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반게리온 -End of EVA-
에반게리온을 보고나면 SF나 로봇 물이라기 보다는 확실히 개인의
자아를 다룬 휴먼 드라마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픈 성장기 속의 '이카리 신지'. 그는 일반인이 볼 때도 상당히 나
약하고 내성적이며, 바깥 세상에 대해 문을 꽁꽁 잠그고 있는 소년.
그 소년은 한마디로 '남의 탓'만 하는 투정 꾸러기다. 사람들은 나름
대로 그에게 최선을 다하며, 다만 그 자신이 사상이나 생각에 부합
되지 않을 때에는 그를 거부한다. 하지만, 신지에게는 오로지 그
부합되지 않는 면만이 자기의 뇌리에 각인되며, 결국은 스스로를
성벽안에 가두게 된다...
처음에 에반게리온을 봤을 때가 아마도 고등학생 때 였을 것이다.
'이카리 신지'와 정확하게 동년배이지도, 또한 같은 상황이지도
않았던 그 때.(물론 같은 상황일 수가 없겠지만.) 수없이 나는 누구
일까를 되네이는 '아야나미 레이'나 자기의 틀에 같여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카리 신지' 보다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 있고, 당당한
태도를 내세우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한 "아스카"
쪽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스카도 이런 자만심
과 자부심 속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드러내는 방법이
신지와 달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좀 살아봤다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지만, 인생에
여러 굴곡이 지나가고 지나간 후,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었고, 인간관계 속에서의 작은 상처와 큰 아픔 속에서
'어머니'와 같은 절대적인 사랑의 존재, 그리고 상대를 한없이
그리워하게 된 후,(이카리 신지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위치가 되어버렸다.) '아스카'보다는
'신지'쪽이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나는 '아스카'처럼 살았다. 아픈 척 안하기, 슬픈 척
안하기, 울지 않기, 쉽게 웃고, 밝은 척 하며, 활동적이게 살아왔다.
하지만, 내 내면에는 어느새 '신지'처럼 세상의 때가 묻어버렸으며,
아물 수 있는 작은 상처와 더이상 매울 수 없는 크나큰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게 됨에 따라, 어느새 나도 모르게 성벽을 쌓아가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
암튼, SF물로 위장한 철학물 은 '경험'이라 불리는
인생의, 사회의 때가 묻은 다음에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 같다. 을 보는 그 자체가 '때'가 될 수도
있지만, 이처럼 볼 때마다, 자기의 사정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 될
수 있는 영화도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내 개똥철학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