비를 치는 거지?"
"별로 도움이 될 것도 없을 텐데……. 스킬을 올리기 위해
서라면 허수아비보다는 차라리 필드에 나가서 토끼에게라도 쓰는 편이 나을 텐데요."
"저 모습을 좀 봐. 스킬을 쓴다기보다는 그저 막무가내로
허수아비를 두들기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설마 능력치의 성장?"
제법 화려해 보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허수아비를 때리는 것만으로도 능력치가 오른다구요?"
"예? 아, 예. 그렇습니다."
"그러면 다들 힘들게 레벨을 올릴 필요가 없이 허수아비
만 때리면 되잖아요?"
플루토라는 이름의 기사의 레벨은 꽤나 높은 상태였고, 평소에 많은 정보를 접했다. 위드의 행동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추측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체력을 크게 사용하면, 체력과 스태미나가 올라간다. 마
법사가 마법을 써도 지혜와 지력이 올라간다.
그러나 그 수치는 극도로 미미한 것이라서 레벨 업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허수아비를 두들겨서 스탯 1개나,
2개 정도를 올릴 수 있을 뿐이었다.
레벨을 올렸을 때 얻는 스탯의 개수가 5개임을 감안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인 것이다.
"정말 멍청한 짓이로군요."
플루토의 말을 들은 여자 마법사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플루토의 의견은 달랐다.
"좋은 방법입니다."
"네?"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몬스터를 잡았을 때 경험치를 거
의 얻지 못하는 것은 아시죠?"
"물론요."
"그러니 레벨은 갈수록 더 올리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
러나 미리부터 저런 수련을 해서 힘을 올려놓으면 사냥이 훨씬 쉬어지죠. 두고두고 효과를 발휘하는 방법입니다."
"방법을 알고 계시니 기사님도 그렇게 하셨겠네요? 아니,
그걸 알고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알지만 정작 실행할 수 없는 방법이라고 할까요. 다시 본
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혹시 여기서 10시간 동안 허수아비를 때려서 힘 1을 올리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
"허약한 허수아비로 올릴 수 있는 능력치에는 한계가 있
습니다. 힘으로 따지면 대략 40 정도겠죠. 이걸 올리기 위해서 최소한 1달 동안 허수아비만 때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인간이라면 지겨워서 하지 못합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힘 40 정도를 올리기 위해서 1달간 죽도록 허수아비만 두
들겨야 한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좋은 장비를 구하고 말 것이다.

힘 40 정도를 올려 주는 장비는 귀하긴 하지만 구할 수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것도 다 맨 처음 시작해서, 성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방법이죠. 한때 허수아비 때리기가유행을 했던 적이 있지만 사장되었던 이유는 얻을 수 있는소득에 비해서 너무나도 지루하고 힘들다는 것이죠."
위드는 주변에서 그를 가지고 뭐라고 떠드는 것을 갈고 있었다.

가능하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 수련을 하고 싶었지만 성에서 나갈 수는 없는 형편이다 보니 수련장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대체 뭐가 지루하고 힘들다는 거야.'
위드는 힘 있게 목검을 휘둘렀다.
조금씩 노력을 해서 캐릭터가 강해진다. 성장을 한다. 더
강한 몬스터를 잡는다. 더 많은 돈을 번다. 이것보다 재미있는 일은 위드의 인생에서 없었다.
위드는 천성적인 노가다 체질이었던 것이다.
그런 위드를 교관은 무척이나 흐뭇한 시선으로 보고 있
었다.

그 뒤로 3주가 흘렀다.
위드는 지독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최소한의 취침 시간
을 제외하면 매일 로열 로드에 접속을 했다.
이미 작정을 하고 체력부터 만든 상태였기 때문에 취침 시간도 하루에 4시간을 넘지 않았다.
3주의 시간은 돌이켜 보면 위드로서도 지긋지긋하다고 말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번 접속을 하면 80시간 동안 단조롭게 허수아비만 때리고 있었으니 제아무리 위드라고 해도 정신적으로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중간 중간 그를 기쁘게 만드는 메시지 창들이 뜨지 않았더 라면 견디지 못했으리라.

- 힘 1이 상승하셨습니다.
- 민첩 1이 상승하셨습니다.
- 스탯 투지가 생성되었습니다.
- 스탯 지구력이 생성되었습니다.

로열 로드에서는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스탯 외에도 필요에
따라서 추가적으로 스탯이 생기기도 한다.

- 투지 : 순간적인 괴력을 내기도 하고, 눈빛만으로도 약한 몬스터
들을 굴복시킨다. 스탯 포인트 분배가 불가능하며 캐릭터의 행동
에 따라서 저절로 상승한다. 오랫동안 쉬지 않고 싸우거나, 아니면 자신보다 강한 적과 자주 싸울수록 빨리 늘어난다.

- 지구력 : 체력과 스태미나의 손실을 줄여 준다. 스탯 포인트 분배
가 불가능하며 캐릭터의 행동에 따라서 저절로 상승한다.

스킬과 관련된 메시지도 자주 나왔다.
현재 위드가 가지고 있는 스킬은 단 하나 검술.

- 검술의 숙련도가 1포인트 오르셨습니다. 검술이 3레벨로 오르셨
습니다. 검의 파괴력이 130%로 증가합니다. 공격 속도가 9% 빨라집니다.

위드는 이런 메시지들이 나올 때마다 속으로 은근히 기뻤다.
하지만 무엇보다 위드를 힘들게 한 것은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괴로움이었다.
3주간 허수아비를 때려서 올린 힘은 겨우 29. 민첩은 25개
를 올렸고, 체력은 22 정도가 늘었다.
'이대로라면 4주가 지나서 성을 나갈 수 있을 때에도 허수
아비에게 시간 낭비를 해야 돼.'
위드의 눈빛에 독기가 어렸다.
꼬르륵!
그러나 지금은 당장 너무나도 배가 고팠다.
위드를 힘들게 하는 것은 스탯의 더딘 상승도 있었지만, 가지고 있는 빵들이 떨어져 간다는 현실적인 고뇌도 함께였다.
물이야 분수로 가서 수통에 가득 채워 오면 된다지만 빵은
돈을 주고 사야 했다.
킁킁!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위드는 목검을 휘두르다가 힐끗 교관이 있는 곳을 보았다.
교관이 식사를 위해 도시락을 꺼내고 있었다.
"헤헤. 교관님."
위드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개처럼 교관에게 다가갔다.
"위드, 자네로군. 왜 무슨 할 말이 있는가?"
"혼자 드시는 게 적적해 보여서 말동무라도 해 드리려고
왔습니다."
꼬르륵.
배의 울부짖음을 무시한 채로 위드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숙련된 교관의 눈을 속이진 못한다.
"배가 고픈 모양이군. 어서 옆에 앉게! 자네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가져왔으니 말이야."
"고맙습니다."
"뭘. 자네처럼 훌륭한 모험가과 식사를 나누어 먹을 수 있
다는 건 나로선 큰 영광이야. 자네는 절대로 세라보그 성에서 만족할 그릇이 아니네. 그때 나를 잊으면 안 돼!"
"예, 교관님. 물론이지요."
위드는 살살 교관의 비위를 맞추어 주며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다. 궁상맞은 일이긴 하지만 이렇게 약간의 노력으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면 좋았다.
인간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도 아니고 인공지능을 가지
고 있는 NPC에게 몇 마디 친절하게 말해 주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는가.
3주간 허수아비를 치면서 올린 스탯도 있었지만, 교관과
의 친밀도가 높아졌다는 부가적인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위드가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교관이 뜬금없이 한마디를 했다.
"그런데 위드, 자네 조각술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나?"
조각술?
무슨 조각술?
위드는 밥알이 튀어나오지 않도록 꼭꼭 씹어서 목구멍으
로 넘긴 다음에 물었다.
"조각술이라니요?"
"그냥 자네의 생각이 궁금하군. 평소에 어떻게 여기고 있
었는지가 궁금하네."
그때부터 위드의 두뇌 회전은 수치적으로 환산하지는 못
하지만 대략 5배 정도 빨라졌다.
'지금까지 알아본 이 교관의 성격은 단순하고 무식하다.
검이 무적인 줄 알고, 훈련장에서 땀방울을 쏟는 걸 최고로 알아. 그런 교관이 조각술에 대해 물어봤다는 것은?'
머릿속을 정리한 위드는 곧바로 눈을 찌푸렸다.
"교관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검을 익히는 사람
입니다. 지금 저에게 그런 하찮은 조각술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셨습니까? 무척 실망스럽군요. 전여,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겠습니다."
평소라면 발끈할 만한 기분 나쁜 말투였는데 뜻밖에도 교
관은 박수를 치면서 기뻐하는 것이었다.
"역시 그렇지?"
"그렇습니다. 조각술 따위는 일고의 가치조차 없는 형편
없는 것에 불과합니다. 검술을 익히는 제가 왜 그런 거을 알아야 하겠습니까?"
"맞아, 위드.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위드는 이 순간 보이지는 않아도 교관과의 친밀도가 한 단계 정도는 상승했으리라고 느꼈다.
이런 식으로 친해지는 것이다.
구태여 피를 흘리거나 시간과 돈을 쳐 바르지 않더라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함께 무언가를 욕해 주면서 친해지면 아주 좋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는데 교관은 뒷머리를 슥슥
만지면서 말을 이어 나간다.
"그런데 조각술을 마스터한 자가 달빛을 조각했다는 소문
이 있어서 말이야."
"설마요. 소문이 잘못된 것이겠지요. 무슨 조각술을 익혀서 달빛을 조각하겠습니까. 굴러다니는 돌멩이라면 모를까요."
위드는 신나게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렇지? 그런데 나도 이걸 선배 교관님한테 들었어. 지
금은 내궁 기사로 계신 멜리엄 님이신데……."
조각술은 흔히 작은 나무토막을 다듬어서 좋은 장시품을
만드는 정도의 기술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나중에 스킬이 향상되면 철 조각으로 암기류를 만들 수도
있다고는 하는데 대체로 아무도 익히지 않는 사장된 기술의 하나였다.
"그래서 말인데, 나는 아무래도 조각술에 대한 의문이 드
는군. 물론 우리의 검술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 같지만 자네가 한번 알아봐 주겠는가? 내 자네라면 믿을 만하니 부탁을 하는 것일세. 부탁을 받아들여 주면 좋겠군."
그때 위드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띠링!

왕실에 나타났다는 의문의 조각사
로자임 왕국의 왕실에는 50년 전부터 조각술을 마스터한 사람이 달빛을 조각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이 소문의 진위 여부를 파악하라!
난이도 : E
퀘스트 제한 : 교관과의 친밀도, 조각술을 익히지 않은 사람만이 가능. 검술에 대한 집념을 보여 주어 교관이 안심하고 맡길 만한 사람이어야 함.

위드는 쾌재를 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직감적으로 이 퀘스트는 매우 흔하지 않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발동 조건이 까다롭기 그지없다. 수련소 교관과
의 친밀도라니, 과연 누가 올릴 엄두나 냈겠는가?
웬만한 사람들은 찾아오지도 않는 장소가 수련소였다. 스
킬을 익히더라도 굳이 허수아비에게 사용해 볼 필요는 없는 것이었고, 위드처럼 무식하게 스탯을 올리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찾아보면 있기야 하겠지만 위드만 하더라도 3주 동안 거
의 모든 시간을 허수아비와 보내 왔다. 이 정도로 집념이 강한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
게다가 교관과의 친밀도라니, 위드처럼 돈이 없어서 밥을
나누어 먹기 위해 아부를 펼치며 다가가지 않는 한 여간해서는 올리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고도 로자임 왕국의 세라보그 성
그리고 조각술에 대해서 함께 욕을 하면서 맞장구쳐 줄 사람은 그야말로 위드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침 잘됐다. 그렇지 않아도 돈이 없어서 밥을 굶을 지경
이었는데. 난이도도 낮으니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
위드의 고개가 교관의 앞에서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물론입니다. 그런 허황된 소문을 믿지는 않지만, 달빛을
조각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군. 자네가 이 일을 맡아 줄 것을 믿고
있었네. 이것은 착수금이고, 우선은 성내의 조각 상점에 가서 정보를 수집해 보도록 하게나."
그러면서 교관은 2실버를 주었다.
공복감을 채워 주는 가장 맛없는 보리 빵 1개가 3쿠퍼였
다. 1실버가 100쿠퍼이니 위드는 착수금으로 66개나 되는
보리 빵을 살 돈을 벌었다.
물론 퀘스트를 완수한다면 추가 보상도 얼마든지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좋았어! 이제 당분간 밥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굶주림에는 이미 이력이 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배를 곯는 게 싫었다.

추천수0
반대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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