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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악대에서 생긴 사건에 대해서 자세한 이야기...

이경민 |2007.11.14 17:44
조회 384 |추천 17
이번에 부산 기동본대 내에 있는 경찰악대에서 생긴 사건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1. 당시 막내 대원 이였던 김이경은 기동본대 지하에 있던 식당에서 밥이 다 차려졌으니 고참대원들을 부르기 위해 2층에 있는 생활실에 갔다가 다시 지하로 왔으나, ㅇㅇ 대원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2층까지 가서 불러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작히 식당에서 김이경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부대원 전원이 찾으러 나섰다고 합니다.
ㅡ>여기서 궁금점이 생깁니다. 이당시 김이경은 막내대원 이였습니다. 이건 군대를 갔다오고 안갔다오고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과연 막내를 찾으러 고참대원들 전원 찾으러 나설까 하는 겁니다. 만약에 시급하게 전 대원이 있어야 하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없다고 봅니다.
많이 움직여 봤자 하급대원을 관리 하는 중간기수 또는 비슷한 시기에 입대한 근접기수밖에 움직일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2. 김이경을 마지막으로 본 시각이 12시 2분이고 사고신고 시각이 12시 10분입니다.
119에 신고를 해서 구급차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초로 발견 했을 때 긴츄리닝을 입은상태였고 호흡곤란에 의식불명 이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상태가 위독했단 말이죠.  
ㅡ>여기서 또 의문점을 감출수가 없습니다. 왜 김이경이 긴 츄리닝을 입고 있었는데 짧은 츄리닝으로 옷을 갈아 입혔을까요? 그리고 옷을 갈아 입혀서 기동본대내에 있는 엠뷸런스에 실었다고 합니다. 상태가 위독한데 시동도 켜지 않은 엠뷸런스에 실어만 놓고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의심스럽습니다. 경찰쪽의 말을 들으면 119가 올때까지 기다렸다고 하던데 원래상식적으로 기다릴려면 사고현장에서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현장도 경찰이 도착해서 수사할때까지 온전히 보존되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더 이상한건 11일 12일 13일 뉴스에서 현장을 촬영한 모습이 각각 다르다는 겁니다. 처음 11일뉴스에는 폴리스라인같은것도 없었고 출입통제 푯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3일 뉴스 보니깐 폴리스라인과 출입통제 푯말 그리고 시체가 있던 자리에 흰색 페인팅은커녕 돌맹이 4개만 보였습니다. 경찰이 하는 기초 수사중에서 젤 기초가 되는 것 인데 말이죠.
  
3. 부검결과는 왼쪽 후두부 함몰, 왼쪽 갈비뼈 2~9번 골절 오른쪽 갈비뼈 7~9 골절, 왼쪽 쇄골뼈 피하출혈, 인중함몰, 손가락 10개 골절, 발뒤꿈치 골절, 엉덩이 꼬리뼈 골절입니다.
이때 부검의가 추락해서 왼쪽 후두부함몰, 왼쪽 갈비뼈 2~9번 골절, 손가락 10개 골절, 발뒤꿈치 골절, 엉덩이 꼬리뼈 골절 은 생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른쪽 갈비뼈 골절과 왼쪽 쇄골뼈 피하출혈, 인중 함몰은 다른점이 의심이 된다.’ 고 하여 조사한 결과 구타혐의가 밝혀졌습니다.
ㅡ>여기서 의문점!! 오른쪽 갈비뼈 3개 골절은 구타로 인해서 발생을 하였다고 부검의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갈비뼈 한개만 골절된 상태로 앉았다가 일어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절대로 못한다고 부검의가 말했습니다. 그 말은 곧!!! 3개가 골절된 상태로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서 자살을 할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안된다는 말이 됩니다. 앞에서 말씀을 드린것과 같이 식사 다 준비되었으니 고참대원들좀 불러오라고 해서 3개의 층을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갔는데 누가 없으니 다시 불러오라고 해서 다시 3개의 층을 올라가서 그 대원을 불렀다라는 사실이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의경으로 입대하여 올해 5월에 전역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이 살아가던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어린아이가 입대한지 100일도 안되어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부모님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부디 이번일의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져서 추후 이런일이 어디에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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