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찰스라고 앙드레김 못지않은 부드러운 말투를 구사하는 남자 교수가 있다. 그와 나와의 대화 도중, 그가 나를 붓다에 비교한 적이 많다. 내가 한 말이 붓다가 한 말 같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붓다에 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정도는 말을 해줬다. 오늘 그의 말을 듣던 내게 그는 무슨 생각하며 그렇게 미소짓냐 물었고, 나는 그냥 숨쉬는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일 뿐이라고 답했다. 그 말에 또 붓다소리를 들어서 이제는 보다 적당한 정당방위가 필요한 때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그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남과의 약속을 잘 지키듯이 나 자신과의 약속도 잘 지킨다. 나는 모든 것에 관하여 기분 나빠하지 않기로 오래전에 나와 약속 했고, 그 약속을 지속적으로 영원히 지킨다. 그러나 붓다에 나를 비교하는 것이 기분 나쁘지 않다고 해서 썩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내가 겸손하기 때문이다. 내가 교만했다면 나는 오히려 그 말이 기분 좋았을 것이다. 붓다는 훌륭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는 붓다처럼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예수처럼 겸손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말해줬다. 나는 붓다보다는 예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그리고 당신이 수업 중에 즐겨말씀한 “Jesus said, stand up and walk.”라는 말을 아주 좋아한다고(찰스는 학생들이 일어나서 종이를 받아가기 위해 움직여야 할 일 등이 있을 때 그 특유의 부드러운 말투로 “예수님은 일어나 걸으라고 하셨어요.” 라는 말을 곧잘 하곤 했다). 그것은 내가 전부터 좋아한 예수의 말씀인데, 여기서 당신에게 또 듣게 되어 큰 기쁨이라고. 그는 그런 내 말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수줍은 웃음을 지었다.
ps.
하고 싶은 말을 하라. 단 예의를 갖춰서. 그리고 한 번 말하지 못했다고, 두 번 말하지 못했다고, 여러 번 말하지 못했다고 해서, 말할 타이밍을 영원히 놓친 것은 아니다. 배구의 시간차공격처럼, 때로는 한 박자 늦게 말한 것이 오히려 더 좋은 타이밍이 될 수가 있다. 늦었다는 것은 뒤돌아보는 사람이나 하는 말이다. 앞을 바라보는 사람에겐 항상 지금이 시작이다. 지금이다, 지금!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