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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이 전혀 없는 "실용주의"

김승욱 |2008.02.05 23:27
조회 63 |추천 1
가끔 인터넷 텔레비전으로 인수위의 발표들을 볼 때에 정말이지 무슨 "블랙 커미디"를 연상케 할 때가 많습니다. 사실 우습지도 않는 광경인데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옵니다. 고교 전 과목을 영어로 할 것인가 안할 것인가, 영어 수업을 전부 영어로 할 것인가 말 건인가, 거기에다가 "오렌지"인가 "오린지"인가.... 아니, 외국말 하나 가르치는 것 가지고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분들이 이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시는 걸 보니 정말 신기하네요. 여러분들이 그러한 광경을 혹시 딴 데에서 보신 일이 있나요? 예컨대 일본에서 차기 정부의 요인들이 며칠 간 고교 영어 교수 방법을 조목조목 논하고 영어의 카타카나 표기법 이모저모를 논하는 모습을 한 번 본 바가 있나요? 저는 일본 정치를 나름대로 지켜보려고 노력하는데, 한 번도 그러한 광경을 본 일이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독일에서도 스칸디나비아의 그 어느 나라에서도... 국내에서만 볼 수 있는 쇼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대주의", "상층 계급의 영어 구사 특권의 재확인", "사교육 시장의 배를 불리려는 작전"이라고 진단하시고 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또 이걸로만 설명이 되어지지 않는 그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군사주의적 광기 같은 걸 좀 느낄 수 있습니다. "차렷! 경례! 충성! 모두들 일제히 우리 위대한 조국의 경쟁력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영어 본토 발음을 완벽하게 모방하라! 성형수술을 하여 아예 백인이 되는 것이 어렵더라도 말이라도 뉴욕 상류층과 한 치 틀리지 않게 하기! 이 목표 달성에 혼신의 힘을 바쳐라! 미달자, 낙오자는 비국민이다! " 뭐, 왠지 이와 같은 말투로 들리는 것입니다. 제가 너무 과민해서 그런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경숙 위원장만 해도 학교 다녔던 시절은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던 시절이었을 것인데, 혹시나 본인도 모르게 "우리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을 역사적인 사명으로 띠고 이 땅에서 태어났다"는 식의 사고를 갖고 계시는 것이 아니실는지요?

 

여유가 정말 많았다면 정부에서 언어 교육의 특징들을 이렇게 전 국민 앞에서 연구하는 것도 굳이 나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지금 여유란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무역에 국내총생산의 70% 이상이 달려 있는, 즉 대외교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특히 세계적 증권 시장의 폭락으로 국내 증시도 힘없이 약 20% 무너진 상황에서 분명히 정부에서 비상이 걸려야 하는데, 이 "실용주의적 정부"는 전혀 그러한 모습을 안보입니다.  계속 줄어들긴 하지만 미국은 아직까지 한국 수출의 약 14% 사주고 상당 부분의 은행간 차관, 기업차관 등을 빌려주고 있는 "주요 교역 파트너"인데 지금 미국 경제는 사실상 1929년 대공황에 버금가는 파국을 앞에 두고 있다는 것은 많은 관측가들의 지적입니다. 주택 대출 시장의 약 20%가 "거품"인 서프라임이라면 과연 금융 시장, 나아가서 실물 경제가 무풍지대일 것입니까? 지금 2008년의 미국 경제 성장을 보통 1-1,5%로 예상하는데 이는 사실 지나친 장미빛 예상일지도 모르지요. 성장이 거의 멈추고, 담보로 잡힌 잡을 빼앗겨 파산을 맞는 이들의 수가 약 2백만 명에 오르고, 이미 커다란 예산 적자로 부양책도 쓰기 어려운 상황은 2008년의 미국의 현실일 것입니다. 그러면 소매 시장도 꽤나 얼어붙을 듯한데, 한국 수출이 잘 나가기가 어려울 것은 물론, 중국의 수출에도 타격을 입힐 수 있을테고, 중국 경제가 흔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또 부메랑으로 중화권 경제에 가장 크게 의존하는 한국에 돌아올 것입니다. 하여간 세계적 위기 상황으로 한국 경제 성장도 기껏해야 3%일 듯할 텐데 수출 위축 등으로 특히 일자리 사정이 나빠져 청년 실업 등의 문제가 더욱더 첨예화될 듯합니다. 그러한 상태에 이르면 책임 있는 "실용적 정부"는 실업 급여 현실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인턴 프로그램 확충, 잉여 인력 해외 취직 알선 프로그램 확충 등에 힘을 쓸 터인데, 지금 인수위가 과연 이 문제를 언급이라도 했나요? 한국호가 바로 엄청난 폭풍을 맞을 것이 볼 보듯 뻔한데, 이 한국호의 선장과 그 측근 간부들이 영어 발음 표기나 논하는 걸 보니 정말 침몰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이 "실용주의자"들에게 표를 던지신 분들은, 이제 머지 않아 그 "실용주의"의 진가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박노자-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1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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