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타버렸습니다.
600년의 역사적 건물.
하지만 모든 탄생은 곧 소멸이라는 듯이 어느 덧 그 명이 다한 것이겠지요.
우리는 역사적 유물이라고 말하며 보물이라고 말하며,
영원하길 바랐으나,
우주의 원칙에 의해 숭례문의 명이 다 했습니다.
그 것은 누구의 잘못이었든, 이미 일어나 버린 일입니다.
그렇다면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양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모조품을 만들어 내는 복원이 아닌,
이 것도 하나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복원!
그러한 의견 중 하나가 서울시청 게시판에 올아와 이렇게 올립니다.
이 것이 옳다, 그르다라고 말하기 보다는
이럴 수도 있겠다로 그리고 한번더 복원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숭례문이 불탔다.
석축 위의 2층 누각이 검게 그을린 잔해를 남기고 사라졌다.
화재 원인과 책임 소재에 관하여 말이 오간다.
문화재청에서는 복원을 선언했다. 복원기간 3년 추정, 소요비용 2백억원.
기둥에 사용될 지름 1m 소나무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구한다 하더라도 부재로 사용하기 위해 자연 건조하는 시간만 최소 3년에서 5년이라고 한다.
불에 그을린 석축은 장시간 열을 받아 안정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문화재 관리의 허술함에 대하여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사례를 들어가며 관리 대책을 비교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도 더 많은 소를 잃기 전에 고쳐야 할 것은 물론 고쳐야 한다.
하지만, 복원 문제를 논함에 있어서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숭례문은 600년을 이어 온 소중한 문화 유산이다.
그리고 2008년 2월 11일, 화재로 인해 그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오늘의 화재는 숭례문에 담긴 또 하나의 역사가 되었다.
지금처럼 누각이 전소된 상황에서 복원이라 함은 말이 복원이지 과거의 '모사'일 뿐이다.
설사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기술로 과거를 재현한다한들,
그것은 원형의 아우라를 상실한 가짜에 불과한 모조품이 될 것이다.
진정한 복원이란 후대의 역사와 기술, 사회적 가치가 원형에 결합되어 재창조될 때
의미있는 것은 아닐까? 이른바 '창조적 복원'에 대하여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전통의 계승은 형식적, 기술적 재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그 형식에 담긴 정신적 가치와 사고의 방법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것이라 배웠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수많은 과거의 유산들도 언젠가는 그 생명을 다하고 사라질 날이 올 것이다.
역사 속에서 그 생명이 끊기지 않고 영속하는 길은 형식과 물질적인 보존의 차원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창조적 복원과 변용으로 현재의 역사를 더해가는 것, 그것이 생명력 있는 역사의 보전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과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또한 다가올 내일까지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예를 들어보겠다.
불탄 숭례문을 그대로 유지하고, 유리로 된 보호각을 씌운다.
유리의 표면에는 디지털 액정 기술을 적용한 특수 장치를 부착하여 과거 숭례문의 영상을 재현한다.
영상은 시간의 간격을 두고 변화하며, 영상이 사라지면 불타버린 숭례문의 모습이 드러난다.
1층과 주변에는 숭례문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전시공간을 구성하고,
보행자 중심의 동선에 따라 주변의 교통체계를 정비함으로써
일제시대 이래로 도로에 갇힌 섬이 되어 버린 숭례문의 도성의 정문으로서의 상징적, 역사적 위치를
회복한다. 이로써 과거와 21세기의 현재가 공존하며, 사람과 더불어 생명력 있는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극단적인 변용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시각에서 열린 사고로 아이디어를 모색하는 일은 꼭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이번 숭례문 화재를 문화재 관리방안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개선의 기회로 삼는 것과 더불어
숭례문의 창조적 복원 사례가 문화유산의 보전에 관한 하나의 좋은 선례가 되기를 바래 본다.
teamx님의 의견이었습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
쓴이 : 하름
서울 중구 남대문로4가 29
서둘러 나왔습니다.
화재,
너무나도 흔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차가운 계절,
건조해진 공기에
뉴스를 장식하던 이야기
모두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뜨거웠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검게 그을린 재를 보며 눈물이 났습니다.
스쳐지나가고 겹치어 집니다.
화상에 그 모습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몸에 힘이 빠집니다.
그렇게 떠났습니다.
2008년 새해,
한해의 복을 빌며 새배를 하고
긴 연휴의 끝에 피곤함을 덜어내던 그날
오래도록 곁을 지켜 주었던
아름다웠던 그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