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당신을 더 사랑하기 위해 내게는 그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좁은문_알리사가 사랑하는 사촌 제롬을 두고)
천국이 있다면 혹 이런 느낌은 아닐까,
짧은 인연, 상대방이 잘된들 내게는 아무런 대가가 없는 인연에도
지극히 마음을 쏟아주는, 그래도 당신들에게는
아무런 보탬도 뺄 것도 없어서 결국은 보탬이 되고야 마는 그런..
나이가 들수록 하나를 얻기 위해서 하나를 버려야만 하는 진리..
금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가득 찬 은을 버려야 하고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서는 또 어렵게 얻은 그 금마저
버려야 한다고.. 버리면 얻는다. 그러나 버리면 얻는다는 것을
안다 해도 버리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쉬운 일이 아니다.
버리고 나서 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봐.
그 미지의 공허가 무서워서 우리는 하찮은 오늘에 집착하기도 한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리에게는
살이 부러진 우산 하나뿐이었다. 우리가 짐을 나르겠으니 리옹으로
돌아가시라고 해도 올리비에 수사님과 이혜정 수녀님은
우리의 무거운 짐을 들고 따라오셨다. 평생을 살아도
수녀님 수사님들은 자기 소유라곤 성경책과 책, 그리고 옷 한두벌
뿐이라는데 한 달 여행하는 나는 뭘 이리 많이 넣었을까, 게다가
정작 필요한 우산은 하나뿐이고 살까지 부러져 비는
한쪽 어깨를 적시고 있다. 나는 무거운 내 트렁크가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꼭 필요한 우산이 살이 부러진 채인것까지
내 인생하고 똑 닮았다는 생각까지 들어서였다. 불필요한 것은 많아
다른 사람들을 수고롭게 만들고 필요한 것은 고장난 그런 인생..
나 역시 다시 젊어지고 싶지는 않다. 젊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형벌이라고 나는 아직도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원칙과,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우리가 택할 길은 몇 개 안된다는 현실과의 괴리가 괴로운 것이다.
하느님의 품에 안기는 날까지 우리는 방황하리라.
(성 아우구스티누스)
모든 인간은 그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괴테_파우스트)
파라오가 야곱에게 물었다.
"얼마나 수를 누리셨소?"
"이 세상을 떠돌기 벌써 130년이 됩니다. 얼마 되지는 않으나
살아온 나날이 궂은 일뿐이었습니다." (창세기 47장 8절)
대체 인생에서 뭘 바라는 거니? 누군가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마음 한켠에서 웅웅거렸다. 하지만 이대로엎어져 있을 순 없다고,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고 싶다고, 내가 왜 태어나
이렇게밖에는 살 수 없는지 그걸 밝히고 싶다고…. 그렇게 다시
일어날 때마다 상처자국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면서,
가면 위에 가면이 덧씌워지고, 그 위에 다시 가면을 씌우고,
그리하여 나조차도 내가 누구인지 알수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떠돌다가 나는 엎어져 버린 것이었다.
무슨 문제가 있느냐니까, 그냥 많은 문제가 있단다. 그녀는 26살,
내가 많은 문제가 있겠군요.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부모님의
뜻에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바이올리니스트로 그냥 이렇게 직업을
가지고 말 것인지 아닌지, 묻자, 어떻게 잘 아느냐고 놀라 되묻는다.
비발디의 곡에서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것은 바흐의 곡에서
느껴지는 '고독'이나 베토벤의 곡에서 느껴지는 '비탄의 의지',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위악적 명랑'이런 것과는
또 달랐다.
물직의 기득권자들이야 원래 황폐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해도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피폐하고 보수화될 때 희망은 사라진다.
열렬하게 독일 파시즘과 싸우며 독일의 격동기를 살아내고
파시즘에 저항하며, 수많은 친구들이 나치에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을 곱씹었던 그, 전쟁 후 스스로
동독을 선택해 말년을 보냈던 브레히트,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동독 뿐 아니라 서독에서조차 추앙을 받았던
그는, 행복했을까. 누구도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면서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언제나, 타인을 향해 하고 있는 나는.
젊음이 다 가버린 지금 나는 생각한다. 그때 그렇지 않았다면,
변증법적 유물론을 고민하기위해 하느님까지 부정하지 않았더라면,
내 직업과 미래의,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부귀와 영화,
공장으로 떠나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까지 부인해야 했던
젊은 날이 없었다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다면
어떤 부도 어떤 명예도 거부하겠다고 큰소리치던 그
철딱서니 없는 젊은 날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얼마나 가련했을까,
하고.
내가 한심하게 살았었구나, 약삭빠른 길로 빨리 간다고
열심히 갔는데 그게 결국 내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제자리였구나.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대체 눈물이란 무엇인지, 아마도 영혼과 육체가 통하는 통로가
있다는 증거가 눈물이 아닐까. 마음이 슬플 때 가장 먼저 반응하는
육체의 한 현상이 그것이니까... 하지만 울면 울수록 내 영혼의
아픈 부분이 씻껴져 내리는 카타르시스 또한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처리되지 않은 분노와 슬픔으로 엉겨붙어 있던
비곗덩어리를 눈물이 녹여버렸다고 했다.
"사랑할 시간이 이렇게 부족할 줄 그때도 알았다면 좋았을 것
같아요.. 남편과 결혼한 지 15년만에 남편이 좀 마음에 들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그랬죠. 여보, 이제 당신이 나를 떠나
어떤 여자와 결혼한다 해도 좋을 거야. 당신은 이제
완벽한 남자니까. 그러자 남편이 말했어요.
당신 육체의 병은 내가 고쳐주었지만 내 마음의 병을 고쳐준 것은
당신이잖아. 오늘의 나는 당신의 작품이야.
그러고는 정확히 2년 후 그가 죽었어요."
사랑해야지, 그건 나도 안다. 한 선배도 그건 알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른다. 어떻게 하는 게 사랑인지.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하고
때로는 참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칼끝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을 만큼
냉정하기도 해야 하며 때로는 한없는 물렁탱이로 남아 오냐, 오냐,
해야한다. 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일부러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 때도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수많은 군중 속에서 유독 그 사람의 뒤통수를
알아보는 것, 수많은 발자국 소리 중에서 유독 그의 발소리를
알아듣는 귀를 가지는 것.
지리멸렬한 삶의 극적인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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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레랑스, 비발디의 기타 콘체르토 or , ICE 기차
* 톨레랑스(tolerantia, 관용)는
남의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잘못’으로 매도하지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그럴 수도 있다’고 용인하는 것.
상대방의 생각을 바꿀 수 있어도 의도적으로 용인하는 것이므로
무관심, 포기와는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