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조와 정약욕 보다 백성들과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이순신과 독립군 처럼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자...
말은 이렇게 하지만 과연 이렇게 하지만 과연 내가 잘할수 있을까.
위에 언급했던 위인들은 자신에 신념을 목숨처럼 여겼던 분들이다.
그래서 조광조와 정약욕은 노비 폐지를 주장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이순신과 독립군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전사하신 분들이다.
난 아직까지 남을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어서 사랑할 자신은 없다 오히려 말만 국회의원이 되야지 하면서 공부만 할뿐 국회의원으로 출마할지도 의문이 든다...
그러나......
술먹고 나한테 울면서 죽여 달라는 두명에 여자아이를 보았다.
둘다 아직 중학교도 졸업안한 중학생들 인데.......
그 중 하나는 양손 손목에 징그럽도록 칼자국이 있었다..
난 그걸 보고 등골이 오싹함을 느꼈다...
왜 이 어린아이들 에게까지 하늘은 이런 시련을 주는 것일까...
보통 여자아이 처럼 남자도 만나고 부모몰래 친구들과 외박도
해보면서 밤새 비밀얘기도 하고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장난을 치면서 재밌게 보내야 되는 그런 나이가 아닌가?
근데 신은 애석 하게도 이 아이에게 웃음을 뺏았어 버린거 같았다.
대체 무얼 때문에 이 귀여운 여자아이게 자살까지 하게 만드도록
했는지 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난 그때 아직 고등학생 이었고 지금처럼 책과도 거리가 멀어서 생각하진 못하였다..
그러다 여름방학이 끝나기 무렵 우연히 그 얘랑 마주쳤다...
술먹었을때 한번 만난게 다였어 서로 인사만 하고 헤어질려는 순간
" 저기요~" 하면서 나를 붙잡았다..
붙잡아서 하는 말이 아까 술먹었을때 소란 피워서 죄송하다고 말이었다..
난 괜찮다고 말하면서 왜 그리 죽고 싶은지 조심스레 말을 걸려고 했으나 그땐 앞에서 말했던거 처럼 그 당시에 나는 책과 거리가 멀어서 어떡해 물어야 되는지 몰라 그냥 직구로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얘 표정이 약간 어두워 말하기 싫다는 말투와 표정으로
담에 말할께요 라고만 말했다 난 그 자리에서 폰번호를 교환후 헤어졌다..
그 날 저녁 그얘한테 문자를 날려 보냈다 첫 문자가 아마 "밥먹었니"라고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날 내가 잠자기 전까지 답장이 안왔다 난 기달리다가 잡기전에 한번더 문자를 보내고 잠들었는데 담날 아침에야 답장이 왔었다.. 나중에 얘들을 통해서 알았지만 친구들이 그 얘가 걸레라고 말하였다. 즉 돈을받고 아저씨랑 하루밤 자는 원조교제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때도 어느 모텔에 있었을꺼라고 얘들이 장난식으로 말하였다. 얘들은 장난으로 여겼지만 난 심각했다 집안이 마니 어려운가 왜 벌써부터 그런 짓을.. 하면서 말이다 난 사랑이 부족해서 그런가 라는 생각에 내 친구중에 괜찮은 얘들을 소개시켜 주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 얘가 정색을 하면서 싫다고 하여 결국 소개시켜 주지는 못했다..
그렇게 서로 문자도 자주 하고 전화도 자주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걸레랑 사귀냐 면서 웃음면서 나한테 묻는 친구를 보면서 난 화가 났다 걸레라니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소리가 걸레라고 하니 난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그러다 학교에서 크게 싸우기도 한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 여자얘에 집안 사정은 그 얘에 유언같은 거라서 말할수는 없지만그 얘를 걸레라고 말하지 않기 봐랄 뿐이다.
이렇게 문자와 전화만 주고 받으면서 겨울방학이 다가왔다 그 얜 아직도 원조교제를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나의 사랑으론 그 얘 상처를 치유할수 없었다....
허긴 난 못생겼고 남자다움도 없어으니깐,, 라면서 혼자 한숨을 쉬곤 했었다 아마 그때 부터 난 그 얘를 짝사랑 하고 있었나 보다.
암튼 그런 생각으로 차츰차츰 문자수와 전화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연락을 거의 안하게 될 정도가 되었다. 겨울방학때는 거의 만날 일이 없었다...
겨울방학이 지나고 봄방학을 맞이 할때쯤~ 새벽에 한통에 문자가
왔다 모두들 고마웠다는 문자였다 번호는 1004 난 누구지 하는 생각도 하기 전에 전화를 걸었다 당연히 전화상대는 그 얘였다. 전화를 해보니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난 그 길로 그 얘 집으로 향하기로 맘 먹었다.. 하지만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었고 버스는 돌아 다니지 않을때 난 하는수 없이 택시를 잡고 부산으로 향했다.. 거기에 가보니 나말고 다른 친구들도 몆명 와있었다. 불은 완전히 꺼져 있고 조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해보고 이름을 불려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했다 너무 오바하는 걸수도 있었지만 빨리 들어 가봐야 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열쇠공과 함께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난 거기서 처음으로 시체를 보았다작고 귀여운 여자아이에 죽음......
나도 몰르게 겁을 먹고 집밖으로 뛰쳐 나와서 소리를 지었다..
몇시간뒤 시체를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한 경관이 나한테
편지를 주었다 유언장 갯수는 총 열개 자기랑 친했던 얘들한테
쓴거 같았다 난 나한테 쓴 편지를 보고 큰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흘렸다 내용은
"오빠가 있었기에 난 행복했었는데 결국 오빠도 나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구나 담에 나 같은 얘가 있음 그땐 끝까지 얘기를 걸어줘 그리고 사랑해"라는 2줄밖에 안되는 내용 이었다..
결국 나 때문에 죽은거나 다름없다. 내가 먼저 사랑을 주자고 맘을 먹고는 혼자만에 착각으로 포기한 내 자신이 얼마나 바보 고 얼마나 한심한 남자였는지 한심 스러웠다..
그리고 난 그 얘가 자살하게 만든 원인을 찾았다
난 이걸 어록으로 속 풀이를 할려고 하겠다
"사람이란 밥만먹고 사는게 아니라 주위에 사랑과 관심속에서 살아 가야만이 진짜 사람으로서에 존재를 느낀다"
얘기를 하다 보니 삼천포에 빠졌지만 이게 내가 국회의원이 되게 만든 원인이다..
그리고 내가 첨에 위에 두명에 여자라고 했는데 나머진 한명은 그 얘가 죽은뒤 몇달뒤에 술먹고 그 얘랑 똑같은 행동을 하였다.
다행히 손목에 자살할려는 흔적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끝까지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펴 줘야 겠다는 생각이다..
당연히 국회의원을 위한 공부는 게을리 하지 않을것이다.
이 글을 읽을신 모든 분들 몇십년뒤에 꼭 박종림 이란 이름에 한표 찍어주세요 전 맨위에 위인들 보다 더욱 훌륭하게 해 내겠습니다!
-박종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