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력-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gger, 1889~1976) - 1889. 9. 26 독일 남부 바텐주의 메스키르히에서 출생 - 1909 프라이 부르크 대학 입학 신학 ->철학 전과 - 1914 [심리주의에의 판단론]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 - 1923 마르부르크 대학의 교수로 초빙 - 1928 프라이부루크 대학의 정교수 - 1933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 취임 - 1945 강단추방 - 1951 프라이부르크 대학 강의 재개 - 1976. 5. 26 심장마비로 사망 주요저서- 존재와 시간 (1927)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 (1929)숲속의 길 (1951)형이상학 입문 (1953)
니체 (1961)
휴머니즘에 관하여 (1947)
심리주의에 있어서의 판단론.
역사 과학에 있어서의 시간개념.
칸트의 형이상학의 문제.
근거의 본질.
진리의 자기주장.
휠더린의 시(詩)의 해명.
플라톤의 진리론.
형이상학 서설.
사유(思惟)의 경험
무엇이 사유를 시키는가?
존재문제에 대하여
철학이란 무엇인기?
동일성과 차이성
자연의 본질과 개념에 관하여. 20세기 실존주의의 대표자로 꼽히는 독창적인 사상가이며 기술사회 비판가이다.
당대의 대표적인 존재론자였으며 유럽 대륙 문화계의 신세대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교육철학은전인교육과 인격교육을 강조하는 실존주의
▣ 하이데거의 실존사상 ▣
1. 하이데거의 생애
하이데거(1889-1976)는 현대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실존사상과 현상학, 그리고 해석학을 이해하는데 필요 불가결한 인물이다. 그는 1889년 독일 서남부에 위치한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났으며 열 네 살 때 고향에서 학교를 마치고 콘스탄츠의 예수회가 경영하고 있던 하인리히-주조-김나지음에 카톨릭 장학생으로 들어갔다. 1909년에 프라이부르크 대학 신학부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철학과 함께 현상학을 만난후 신학 공부를 그만두고 철학부로 옮겨 신칸트학파의 사상을 공부한 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15년부터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기존 강단 철학의 틀을 깨고 독자적인 방법으로 강의했다. 이러한 강의를 토대로 『존재와 시간』출간되자 하이데거는 이 시대의 철학의 거장으로 부상되었다. 1933년 독일의 나찌에 동조하여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으로 취임했지만 나찌즘의 인종차별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나찌즘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프랑스 점령군에 의해 강의가 금지 되었다가 프랑스의 학자들의 탄원에 의해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의가 해제된 후 한학기의 강의를 하고 대학에서 은퇴하고 사색과 저술 활동을 계속하다가 1976년 86세의 나이로 그의 고향인 메스키르히에서 영원히 잠들게 되었다.
2. 형이상학
1). 전통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자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물음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온 전통 형이상학은 존재자만을 다루었을 뿐 존재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존재는 망각되고 존재자와 존재의 존재론적 차이도 전통적 사유에서는 숨겨졌었다. 그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자에만 집착하는 표상으로부터 존재의 진리에 대한 사유로 이행하는 시도라고 언급하면서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개진하고 탐구를 시도했다.
2). 새로운 형이상학의 가능 근거
하이데거는 "존재자로서의 존재자"에 있어서 존재자를 다루는데 지나지 않았던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전통 형이상학을 비판 극복하고 존재자와 존재를 엄밀히 구별하는 이른바 존재론적 차이에 입각하여 "존재의 의미", "존재의 진리"를 밝히는데 그의 철학의 목표를 두었다.
하이데거의 새로운 형이상학은 존재 망각의 역사에서 잊혀졌던 존재를 되찾는 것으로 현존재인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존재 이해 즉 실존으로 존재하는 현존재를 통해서 존재로 이르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현존재의 실존론적 분석을 통해서 존재에 이르는 길이다.
3. 하이데거의 실존분석
1). 인간 현존재의 실존성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자신의 존재 물음 즉 존재의 본래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에 대한 물음을 인간 현존재의 분석을 실마리로 하여 행하고 있다. 현존재(Dasien)란 구체적으로 거기에(Da) 있는(Sein) 자라는 뜻이다. 하이데거의 분석에 따르면 존재(Sein)가 드러나는 곳(Da)이라는 의미에서 현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의 현(Da)은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소이며 현존재 그 자신이 존재로 향해 열려 있는 존재자이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우리 주위에 있는 나무나 책 등 다른 존재자에게는 그것이 무엇인가가 미리부터 정해져 있지만 인간은 이러한 사물과는 달리 존재는 하되 어떻게 존재하느가를 스스로 결정해 가는 존재자이다. 즉 존재 이해를 가진 현존재이다. 이런 현존재의 특징을 하이데거는 실존이라고 부른다. 실존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존재자는 바로 인간이다. 바위는 존재하지만 실존하지는 않는다. 나무는 존재하지만 실존하지는 않는다. 인간만이 오직 실존할 뿐인데 인간이라는 존재자는 그의 존재가 존재의 비은폐성 안에 열려 있는 상태로 들어서 있음을 통해 그 존재상으로 그 존재에 있어서 뛰어난 존재자이다. 이런 인간을 하이데거는 현존재라 칭하고 있다. 현존재는 존재의 의미에로 바르게 접근하기 위해서 기초적으로 물음을 받는 존재자이므로 하이데거는 존재에로 향하는 바른 통로는 다른 존재자가 아니라 실존적 존재 구조 속에서 존재를 이해하며 표현할 수 있는 이 현존재의 존재 기구를 실존론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열려질 수 있다고 보았다.
2). 세계-내-존재로서의 현존재
하이데거에 있어서 현존재와 세계의 관계는 동시적이며 불가분의 이중구조를 갖고 있다. 현존재와 세계의 관계는 단순히 있는 존재가 서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독립하여 있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처럼 실존으로 규정지은 인간 현존재의 근본 구성 틀은 '세계-내-존재'이다. 현존재에는 어떤 세계 안에서의 존재라는 것이 본질상 속해 있다.
우리가 세계라고 할 때 그 속에는 도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현존재 즉 타인도 있다. 현존재가 교섭하며 있는 현존재의 세계는 타자와 공유하는 공동 세계이며 이 세계 내부에서 만나는 타인은 "공동 현존재"이다.
♣ 하이데거의 분석
① 현존재는 ~을 위한 사용목적을 가진 배려로써 자신이 아닌 다른 사물적 존재자의 곁에 있음이다.
② 현존재는 사용목적이 없는 고려로서 자신이 아닌 타인과 함께 -있음이다.
③ 현존재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향한 고유한 관심으로서 현재의 자신에 앞질러 있음이다.
3). 실존의 세 가지 양태
① 처해 있음 - 하이데거는 우리가 존재론적으로 처해 있음에 대해 존재론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일상적인 것인 기분에 젖어 있음이라고 말한다. 처해 있음 속에서 이런 또는 저런 기분에 있다는 점에서 현존재는 항상 이미 그 자신 앞에서 데려와져 있다. 그 자신 앞으로 데려와져 있다는 것은 존재가 열어 밝혀지는 장인 현존재 자신에게로 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존재는 기분 속에서 존재 이해를 가진 실존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② 이해 - 이해는 열어 밝혀져 있음의 존재 이행이다. 인간 현존재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다른 현존재와의 관계 그리고 세계 안에서 만나는 여타의 모든 다른 존재자와의 관계 속에서 그가 관계하고 있는 존재자를 이해하면서 존재한다. 여기서 ‘이해한다’하는 것은 인간 현존재의 존재 이행 형태로서 존재자를 존재 가능으로 존재자를 존재로 기획 투사, 또는 자유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존재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존재자의 존재 의미를 안다는 말이다.
이해의 구체적 이행은 ‘해석’이다. 해석 없이 이해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해에서 존재자는 그의 가능성에로 기획 투사되고 해석에서 존재자는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어떤 것으로 말해 준다. 현존재가 자기 자신을 자기의 가능성에로 기획 투사하는 것인 이해는 이제 자기 자신을 의식할 수 있게 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게로 옴을 ‘해석’이라 부른다.
③ 말 - 말 역시 현존재의 열어 밝혀져 있음에 뿌리를 박고 있다. 말은 현존재가 처해 있으면서 이해하고 있는 존재자라는 것을 드러나게 한다. 하이데거는 말로서 실존론적-존재론적 구조를 이해하며 이것은 인간이 말하고 있는 실존론적-존재론적 가능 조건이다. 말은 처해 있음과 이해와 실존론적으로 동일 근원적이다. 이해가 처해 있는 이해이기에 그것은 항상 이미 특정한 방식으로 구체적으로 해석되어 왔으며 하나의 의미 부여의 틀 안에서 이렇게 또는 저렇게 분류 파악된다. 이러한 분류파악의 가능성으로서의 처해 있는 이해를 하이데거는 말이라 부른다.
이상으로 현존재가 세계내 존재로서 자신을 열어 밝히는 방식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 하이데거가 인간의 근본적인 존재방식에 대한 이러한 해석학적-실존론적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인간의 존재가 사물적 존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과 또 인간의 존재를 사물적 존재의 관계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4). 현존재의 시간성:불안과 그 극복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현존재와 시간성을 실존론적으로 분석한다. 현존재는 이미 어떤 세계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세계내에 이미 있는 현존재는 관심의 세계 속에서 가능성의 존재와 전락한 존재의 모습을 함께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현존재가 평균화되고 일상화된 세계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잊어버리고 비본래성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비본래성 속에 살아가는 현존재는 근심속에 살아감을 전제한다. 자기 앞에 어떤 대상이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그저 불안한 것이다. 불안의 이유는 인간이 죽음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내에 존재하는 현존재는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즉 인간은 세계에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현존재는 여러 가지 방식을 통해서 그 불안을 잊으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근원적인 불안은 일시적으로 잊혀질지 모르지만 그 곳으로부터 자유를 얻지는 못한다.
양심의 부름은 현존재가 고독과 불안의 위협속에 있음을 알려 준다. 이 양심의 소리는 현존재가 세상 사람의 일상성 속에서 잊혀져 있던 본래의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는 부르짖음이기도 하다. 이제 죽음에 대해서도 스스로 앞질러 죽음을 떠맡음을 결의함으로서 죽음에 대한 불안의 속박이 죽음에의 자유가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현재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통일적인 현상을 하이데거는 시간성이라고 지칭한다. 그러나 현존재는 보통의 경우 죽음으로 향한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피해 은닉하면서 존재함으로서 비본래적인 모습을 띤다. 우리는 죽음의 선구를 통해 현존재의 궁극 목적으로서의 진정한 자기가 개시된다. 즉 죽음의 경험으로부터 도피하지 않고 그것에 단호하게 직면하여 죽음에 앞서 달려가는 것을 통해서 현존재의 궁극 목적으로서의 진정한 자기가 개시된다. 현존재가 자신의 궁극 목적에 직면할 경우 현존재에게 진정한 의미의 세계 즉 존재의 본질이 열리는 것이다.

