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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없이는 살 수 없죠.

김영민 |2008.03.20 00:47
조회 72 |추천 0

                               회개의 눈물1-니느웨의 눈물

                                요나 3:1-10

천국의 맛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눈지 6주가 흘렀습니다. 천국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성도들이 되었기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비스트교회 성도 모든 분들은 천국을 과연 이 땅에서 맛보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저는 몇 주간 눈물에 대해서 함께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눈물은 바로 회개의 눈물을 가르킵니다. 특별히 오늘은 니느웨성에 있었던 회개의 눈물을 살펴보면서 깨달을 수 있는 몇 가지를 함께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니느웨 성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니느웨성에서 꽤 잘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집은 쌍두마차가 6대가 한꺼번에 달릴 수 있는 넒고 큰 거대한 성벽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성벽은 30미터가 넘는 거의 오늘날의 10층짜리 빌딩의 높이의 우람한 집이었습니다. 이 사람의 집은 9층에 위치한 최고의 아늑한 곳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쌍두마차는 금으로 장식하여 당시 최고의 쌍두마차라고 인정을 받은 부자였습니다. 하고 있는 일은 대부분 하란과 예루살렘에 천을 대량으로 파는 일이었습니다. 돈이 많았고, 노예로 쓰고 있는 유대인들과 애굽의 흑인들이 30명 가량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단 한푼도 돈을 주는 것이 싫었고, 편안히 쉴 집조차 주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어떤 날은 유대인인 노예가 귀중히 여기는 술잔을 깨뜨렸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10일을 굶기고, 감옥에 쳐넣고, 분이 풀릴 때까지 때렸습니다. 솔직히 이혼한 자신의 재산 분할을 노리는 아내가 미워서 화풀이로 때렸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니느웨성은 앗수르의 수도였습니다. 220만평이나 되는 거대한 평지에 세운 성은 너무도 든든하였고, 나라는 부강했습니다. 이 성은 아담의 아들 가인의 후손인 니므롯의 후예가 세운 역사 깊은 성이기도 합니다. 거의 3000년이 넘도록 이곳은 수많은 상인들과 정치인들의 집결지가 되었습니다. 앗수르의 왕인 아슈르단 3세는 나라의 쇄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변국인 유다와 이스라엘을 차례로 침략하여 빼앗는 것만이 부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전투적이고, 사나운 용병을 모집하여 전쟁을 준비하는 중이었습니다.

최근 조직 폭력배와 거리의 불량배과 가난한 빈민층 문제가 니느웨성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올랐습니다. 조직들과 결탁하여 가격을 담합하여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사람도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가난한 자들을 더욱 조이는 역할을 했습니다. 과부나 연약한 고아들은 유린당하고 고통 중에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술집은 최근 엄청나게 늘어났고, 그런 술집은 2차까지 알선해주는 성적인 타락도 곳곳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작스럽게 해가 빛을 잃고 마침내 대낮에 깜깜한 어두움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태양이 지구의 달에 가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말이 왔다고 일대 혼란을 빚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몇 년 전에는 유행병이 번져서 니느웨 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몇 해전에도 똑같은 일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는 신이 노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그는 신이라고 믿었던 니스룩을 가장 최고의 신이라 믿었습니다. 독수리의 머리를 가진 사람의 모양을 가진 니스룩은 자신의 집과 니느웨를 보호하는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몇 달전 지중해에서 큰 파도로 배 여러 척이 소실되었고, 싣고 가던 모든 물건들을 바다에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도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집사가 그 배에 탔다가 모든 물건을 잃어버렸습니다. 그 일로 그는 그 집사를 해고해버렸습니다. 그런데 함께 탔던 사람들 중에 요나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요나와 그의 일행은 다시스로 가는 배에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엄청난 풍랑을 맞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신을 불렀습니다. 알라신이시여, 니스룩 신이시여, 부처신이시여,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 사람은 배 밑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풍랑이 일어나 다 죽게 되었어도 잠만 잔다고 하니 한심스럽기 그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깨워서 풍랑이 이는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신을 성난 바다에 던지면 모두가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래서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런데 던지자마자 바다가 언제 그랬냐는듯 잠잠해졌습니다. 자신의 집에 일하던 집사는 그 이후로 개종을 했습니다. 참된 유일신은 여호와 하나님 밖에 없다고 고백하며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전에 바다에 던져졌던 요나라는 선지자가 니느웨성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집사의 말로는 그가 던져지는 순간에 큰 물고기가 삼키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죽은 줄 알았던 요나가 살아서 걸어 다니면서 니느웨 성이 40일 뒤에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일식과 유행병이 나돌고 말세가 왔다고 떠드는 판국에 죽었던 선지자가 유령처럼 나타나 종말이 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가 살고 있었고, 그가 함께 했던 모든 것이 다 40일 뒤에 없어질 것을 생각했습니다. 살아온 모든 세월들이 허망하게 되어질 40일 뒤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는 정황이 다시 살아난 선지자 요나의 이야기나 풍랑을 마음데로 움직이는 여호와라는 신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지만 진실이었습니다.

자신이 낳고 함께 기뻐했던 자녀가 머리를 스쳐 지났습니다. 그렇게도 사랑했던 아내를 버리고, 방탕하게 보내었던 모습이 추해지고 더럽게 느껴졌습니다. 화려한 쌍두마차를 타고 지나던 어느 길목에서 마주친 더럽고 흙으로 뒤범벅된 한 아이를 밀치고 저주했던 일과 노예를 괄시하고 과부를 무시하고 가난한 자들을 괴롭혔던 일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40일 뒤에는 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끝날 인생인데 왜 그렇게 모질게 살아왔는지 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 들고 있는 무거운 죄책감의 커다란 그림자는 온 영혼을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저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사역의 첫 번째 외침을 시작했습니다. 마 4: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선포했습니다. 막 1:15에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임박한 진노 앞에서 제일 먼저 선행 될 것은 회개였습니다.


 

1. 임박한 진노 앞에서 회개의 눈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했을 때 제일 첫 번째 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느니라였습니다. 요나서에 발견할 수 있는 니느웨성의 회개의 눈물은 임박한 진노 때문이었습니다. 불과 40일 뒤로 다가온 그것도 엄청난 기적과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선지자의 선포에 모두가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징조로 나타났으며, 선지자 요나를 통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40일 밖에 남지 않은 그들의 심판 앞에서의 두려움은 회개함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긴박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세상은 심판의 임박성과 긴박성을 논하기를 꺼려합니다. 교회의 강단에서조차 심판 앞에서의 회개를 말하기를 두려워합니다. 회개는 어려운 것이며, 회개는 두려움을 주는 것이며, 회개는 꺼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회개의 설교는 외면받는 설교이며, 듣지 않는 설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를 막고, 아무리 싫다고 외쳐도 심판은 오고 있습니다.

욜2:11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냐’ 그날에 임할 심판은 전무후무한 재앙으로 철저히 황폐화될것입니다.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잃을 것입니다. 그 심판은 우리 인생에 단 한번뿐인 필연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계20:15에 &#-9;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9; &#-9;누구든지&#-9; 이 말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모든 죄인들에게는 단 한사람도 예외 없는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끝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불구덩이며, 괴로워도 죽고 싶어도 끝이 없는 괴로움과 끝이 없는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크고 두려운 날의 심판이 사소한 행위와 언사까지 임할 것이라 했습니다. 마 12:36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을’것이라 했습니다.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는 모두 심문 받을 것입니다. 고전3:13에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의 열매 없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도덕이나 율법종교에서 요구하는 것 이상입니다. 믿음으로 가는 것이 천국이 아닙니다. 신앙을 행위로 열매맺지 못하는 사람은 심판받게 됩니다. 마 7:26-27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 18:6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심판의 범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지는 않습니까? 눅 12:8-9에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요즘에 나는 기독교인입니다라고 자신있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그런 사람도 임박한 진노 앞에서 회개해야합니다. 기독교인임을 밝히면 의무와 손해와 책임이 막중하기에 비밀을 지키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임을 다시한번 깨달아야합니다.

기독교는 사랑, 축복과 긍정적으로 살면 됩니다의 종교가 아닙니다. 임박한 진노 앞에 우리는 정확한 심판을 위한 정의의 종교이며, 회개의 종교이며, 열매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공의를 기초한 사랑이지 사랑을 위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죄악을 숨기려 합니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을 것은 없습니다. 은밀히 행해서 숨기려 합니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을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숨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CCTV로 우리 인생 전체는 녹화되고 있습니다. 돈이 많아도, 힘이 있어도, 권세가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숨길 것은 없습니다. 은밀한 것 모두를 심판하시는 그 날에 자신의 한 모든 일이 선악간에 드러날 것입니다. 전12:14에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회개의 눈물! 심판을 늦출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행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기록합니다. 사 57:15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며, 통회하며 눈물로 회개하는 자를 새롭게 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벧후 3:9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며 오래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욜 2:13에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회개는 40일 뒤의 심판을 멈추었습니다. 니느웨성 백성들은 회개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악 가운데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회개의 자리에 단 한명도 빠짐없이 나오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2. 회개하는 자리에 나아갑시다.

엡5:15,16에 &#-9;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9;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죄인들이 회개할 기회를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히3:12-13에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넘어질 것을 조심하고 서로 서로 사랑하며 세워가라는 말씀입니다.

히12:15-17에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고 기록합니다. 이것은 근신하는 마음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삶의 경건성을 유지하며 회개한 이후의 변화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하비스트교회 성도 여러분! 니느웨에 임했던 두려운 심판의 징조와 엄중한 심판의 위엄이 있었던 그 땅에 회개의 눈물이 가득하자 진노가 거두워졌습니다. 40일 뒤에 일어날 심판의 두려움 앞에서 떨었던 그들의 삶을 보면서 우리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내 삶에는 심판이 멀었다고 아직은 살날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 자부하십니까?

이제 얼마남지 않아 우리에게도 심판의 때는 당도할 것입니다. 입으로 범죄한 사실이 있습니까?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치 않습니까? 거짓증거하여 남을 헐뜯고 나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있게 기독교인이라고 밝히지 못하는 부끄럼움을 행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 용서받고, 근신하여 돌이켜 새로운 삶을 살기를 고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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